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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56화 (356/633)

< 356. 밤 중 대화 (2) >

끼이이익……탁.

아멜린 원장이 등불을 든 채 올리버를 데리고 원장실 안으로 들왔다.

그녀는 여기저기 걸린 등불에 불을 붙여 안을 밝혔다.

덕분에 원장실 내부는 기이한 붉은빛으로 물들며, 낮과 다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제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에요.”

자리에 앉자마자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나름 각오를 하였는데, 원장은 생각 이상으로 차분했다.

“제논 씨는 나쁜 사람 같지가 않아서요……. 설사,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원장이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제로 그녀의 말에는 어떠한 계산도, 의도도, 허세도 없었다.

“혹시 이곳에 해코지할 생각인가요?”

원장이 물었다. 올리버는 오히려 놀라며 손을 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됐군요……. 잠시만요. 커피 좀 가져올게요. 미지근한 것도 괜찮나요?”

“예, 괜찮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하자마자 원장은 주전자에 미리 끓여놓은 커피를 따라 가져왔다.

“괜찮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맞은편에 앉으며 원장이 말을 꺼냈다. 그녀는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요안나의 소식을 듣고 싶어 했다. 순수한 걱정에 기반해 말이다.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요안나 님은 지금 신대륙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대륙 식민 도시인 퍼스트 스텝에요.”

“퍼스트 스텝요?”

“예, 연합왕국 식민 도시로, 현재 중요 군사거점 겸 마석 공급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대륙이라면……. 많이 위험하지 않나요?”

원장은 걱정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구대륙에서 평생을 산 사람에게 신대륙은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를 위험의 땅으로 인식됐으니.

실제로 위험하기도 했고.

올리버는 쓴 진실을 이야기할지, 달콤한 거짓말을 이야기할지 고민하다 원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진실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대답하자마자 올리버는 보았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으로는 걱정과 슬픔을 빛내는 원장을.

올리버는 고아원 원장이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그런가요?”

“예. 제가 듣기로 그곳에 흑마법사들이 꽤 있고, 거칠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성기사님들도 그들과 자주 충돌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어요. 제논 씨 때문도 아닌데요.”

“어……. 사실 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올리버가 훅 치고 들어갔다. 올리버 역시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기에.

“제논 씨 때문이라고요?”

“예……. 설명하면 좀 길어지는데, 아마 제 잘못일 겁니다. 성기사 님이 신대륙으로 간 이유가 상부에 마법사들 인체실험 조사를 건의했기 때문이거든요.”

대답을 들은 원장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곤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제논 씨가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가장 궁금하네요. 혹시, 제논 씨가 압력을 넣은 건가요?”

“비슷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거기 끌려가 요안나 님에게 도와달라 청했거든요.”

원장이 다시 놀란 빛을 빛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올리버는 바로 자신이 어떻게 요안나와 알게 됐고, 란다에서 다시 만나 마텔 건에 대해 도움을 청했는지 원장에게 설명했다.

앞서 야렐리에게 말한 덕분인지 더 간략하고 깔끔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예……. 제가 마텔 건에 관해 이야기해 그런 건의를 한 거니, 저도 약간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감정은 요안나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기특함, 현실에 대한 착잡함,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으로 복잡하게 얽혀 빛났다.

그중 올리버를 향한 감정도 있었다.

“제논 씨는 그때 실망했나요? 그 아이에게요?”

“예?”

올리버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되물었다. 원장은 다시 차분히 물어봤다. 강요하는 게 아닌 정말 궁금해 대답을 부탁하듯.

“요안나. 그 아이에게 실망했냐고 물었습니다.”

“……글쎄요. 제가 감히 누구에게 실망하고 말고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그거 이상하네요. 도움을 청하러 갔다면 기대하는 감정이 있었을 텐데요.”

올리버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도움이란 행위에는 믿음과 기대와 같은 감정이 있어야 가능했다.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데, 도움을 청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예,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도와줄 걸요.”

올리버가 앞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부정했다기보다는 깨달았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터였다.

“무엇에 실망했죠?”

“성기사로서 신과 정의를 입에 담아 놓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외면해서요?”

올리버가 자기도 헷갈린다는 듯 말에 물음표를 붙였다. 그럼에도 말은 날카로웠다.

"확실히 평소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돌 맞기 좋죠.”

원장이 요안나에게서 동정과 연민, 공감의 감정을 빛냈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시대엔 보통 사람들은 그런 걸 입에 담을 수조차 없어요.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철인 혹은, 얼굴에 철판을 깐 자들을 제외하곤요.”

“혹시 변호하시는 겁니까?”

올리버의 억양이 아주 미묘하게 변했다. 너무 미묘해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정도. 허나, 놀랍게도 그 작은 변화로 인해 그의 목소리에서는 위압감이라는 게 생겼다.

웬만한 사람은 입도 벙긋 못할 위압감이 말이다.

그러나 더 놀랍게도 원장은 계속해 입을 열었다. 위압감을 느꼈음에도 이를 극복하며 말이다.

“변호라기보다는 공감에 더 가까울 겁니다.”

“공감요?”

“저도 매일 그런 감정을 느끼거든요.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나는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 두려움을요.”

진심. 원장의 말은 진심이었다.

“원장님께서 왜 그런 걸 느끼죠?”

“그건 제가 원장이기 때문이죠. 64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세 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원장요.”

"......."

“전 선대 원장님들의 뜻에 따라 아이들에게 매일 말한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 남을 때려서 안 된다. 항상 신의 가르침대로 옳게 살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가끔씩 제게 되묻곤 한답니다. 만약,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전 그럴 수 있을지를요.”

“그런 적……. 있습니까?”

“부끄럽게도 몇 번 있었답니다. 선대 원장님을 보좌했을 때요. 재정난에 허덕여서 아이들의 수를 줄이자고 몇 번이나 건의했지요.”

"......."

“참고로 전 알고 있었어요. 쫓겨난 아이들이 얼마나 비참해질지.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도 전 아이들을 줄이자고 했어요. 모든 아이가 굴어 죽을 바에는 몇몇만이라도 살리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요.”

"......."

“하지만 원장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대신 마을로 내려가 먼저 돈을 받고 일하거나, 인근 지주에게 가 구걸하다시피 기부금을 받아 오셨죠. 아무리 볼품없는 양이라고 해도 버릴 수 없다고요. 그건 신의 뜻이 아니라고요.”

“사제님이셨습니까? 선대 원장님요.”

“아뇨, 다만 경전을 자주 읽으셨습니다. 다른 선대 원장님들처럼요. 저도 읽고 있고요.”

“경전을 읽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 고아원을 처음 세운 게 한 사제님이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 사제님 성함을 여쭐 수 있겠습니다.”

“이름은 모른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거든요.”

이름 없는 사제라……. 올리버는 과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싶었다.

“어쨌건 그 사제님께선 이런 말을 남기셨죠. 설사 나중에 자신이 죄를 범할 수 있더라도, 비겁해질 수 있더라도, 아이들에게 옳은 가르침을 주라고요. 그러지조차 못하면 아이들은 옳게 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고요. 창피함에 자기혐오를 느낄지언정, 용기 내 아이들에게 옳은 말을 전하라고 하셨죠.”

“오……. 감동적이네요. 여전히 제 귀에는 변호로 들리지만요.”

올리버의 말은 평소와 달리 약간의 날이 섰다. 웬만한 사람은 듣는 것만으로 기가 꺾이고, 자존심이 크게 상할 정도였다.

"그럴 수도 있죠. 솔직히 이 말을 하는 것 역시 나중에 절 위한 변호일지도 모르니까요.”

원장인 아멜린이 우려와 걱정, 두려움을 빛냈다.

“……최근에도 그런 적 있습니까?”

“예……. 파테르교에서 보내는 기부금이 갑자기 줄였을 때요. 아이들을 다른 고아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죠. 익명의 기부가 와 간신히 숨을 돌렸지만요.”

“대단하시군요. 도움을 받았다고 하나 그런 상황에서도 안 그러셨다니, 대단합니다.”

“선대 원장님을 본받고 싶었거든요. 그분께 큰 은혜를 입어서요. 또……. 요안나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그 아이가 왜 성기사가 됐는지 아시나요?”

“이곳에 있는 동생분들을 위해서 아닙니까?”

“맞아요……. 그 아이는 참으로 특별했죠. 자기 역시 버려진 아이임에도 이 고아원에 온 걸 감사히 생각하고, 다른 아이들은 물론 저 같은 어른에게도 힘이 되어 주려고 했으니까요.”

원장은 요안나와의 기억을 떠올리듯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기특함, 미안함을 빛냈다.

올리버가 카버가 줬던 자료 내용을 떠올렸다.

추운 겨울, 고아원에 덩그러니 버려진 요안나가 성장해 모두의 힘이 되는 밝은 아이로 자랐다는 이야기를.

그 덕분에 지역 사제의 눈에 띄어 성기사까지 됐다고 하였다.

“그것도 들었습니다. 타고난 용기와 강인함으로 이미 유명했다고요.”

“그건 아니에요.”

“예?”

“그 아이가 남들보다 용감하고, 배려심이 깊고, 힘이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나 이기심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저 그걸 숨기고, 자신을 단련한 거죠. 자기 동생들과 자길 길러준 우리에게 보답하려고요……."

원장의 목소리와 감정에선 다시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요안나에게 죄의식과 부채의식 등을 지니고 있었다.

“비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랍니다. 그렇다 할 계기나 각오가 없다면 평생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살지요……. 설사, 달라진다 해도 한순간일 수도 있고요. 인간은 언제 밑바닥을 보일지 모르는 덧없는 생물이니까요. 그래서 전 신께 매일 기도한답니다."

“무엇을 기도하죠?”

"절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만약 시험에 들게 된다면 용기와 힘을 달라고요. 제가 절 사랑할 수 있게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요?”

“예. 제가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 돼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말 같군요.”

“그렇게 들리신다면 다행이군요. 그러니 제논 씨도 그 아이를 용서해 주세요. 인간은 언제든 시험받고, 언제든 죄를 범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세요.”

"……? 그게 무슨 말이죠?”

“늙은이의 오지랖일 수 있지만, 제논 씨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거든요. 고아원에서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본답니다.”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올리버는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자신이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있는지,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말이다.

알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궁금한 건 하나 생겼습니다.”

“무엇이죠?”

“그 용서라는 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경전에서 몇 번 읽어보았지만, 저는 그게 뭔지 알수 없어서요. 용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며, 용서는 어떻게 비는 거며, 용서의 의미도 잘 모르겠습니다. 용서란 도대체 무엇인가죠?”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 역시 정답은 모르지만, 대신 개인적인 생각은 있어요.”

“전 그게 듣고 싶네요.”

“용서란 고통입니다. 하는 쪽도, 비는 쪽도 말이죠.”

“그렇습니까?”

“예, 용서하는 쪽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죠. 이는 또 다른 고통이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랍니다.”

“용서를 비는 쪽은 왜 고통이죠?”

“진정으로 용서를 빌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인식해야 하거든요.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습니까?”

“예,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는 거니까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상대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요……. 대부분 사람은 이 단계에서 실패하고 만답니다.”

“왜죠?”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죄는 쉽게 합리화거든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아니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진 채 모든걸 포기해버리지요. 무책임하게요.”

“음..….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인식한 다음에는 뭐가 필요하죠?”

“피해자에게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거죠.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아요. 사람은 죄를 깨달으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죄로부터 멀어지려고 하거든요. 용서받지 못해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이 더 심해질까 봐요. 그래서 용서를 비는 것 역시 고통입니다.”

“비는 쪽도 하는 쪽도 둘 다 고통뿐이군요.”

“예, 그래서 용서란 양쪽 모두에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죠.”

“그렇다면 왜 해야 하죠? 고통뿐인데요?”

“왜냐면 고통인 동시에 자신과 타인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유일한 수단, 구원이기 때문이지요.”

원장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은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즉, 원장님 말쏨은 용서란 고통인 동시에 구원이라는 겁니까?”

“예, 제 생각에는요.”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괜찮아요. 정해진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음……. 하나만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용서의 기준은 뭐죠? 상대가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건 너무 가혹한 이야기죠. 용서란 자신이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럼, 언제 할 수 있는 거죠? 용서라는 거요?”

“자신을 구원하고 싶을 때. 또, 타인을 구원하고 싶을 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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