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54화 (354/633)

< 354. 아르크 고아원 (2) >

“농담은 절대 하지 마세요.”

아르크 고아원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 고아원으로 가던 중, 야렐리가 어제 세 번이나 말한 이야기를 다시 말했다.

올리버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후……. 좋아요.”

야렐리는 진심으로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올리버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런데, 왜 제가 농담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 이유를 물어보는 시점에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야렐리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강력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자신은 절대 농담을 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니. 매일 잠자기 전 30분씩 유머책으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갈로스 농담이 인종차별적이고, 불쾌한 농담이라는 건 배웠으니 그 농담을 제외하고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제 저희가 머문 여관에서 한 여관 농담 기억나시죠?”

“예. 그것도 제 회심의 농담입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야렐리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야렐리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통역을 해줘야 할 게 야렐리였으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야렐리 씨가 같이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통역이 필요한 건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저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갈로스 말도 할 줄 모르는 분이 혼자 여기 올 생각을 하다니요.”

야렐리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올리버는 갈로스를 방문하려는 주제에 이곳 말을 전혀 할 줄 몰랐고,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마을에 도착했을 때, 여관방도 혼자 구하지 못해 자신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전 세상 모든 사람이 왕국어를 할 줄 아는 줄 알았거든요. 레이크 빌리지에서 만난 분들은 전부 하셔서요.”

올리버가 뻔뻔하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는 연합 왕국이니, 그 밑의 나머지 2류 국가들은 닥치고 왕국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극우 정당 늙은 정치인들처럼 말이다.

야렐리는 어이가 없었다.

“레이크 빌리지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고학력자에 마법사니까요.”

“마법사면 왕국어에 다 능통한가요?”

“정식 교육을 받은 이들이면요……. 마법이 가장 크게 발전된 곳은 왕국, 정확히는 왕국에 있는 란다니까요. 모든 학문의 언어는, 해당 학문이 가장 발전한 국가를 따를 수밖에 없거든요.”

“아……. 말 되네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올리버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

야렐리는 그런 올리버를 보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의 명에 따라 올리버를 파악하기 위해 따라왔지만, 그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점점 파악하기 힘들 뿐이었다.

흑마법사의 기질이라곤 보이지 않으면서도, 중간중간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고,

농담이라고는 차별과 냉소로 점철된 블랙 코미디밖에 할 줄 모르는 주제에 태도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개의 모습이 공존. 그렇다고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둘 다 본래의 모습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얽혀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야렐리가 평소 제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평소 학생들의 무시와 다른 마탑 직원의 부당한 업무지시에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던 사람이었으니.

그건 단순히 인내심이나 연기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그런 성격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런 와중에도 마탑 밖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해결사 데이브로 활동했고.’

야렐리가 할머니를 통해 듣던 해결사 데이브란 존재를 떠올렸다.

마탑 마법사들도 험한 것을 인정하는 란다 뒷세계에서 홀연히 나타나 한 개인의 범주를 벗어난 활약을 한 데이브를.

단순히 강한 것을 넘어 크라임 펌과 담판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수완가이며, 시(市)에 큰 도움을 줘 비공식 동맹이 된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음지뿐 아니라 양지 사람들도 한 번쯤 주시할 정도.

제논과 데이브. 마치, 이중인격과도 같은 조합이었다.

솔직히 야렐리는 아직도 제논과 데이브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닥쳤기에 그렇다고 이해할 뿐이지.

그래서 야렐리는 이곳에 오는 동안 계속해 질문했다.

할머니의 명에 따라, 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제논이자 데이브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점점 혼란스러울 뿐이지만.’

“저기인 것 같습니다.”

상념에 빠진 야렐리에게 올리버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올리버의 부름에 현실로 돌아온 야렐리는 마을 위쪽에 언덕에 자리 잡은 한 건물을 보았다.

란다 상류층 저택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제법 큰 저택으로, 분위기상 마을의 유지(有志)가 기거할 법한 곳이었다.

“Qu' est-ce(누구요)?”

올리버와 야렐리가 건물 가까이 다가가자 한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근원지는 지붕 위로, 그곳에는 짧은 회색 머리를 뒤로 묶은 나이 든 여성이 있었다.

나이는 50대로, 올리버가 평소 봐온 그 나이대 여성치고 꽤 건강해 보였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그대로군.’

올리버가 카버가 준 사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셰이머스의 ABC건으로 시(市) 내무부 장관이 된 카버는, 자신을 도와준 올리버를 위해 아르크 고아원에 대해 알아봐 줬다.

고아원생과 직원은 물론 원장에 관한 것도 말이다.

“아멜린 원장님입니까?”

올리버가 지붕을 바라본 채 물었고, 야렐리가 갈로스어로 이를 통역해주었다.

지붕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뜻밖의 언어로.

“그래요. 두 젊은이는 연합 왕국에서 왔나요?”

“왕국어를 할 줄 아십니까?”

“조금요. 잠시만요.”

아르크 고아원의 원장 아멜린이 옆의 사다리를 타고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척 봐도 적잖은 나이였으나, 건장을 잘 관리했는지 거동에 불편함은 없었다.

“요즘 공부하고 있거든요.”

아멜린 원장이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왕국 사람은 알지 못하는데, 두 젊은이는 누구죠?”

올리버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다. 카버가 준 정보에는 왕국어를 할 줄 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정말 최근에 배운 듯했다.

“연합 왕국 란다에서 왔습니다.”

“란다라면……. 자유 도시 란다 말인가요?”

아멜린 원장은 반가운 감정을 빛내며 친절히 되물었다.

“예.”

“호오……. 반갑군요. 때마침 내가 아는 아이도 란다에 있는데. 그런데 란다 출신 두 젊은이가 이곳에는 왜?”

올리버는 야렐리를 보며, 어젯밤 여관에서 맞춘 대화를 떠올렸다.

“요안나 성기사님의 지인입니다.”

***

탁.

아르크 고아원의 원장 아멜린은 원장실에 올리버와 야렐리를 초대해 손수 커피를 대접해줬다.

냄새를 맡아보니 그리 좋은 원두는 아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커피가 맛있네요.”

올리버가 커피를 마시곤 인사했다. 주인이 대접하는 게 뭐든 맛있다 칭찬하라고 배웠기에.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마워요.”

정답이었는지 원장은 미소 지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적잖은 나이임에도 직접 지붕 수리를 할 정도로 건강했으며, 투박하지 않은 연륜과 차분함이 느껴졌다.

올리버가 알던 고아원 원장이랑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요안나, 그 아이와 아는 사이라고요?”

“예……. 정확히는 도움을 받은 사이였지만요.”

올리버가 적당히 이야기 형태를 뒤틀어 대답했다. 거짓말이긴 했지만, 아주 거짓은 또 아니라, 큰 부담은 없었다.

‘그분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도움받은 건 사실이지.’

“신기하네요. 바다 건너 그 아이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 올 줄이야……."

“때마침 이 근방을 방문했거든요. 시간도 남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아뇨, 전혀 실례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히려 반가울 따름이니까요.”

고아원 원장이 진심을 빛냈다.

“그런데 마법사들께서 어떻게 그 아이를 아는 거죠? 란다에서는 성기사와 마법사가 교류를 잘하는 편인가요?”

“아, 엄밀히 말하면 저희는 정식 마법사는 아닙니다. 전 일개 직원이고, 이분은 학생입니다. 그리고 잘 교류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보니 만나게 됐을 뿐이죠.”

아멜린 원장은 주름진 두 눈꺼풀을 깜빡이며 그리운 감정을 빛냈다. 약간의 미안함도.

전부 요안나를 향한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혹시, 위험한 건가요?”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제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조언요?”

“예. 제가 뭔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나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그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인 말에 원장은 안도했다.

“그거 다행이군요. 타지에 나가 있어 걱정했는데, 잘 지내고 있다니요.”

진심으로 안도하는 원장의 모습에서 올리버는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간 불편한 이질감을 느꼈다.

“혹시, 그 아이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아나요? 란다란 도시가 부유한 만큼 거칠다고 들어서요.”

"......?"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장의 말에서 어폐가 느껴졌다.

원장은 지금 요안나가 여전히 란다에 있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올리버와 야렐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게……."

-똑. 똑.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원장실 문을 두들겼다.

원장이 들어오라 말하자, 검은 머리 소녀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원장 선생님.”

“무슨 일이니. 손님이 오셨는데.”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감정을 살펴봤다.

원장의 가슴속에는 아이에 대한 귀찮음과 타산적인 감정, 분노와 증오 대신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고,

검은 머리 소녀 역시 원장에 대한 두려움이나, 분노, 증오, 타산적인 감정 대신 존경과 믿음,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이런 걸 볼 줄이야.

“아, 죄송해요. 원장님……. 다름이 아니라, 뒤쪽 펌프가 고장 나서요. 사람을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아멜린 원장이 탄성을 냈다.

"아아……. 또 말썽이구나. 하긴, 나만큼 오래됐으니, 그럴 때도 됐지. 곤란하네……. 일단, 마을에 사람을 보내렴. 물은 받아놓은 거로-"

"저기, 원장님.”

야렐리에게 통역을 들은 올리버가 손을 들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괜찮으면 제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

"waouh super!”

아르크 고아원 뒤쪽 정원.

그곳에서 올리버는 겉옷을 벗은 채 펌프를 고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일곱 살, 여덟 살 보이는 아이가 감탄했다.

“뭐라고 하신 거죠?”

"대단하다고 하네요.”

옆에 있던 야렐리가 통역해주었다.

“칭찬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야렐리는 부탁대로 아이에게 올리버의 말을 대신 전해주었다.

올리버의 반응이 웃긴지 아이들은 서로 귓속말하곤 키득키득 웃었다.

표정, 손짓, 목소리, 감정 상태 등등.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모두 올리버가 아는 고아들과 거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밝고 활기찼다.

“정비 다 끝났습니다.”

올리버가 고아원에서 빌린 공구를 정리하며 말했다.

대답을 듣자마자 원장은 손수 펌프를 작동시켜 보았고, 펌프는 이내 물을 토했다.

“대단하네요. 언제 이런 걸 배웠죠?”

야렐리가 감탄하며 물었다.

올리버는 피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설치하던 중 해당 지식을 습득했다고 말할 뻔했으나, 좋지 못하다고 판단해 적당히 둘러댔다.

“어쩌다 보니 배우게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야렐리는 의심의 감정을 빛내며 대답했다. 감쪽같이 둘러댄 것 같았는데, 어디서 의심받은 건지 의문이었다.

올리버와 야렐리가 서로 말없이 바라보자 원장이 끼어들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곤란할 뻔했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대답을 들은 원장은 올리버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질문했다.

“……혹시, 두분 오늘 여길 떠날 생각인가요?”

그것까지 생각을 안 한 올리버와 야렐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당연한 거였다. 야렐리는 올리버를 따라왔을 뿐이고, 올리버는 이곳에 오는 것 외에는 일절 생각이라는 걸 안 했으니.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원장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시는 건 어떤가요? 지붕 수리라던가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오……. 좋은 생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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