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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53화 (353/633)

< 353. 아르크 고아원 (1) >

마텔에서의 길고도 짧은 이야기가 마친 후 딱히 변한 건 없었다.

올리버는 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차를 운전했고, 야렐리는 조수석에 앉아 올리버에게 적당히 질문했다.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라든가, 흑마법 패밀리에 있던 시절에는 어땠는지라든가, 멀린에게 거둬진 후에는 어땠는지라든가 말이다.

올리버는 그때마다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가며 대답해줬다.

가령, 어린 시절인 고아원과 광산 시절은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고, 흑마법 패밀리와 멀린의 제자로 있을 때는 약간 각색했다.

스승인 조셉을 살해해 패밀리의 주인이 된 사실은 숨기고, 마법은 멀린에게 거둬진 후 정식으로 배웠다는 식으로.

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덕분에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고, 질문에 대답해주는 과정에서도 올리버는 새로운 사실을 배울 수 있었기에.

예를 들면, 올리버에겐 일상이라 할 수 있는 고아원의 실태와 취직이라는 명목의 광산 생활이 야렐리에겐 적잖은 충격이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생활이 일상이던 올리버에겐 오히려 야렐리의 반응이 신기할 따름이었고.

분명, 같은 나라 안에 사는 사람이었지만, 서로 아는 세상이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마법과 산업의 시대인 지금은 모든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동시에 몹시도 거대하고 복잡해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한층 더 힘들었으니.

왜냐면 사람은 한 개인. 아무리 주변을 열심히 둘러봐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특히,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고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교류만으로 올리버는 지금 시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올리버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의 관점을 볼 수 있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제인 아가씨보다 야렐리 씨가 더 아가씨라고 할 수 있겠네.’

자신의 말에 중간중간 놀라는 야렐리의 반응을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제인 아가씨도 분명 지금은 란다의 부호로 귀한 몸이지만, 유년 시절은 꽤 거친 편이었으니.

야렐리가 다시 질문했다.

“그럼, 흑마법사 패밀리에 있는 제자들은 대부분 팔리거나, 주워온 아이들인가요?”

“예……. 물론 제가 모든 패밀리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제가 속해 있던 패밀리에선 그랬습니다.”

올리버가 오랜만에 조셉 패밀리 시절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문득, 마리가잘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한분 한분에게 여기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어봤는데, 모두 주인님에게 주워지거나, 팔려왔다고 했습니다.”

“아……."

야렐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뭐라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 야텔리 씨는 다르게 알고 계셨나요?”

“예? 아……. 솔직히 제가 배운 것과는 다르긴 하네요. 전 모두 자기 욕망과 욕심을 위해 흑마법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아,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예?”

“모두 팔려오고, 주워졌지만, 흑마법사가 되려는 건 자기 의지였거든요. 스스로 지키고 부양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요.”

흑마법사가 돼 강해지려는 마리와 필거렛 제조 기술을 배워 부자가 되려고 했던 피터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답했다.

모두 제각기 다른 사정이 있었지만, 생존의 유일한 희망이 흑마법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자의면 자의니까……. 맞나?’

“하지만 흑마법사가 되면 위험하지 않나요?”

야렐리의 말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흑마법사는 박해의 대상. 흑마법사가 되는 것 자체에 위험이 따랐다. 물론, 그녀가 간과한 게 있지만.

“흑마법사가 안 돼도 위험하니 상관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부분 고아에, 팔려오신 분들이라 흑마법사가 못되면 평생 패밀리에서 일꾼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그게 싫으면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쳐도 거리는 위험해서요. 돈도 없고 지낼 곳도 없으니까요.”

올리버가 아래 계급일수록 가혹한 패밀리의 생활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가혹했다.

계급이 낮은 제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소시지 공장에서 일만 주야장천 해야 했으니.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건 1년에 손에 꼽을 정도.

그 수업에서 자신의 실력을 기르지 못한 사람은 몇 년 동안 공짜로 소시지 공장에서 소시지만 만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못한 건 그 외의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돈도, 지낼 곳도,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도 없는 아이들은 좋든 싫든 모두 흑마법사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열심이었는데…….'

올리버가 모두 열심히 할 때와 자신이 떠나기 전 패밀리 사람들을 번갈아 떠올렸다.

“어쨌건 그래서 다들 스스로의 의지로 흑마법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건……. 몰랐네요.”

“예?”

“흑마법사가 되는 데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요……. 조금 충격적이네요.”

야렐리는 정말 몰랐는지 수치심을 빛냈다. 무지에서 오는 수치심을 말이다.

"너무 그렇게 생각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주인님 손에 끌려가긴 했지만, 흑마법사가 되겠다는 건 제 의지였거든요. 생계나 안전이 보장됐어도 전 흑마법사가 됐을 겁니다.”

“그래요?”

“예. 전 흑마법 자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이니 그렇게 자책 안하셔도 될 거란 겁니다. 저도 마법사분들에게 편견이 있었으니까요.”

야렐리가 관심을 보였다.

“어떤 편견이 있었죠?”

“마탑 마법사들은 다들 부유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살고, 오만하며, 인체실험에 심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란다 거리에선 마법사들은 모두 오만하고, 부자이며, 인체실험을 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런데, 마탑에서 일하고 나니 전부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얼핏 외부에서 보면 마법사들이 오만했지만, 그만큼 열등감도 깊고, 여유도 없었다.

마탑이라는 제한적 공간에 학생들을 몰아넣어 서로 경쟁시켰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탑이란 경쟁의 장에서 실제로 여유로운 건 소수였으며, 나머지는 상당한 압박감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럼에도 마탑 밖 외부인에게 오만한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 혹은 보상심리에 불과했다.

또한, 마탑엔 부유한 이들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꽤 있었다. 하긴, 당연했다. 란다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도 가난한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오히려 많은 편이었지.

“또, 모두 인체실험에 깊게 개입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요.”

올리버가 야렐리를 슬쩍 보며 말했다. 야렐리가 대답했다.

“마탑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거든요. 정도를 지켜야 한다고요.”

“예, 바로 그겁니다. 제 편견이고 잘못 알고 있었던 거지요. 직원으로 일한 덕분에 배울 수 있었지요. 재밌습니다.”

야렐리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듯 올리버를 봤다.

“대단하네요.”

"뭐가 말이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계셔서요. 제논 씨처럼 긍정적이고, 정신이 단단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어요.”

“신기하네요. 저도 야렐리 씨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

“들었습니다. 케빈 교수님과 야렐리 씨 아버지와 있었던 일요.”

“……케빈 교수님이 마탑에 입학하기 위해 제 아버지와 대결한 거요?”

“예. 결과가 어떻게 났는지도 들었습니다.”

올리버는 야렐리가 화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감정만을 빛낼 뿐.

“전 아버지가 없어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게 꽤 슬프고 힘든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배웠거든요……. 그런데, 야렐리 씨는 그럼에도 케빈 교수님 수업을 신청했지요.”

"......."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케빈 교수님 수업을 신청했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껄끄러운 관계인데요."

야렐리는 침묵하다 올리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냥 궁금해서요.”

대답을 들은 야렐리는 정면을 보며 다시 생각하더니, 마음을 먹은 듯 입을 열었다.

"......실력이 뛰어나니까요.”

"예?”

“케빈 교수님요. 홍인임에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마스터 지위까지 얻은 뛰어난 마법사잖아요. 또, 다들 모른 척하지만 아카이브의 정식 제자고요. 그래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 그분 수업을 신청한 거예요.”

진심. 야렐리는 진심이었다.

케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건 아니나, 그와 별개로 불리한 조건에서도 마탑에서 살아남은 케빈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교수님에게 패해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에요. 결정적인 이유인 건 맞지만 그 이전부터 원마스터……. 할머니에게 찍힌 상태였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아버지는 재능도 있고, 가문에서 받은 훈련 덕분에 실력도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그와 별개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편이었어요. 오만하고 보수적인 데 반해, 사생활은 아주 개방적이고, 자신의 권한 이상의 힘을 휘둘러 할머니와 점점 갈등이 커졌죠. 그런 와중에 케빈 교수님이 나타나 아버지, 아버지와 가까운 마법사들을 모두 쓰러트려 그분들의 힘을 빼놓았죠.”

“……정치적인 술수인가요?”

“잘은 몰라요. 당시 전 어려서요……. 어쨌건 아버지가 그렇게 되신 건 아버지 본인 책임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케빈 교수님께도 개인적인 감정을 안 품으려는 거고요. 그분 수업을 신청한 건 그저 제가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한 것뿐이에요. 저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스카디 소학파를 위해서요.”

야렐리가 의지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는 진실로 과거 일은 뒤로 미루며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만 빛냈다.

올리버가 그녀가 품은 의지를 보며 말했다.

“야렐리 씨도 예쁘시네요.”

***

갑자기 자동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올리버가 야렐리의 감정이 예쁘다고 말하자마자 안경 너머 그녀의 두 눈이 동전처럼 커지며, 혼란한 감정을 빛내더니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는지 묻고 싶었지만, 야렐리의 감정 상태가 당혹 불쾌해하는 기색이 있어 올리버는 질문 대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야렐리가 입을 다물자 올리버 역시 입을 다문 채 차를 운전했고, 장장 몇 시간에 걸쳐 침묵한 끝에 푸른 초원이 펼쳐진 아르크 지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갈로스란 나라는 거대한 평원지대가 많다고 했는데, 확실히 도착하니 그게 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르크까지 오는 동안에는 울창한 숲과 산 때문에 시야가 제한적이었던데 반해, 갈로스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탁 트여 있었다.

“진짜 넓군요.”

올리버가 해외에 처음 나와본 아이처럼 말했다.

“갈로스는 언덕만 있지 산이 없는 광활한 평원지대거든요. 여기서는 이게 흔한 풍경이에요.”

“오, 잘아시는군요.”

"마탑에서 꼭 마법만 배우는 건 아니라서요. 또, 가끔씩 교류 차원에서 갈로스로 오기도 하고요. 우리 왕국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한 국가예요.”

“그렇습니까?”

“예, 땅도 넓고, 인구수도 많고, 토지도 비옥해서요.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죠.”

“오, 신기하네요. 저도 그 문구 책에서 읽어본 적 있거든요. 세상모든 풍요와 경이로움을 담은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요.”

“……무슨 책에서 읽었죠?”

“유머책이요. 신께서 이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 위대한 땅에 갈로스인을 가득 채웠다고 했습니다……. 재밌는 농담같더라고요."

야렐리는 아무 말 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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