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 가보고 싶은 곳 (3) >
성기사.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야렐리는 놀란 감정을 빛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마법사와 흑마법사 역시 서로 상극이었지만, 흑마법사와 성기사는 상극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리버가 그런 성기사와 아는 사이이며, 성기사가 자랐던 고아원을 방문하겠다고 하다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나쁜 뜻이 있어 방문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 죄송해요.”
감정이 꿰뚫린 야렐리가 민망한 감정을 빛내며 대답했다. 한순간 올리버에게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기에.
올리버는 불쾌해하긴커녕 오히려 사과했다.
“저야말로 감정을 꿰뚫어 봐 죄송합니다. 자제하려고 하는데, 고아원 때부터 습관이라서 의식하지 않아도 보게 되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약하고, 지금에 비해 사교성도 부족했던 당시 올리버가 살기 위해서는 남의 감정을 수시로 꿰뚫어 봐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 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제가 아르크 고아원에 방문하는 건 성기사 분이 자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란 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요.”
“아,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성기사와 아는 사이가 되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요안나가 정말 궁금한 듯 의구심을 빛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흑마법사와 성기사가 친분을 맺는다는 건 그만큼 말이 안 되는 것이기에.
올리버는 부드럽게 차를 몰며 입을 열었다.
"설명하면 조금 길어지는데, 성기사님을 처음 만난 건 그분이 제가 소속된 패밀리를 토벌하러 왔을 때입니다.”
“아카이브를 만나기 전 말인가요?”
“예."
올리버가 멀린과 미리 짜둔 각본을 상기하며 대답했다.
“어쨌건 그 성기사 분과 제가 속한 조직은 싸웠고, 여차여차해 저희가 그분들을 제압했습니다.”
“대단하네요……. 성기사와 흑마법사의 상성 상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한두 단계의 실력 차로는 뒤엎을 수 없을 정도로 성기사와 흑마법사의 상성은 극악에 달했다.
올리버가 겪어봐서 알았다.
올리버가 이길 수 있었던 건 당시 아름다운 빛으로 만든 필거렛을 운 좋게 보유한 덕분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로요……. 성기사와 그분의 동료분들은 제압한 후, 저희는 거래처의 조언에 따라 그분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 파테르교 셀랜드 지부와 협상했습니다.”
"협상은 성공했군요.”
“예. 거래처 솜씨가 좋아서요. 그리고 협상이 진행되는 사이 전 그 성기사와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야렐리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성기사와 대화를 나눈 흑마법사라니. 기이하고 신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죠?”
“흑마법사를 왜 싫어하는지, 성기사님은 왜 성기사가 됐는지 물어봤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궁금했거든요. 성기사가 흑마법사를 왜 싫어하는지, 성기사는 왜 성기사가 됐는지요.”
올리버가 순진한 아이처럼 말했다. 마치, 하늘은 왜 하늘이고, 바다는 왜 바다냐고 묻는 아이처럼.
너무나도 순수해 멍청하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야렐리는 오묘한 기분을 맛보며 질문했다.
“무슨 대답을 들었나요?”
“그렇게 인상적인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와 별개로 흥미로운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뭐죠?”
“제가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망가……져요?”
“예. 성기사 님께서 대뜸 제게 슬펐던 적이나 화가 났던 적이 있었냐고 물어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꽤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제가 슬프거나 화가 난 게요.”
“……슬프거나 화가 난 적 없었나요?”
“딱히 없습니다. 고아원이나 광산, 패밀리 전부 그럭저럭 괜찮았거든요. 애당초 그런 세상밖에 몰랐으니까요……. 물론, 나중에 슬펐던 일이 떠올라 말했지만, 성기사 님은 듣더니 제가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하던 일을 멈추고, 용서를 빌고, 죗값을 치르고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으로 사는 법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럼 도와주겠다고요.”
“어떻게 돕겠다는 거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거절했거든요.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긴 했지만, 먼저 약속한 게 있어서요. 먼저 한 약속부터 지키는 게 맞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너무 평범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그렇기에 야렐리는 더욱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느꼈다.
정상에서 궤를 벗어난 기괴함을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냥 기괴하기만 한 게 아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다.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기괴하고 소름이 끼쳐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다가가고 싶다니.
“대화는 거기서 끝났습니다. 이후, 협상이 잘 풀려 헤어졌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른 후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올리버가 몇 가지 사실이 생략된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럼, 이후 성기사와는 못 만났나요?”
“아뇨. 어르신께 거둬지고, 수행 차원으로 란다의 해결사로 일하던 중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올리버가 멀린과 미리 입을 맞춘 내용을 잊지 않고 보태 능숙하게 거짓말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질 정도로 능숙하게 말이다.
“무슨 일로 만난 거죠?”
“오염구역 청소 때 만났습니다. 약간 소란이 있었거든요……. 절 알아보시더군요.”
“놀라셨겠네요.”
“예,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습니다. 저한테 좋은 조언을 해주신 분이거든요.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라고요.”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죠?”
"가끔씩 구석진 곳에 있는 성당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서로 잘 지냈는지 물어보고,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며……. 아, 경전도 선물 받았고요.”
“경전요?”
“예. 한번 읽어보라고 하셔서요. 무슨 의도가 있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경전을 읽어 봤나요?”
“예, 무슨 의도로 준 건지 궁금해서 읽어 봤습니다. 읽으면 알수 있을까 싶어서요.”
“어떻던가요? 경전을 읽어보니까요?”
야렐리가 결이 달라진 호기심을 빛내며 물었다.
아까 전까지는 어떠한 의도가 있어 질문하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순수한 호기심과 의문만을 빛냈다.
임무에서 개인적 호기심이 된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성실히 대답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기괴한 책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물 속 이야기를 해석해 어떠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거든요. 문제는 이게 조금 부자연스러웠다는 겁니다.”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야기를 해석하는 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데 이게 정답이라 규정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이상한가요?”
“개인적으로는요. 책이란 지식을 얻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인데, 경전은 그 부분에서 책의 기능을 다 못한 셈이거든요. 뭣보다 굳이 이야기 형태로 책을 짰는데, 결론을 내려주면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생각하라해놓고, 답을 내놓다니요……. 그래도 경전은 다 읽어 봤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읽기 어려워하신 것 같은데?”
“시간도 있고, 난해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어서요. 무엇보다, 읽어야지 성기사님과 계속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성기사 님이 꽤나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예. 아까 전 말씀드렸다시피 제게 좋은 조언도 해줬고, 성기사란 존재와 대화도 나누고 싶었거든요. 또 예쁘시기도 했고요.”
올리버가 처음 성기사와 싸웠을 때 그녀가 내뿜은 아름다운 빛을 떠올렸다. 분명, 그건 예뼜다.
“……그 성기사님이 여성분이신가요?”
올리버가 골똘히 생각했다.
“음……. 아, 예. 여성분 맞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야렐리가 혼란한 감정을 빛내며 대답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요안나가 여성이란 사실이 꽤 충격인 듯했다.
‘여성 성기사가 드문 편인가?’
다행히 야렐리는 곧 침착함을 되찾으며 다시 대화를 이었다.
그녀는 성기사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경전에 관해서요. 그때 대화 중 기사님이 고아인 걸 알게 됐습니다. 꽤 흥미로웠습니 다. 고아가 성기사인 게요.”
“……그 성기사 분은 제논 씨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런가요?”
"예, 자기 치부를 스스로 밝혔으니까요……. 싫은 사람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갑자기 건조해진 반응에 야렐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도 서로 만나나요?”
“아뇨. 지금은 못 만납니다. 다른 곳으로 발령 나셨거든요.”
“발령요?”
“예, 신대륙에 있는 퍼스트 스텝으로요.”
“꽤 신기하네요. 제가 알기로 성기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받는 건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닌데요.”
“아마…….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논 씨 때문요? …… 혹시, 성기사님과 만나는 걸 교단에 들켰나요?”
야렐리는 의문을 가지며 질문했다.
만약, 흑마법사와의 개인적 만남이 교단에 들켰다면 아무리 성기사라도 다른 지방으로 발령받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 텐데……. 물론, 올리버 역시 무사하기 힘들 거고.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설명하면 조금 길어지는데, 그분이 저 때문에 상부에 무슨 건의를 했고 그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그 순간 야렐리는 어떠한 촉을 느꼈다.
“혹시, 그게 칼과 나눴던 대화와 관련 있나요? 마텔과 콜린이라는 소년과요?”
“예.”
올리버는 대답과 동시에 마텔과 로스번의 납치, 요안나에게 도움을 청한 일과 거절당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
올리버는 말했다.
로스번이 어떻게 끌려가게 됐는지를. 이후 자신이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요안나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도 이야기했다.
“……비록, 거절당했지만요.”
올리버는 거절당한 후 그냥 자려다 실패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마텔에 홀로 잠입해, 로스번을 구하고, 콜린이란 소년에게 어쩌다 보니 고해성사도 해주었다는 등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마쳤다.
설명을 다 들은 야렐리는 침묵했다.
그녀의 감정은 충격과 의심, 감탄과 슬품, 동정과 안타까움 등. 수많은 감정이 얽혀 복잡하게 빛났다.
저번에도 얼추 느낀 거긴 하지만, 야렐리는 이쪽 일은 잘 모르는 듯했다.
마법사들은 전부 인체실험에 손을 담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 역시 하나의 편견일지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야렐리는 자신이 관여되어 있지 않음에도 죄책감을 빛냈다.
마탑이란 울타리에 묶여 있어 그런 것 같았다.
“아뇨, 그렇게 불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딱히, 야렐리 씨를 탓하거나 불편하게 만들려고 한 말은 아니라서요. 어르신께서 중간에 개입해 주신 덕분에 어느 정도 잘 풀리기도 했고요.”
"......."
“어쨌건 그 일을 기점으로 성기사님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흥미가 식어서요.”
“……그런데, 지금은 왜 다시 흥미가 생긴 거죠?”
“마텔에서의 일이 지난 후, 다시 파테르교와 접촉하게 됐는데, 성기사님의 파트너 되신 분께서 성기사님에 관해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분께서 인체실험에 관해 상부에 이야기하며 조사의 필요성을 건의하다 신대륙으로 발령 났다고요, 저 때문인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올리버가 엘튼 성기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그때, 뭐라 형용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다.
뒤늦게라도 뭔가를 시도한 요안나의 이야기를 듣고 말이다.
설명하기가 힘들었는데, 확실히 드는 생각이라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고아원에 방문하는 겁니다. 방문하면……. 어떻게 될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고 싶어서요.”
올리버가 횡설수설했고, 야렐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데 망설였다.
올리버는 그녀의 감정을 꿰뚫어 보며 물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해도 될까요?”
“예, 말씀하셔도 됩니다.”
“……콜린이란 소년에게 고해성사는 왜 해주신 거죠?”
야렐리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악의나 목적이 없는 순수한 호기심을 빛내며.
올리버는 곰곰히 고민한 후 대답했다.
“……그냥 그래야 해야 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