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가보고 싶은 곳 (2) >
“고아원에 가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포털을 여러 개 열어 학회에서 살아남은 마법사들을 이동시키던 멀린을 향해 올리버가 대답했다.
포털 마법의 까다로운 조건과 엄청난 마력 소모량을 고려하면 온 신경을 마법에만 집중시켜야 마땅할 텐데, 멀린은 평범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자넨 늘 황당한 소릴 했지만, 이번 건 특히 더 황당하군.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올리버가 대답과 함께 이쪽을 흘겨보는 마법사들을 슬쩍 봤다.
필립과 틸다 등 천막 안에서 대화를 나눴던 고위직 마법사들로, 그들은 아닌 척했지만 올리버를 주시했다.
올리버가 신경 쓰인다는 증거.
아무래도 재능 때문에 멀린이 올리버를 거뒀다는 걸 완전히 납득 못 한 듯했다.
“음……. 어디 고아원을 가고 싶어 그러나?”
“예?”
“따로 가고 싶은 고아원이 있을 거 아니야. 고아원은 란다에도 넘친다고.”
“아……. 예 맞습니다. 제가 따로 가고 싶은 고아원이 있습니다. 아르크 지방의 아르크 고아원 입니다.
“고아원은 처음 들어도 아르크는 어딘지 알지. 거의 옆 동네구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르크 지방은 갈로스의 외곽 지역으로, 정말 옆 동네는 아니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한 것이기도 했다.
“갑자기 거긴 왜 가려고?”
마법을 사용하며 대화를 나누던 멀린은 몸 자체를 올리버 쪽으로 돌려 질문했다.
단순히 압박감을 주려는 게 아닌, 올리버가 왜 그곳을 방문하려는 지 정말 궁금해서 이러는 거였다.
“제……. 잠시만요.”
올리버가 요안나를 지칭하려는 순간 머리에서 혼선이 일어났다.
그녀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기에.
그녀와 자신이 무슨 관계며, 그녀에 대한 올리버의 감정도 정의하기도 힘들었다.
분명, 고마운 게 있는 사람이긴 했는데.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까.’
허나, 그와 동시에 실망? ……좀 그런 감정도 있었다.
‘또 나중에는 달랐지만.’
올리버는 요안나가 상부에 마법사들의 인체실험에 관해 건의하다 신대륙으로 발령된 사실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머리가 약간 복잡했다.
“음……. 아는 분이 자란 곳이라서요.”
“아는 분?”
“예…….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아는 분.”
올리버가 요안나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는 분. 딱 적당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뭔 개소리냐고 핀잔을 줬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멀린은 올리버를 찬찬히 바라보다 질문했다.
“가서 무슨 볼일 있나?”
“구체적인 볼일은 없습니다. 그냥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번 방문하고 싶어서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그렇다 할 이유도 없이 따로 행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다니.......
상식적으로 부탁해서는 안 되는 말이고, 들어줘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문제는 부탁하는 올리버나, 들어주는 멀린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갔다 와.”
“감사합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던 케빈이 진심이냐는 듯 되물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건 케빈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고위직 마법사들 일부가 멀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카이브시여……. 저자는-”
“-내 제자요.”
멀린이 자신을 향해 따지는 마법사에게 말했다.
짜증이나 분노, 권위, 압박. 그 어떠한 감정이나 의도가 없는 담백한 목소리로.
기이하게도 그런 목소리였기에 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감히 따지기 힘든.
덕분에 시시콜콜 따지던 마법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만큼 분위기는 경직됐다.
사교 회장도 아니니 크게 상관없을 수도 있었지만, 서로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시국에 마냥 달갑지 않은 상황.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필립이 대뜸 끼어들었다.
“제논.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제게 말씀입니까?”
“그래. 아르크 지방이 어딨는지는 나도 알아.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이긴 하지. 상대적으로는……. 어떻게 갈 생각인가?”
“걸어갈 생각입니다.”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란다에서 와인햄까지 걸어 돌아간 적도 있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한 며칠은 걸어가야 할 텐데? 가는 도중 강도단에게 습격받을 수도 있고.”
“예, 알고 있습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구만. 마음에 들어……. 혹시 운전은 할 줄은 아나?”
“예, 할 줄 압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과거 머피의 의뢰를 받아 트럭 강도들을 퇴치할 때 반나절 정도 배운 적 있었다.
그 후로 운전해본 건 제인 아가씨와 도망칠 때 이후 딱히 없었지만.
“그럼, 이걸 주도록 하지.”
필립이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손바닥 크기만 한 자동차 모형을 꺼냈다.
올리버는 저게 단순히 자동차 모형이 아닌 걸 눈치챘다.
항구에서 비슷한 걸 본 적 있었기에.
딱-!
필립은 굵은 손가락을 튕기자 자동차에 걸려 있던 마법이 풀리며 자동차는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항구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항구에서의 자동차는 고급스러운 푸른색을 바탕으로 황금색 사자 문양 등 몹시도 화려했지만, 지금의 차량은 온통 검은색에 몹시도 투박해 보였다는 거였다.
솔직히 자동차보다는 장갑차에 더 어울리는 차량이었다.
“B사에 특별 주문한 차량일세. 차량의 외피와 창문, 바퀴까지 모두 특수 강화한 거라, 총탄은 물론 웬만한 폭탄과 마법까지 견딜 수 있지. 거기다 개틀링건도 달려있고.”
"개틀링건요?”
“그래, 센터페시아(Center fascia)의 검은 버튼을 누른 다음 핸들로 조준해 쏘면 되네. 그 옆에는 조준 폭탄 발사 버튼과 마법 방어막 버튼, 위장 안개 버튼도 있으니 조심하고.”
놀랍게도 필립은 진심이었다. 저 자동차에 개틀링건을 포함한 각종 비밀 병기가 달려있었다.
케빈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음……. 개틀링건을 포함해 왜 그런 것들이 달린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남자의 로망이기 때문이지.”
“아……."
"그렇다고 차량의 역할을 못 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 기능 하나는 확실하니. 저 차를 타고 가면 하루 정도면 도착할 거야.”
올리버가 질문했다.
“꽤 비싸 보이는데, 제게 빌려주셔도 됩니까?”
“빌려주는 거 아니야. 술값으로 주는 거지.”
필립이 호쾌하게 말했다.
테어도어를 방해하러 가기 전 얻어먹은 술값으로 이 차량은 그냥 주려고 했다.
고급 차량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답사의 특수 맞춤형 차량을 말이다.
로어 가문의 재력을 고려하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 몰라도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올리버에겐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셔도 됩니까?”
“아카이브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부자니 신경 쓰지 마. 오히려 술값을 확실히 계산하고 싶을 뿐이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로어 가문은 빚지고는 못 살 거든.”
그 정도까지 말하자 올리버는 순순히 차를 받아들였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올리버가 예를 갖춰 인사하자 필립은 만족스러운 감정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도 저쪽과 의견은 같아.”
필립이 올리버를 보내는 것에 반대하던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천막에서처럼 계산적인 감정이 빛났다. 보통의 계산적인 감정과 달리 이기심이나 악의는 없고 호의가 섞였다는 게 차이점이었지만.
“뭐가 됐건, 자네 혼자 보내면 보기 좀 그래. 감시할 인원을 하나 정도는 붙여야겠어…….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필립이 멀린을 보며 물었고, 멀린도 이에 동의했다.
일이란 자고로 모양새였으니. 올리버만 덜렁 보내는 건 좀 보기 안 좋긴 했다.
이야기를 파악한 케빈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안 되지. 케빈 중령. 뭐가 됐건 자네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이상하잖아?”
“그럼, 누굴 보내실 생각입니까?”
"글쎄……. 테렌스 네가 가겠나?”
“저요? 딱히 상관없습니다. 잠시 산책 다녀온다고 생각하면 되니. 명령이시라면-”
“-동행은 우리 쪽에서 보내겠습니다.”
테렌스가 올리버의 감시역으로 굳혀지려는 찰나 서늘한 목소리의 틸다가 끼어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발언에 모두가 말없이 그쪽을 바라봤다.
“동행이 간다면 우리 쪽에서 가는 게 형평성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케빈이 올리버와 함께 가는 건 말이 안 됐고, 은근히 올리버에게 호의적이던 필립과 테렌스 쪽 역시 감시역을 맡기긴 부적합했다.
그나마 문제를 냉정히 따지던 틸다 쪽 사람이 가는 게 모양새나 신뢰 면에서 좋았다.
문제는 누가 가냐는 건데……
“야렐리가 따라갈 겁니다.”
틸다가 자신의 손녀를 지목했다. 모두 틸다 옆에선 야렐리를 봤고, 그녀는 마음을 굳힌 듯 말했다.
“예,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준비는 끝났나?”
케빈의 질문에 올리버가 먹보주머니에서 꺼낸 지도 등을 챙기며 대답했다.
“예, 다 끝났습니다.”
“가서 뭘 하려는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이니 큰 소란은 일으키지 마. 여기서 문제가 더 발생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소란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올리버가 약속하자 케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필립과 틸다 등 고위 마법사들과 함께 멀린이 열어놓은 포털을 따라 이동했다.
멀린만 남게 되자, 올리버는 부탁을 들어준 그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해 인사했으며, 옆에 서 있던 야렐리 역시 멀린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녀는 아카이브인 멀린에게 상당한 존경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멀린이 인사를 받아주며 포털 안으로 들어가자 힘차게 열려있던 보랏빛 포털은 입구가 닫히더니 생명을 다한 불꽃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게 올리버와 야렐리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지하실에 단둘이 침투해 마법사들을 구해주러 갔을 때처럼.
“고맙고,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야렐리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죄송이라뇨?”
“저 때문에 여기 남으셨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원해서 남은 거니까요. 또, 저도 도움받은 것도 있고요.”
야렐리는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말했다. 이 상황이 의외긴 하나, 그렇다고 크게 불만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반기는 구석마저 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버로서는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필립이 준 차량을 가리키며 물었다.
야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수석에 앉았고, 올리버는 운전석에 앉았다.
차를 운전하는 게 근 몇 년 만이라 그런지, 아니면 고급 차량이라 그런지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행히 올리버는 과거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며 곧 차량을 움직일 수 있었다.
차는 빠르지만 부드럽게 레이크 빌리지를 벗어나 도로 위에 올라섰다.
“운전을 잘하시네요.”
차량 내부에 침묵이 감돌던 중 야렐리가 대뜸 입을 열었다.
올리버는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운전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래요? 얼마나 오랜만에 운전하셨죠?”
“음……. 한 2, 3년 전쯤일 겁니다? 제인 아가씨와 함께 도망치던 중 운전해 봤거든요. 그때가 처음 운전해 본 거고, 지금이 두 번째네요."
“제인 아가씨가……. 누구죠?”
"제 친구분입니다.”
“친구요?”
“예, 해결사 일을 하다가 만나 분……. 아, 이 일은 더 이상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업무에 관한 내용이라서요.”
올리버가 해결사로서의 직업 정신을 떠올리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야렐리는 이해해 주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뭔가 신경 쓰이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2, 3년 전이면 꽤 오래된 일이네요?”
"예.”
그런데 어쩌다 친구가 됐죠?”
"음……. 같이 파티에 참석했을 때 친구 하기로 했습니다. 즐거운 날이었죠.”
"그래요?”
"예, 친구가 총 두 명 생겼거든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아……. 그럼 고아원에 방문하는 이유인 지인분도 친구인가요?”
"예?”
"고아원 방문 이유요……. 다른 친구분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다른 친구분은 따로 계시고. 지인분은 그냥 지인분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냥, 이렇게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요. 그냥 아는 사이면 쉽지 않잖아요……. 혹시 그 지인분은 누군지 알수 있을까요?”
“궁금하신가요?”
올리버가 의외라는 듯 묻자, 야렐리는 허공에 손을 까딱이며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감정이 약간 혼란스러워 보였다.
“음……. 솔직히 조금요. 안 되나요?”
“……아뇨,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건 의뢰가 아니니까요. 또, 마텔 건과도 관련이 있기도 하고요.”
“마텔 건이라면, 칼과 나눴던 대화 말씀인가요?”
“예.”
야렐리가 진짜 호기심과 의문을 빛내며 물었다.
"그 지인분이 누구죠?”
“성기사입니다.”
올리버가 굽어진 도로를 부드럽게 주행하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