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 간섭 (2) >
“한 대 때려주려고요……. 하고 싶은 말도 있고요.”
올리버의 대답을 들은 그레텔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웃는지 눈에 눈물이 맺힐 지경.
그녀는 케빈을 이곳 학회에 초대하러 왔을 때처럼 참으로 유쾌했다.
단순히 성격이 유쾌해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지만.
“로즈 두 부아 씨는 여긴 어쩐 일이시죠?”
“흐응……. 그게 궁금해요?”
“음……. 사실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머, 뭐죠?”
“혹시, 인육 요리사 여동생분입니까?”
올리버가 푹 찌르듯 난데없이 질문했다.
그레텔 역시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흥미를 빛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감정의 상태가 인육 요리사 제자 분들과 비슷하거든요. 어색하게 뭉친 느낌요.”
올리버가 경매장을 습격한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과 파이터 크루의 전(前) 대장 요리사 등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나, 감정과 생명력이 여러 사람의 것을 가져와 붙인 듯 어색하게 뭉쳐져 있었다.
대답을 들은 그레텔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제……. 감정이 보이나요?”
"약간요. 처음 만났을 땐 두꺼운 불투명 유리를 친 듯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보이네요.”
사실이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감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건만, 아까 전 테어도어와의 전투로 인해 성장했는지, 지금은 희미하지만 볼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은 그레텔은 흑마법사의 눈을 집중해 올리버의 감정을 살펴봤다.
올리버가 혹여 허세를 부리는 건가 싶어서……. 그런데 감정이 너무 잠잠해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보이는데 읽을 수 없다니 특이했다.
“거짓말……. 하는 거 같지는 않네요?”
“거짓말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런가요? 의심해서 죄송해요. 남자들은 대부분 거짓말쟁이에 허풍선이라서요. 최소한 제가 알기로는요.”
그레텔은 농담처럼 웃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나, 뭔가 안타까운 사정이 있는 거 같아 올리버는 추가로 덧붙였다.
“추측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뭐죠?”
“송장인형이 된 바토리 님을 보고 로즈 씨께서 반응을 보이셔서 인육 요리사 여동생이라 추측했습니다. 바토리에 들어간 퍼스트(First)도 로즈 씨를 보고 반응했고요.”
그레텔은 의외라는 듯 올리버 곁으로 다가가는 송장인형-바토리를 봤다.
“친절한 설명 감사해요……. 그 정도까지 이야기해줄 줄 몰랐는데 고마워요.”
“다 말씀드리는 게 예의에 맞는 것 같아서요.”
올리버의 대답에 그레텔이 깔깔깔 다시 웃고는 허공에서 내려와 호수 수면 위에서 숙녀처럼 정중히 인사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또 다른 인육 요리사 그레텔이라고 해요. 로큘리 대학의 학생이자, 검은손의 손가락이죠.”
그레텔은 자신의 본명과 함께 자신을 인육 요리사, 손가락이라 소개했다.
바토리의 제자인 언너의 설명처럼 본인은 자신이 손가락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굳이 따질 건 아니지만.’
올리버가 생각하며 똑같이 예를 갖춰 인사했다.
“마탑 교수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 겸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 라이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올리버가 천사의 집 종업원들에게 배운 대로 정중히 인사했다. 보고 평가해줄 사람이라곤 그레텔뿐이었지만, 모양새가 제법 잡혀 그럴듯해 보였다. 정말 신사처럼 말이다.
“예, 소문 많이 들었어요. 바토리를 잡은 걸 포함해, 퍼펫, 그 속을 알 수 없는 늙은이에게서 살아남았다고……. 관심이 좀 가긴 했지만, 직접 만나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분이네요.”
“그렇습니까?”
“예. 길바닥 해결사인 동시에 마탑소속 직원이라니……. 흔한 이력은 아니잖아요?”
“그레텔 씨는 그 이상인 것 같은데요?”
비꼬는 게 아닌 진심으로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는 일개 해결사에 마탑 교수 개인 직원인 데 반해, 그레텔은 자칭이긴 하지만 검은손 손가락이며, 로큘리 대학의 정식 학생……. 누가 봐도 그녀가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마을 전체를 뒤덮는 대규모 결계까지 사용하신 뛰어난 실력의 마법 사용자이시고요.”
“어라라……. 저인 걸 눈치챘나요?”
“예, 간섭할 때 느꼈습니다.”
그레텔은 다시 미소 지었다. 자신의 결계마법을 이용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다니.
이론상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엄청난 실력이 받쳐줘야지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왜 퍼펫 그 늙은이가 오빠와 거래해 건드리지 말라 했는지 이해됐다.
“다만,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왜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신 건지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혹시, 테어도어 님을 도와주려고 오신 겁니까?”
“설마요. 같이 협력하자 해놓고 뒤에서 수작 부리는 늙은이를 도와줄 만큼 전 푼수가 아니거든요. 제가 원하는 건 그 노인의 육체뿐이에요.”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기계팔에 붙잡힌 테어도어를 바라봤다.
현재 그는 과도한 전투 때문인지, 아니면 손자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서인지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돼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그레텔의 요구에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지금은 겁에 질린 채 늙은 육신일 뿐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테어도어의 육체는 높은 값어치가 있었다.
본인 자체가 뛰어난 마법사이며, 수백 수천 명의 유전자를 이식해 안정적으로 유지한 기술의 표본이자, 생명학파의 기술력이 집약된 최상의 결과물이었으니.
흑마법사건, 마법사건 실력만 충분하다면 그를 조사해 엄청난 가치의 지식을 뽑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냥 먹어 치워 힘을 흡수할 수도 있고…….'
“원래는 그쪽도 같이 잡아가려고 했는데, 싸우는 걸 보니 조금 귀찮을 것 같아서요. 퍼펫 그 늙은이와의 약속도 있고……. 그러니 거래를 제안할 게요. 거기 테어도어란 늙은이와 그 애송이 손자 놈만 제게 넘겨주면 그냥 이대로 물러나 줄게요.”
“진심이시군요.”
“그럼요! 전 거짓말은 안 한답니다.”
“그건 거짓말이시군요.”
올리버가 초를 치며 사실을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닌지 그레텔은 불쾌해하며 표정이 굳어졌다.
“싫다……. 숙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함부로 들여다보면 안 되죠.”
“아,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죠. 그러니, 그쪽도 신사답게 제 제안을 수용해 주시겠죠?”
"아뇨. 죄송하지만, 그건 싫습니다.”
올리버가 예의를 갖추되 단호히 거절했다.
칼은 때려줘야 했고, 테어도어에게 역시 몇 가지 물어봐야 할 게 있었기에.
물론, 지금 상태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겨줄 순 없었다.
정 안 되면 송장인형으로라도 재활용할 생각이었다. 왜냐면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레텔은 올리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성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무례하네요. 왕국 남자들은 전부 신사라 하던데.”
“전 란다인이라서요. 거기다 저도 이 두 분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무슨 볼일이죠?”
“칼 씨에겐 해주고 싶은 말이 있고, 테어도어 님에겐 여쭤보고 싶은 게 몇 개 있습니다……. 또, 송장인형으로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요. 때마침 하나가 망가져서요.”
올리버가 부서진 송장인형-저격수를 가리켰다. 아까 전 테어도어가 산채로 터질 때 가장 가까이 있어 망가지고 말았다.
“그래서 양보해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올리버가 진심과 예를 담아 부탁했고, 그 마음이 통했는지 그레텔은 잠시 고민했다.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레텔은 그 대답과 함께 순식간에 공간마법을 발동, 여러 개의 포털을 올리버 주변에 만들었다.
공간학파의 포털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 사이에서 로큘리 대학의 생명 연금술 학파로 보이는 마법사들과 흑마법사로 보이는 여성들이 다수 튀어나왔다.
모두 상당한 실력자.
올리버를 비롯한 송장인형들이 전투를 준비하는 그때, 맑은 하늘에서 푸른 번개가 적 인원수에 맞춰 정확히 떨어져 적들을 하나하나 저격했다.
번개를 맞은 이들은 대부분 절명(始命)하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단 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에.
굳어지는 공기. 그때, 갑자기 느껴진 인기척과 함께 제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참 유감스러운 대답이군.”
올리버와 그레텔은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노인이 서 있었다.
올리버의 임시 스승 멀린이었다.
***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멀린의 존재에 공기는 급변했다.
긴장한 그레텔의 감정이 그 증거.
정작 올리버는 멀린에게 평범하게 인사했다. 의외라는 감정을 품으며.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이번 학회 참석 안 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늙으면 변덕이 죽 끓듯 하거든. 마음이 바뀌었지. 그런데 이 난리통이군. 잠깐만 실례.”
멀린의 자연스럽게 올리버 옆으로 다가오더니 앞으로 몇 발자국 나갔다. 그리고는 그레텔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시오. 그레텔. 처음 보지만 반갑소.”
“당신이 이번 대의 아카이브군요……. 안 온다고 했을 때 실망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갑지는 않네요.”
올리버가 멀린과 그레텔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봤다. 안면이 있는 듯하면서도 처음 보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런 식으로 만나 마음이 영 편치 못하오.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일단, 물러나주시는 게 어떻소?”
멀린이 대뜸 제안했다. 어째 평소와 달라 보였다. 분위기라던가.
감정이 두터운 마력 벽에 가려져 있어 읽긴 힘들었지만.
‘……약간 짜증이 나신 상태이신가?’
올리버가 두터운 마력 벽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비추는 듯한 감정을 보며 생각했다.
“상당히 무리한 요구를 하시네요……. 이번 아카이브는 얌전한 편이라고 들었는데요.”
“원래는 성격은 더러웠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말보다 주먹을 선호하는 편이었지. 그냥 그 성격이 나온 거라 생각해주시오……. 어쨌건, 일단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 주면 나도 당장은 그쪽을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 물러나 주시오. 그쪽도 이미 충분히 재미 봤으니 괜찮은 제안 아니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명학파가 학회에 초대된 마법사들을 납치했듯이, 그레텔 역시 생명 연금술 학과의 자기 부하들로 학회 손님들을 납치했을 테니.
“전 전혀 충분하지 못한데 어쩌죠?”
"괜찮소. 만족하지 못해도 물러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가령 자기보다 센 사람을 만났을 때라던가……."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무슨 상황을 말하는 거요?”
“지금 이곳에 제 부하들이 은닉해 있어요. 제가 신호만 보내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마탑 인간들을一”
一번쩍!
그레텔이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 말을 꺼내던 중 잠잠하던 하늘 위에서 다시 푸른 번개가 레이크 빌리지 전체에 산발적으로 떨어졌다.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올리버는 멀린의 몸에서 순식간에 끓어오른 마력과 강력하지만 섬세하고 절제된 술식을 가진 번개를 볼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저 번개가 떨어진 곳에 그레텔의 부하들이 있다고 올리버는 생각했다.
“저긴……."
“방금 대기하고 있던, 그대 부하들 위로 번개를 떨어트렸소. 못해도 전력의 반은 줄였을 거 같은데, 계속하시겠소?”
아무래도 사실인 거 같았다.
멀린의 마력벽은 한층 두꺼워져 더 이상 희미한 감정마저 읽을 수 없었지만, 동요하는 그레텔의 반응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줬다.
그레텔이 병력을 언급하려고 하자마자 멀린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를 무위로 돌렸다.
폭격기로 저격하는 듯한 말도 안 되는 마법으로 말이다.
아주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광범위하게 숨어있는 적들을 상대로 번개라는 대규모 폭격 마법을 저격이란 형태로 쓰는 건 올리버도 생각하지 못한 기교였다.
상식을 벗어난 마력량과 마력 통제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그림.
멀린이 엄청난 마법사란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인 듯했다.
흑마법사의 눈과 마력감지능력으로 레이크 빌리지 전체를 둘러본 그레텔이 분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하아……. 역시,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