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간섭 (1) >
‘왜 이렇게 된 거지?’
테어도어는 자신의 팔에 박힌 투창과 그 투창에서 자라난 거대한 콩 줄기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이 세상 바깥 존재라 해도, 자신 역시 그런 존재를 몇 번 만나보고 싸워 일부는 흡수한 존재.
그런데 왜 지금 자신이 점점 수세에 몰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방심하지 않았는데, 봐주지 않았는데……
‘역시 이례적인 희귀 케이스라 그런 건가? ……아냐, 그래도 이래선 안 되지. 이래선 안 돼. 고작 이런 애송이에게 내가……!!’
테어도어는 젊은 나이임에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재능과 가능성을 보이는 데이브와 그 존재에 밀리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며 팔을 들어올렸다.
팔에서는 수많은 팔이 자라나 거대한 촉수 형태를 이뤘고, 테어도어는 이 한 방으로 날파리들을 치워버리려 했다.
놀라운 연계로 자신의 마력 장벽을 부수긴 했지만, 결국 거기까지가 한계.
이 한 방으로 치워버리고, 콩 줄기를 뜯어내면 다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잠시 밀린 건 데이브의 예상치 못한 한 수였으니. 그 밑천이 보인 지금은 더 이상 놈에겐 승리의 가능성 따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촉수화 된 팔을 휘두르려는 찰나 데이브가 몸에 아무런 방어 마법도 걸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와 흑마법을 걸었다.
[패러사이트(Parasite)]
데이브가 영창하자 콩 줄기가 변화했다.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꿈틀거리더니 돋아난 입으로 자신의 몸에 있는 각종 에너지를 빨아먹었다.
테어도어의 의지와 무관하게.
테어도어는 통증을 억누르는 술식을 몸에 부여했음에도 극렬한 고통을 맛봤으며, 그뿐 아니라 몸 안쪽에서부터 갉아 먹히는 미지의 공포를 맛봤다.
멀린을 따라잡기 위해,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말을 이겨 인류를 이끌기 위해 만든 육체가 고작 같잡은 흑마법에 붕괴하였다.
그러나 테어도어는 다음에 일어난 광경에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콩 줄기가 빼앗은 자신의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데이브가 단숨에 흡수해 그것으로 자신을 공격한 것이었다.
"컥! ......커억!"
여태까지와 결이 다른 충격과 통증이 몸에 퍼져나갔다.
‘왜 이 정도로……. 내 감정과 생명력이라서? 그래도 이건一’
—뻑!
생각을 체 정리하기도 전에 데이브는 다시 한번 자신을 후려쳤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 것 그대로의 통증에 테어도어는 냉정함을 잃었다.
아니, 냉정함을 잃는 것이 아니었다. 공포에 빠진 거였다.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싫어……. 안 돼……. 말도 안 돼!!’
공포는 테어도어의 생존 욕구를 자극했고, 생존 욕구는 테어도어의 육신에 주입한 수많은 마법사와 흑마법사, 마력 사용자의 유전자를 자극해 그 힘을 폭주하게 만들었다.
테어도어의 몸 사방에서 수많은 팔이 돋아나 주변을 향해 무차별적인 마법을 쏘게 했다.
테어도어의 생존 욕구와 육체에 깃든 유전자들의 생존 욕구가 맞물린 결과.
덕분에 힘 배분 없는 마구잡이 공격을 펼쳤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비록 상당한 에너지를 몸에 침투한 콩줄기에 빼앗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몸에는 감정과 생명력, 마력 등. 상당한 에너지가 남아 있었기에.
오히려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공격 덕분에 미친개처럼 덤비던 데이브와 송장인형들이 주춤 뒤로 물러갔으니.
틈이 생기자 테어도어는 다시 승리의 희망을 엿보며 자신의 온 힘을 주먹에 끌어모아 휘둘렀다.
전세를 뒤집는 한방.
그 순간 테어도어는 보았다.
자신의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가져간 데이브가 그 세 개의 힘을 합쳐 다시 인공영혼을 만드는 걸.
아직 마탑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섭리 바깥 영역의 일을 놈은 두 손으로 두 번이나 성공시키며 본인이 두른 흑마법 장갑(裝甲)을 강화해 있는 힘껏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세상의 소리는 잠시 사라졌으며, 찢어진 허공과 반으로 갈라진 호수와 함께 테어도어의 팔은 갈가리 찢어져 사라졌다.
한가지 단어만이 테어도어의 머리에 남았다.
죽음.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죽음.
인간이 쌓은 모든 노력과 업적을 무위로 돌리고 종국에 먼지로 만드는 죽음.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저주.
‘싫어.’
송장인형-바토리가 핏빛 말뚝으로 자신을 꿰뚫을 때 테어도어는 생각했다.
‘싫어.’
송장인형-던칸이 톤파로 자신의 육신을 파괴할 때 테어도어는 생각했다.
‘싫다고.’
송장인형-셰이머스가 자연의 힘이 담긴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뭉개버렸을 때 테어도어가 생각했다.
'싫단 말이다!’
송장인형-저격수가 소드 오프 샷건으로 자신의 몸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을 때, 테어도어가 속으로 소리쳤다.
죽기 싫었다.
그러자 수백, 수천 번의 수술을 통해 테어도어의 몸에 이식한 유전자 중 테어도어가 가장 핵심이라 생각하는 것만이 테어도어의 중심으로 몰려와 지금까지의 융합과 다른 한 단계 더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
다수를 하나로 합친 융합을 넘어 태초부터 하나였던 것과 같은 융합.
그 외 힘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덕지덕지 흡수한 나머지 불순물은 외부로 팽창시켰다.
흡사, 철을 단련하기 위해 불순물을 걷어내고, 담금질하는 것과 비슷.
테어도어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며, 젊은 시절의 그 황홀경을 맛보며 그대로 폭발했다.
몸이 산채로 터지는 생생한 통증.
그러나 테어도어는 그럼에도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찢어져 떨어진 육체에는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었건만, 아까 전 느낀 성장의 황홀경이 거짓이 아닌지 테어도어는 불순물을 거른 진정한 자신의 육체 파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테어도어는 더욱 선명해지는 의식을 집중해 자신의 진짜 육신을 서서히 하나로 뭉쳤고, 거의 완성됐을 때쯤 뒤늦게 눈치챈 데이브의 등을 꿰뚫어 주었다.
자신의 손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는 죽지 않는다!”
승리를 확신한 테어도어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놈의 얼굴을 봤다. 자신이 느꼈던 당혹감과 공포에 물든 놈의 표정을 보고 싶었기에.
"......."
허나, 예상과 달리 놈의 표정은 무감각했다.
희미하게 호기심만 빛낼 뿐 당혹이나 공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보다 한 단계 낮은 것을 보는 눈.
그와 함께 테어도어는 과거 느꼈던 열등감과 부조리함을 한꺼번에 다시 맛보았다.
친구인 멀린이 자신을 제치고 아카이브로 채택 받았을 때를.
이후, 인체실험을 그만두더니 자신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멀린의 눈을.
결코, 메울 수 없는 아카이브와 자신의 벽을.
목표의 반의 반도 이루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흘러버린 세월을.
지척에 다가온 절대적인 죽음을.
유한한 삶을 받은 필멸자의 운명을.
인간 세상에 다가올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운명을.
그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부조리함과 억울함이 한데 압축돼 느껴졌다.
테어도어는 한순간 그 원흉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들며, 극렬한 분노와 증오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과 생명력을 데이브의 몸에 침투해 놈의 정신과 육체를 흡수하려 했다.
자신의 손자에게 했듯이.
과연 놈이 의식이 잡아 먹힌 후에도 저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몹시도 궁금했다.
놈과 같은 세상 바깥 존재들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그 추한 밑바닥을 드러냈는데 말이다.
테어도어는 데이브를 흡수하기 위해 그의 내면에 침투, 그의 기억을 파고들어, 더 나아가 그 아래에 있는 본질에 접근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
오싹함마저 느껴질 어둠이었지만, 테어도어는 곧 그 어둠 속 가장 깊은 곳에 더욱 오싹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은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뜨며 자신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봤다.
바라봤다.
봤다.
.......
***
"......!!"
올리버의 배후에서 등을 정확히 찌른 테어도어는 갑자기 손을 떼더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강렬한 생존 욕구로 물들어 있던 그의 감정은 공포, 두려움에 순식간에 잡아먹혀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며, 그의 몸 안에 깃든 방대한 마력과 감정, 생명력은 마치 원래 형태로 돌아가듯 분리돼 서로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꺽……!!"
올리버는 발광하는 테어도어를 보며 구멍이 났었어야 할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테어도어가 자신의 손자를 집어삼켰을 때처럼 물리적인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까 전 감촉은 기억났다.
테어도어는 올리버에게 정제되고 정제된 양질의 감정과 생명력을 주입해 육체의 자유는 물론, 정신마저 흡수하려 했다.
테어도어가 올리버의 정신에 간섭하듯, 올리버 역시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올리버는 부분적으로나마 테어도어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으며, 그의 지식과 기억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빠르게 책을 훑듯.
짧지만 유익한 시간.
테어도어의 기억과 지식을 읽을수록 올리버는 그의 내면에 빨려 들어갔으며, 가장 깊은 기억. 그 아래 본질에 도달하려는 찰나, 그는 손을 빼며 물러나 저 상태가 되었다.
그동안 흡수한 감정과 마력, 생명력이 분리돼 요동치고, 이성을 잃으며 발광하는.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혹시, 그게 세상 밖 존재들과 관련이 있는 건가 싶었다.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고…….'
올리버는 질문할까 싶었지만, 발광하는 테어도어의 모습을 보고 이내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 이빨을 뽑는다 해도 궁금증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뭣보다 저 상태를 계속해 관찰해보고 싶기도 했고.
‘저 광기 상태……. 어디서 본 적? 들은 적? 있는 거 같은데…….'
올리버가 테어도어의 이상 상태를 관찰하던 중 뭔가 이변을 포착했다.
터졌다가 다시 회복한 테어도어의 육체가, 분리돼 날뛰는 감정과 생명력, 마력에 의해 서로 찢어지려는 것.
과거 오염 구역 밑 지하실에서 싸웠던 퍼펫의 육신처럼 테어도어의 육신에서 일부 살덩어리들이 사람 형체를 띄며 테어도어의 몸 밖으로 나오려고 애썼다.
허나, 융합상태가 길어서인지, 아니면 유전자 일부만 넣은 탓인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고, 설사 일부 빠져나와도 그냥 살덩어리처럼 무너져 호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때 올리버는 낯익은 존재가 빠져 나오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테어도어의 손자이자, 올리버의 눈앞에서 융합되었던 칼.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이성을 잃은 채 본능적으로 테어도어의 몸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끄어억……사려……살려……!!”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송장인형들은 공격의 의사를 밝혔지만,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손을 들어 말리곤 홀로 테어도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테어도어 주변에 마력으로 연성한 기계팔 프타스 어시스던트(Ptah's Assistant)를 발동하고, 자신의 손에도 비슷한 장갑을 두른 다음, 테어도어와 칼의 접합부에 수술을 시도했다.
아까 전 테어도어에게서 배운 지식을 이용해.
처음 해보는 작업이기에 방식이 다소 거칠었지만, 수많은 기계 팔이 정교하게 움직여 밀가루 덩어리처럼 뒤엉킨 테어도어와 칼의 육체를 서서히 분리시켰다. 이윽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 둘을 분리할 수 있었다.
올리버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송장인형들은 이해할 수 없는지 모두 고개를 갸웃댔다.
이해 못 한 건 송장인형만이 아니었다.
“왜 구해준 거죠?”
올리버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력을 이용해 허공에 떠 있는 그레텔이 있었다.
“한 대 때려주려고요……. 하고 싶은 말도 있고요.”
< 346. 간섭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