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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43화 (343/633)

< 343. 호수의 전투 (1) >

“크윽......!"

테어도어는 오늘 처음으로 고통에 신음했다.

공간 마법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허나, 공세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토막 낸 포털마법 사이로 심상치 않은 좀비가 다수 튀어나와 상처 부위를 중심으로 들러붙어 그대로 자폭했다.

보통 때라면 웃어넘길 위력이었건만, 포털로 인해 생긴 상처가 벌어지며, 강렬한 충격과 열기, 더러운 질병 계열 흑마법이 거침없이 침투하여 신경계를 직접 때렸다.

지독한 치통에 버금가는 통증과 질병 계열 흑마법으로 인한 몸의 이상 신호에 테어도어는 근 몇십 년 만에 제대로 한 방 먹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고통도 방금 데이브가 보여준 마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자신이 쏜 격뢰(激雷)를 받아 버티고, 통제권을 빼앗는 건 둘째 치더라도, 완벽하게 하나로 뭉친 감정과 마력을 둘로 나누다니……. 단순히 솜씨가 좋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였다.

물에 녹인 소금을 맨손으로 다시 뽑아낸 거나 다름없었으니.

실력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영역.

그리고 감탄할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안개를 조종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 역시 마법의 법칙을 초월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그레텔이 조종하고 있는 안개의 통제권을 가져오는 거야 실력이 아주 뛰어나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수천 명분의 마력을 포털로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털을 이동하려면 대상의 크기와 무게, 질량, 에너지에 걸맞은 마력을 이용료로 소모해야 했는데, 데이브 놈은 이 법칙을 그냥 무시했다.

격뢰(激雷)에서 분리해낸 마력이 엄청나다고 하나, 그건 테어도어가 내지른 주먹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으니.

즉, 훨씬 부족한 마력을 대가로 자신을 이곳으로 이동시켰다는 것.

별거 아닌 듯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마법의 법칙을 뒤엎는 기적의 영역이었고, 섭리 바깥 초월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에서 벗어난 존재만이 가능한 일 말이다.

“크아아악!”

테어도어는 기합을 내지르며 몸의 마력을 통제해 내부로 침투한 각종 질병 계열 흑마법을 밀어낸 뒤 거대한 팔을 움직여 자신의 목표물을 잡으려 했다.

저놈만 손에 넣는다면 신이 정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었으니.

그러나 올리버가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올리버는 자폭 인형으로 생긴 검은색 연기를 뚫고 테어도어에게 접근해 몸에 두른 감정 로브를 모조리 사용해 검의 형태로 가공. 테어도어의 어깨를 베어버렸다.

테어도어 본인의 감정인 데다, 검이라는 명확한 이미지 탓에 올리버가 만든 검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고, 테어도어의 팔을 단숨에 잘라냈다. 그 덕분에 막대한 마력을 머금은 주먹은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돼 올리버, 테어도어와 함께 호수 위로 떨어져 거대한 물기둥을 일으켰다.

푸확——!!!

거대한 물기둥이 일어나자 거대한 호수는 거칠게 요동쳤으며, 하늘로 솟구친 물이 비처럼 쏴아아악 쏟아졌다.

일렁이는 호수는 빗소리에 맞춰 점점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수면 아래에서 일어난 폭발에 맞춰 거대한 물기둥이 다시 일어났다.

그 물기둥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 테어도어와 마탑 교수의 개인 직원 제논 겸 해결사 데이브인 올리버.

그 두 사람은 각각 마력을 이용해 땅 위에 서듯 수면 위에 섰다.

“대단하군……. 이렇게 당황해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

비틀비틀 일어나는 올리버를 향해 테어도어가 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올리버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속에서도 끈덕지게 들러붙어 맹렬히 공격했건만. 테어도어는 압도적인 마력과 감정을 분출해 올리버를 힘으로 밀어내더니, 지금 자신의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니, 치료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허공에 연성한 마력 팔을 이용해 토막 난 허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잘린 팔다리를 새로 만들었으니.

이 정도 회복력을 보인 건, 퍼펫이나 인육 요리사의 제자, 바토리 등. 고위 흑마법사들뿐이었다.

“……흑마법을 생명학파 기술로 바꾸신 것입니까?”

테어도어를 관찰한 올리버가 질문했다.

“대단하군요. 보통 마법사분들은 흑마법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거로 아는데요.”

올리버는 진심으로 말했다.

지금의 상황과 개인적인 감정과 별개로 흑마법도 연구해 자신의 방식으로 개량하는 테어도어의 탐구력과 능력은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본받아야 할 정도로 말이다.

"또, 어르신 이후로 이렇게 강하신 분은 처음이고요.”

“어르신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멀린 어르신 말입니다. 아카이브 멀린요.”

“멀린과……. 싸워봤나?”

테어도어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어떠한 속셈이 있는 게 아닌 순수한 호기심에 기반해 말이다.

올리버는 그제야 그 둘이 친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텔에서 올리버를 도와줄 때 멀린이 말한 적 있었는데 말이다.

“예……. 솔직히 싸웠다기보다는 어르신께서 제 수준을 살펴본 수준이었지만요. 상대가 전혀 안 됐습니다."

올리버가 얼음 땅에서 멀린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올리버가 말한 것처럼 전혀 상대가 안 됐다.

그러나 테어도어는 올리버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멀린이란 단어를 듣자 분위기가 변했다.

친근감과 함께 오래된 열등감, 초조함, 의구심을 빛냈다, 사이가 좋으면서도 복잡한 관계인 듯.

“어쩌다 멀린과 싸우게 된 거지?”

“음……. 설명하면 길어지지만, 제 가치를 평가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힘이 곧 가치라면서요.”

“그 녀석답군. ……아니지 이제는 의왼가? 여하튼 어떤 평가를 들었지?”

“아슬아슬하게 합격할 뻔했습니다.”

"뻔했다고?”

“예. 마지막에 잘했는지 아슬아슬은 빼고 합격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호……. 어떻게 했기에 녀석이 만족했지?”

테어도어가 강렬한 호기심을 빛냈다.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필거렛을 피우긴 했는데……."

“필거렛? 그 마약?”

“예……. 아름다운 빛으로 만든 특별한 필거렛인데, 그때 제 감정을 추출해 사용했거든요……. 그런데 피운 이후로는 기억은 잘 안 나네요. 이상한 꿈도 꿨고요.”

“……꽤 궁금하군. 어쨌길래 그 멀린이 만족스럽게 합격시켰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안 쓰는 건지? ……혹시, 그 특별한 필거렛이 없나?”

“아뇨, 있습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안쪽 주머니를 두들기며 대답했다.

쿼터스태프 다음으로 중요한 물건이라 늘 몸에 보관하고 있었다.

테어도어는 고개를 갸웃댔다.

“……이해가 안 되는군. 그런데 왜 안 쓰는 거지?”

“두 개비밖에 없어서요? ……아끼는 중입니다.”

던칸의 것과 셰이머스의 것으로 만든 아름다운 빛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란다 생활이 몇 년이나 흘렀음에도 아름다운 빛은 이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했으니. 돈보다 훨씬 귀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올리버가 설명을 잘못했는지, 테어도어의 열등감과 초조함에 기인한 진지한 분노를 일으켰다.

마력은 활화산처럼 요동치며, 분노란 감정이 수증기처럼 몸 밖으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감히,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인 날 상대로 아끼는 중이라고……?”

“4년 동안 단 세 개비 밖에 못 얻은 거라서요.”

“멀린을 상대로는 썼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래서 두 개비가 남았습니다. 아……."

올리버가 테어도어의 뜻을 뒤늦게 이해하고 설명했다.

“음……. 테어도어 님도 어르신만큼 강하시긴 한데, 아슬아슬하게 괜찮을 것 같아서 아끼는 중입니다. 모욕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진심이 담긴 올리버의 말에 테어도어가 강렬한 분노를 느끼며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게, 평생 멀린을 의식한 그의 역린을 건드린 거였으니.

올리버가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긴 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테어도어를 분노케 했다.

그와의 격차를 메꾸기 위해 일으킨 지금 모든 일이 부정당한 것 같기에.

“아슬아슬하게 괜찮아? ……네 힘을 확인해보기 위해 적당히 상대해주고 있었는데, 내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테어도어가 분노하며 자신의 힘을 증명하듯 호수 전체가 요동칠 정도로 방대한 마력과 감정을 뿜었다.

흡사, 마력 발전소를 연상케 하는 기세와 위용.

아무리 봐도 사람, 그것도 한 개인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올리버는 테어도어를 중심으로 세차게 부는 마력풍과 거칠게 파도치는 호수를 보며 말했다.

“테어도어 님을 우습게 본 건 아닙니다. 육체와 마력량은 제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하십니다.”

“맞아, 멀린을 상대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통해 만든 몸이니까. 내가 보유한 마력이 이 호수라면 네놈이 가진 감정과 마력은 컵 하나 분량....... 그런데 멀린을 상대한 힘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할 거지?! 재주라곤 운 좋게 태어난 것밖에 없는 놈이!!”

테어도어는 사방으로 분출한 마력에 통제권을 발휘하여 흙을 조작해 거대한 뱀을 다수 만들었다.

커다란 땅 울림이 울려 퍼지자 갈색과 검은색 흙으로 이뤄진 거대한 뱀이 호수 주변을 에워싼 숲을 뒤집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하나 건물과 맞먹는 크기를 가져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다.

과거, 셰이머스가 만든 거인만큼이나.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도망쳐야 할 재앙적 존재.

올리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쪽 무릎을 끓었다.

“그래서 여기온 겁니다…….추출.”

***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테렌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필립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으으......."

정신을 차리자마자 통증이 반겨줬고 필립은 영문도 모른 채 신음을 흘렸다.

“아프군.”

“아프시다니 다행이군요.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거니. 이봐, 어서 그거 줘봐, 그래 그거……! 어르신. 이거 드십시오."

테렌스가 말하자마자 곧이어 입에 씁쓸한 액체가 들어왔다. 포션이었다.

필립은 반사적으로 입안에 들어오는 모든 포션을 삼켰다.

“좋아……. 다들 이쪽으로 와서 잡아! 어르신을 옮겨야 해!”

테렌스의 외치자 여러 손길이 느껴지며 다수의 사람이 필립을 들어 옮겨줬다.

2미터가 넘는 테렌스는 느릿느릿 움직였고, 그 사이 시야가 회복돼 눈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었다.

“테렌스. 이들은……?”

필립이 자신을 에워싸 옮기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케빈과 제논이 구한 학생들입니다……. 이거 조금 아픕니다.”

필립을 바닥에 내리자마자 테렌스는 뾰족한 바늘이 달린 앰플을 필립의 팔에 꽂아 내용물을 주입했다.

그러자 강렬한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아파라……! 도대체 뭘……. 아, 내 팔 잘렸지.”

필립이 자신의 잘린 팔을 보며 말했다. 기절한 사이 골렘 의수의 수명이 다했는지,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팔까지 잘려 쇠약해진 상태에서 이 정도이니……. 천장을 뚫고 떨어지셨을 땐 정말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로어 가문 가주가 이 정도로 죽어서야 쓰나……. 그보다 케빈이 테어도어를 막은 건가? 애들을 구했으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날 치료하고 있다는 건 사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는 거 아니야?”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건 전투가 끝난 후니. 거기에 납치된 마법사들도 구출됐고 말이다.

허나, 현실은 그런 합리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테렌스는 이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답지 않게 입을 뻐끔뻐끔거릴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듯.

필립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고 테렌스에게 물었다.

“내가 기절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검은 번개와 거대한 주먹이……. 하아……. 직접 보는 게 나을 듯합니다.”

테렌스가 설명하다 말고 한숨을 쉬더니 필립을 부축해 폐허나 다름없게 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자 필립은 이상한 걸 느꼈다.

"……이곳을 둘러싼 안개는 어디 갔나?”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예, 그리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저기가 문제죠.”

테렌스가 거구의 필립을 부축하며 마을의 중심지 호수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선 5층 건물과 맞먹는 흙으로 빚어진 뱀과 얼음으로 이뤄진 인면(人面) 뱀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흉흉하기 그지없는 검은 번개와 불기둥 등이 번쩍번쩍 땅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흡사, 전쟁터, 아니 지옥과 같은 모습. 필립이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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