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 테어도어 (2) >
“단 한 번도 기대해 본 적 없다. 단 한 번도.”
테어도어가 등 뒤에서 칼을 꿰뚫으며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기에 진심이 느껴졌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공격하기 적기이긴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지켜보고 싶었다.
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고. 가령, 테어도어가 꿰뚫은 관통상이라든가.
분명, 손으로 몸통을 꿰뚫으면 상처가 생기고 그 사이에서 피를 흘려야 마땅한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가 생기긴커녕 테어도어의 팔과 칼의 몸이 뒤섞여 융합하고 있었다.
살이 맞닿는 부분에 거품이 부글부글 일며, 핏줄과 혈관이 합쳐지고 심지어 생명력까지 한데 뒤엉켰다.
융합이었다. 해당 학문에 지식이 없었지만,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 건 칼의 감정이라 할 수 있었다.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마텔의 총책임자 자리도 맡았던 칼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실험했던 아이들 못지않은 공포와 두려움, 혼란과 배신감,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그런 반응.
올리버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로 말이다.
테어도어의 행동이 좀 의외긴 했지만, 결국, 자신이 해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입장만 달라졌을 뿐 자신이 해온 것과 똑같은 일일 뿐인데 말이다.
더 이해가 안되는 건,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면서도, 조금 안타깝다는 마음이 드는 자신이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콜린 때처럼 안타까웠다.
탁.
천장에 매달려 있던 올리버는 바닥으로 내려왔고, 그 사이 테어도어는 능숙하게 자신의 손자를 집어삼켰다.
흑마법사의 눈을 가진 올리버에겐 보였다.
칼의 생명력과 감정을 집어삼키는 테어도어의 생명력과 감정이.
마치, 쥐를 삼키는 뱀과 같았다.
“아아……. 기다려 줘서 고맙군.”
칼의 육체를 통째로 흡수한 테어도어가 말했다. 그는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아뇨, 저도 궁금해서 지켜본 본 거니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그런가?”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방식으로 사람 하나를 통째로 삼키는 술식은 올리버도 처음 보는 거였으니.
과거 오염구역에서 퍼펫이 비슷한 걸 선보인 적 있고, 인육 요리사 제자들의 식인과도 비슷했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퍼펫과 인육 요리사의 제자는 대상을 삼켜 양분으로 삼는 ‘섭식’이라면, 테어도어는 대상을 통째로 흡수해 정신의 주도권만 빼앗는 ‘융합’이었다.
구체적으로 공부해봐야 알겠지만, 테어도어의 기술이 더 우수해 보였다.
‘약점도 있어 보이지만.......'
올리버가 질문했다.
“질문 몇 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방금 그 기술……. 생명학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겁니까? 아니면, 퍼펫 님이나, 인육 요리사 님의 기술을 가져오신 겁니까?”
“그 둘을 만나봤나?”
“퍼펫 님은 만나봤고, 인육 요리사 님은 못 만나봤습니다. 다만, 제자들은 만나봐 그들이 인육을 먹어 힘을 흡수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허……. 그러고도 살아있다니 대단하군……. 아니지 당연한 건가?”
"......?"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뭐가 당연하다는 건지?
이에 대해 질문하려는 찰나 테어도어가 먼저 대답했다.
“그들의 기술을 토대로 가져온 건 맞아, 생명학파의 방식대로 개량했지만. 그들의 방식은 비효율적이거든.”
올리버는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퍼펫이나 인육 요리사의 방식은 섭식. 테어도어는 그대로 흡수하는 융합이었다.
효율만 따지면 테어도어의 방식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칼의 생명력과 젊음을 그대로 흡수해 테어도어는 훨씬 젊어졌을 뿐 아니라, 그의 마력과 마력 흐름까지 가져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질문은 그게 끝인가?”
“음……. 조금 더 물어봐도 될까요?”
“해봐.”
테어도어가 젊음을 만끽하듯 몸을 풀며 흔쾌히 수락해줬다. 칼을 집어삼켜 기분 좋은 것과 별개로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
케빈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성격이 아니라 했는데. 올리버는 이런 친절의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일단 질문부터 했다.
“왜 아무렇지 않은지 여쭤 볼 수 있을까요?”
"뭐라?"
“아,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칼 씨는 제가 알기로 테어도어 님 손자인 걸로 아는 데 집어삼켜도 아무런 불편한 마음이 없으셔서…….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하…….흑마법사 질문치고 이상하군.”
올리버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테어도어의 말처럼 흑마법사인 올리버가 할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테어도어가 칼의 몸을 꿰뚫어 흡수하는 순간 칼의 감정은 진실된 배신감과 슬픔, 공포를 느꼈기에. 즉, 칼은 테어도어를 믿었다는 이야기.
전에 그런 감정을 본 적 있었다.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에 처음 온 아이나, 광산에 막 팔려온 아이들에게서.
세상에 버림받은 감정.
칼은 한순간이지만, 힘없는 아이와 똑같은 감정을 빛냈다.
그래서인지 조금 신경 쓰였다. 이상하게도 콜린이 떠올라 말이다.
“뭐가 됐건……. 손자지 않습니까?”
“자식의 육체도 먹어치웠는데, 손자라고 못할 건 뭐지?”
테어도어가 태연자약하게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올리버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그냥 탄성부터 냈다.
“아……. 이유가?”
“이유라? 음……. 자넨 사람이 왜 자식을 가진다고 생각하나?”
“고아원 원장님께선 저희 부모가 멍청해 피임을 안 해서라고 말해주셨습니다.’
테어도어가 파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웃긴 듯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보통의 인간은 대부분 그렇게 태어나니까. 술과 부주의로- 하지만 계획해 자식을 낳는 자들도 있어. 부유하고, 권세 있는 고귀한 인간들 말이야.”
“그분들은 왜 자식을 가지죠?”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지.”
“유전자요?”
“그래. 인간의 유한한 삶을 그나마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거든. 자식이 살아있으면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되니까. 이해가 안 되나?”
“음……. 솔직히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네요.”
올리버가 솔직히 답했다. 고아인 올리버에겐 부모가 뭔지 자식이 뭔지 가족이 뭔지 그 의미를 알려주는 이가 없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후손의 의미를 알려주는 이 역시 없었기에.
그런데 웃기게도 지금 테어도어가 알려주고 있었다.
“소수의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것을 쌓아. 넘쳐흐를 재산, 세상 반대편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권세, 세상을 변화시킬 지식. 허나, 죽음이 찾아오면 결국 먼지처럼 무의미해지지. 그래서 인간은 자식을 가져. 자신의 분신에게 자신의 업적을 물려줘 우회적으로나마 살아남으려 하지. 그것이 자식의 존재 이유고.”
"음......."
딱히 공감 가진 않지만 흥미로운 관점이긴 했다.
“근데, 그럼 자식분과 손자분인 칼 씨는 삼키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올리버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콕 짚으며 질문했지만, 테어도어는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가 맥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는 듯.
“이해를 못 하는군……. 반대로 말하면, 죽음을 극복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자식이나 손자와 같은 혈육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거야”
테어도어가 그리 말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쁨과 목적에 다다랐다는 만족감을 빛냈다.
올리버는 다시 질문했다.
“영원히 사는 영생(永生) 기술이 있으십니까? 케빈 교수님 말씀으로는 생명학파에 그런 기술이 없다고 하시던데요.”
“맞아 없어. 하지만 곧 개발할 수 있어. 네가 여기 있으니까.”
테어도어가 올리버를 가리켰다.
“저……. 말씀입니까?”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확인 차 되물었다.
“그래, 너.”
“……뭔가, 오해가-”
"-크하하하하하하하핫!! ”
테어도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광소라도 해도 좋을 격렬한 웃음이었다.
"우습군. 우스워……. 인간으로서는 꿈꿀 수 없는 모든 축복을 가졌음에도 정작 그걸 보유한 이가 이토록 어리석어서야……. 정말 화가 나."
테어도어는 갑자기 정색했다.
“감정과 마력의 혼합이 특기가 아니라고 그랬지?”
“예.”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기술이라고 그랬지?”
“예."
“혈마법도 배운 게 아닌 그냥 보고 흉내 내 사용한 걸 테고?”
“예.”
"마법도 누군가 가르쳐줘서 사용한 게 아니라, 그냥 쓸 수 있었던 거겠지?”
“비슷합니다. 배우긴 했지만, 사용을 먼저 했으니까요.”
대답을 전부 들은 테어도어는 어느새 유쾌한 기분이 싹 가시고 강렬한 질투와 분노를 발산했다.
올리버에 대한 질투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올리버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 중 테어도어만큼 축복받은 사람도 없는데, 그런 그가 고아 출신인 자신을 질투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네놈 피를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아나?”
“……? 혹시, 아까 전, 위에 있었던 마법사분들 말쏨입니까?”
“그래, 한 방울도 안 되는 티끌 같은 피를 이식하는데도 엄청난 반발 작용이 일어났거든. 뛰어난 마법사도 온몸이 뒤틀리고, 피가 부패해 죽었지.”
"......."
“그래서 백 명이 넘는 마법사의 마력과 생명력을 대가로 지불해 칼의 몸에 간신히 몇 방울 되는 피를 이식했지. 난 그런 칼을 집어삼켰고! ……말해봐! 넌 누구지?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피를 가진 거지?!”
테어도어는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상태였지만, 굳이 올리버에게 질문했다.
몹시도 흥분한 그의 상태와 달리 올리버는 몰이해와 당혹스러운 감정만을 느낄 뿐이었다.
길을 가다 헛소리를 하는 주정뱅이를 만난 것과 비슷한 감정.
그래도 올리버는 예를 지키며 대답했다.
“……전 그저 마탑 교수 개인 직원인 제논 브라이트 겸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일 뿐입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테어도어는 불쾌할 뿐이었다. 마치, 무시당한 듯이.
“역시, 네놈에겐 과분한 것이야. 과분하다고!!”
테어도어는 소리치곤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추출 바닥에 댔다.
놀랍게도 마리의 오리지널 흑마법이자 방금 올리버가 사용한 블레스(Bless)였다.
테어도어의 감정은 안개와 빛 중간 형태로 변해 건물을 전체를 훑고 갔고, 올리버가 미리 선점한 통제권을 덧씌웠다.
올리버는 뒤늦게 통제권 방어를 시도했지만, 한 발짝 늦고 말았다.
우웅……! 끼이이이……. 촤라라락! 촤라라락!
테어도어는 처음부터 흑마법을 써 왔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흑마법을 사용해 건물 상층부를 기형적인 형태로 조작했다.
철사로 이뤄진 지구본과 같은 형태로, 그 덕분에 발밑이 몹시도 위태로워졌다.
놀라운 실력.
올리버는 단순히 칼을 흡수해 얻은 것이 아닌, 이미 그 기초를 충분히 닦은 실력의 산물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됐다.
이 정도 실력의 실력자가, 왜 자신의 피 몇 방울을 흡수하기 위해 마탑을 배신하고, 수많은 마법사를 희생시키며, 손자까지 희생시켰는지.
허나, 곧 지구본 꼭대기 부분에 거꾸로 매달린 테어도어가 스스로 이유를 알려줬다.
“네놈을 통째로 삼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노화와 죽음의 저주를 극복하며! 종말을 이기며! 멀린과의 격차를 메워, 내가 가장 위대한 마법사란 걸! 선택받은 존재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
테어도어가 흥미로운 단어를 외치며 블레스(Bless)로 조작한 기형적인 지형에 대량의 전기를 퍼트렸다.
푸른빛 전기는 눈에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굵고 거칠게 구조물 전체를 덮쳤고,
일반적인 방어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올리버는 그대로 점프, 전기의 파도로부터 도망쳤다.
“어딜!”
기다렸다는 듯이 테어도어는 블레스로 조작한 지면에 술식을 부여해 사방으로 퍼트린 전기를 조작, 올리버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수십 줄기의 전기가 사방에서 날아온 것.
간단해 보여도 보통의 마법 통제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기술.
올리버는 전격이 자신을 강타하기 전에 혹시 몰라 시험관에 따로 보관한 소량의 피를 매개로 피 풍선을 소환해 대량의 혈액을 확보, 그 피를 날개처럼 둘러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블랙슈트를 두르면서 테어도어 앞으로 가 물었다.
“종말론에 대해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