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39화 (339/633)

< 339. 진격 (2) >

"음……."

올리버는 속으로 침음성을 내며 눈앞의 세 남자를 바라봤다.

우습게도 셋 모두 낯이 익었으며, 그중 둘은 아주 낯이 익었다.

‘마텔에서 본 얼굴……. 가운데가 칼 씨……. 우측 분은 핀 루소 씨였던가?’

올리버가 기억을 더듬어봤다.

마텔의 비밀 지하 연구실에서 싸우려던 찰나, 멀린이 등장했을 때 칼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대화를 이끌었던 사람이자, 아까 전 칼과 싸울 때 난입해 칼을 데리고 후퇴했던 사람.

그도 여기서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칼과 마찬가지로 때려주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기에.

'그리고…….'

“……저분이 생명학파 그랜드 마스터 테어도어 님입니까?”

올리버는 이브가 보여준 영상을 떠올리며 옆에 선 케빈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정작 대답을 해준 건 다른 사람이었지만.

"맞아. 내가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 테어도어 브란트다.”

케빈이 약간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케빈은 테어도어를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일개 교수 개인 직원이나 흑마법사의 질문에 자처해 대답해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이 아니었다.

마법사 중에서도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최소 마스터 급으로, 그 실력을 증명한 존재들에 한정됐다.

그 말은 즉, 테어도어가 올리버를 인정한다는 것. 참으로 신기하고 불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올리버의 특별함을 파악했다는 거였으니.

‘설마……. 지금 벌인 일과 관련 있는 건가?’

케빈은 머릿속에서 저절로 퍼즐이 맞춰지듯 밑그림이 그려졌다.

물론, 감이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감이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짓까지는……. 아냐, 충분히 가능해. 데이브 녀석의 그것은 재능 그런 흔해 빠진 범주가 아니니까.’

케빈이 올리버를 보며 점차 확신을 얻었다.

만약 테어도어가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올리버를 얻고자 이런 일을 벌인 거라면 아주 말이 안 되진 않았다.

과거 생명학파가 올리버를 노린 적이 있었다고 멀린도 언급한 적도 있었으니.

물론, 한 개인 때문에 학파, 더 나아가 마탑의 존망이 걸린 일을 벌인 게 말이 안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때때로 논리나 이성을 초월하는 법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 생각했겠지만, 올리버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애당초 올리버가 하고자 한다면 혼자 힘으로 단기간 내, 마탑도 세울 수 있을 거라 케빈도 말한 적 있었으니.

그 정도로 올리버의 잠재능력은 높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마력 탱크, 그 어떠한 기술도 훔치고 변형해 흡수하는 재능, 정령조차 두려워하는 알 수 없는 특성과 가르치는 걸 넘어 재능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 등……. 포기하는 게 더 말이 안 돼.’

찰나와 같은 순간 케빈은 유일하게 이 사건의 내막을 읽을 수 있었다.

생명학파의 목표는 그저 양질의 마법사를 확보해 힘을 강화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올리버였다.

그 말은 즉 작전이 처음부터 잘못 세워졌다는 걸 의미했다.

목표물을 코앞까지 가져다준 경우였으니까.

사태 파악이 끝난 케빈은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상대도 테어도어니 일단 후퇴하는 게 나을 거라 판단해 말이다.

‘빌어먹을!!’

케빈이 입을 열었다.

"제-"

“-교수님.”

반 박자 빠르게 올리버가 케빈을 불렀다.

"저기 저분……. 데릭 씨와 펠릭스 씨 아닙니까?”

올리버가 한쪽 벽을 가리켰다.

공간 중심에만 빛이 있고, 벽면 쪽은 어두워 음영의 차이로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올리버가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바라보니 뭔가 있었다.

"어어……어……."

"끄으으......."

"사려........................"

공간 벽면에는 복잡한 기계와 관, 전선뿐 아니라 포박돼 돼지처럼 묶인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것도 열 명, 스무 명 수준이 아니라 백 명이 넘었으며, 그중 대다수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보기 안쓰러워질 정도로 말이다.

“데릭……? 펠릭스……?”

머리가 빠지고, 뼈와 거죽이 달라붙으며, 이가 허물어진 마법사들 사이로 케빈은 묶여 있는 두 학생을 찾아냈다.

다행히 그들은 위치 탓인지 주변의 다른 이들에 비해 상태가 조금 나은 편이었다.

살과 근육이 빠지고, 머리 한쪽이 새하얗게 변색했지만, 충분한 휴식과 요양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 해도 생명력과 마력이 많이 줄어들었어…….'

올리버가 데릭과 펠릭스의 상태를 보며 풀어주려고 할 찰나, 케빈이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움직인 것.

그는 차분하게 데릭과 펠릭스에게 다가가 두 사람의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행여 기습이 올까 싶어 올리버는 테어도어 쪽을 봤는데, 그들은 공격할 생각 따위 없는 듯했다.

최소한 당장은 말이다.

케빈은 바위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데릭을 풀어줬고, 올리버 역시 합세해 펠릭스를 풀어주었다.

케빈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올리버는 아무 질문 없이 품 안에서 포션을 꺼내 케빈에게 건네줘 제각기 데릭과 펠릭스의 입안에 포션을 방울방울 먹여줬다.

이걸로 치료가 끝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응급 처치는 될 터였다.

"참 우스운 꼴이군.”

말없이 지켜보던 테어도어가 대뜸 케빈에게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테어도어의 말에는 진실한 몰이해와 비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케빈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테어도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실험체 162번.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네 꼴이 우습다고……. 꼭 무슨 코미디 같지 않냐 이 말이야.”

"......."

"그렇지 않나? 너는 실험동물로서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고, 아비와 어미, 형제자매가 생체실험 당하는 걸 보았지, 그리고는 그 실험을 자행한 멀린의 제자가 되었어.”

"......!"

올리버는 놀라며 케빈을 봤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기에.

케빈이 멀린을 상대로 조금 까칠한 구석이 있는 건, 그저 성격 탓인 줄 알았는데.

놀라운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멀린이 생체실험을 했다니. 그것도 케빈의 가족을 상대로.

올리버의 머릿속에 평소 멀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으며, 엄청난 부자연스러움마저 느꼈다.

'……아냐, 가능할 수도.’

올리버가 캔트를 떠올리며 간신히 납득했다. 사람이란 극단적인 양면을 공유할 수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테어도어가 계속해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해. 넌 멀린의 제자가 되는 길밖에 없었으니까. 거절하면 실험실 실험동물로 생을 마감했어야 했을 테니…….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나?”

테어도어가 정답을 안다는 듯 질문했다.

케빈은 이번에 대답했다.

"예, 그게 전부가 아니죠. 스승님의 제자가 된 건 복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탑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돼 복수하려고 말입니다. 스승님인 멀린을 포함한 당신, 당시 실험에 손 담갔던 모든 마법사에게요. 그리고 그 아내와 가족, 부모, 겸사겸사 마탑 모든 인간에게도 복수하려고요.”

진심이었다. 케빈은 평소 내면에 숨겨두었던 뜨겁다 못해 독하기까지 한 숙성된 분노와 증오를 가감 없이 내보였다.

어찌나 그 감정이 뜨거운지 마력마저 요동칠 정도였다.

"열등종치고는 제법 큰 목표를 세웠군……. 칭찬해주지. 넌 열등종치곤 꽤 훌륭했어.”

테어도어가 아까 전 케빈과의 싸움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건 꽤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망이 커. 그 두 사람을 도와주다니.”

올리버는 데릭과 펠릭스를 보았다.

“……일단, 내 학생이고, 연구원이라서요.”

"그리고 네가 복수할 대상이기도 하지. 저 녀석들 역시 마탑 학생이고, 그 가문과 주변 사람들 역시 생체실험과 연이 있을 테니까.”

"뭐……. 앞세대에서 인체실험이 유행이었으니까요.”

케빈의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평소 케빈이 보였던, 마탑과 학생들에 대한 불편함과 불만이 이해됐다.

단순히 성격 탓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실로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으로 마탑의 모든 존재를 견뎌낸 거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평소 마탑 교수로서의 의무를 묵묵히 해냈고, 그것도 모자라 그랜드 마스터와 원마스터를 구했으며, 지금 학생들도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분노와 증오, 의무감과 책임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감정이 케빈의 마음속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 밝게 빛났다.

꽤……. 예뻤다.

"그런데 왜 저들을 구하려는 거지? 그냥 내버려 두면 될 텐데. 이제 와 정이라도 들었나? 그래서 너희가 안 되는 거야……. 확고한 목표가 있으면 자잘한 연에 휩쓸려서는 안 되지.”

케빈은 테어도어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쓰러진 데릭과 펠릭스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 다음 올리버를 보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고민했다.

올리버로서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교수님……. 지금 도발하시는 겁니다.”

올리버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케빈을 보며 테어도어의 속셈을 말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테어도어는 케빈을 향해 일부러 도발하고 있었다.

케빈이 답했다.

"나도 알아……. 애당초 날 상대로 이렇게 정성스럽게 이야기할 인간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

"애들 데리고 넌 일단 자리를 피해라. 명령이다.”

케빈이 올리버에게 명령을 내리며 몸 안의 마력을 출력, 샐러맨더까지 불러 그대로 돌진했다.

올리버가 말릴 새도 없이 너무 순식간이었는데, 올리버는 케빈의 진지한 감정을 고려해 일단 그의 명대로 따르려고 했다.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지만 말이다.

"응?!"

케빈이 놀라며 멈칫했다. 샐러맨더를 소환해 기세 좋게 돌진하던 중 테어도어 일행과 거리가 가까워지자마자 샐러맨더가 사라졌기에.

정령 특유의 기세가 강해 올리버도 느낄 수 있었다.

정령이 도망친다니. 이례적인 경우.

케빈은 갑작스러운 정령의 이탈에 당황하면서도 뭔가 깨달은 듯 놀란 감정을 빛냈다.

그게 뭔지 올리버는 알 수 없었지만.

"제논……!!”

케빈은 당황하며 다급히 올리버를 불렀으나 칼이 분노를 가미한 검은색 화염을 일으켜 케빈을 공격하는 바람에 말이 중간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탐화(貪火)]

마법의 그것과 결이 다른 검은색 화염에 케빈은 놀랐다. 그러나 실력과 경험 모두 갖춘 마법사답게 케빈은 바로 화염 마법으로 대응했다.

정석적이지만 나쁘지 않은 대응이라 할 수 있었다. 화염 마법을 막는 데에는 화염 마법만 한 것이 없었으니.

"그따위 화염은 먹이일 뿐이야……!”

탐화를 만든 장본인인 칼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탐화(貪火)의 성질을 어떻게 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화염 마법은 탐화(貪火)의 먹이에 불과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뭐야?”

칼이 쉽사리 화염을 섭취하지 못하는 탐화(貪火)를 보며 소리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빈이 사용한 화염은 평소 사용하는 화염이 아닌 윌레스의 화염이었기 때문.

술사가 주는 마력을 수동적으로 받는 화염이 아닌, 화염 자체가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능동적으로 설계된 화염.

그렇기에 위험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화염 마법이었다.

어찌 보면 탐화(貪火)와 그 성질이 비슷하였는데, 그래서인지 탐화(貪火)에 쉽사리 먹히지 않고 나름대로 맞상대했다.

물론, 감정이 뒤섞인 탐화(貪火)의 화력이 더 강했기에 압도하는 것이 아닌 버티는 수준이었지만 케빈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케빈은 가이아 소학파의 대지 마법으로 돌창과 바위 탄환을 만들어 칼을 상대하려 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핀 루소가 갑자기 혈마법을 사용해 칼의 탐화(貪火)와 윌레스의 화염을 찢어버렸다.

————촤확!!!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무력화되는 검은 화염과 붉은 화염.

바토리 못지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혈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그는 화염을 찢자마자 능숙하게 등에 피의 날개를 만들어 재빠르게 돌진, 처음부터 정하기라도 한 듯 케빈을 향해 피로 만든 날카로운 건틀렛을 내세워 덤벼들었다.

케빈 역시 바닥의 돌을 팔에 둘러 맞상대했지만, 루소는 혈마법의 힘으로 케빈의 돌 갑옷에 손톱을 박아넣고 완력으로 밀어 케빈을 건물 밖으로 밀어냈다.

한순간에 홀로 남게 된 올리버.

올리버는 케빈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테어도어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노리신 겁니까?”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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