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재정비 (3) >
다들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생명학파와 싸우자는 중대한 결정의 이유가 고작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라니.
장난하는 건가 싶었다.
허나, 모두가 어이없어하는 와중 유일하게 두 사람만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케빈과 야렐리.
케빈은 올리버가 저런 이야기를 할 성격이 아닌 걸 알고 있었기에 놀랐고, 야렐리는 이곳에 오기 전 몇 가지 들은 이야기가 있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오직 이 두 사람만이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이유군.”
몇몇 마법사가 화를 내려는 찰나 필립이 말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가 어설픈 사명감보다 더 나을 때도 있지. 뭐가됐건,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인의 욕망이니까……. 결코, 내가 술을 얻어 마시고 있어서 편드는 게 아니야.”
필립이 다시 한번 솥뚜껑 같은 손으로 병을 들어 통째로 마셨다.
필립이 두둔하자 다른 마법사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맞서 싸우지 말고 후퇴하자고 우리가 결정하면 어쩔 건가? 제논? 데이브? 뭐라 불러야 할지 헷갈리는군.”
올리버가 답했다.
“편하신 대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다만 괜찮으시다면 제논이라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뭐가 됐건 지금 전 해결사가 아닌 교수 개인 직원이라서요.”
스스로의 정체성을 그때그때 정하는 발언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뻔뻔한 걸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여러분……. 정확히는 케빈 교수님 의견을 따를 생각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 허나, 그만큼 올곧음도 느껴졌기에 왠지 모를 신뢰도 느껴졌다.
“질문해도 되겠나? 데이브.”
스카디 소학파의 틸다가 서늘한 목소리로 올리버를 불렀다. 해결사의 이름으로.
“예, 말씀하십시오.”
“듣자 하니 그대는 테렌스와 케빈도 뚫지 못한 방해 공작을 뚫어 세계수에 접속하고 이곳 상황을 알아냈다고 했는데. 그럼,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나?”
틸다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질문했다. 세계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외부로의 연락도 가능했으니.
테렌스와 케빈은 ‘아!’하고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둘 모두 당장 눈앞의 다급한 상황에만 매몰돼 그 당연한 걸 놓친 것.
당장 외부와 연락을 취해 이 상황을 알릴 수 있다면 보다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외부에 연락을 취해 지원군을 받는다던가 말이다.
허나,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요청을 안 했다는 건가?”
“아뇨.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무슨 방해 공작이라도 있었던 건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확히 본 것이 아닌 이브(Eve)에게서 들은 거였지만.
케빈과 테렌스의 접속을 막는 검은색 벽을 후려치고, 이브(Eve)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 후 올리버는 우선 레이크 빌리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물어보았다.
이브(Eve)는 셰이머스와 ABC 투자회사 때처럼 짧은 시간 사이 많은 정보를 단숨에 찾아주었다.
해당 정보를 확보한 올리버는 이후 외부에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나름 큰일이 터진 셈이었으니, 그래야 할 것 같기에.
허나, 이브(Eve)는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힘들 거 같습니다.]
‘예?’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올리버. 제가 이곳으로 온 후, 무언가 절 감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 소식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 하면 방해 할 듯합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대답. 이브(Eve)는 덧붙여 시도는 해볼 수 있지만, 성공 확률이 낮고 자칫 자신이 다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곳의 룻 넷(Root Net)은 저쪽에서 미리 준비한 상태라 제가 불리합니다.]
올리버는 그럼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난감한 것 때문에 이브(Eve)를 위험에 노출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대신 올리버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누가 이브(Eve)를 방해할 수 있죠?’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이브(Eve)는 세계수에서 비롯된 존재.
올리버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론상으로는 웬만한 넷 내비게이터(Net Navigator) 떼거리로 덤벼도 이브(Eve)를 제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증거로 셰이머스의 부하 드루이드들이 막 태어나 혼란스러워하는 이브(Eve)를 보조 기계까지 써가며 과도할 정도로 구속했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이브의 단어 선택이었다.
무언가가 감시하고 방해한다니……. 사람과 거리가 있는 단어였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저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대답이었다. 이브(Eve)와 비슷한 존재라니. 그렇다면 또 다른 세계수의 인공 정신이라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신기했다. 올리버가 들은 이야기와 읽은 논문에 따르면 이브(Eve)란 존재는 그리 쉬이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애당초 지금 이브(Eve)가 최초의 사례.
그런데, 그런 존재가 하나 또 있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더 의문인 건 생명학파에 협조하고 있다는 거고……. 아니, 생명 연금술 학과인가?’
올리버는 그렇게 이브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안타깝군……. 외부요청을 할 수 있으면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쉬워하는 틸다를 향해 올리버가 사과했다.
틸다의 제안이 안타까운 결과로 끝나자 어찌할지를 두고 사람들이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하게 진행했고, 올리버는 조용히 케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교수님.”
“무슨 일이야?”
“죄송하지만, 물건부터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주변에 널브러진 모포, 간의 침대 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전부 올리버 개인용품이었고, 돈이었다.
“결정되면 바로 움직이실 듯한데, 미리 챙겨둬야 할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이었지만, 상황과 미묘하게 맞지 않는 태도에 케빈은 올리버를 잠시 봤고, 원하는 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랐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올리버는 짐을 챙기러 떠났고, 그와 함께 필립이 케빈에게 질문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케빈……. 진격인가? 후퇴인가? 이런 문제에 관해서 감이 좋으니, 그대 의견도 참고하고 싶군.”
필립은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닌 진지하게 물었다.
실제로 케빈은 전쟁터나 마탑에서 늘 좋은 선택을 해왔다. 케빈의 특성상 단 한 번으로도 나쁜 선택을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전 솔직히 필립 중장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테어도어가 우리 네 명을 해치울 수 있음에도 갑자기 떠난 건, 그보다 더 급한게 있다는 거니까요. 그럼, 원하는 대로 놔둬선 안 됩니다. 전략의 기본이죠.”
케빈이 잠시 뜸을 들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틸다 원마스터의 말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이길 확률이 낮고, 외부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모두의 의견을 받아들여 팀을 두 개로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케빈이 얼핏 우유부단하지만, 가장 과감한 제안을 했다.
이 와중에 전력을 반으로 나누자는 건 큰 위험을 의미했으니.
케빈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필립 중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테어도어를 막으러 가고, 틸다 원마스터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은 필사적으로 이곳을 벗어나 해당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거죠. 한쪽이라도 성공하면 이득이고요.”
테렌스가 경고했다.
“그리고 둘 다 실패할 확률도 높아지지…….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어? 여기서 틸다 님이 빠지면 남은 전력이라고는 몸이 성치 못한 너와 나, 어르신뿐이야.”
“한 명 더 있잖아?”
케빈이 그리 대답하곤 짐을 챙기러 떠난 올리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필립이 반응했다.
“해결사 데이브?”
“예, 지금은 제 직원인 제논이지만요.”
케빈이 명칭을 정정해줬다. 필립은 그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당 문제를 따지지 않고 바로 본론을 물어봤다.
“제논이든, 데이브든, 지금 그가 란다에서 이름을 새롭게 알린 해결사라는 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나도 란다에 듣는 귀가 있으니. 얼마 전 해결사 바닥에서 이름 드높은 드루이드도 쓰러뜨렸다는 것을 알고 있고……. 허나, 그 바닥 소문을 전부 믿을 수 없지. 케빈, 이건 우리 목숨뿐 아니라 마탑의 운명이 달린 일이니 진지하게 답하게.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호쾌하던 필립은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목숨을 달린 일이었으니.
케빈은 필립의 눈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수준입니다.”
케빈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
“고맙습니다. 빅마우스. 네, 이것도 삼켜주세요.”
올리버가 간의 침대와 모포를 깔끔하게 접어 끈까지 묶어 포장한 다음 빅마우스에게 주며 부탁했다.
빅마우스도 이제 기분이 풀렸는지 올리버의 부탁대로 물건을 순순히 삼켜줬다.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삐졌을 때도 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왕 일하는 거 열심히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올리버는 다 끝나고 지폐를 4장 주겠다는 약속했다.
“꾸루루루룩!”
기뻐하는 빅마우스를 보며 올리버는 언제 다시 한번 다른 먹보 주머니와 싸우게 할지 날짜를 생각했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미리미리 하면 좋지 않은가? 다른 먹보주머니를 먹인 후 용량 외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물건을 다 정리한 후, 올리버는 약속대로 빅마우스에게 선물로 지폐를 4장 줬다.
빅마우스는 한 장 한 장 음미하듯 먹었는데, 그때, 야렐리가 다가왔다.
“제논……."
야렐리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빅마우스를 흘깃흘깃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빅마우스가 꽤 신기한 눈치였다.
“예, 야렐리 씨.”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필립 중장님과 테렌스 님, 케빈 교수님. 그리고 제논 이렇게 4명이 테어도어를 방해하러 가고, 나머지는 안개 밖으로 빠져나가기로 했어요.”
“예, 알겠습니다.”
멋대로 정해진 결과에도, 올리버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당초 본인이 생명학파와 싸우고 싶다고 했지만, 그래도 생각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들은 안전하게 도망치고, 올리버는 위험을 감수하고 싸우라는 거니.
야렐리는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사과했다.
“죄송해요.”
"……? 뭐가 죄송하시죠?”
“저희끼리 떠나서요.”
“아……. 안 그러셔도 됩니다. 왜 나뉜 건지는 저도 알 것 같아서요. 뭣보다. 야렐리 씨는 좋아서 떠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올리버 야렐리를 감정을 꿰뚫어 보며 대답했다.
야렐리가 지금 상황에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용기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도 할 수 있는 한 이쪽을 돕고 싶은 눈치였다. 그저 권위에 굴복한 것일 뿐.
‘야렐레 씨에게 권위를 발휘할수 있는 분이라 하면…….'
올리버가 틸다를 봤다. 야렐리의 할머니를.
“……흑마법사는 정말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나 보군요.”
“아…….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사과했다. 그러나 야렐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그런 걸로 화낼 수 없죠. 좀 늦었지만, 고마워요.”
야렐리는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게 원마스터의 혈마법은 자신의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칼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녀의 그런 의기소침한 마음을 읽고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뇨, 제 일이니 감사받을 게 아닙니다. 저도 야렐리 씨에게 도움을 받았고요. 아까 전 절 변호해 주셨지 않습니까?”
야렐리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신기하다는 듯이.
“……왜 그러시는지요?”
“나중에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예?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지하실에서 칼과 대화를 나눴던 대화요……. 마텔과 콜린이라는 소년요.”
야렐리가 그때의 의미심장한 대화와 올리버가 보인 기묘한 태도를 떠올리며 부탁했다. 몹시도 신경 쓰여서……. 마치 울 줄 모르는 아이처럼 안타까웠다.
야렐리는 자신답지 않게 한순간 감정에 휘둘려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올리버는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예……. 그렇게 비밀 같은 건 아니니까요. 대신, 저도 궁금한 걸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저한테요?”
“예, 저도 야렐리 씨에게 궁금한 게 조금 있거든요.”
올리버가 평소와 같은 태도로 말했다.
***
“갔다 왔나?”
올리버가 안개 결계 사이에서 나오자 케빈이 물었다.
놀랍게도 올리버는 이 복잡한 결계를 자연스럽게 잠식해 통제권을 획득, 스무 명이 넘는 마법사를 안개 밖으로 내보내고 왔다.
“예, 밖으로 내보내 드리고 왔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좋든 싫든 우린 우리 일을 해야겠군. 테어도어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정확히는 테어도어 님에게 갈 방법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응? 필립 중장님 그건 무엇이죠?”
빅마우스를 통해 대량의 혈액팩이 든 박스를 꺼내던 올리버가 필립의 한쪽 팔을 보며 물었다.
분명 잘려나간 부위였는데, 그곳에 돌과 마력으로 이뤄진 팔이 있었다.
“급조한 골렘 의수야. 조잡하지만 한쪽 팔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지.”
필립이 마찰음을 내며 급조한 골렘 의수를 쥐었다 폈다.
저 정도 수준이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필요했다.
“……마력 소모가 심해 보이는군요.”
올리버가 무심결에 말하자, 필립이 반응했다.
“오……. 아나? 핵심 부품이 없어서, 내가 실시간으로 마력을 보충해야 하거든.”
“예,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캔트가 셰이머스의 부하들에게 한쪽 팔을 잃은 후, 올리버는 개인적으로 골렘과 그 파생 학문인 골렘 의수 분야를 공부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과거 노획한 철거용 골렘을 해부해 말이다.
덕분에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기초는 뗀 상태였다.
“음……. 필립 중장님.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좀 보충해봐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대뜸 제안했다.
불리한 상황으로 테어도어를 상대하러 가는데, 저런 상태로 가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필립은 생각 이상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농담까지 섞어가며.
“실력이 궁금하긴 하군. 시체라도 사용할 건가?”
“예."
농담에 올리버가 진담으로 대답하며 빅 마우스에게 시체를 꺼내 달라 부탁했다.
빅마우스는 두꺼비와 같은 울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시체 다섯 구와 그 시체를 손질할 도구를 꺼냈다.
그 모습에 테렌스와 케빈은 움찔했지만, 당사자인 필립은 차분했다.
“시체를 이용해 골렘 의수의 중요 부품을 대체하는 건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시체의 뼈로 뼈대를 잡아주고, 살을 접착제처럼 사용해 형태를 유지할까 합니다. 그럼, 의수의 형태 유지에 필요한 마력 소모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차분하고 간결한 설명에 필립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위험은 있나?”
“이론상으로는 없습니다.”
“이론상?”
“예, 실제로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거절하셔도 됩니다.”
“이 상황에 뭐가 무섭겠나? 한 번 해봐.”
필립이 흔쾌히 골렘 의수를 내밀었다.
올리버는 케빈을 봤고, 케빈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우선 꺼낸 시체 다섯 구의 팔을 한쪽씩 톱으로 잘라 재료를 확보한 다음,
필립의 골렘 의수에 영향력을 발휘, 일순간 통제권을 가져와 의수를 구성 중인 돌 파편을 부품 단위로 해체했다.
주변에 널브러진 돌을 이용한 것치곤 구조가 정교해 감탄스러웠다.
“난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이기도 하거든.”
올리버의 속을 꿰뚫어 본 듯 필립이 말했다.
“대단하시군요.”
올리버는 그리 대답하고는 준비한 재료에 흑마법을 사용했다.
[민스 미트(Minced Meat)]
영창과 함께 잘린 팔의 살점이 잘게 쪼개져 올리버의 손안에 들어왔다.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발라진 뼈를 가져와 살점과 함께 흑마법 ‘콥스 클레이(Corpse Clay)’로 뒤섞어 통뼈를 만든 다음 필립의 의수 가운데에 뼈대 처럼 놓고, 해체한 부품을 뼈를 중심으로 재결합시켰다.
“제가 임의로 부품 조립을 변경시켜도 되겠습니까? 중장님.”
“마음대로 하게. 어디 실력 좀 보지.”
필립이 조립된 부품의 디테일을 보고 허락해줬다. 전문가 수준이었다.
허락을 구하자마자 올리버는 재빠르게 골렘 의수를 완성시켰고, 곧바로 살점을 부품 사이사이에 시멘트처럼 발랐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리버스 패러사이트(Reverse Parasite)]
올리버는 대량의 생명력을 시험관에서 추출해 감정과 함께 살점에 부여했다.
이 마법은 대상의 생명력을 버섯이나 벌레, 살점을 통해 갉아먹을 수 있는 질병 계열 흑마법 [패러사이트(Parasite)]를 변형한 것으로. 대량의 생명력을 머금은 살점은 생명을 다시 얻어 골렘 의수의 형태를 잡아주었다.
두근. 두근. 두근.
필립이 감탄하며 고동치는 자신의 골렘 의수를 봤다.
“꽤……. 놀라운 접근 방식이구만. 살점이 생명력을 주입해주는 방식인가?”
“예, 그렇습니다. 다만, 사용시간에 제한이 있습니다. 아마, 다섯 시간 정도일 겁니다. 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 다섯 시간이면 테어도어가 죽든 내가 죽든 누구 하나는 죽을 테니.”
“또 살점이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골렘 의수 특유의 분리 기능은 쓰지 못할 겁니다. 단, 내구도와 유연성은 더 좋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 좋군. 나한테는 그게 나아.”
“아, 다행이군요.”
“그래, 부작용만 없으면 꽤 괜찮을 거야.”
필립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으로 말이다. 놀라운 기술이었다.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실력이군. 정말 대단해.”
“칭찬 감사합니다.”
0| 기술에 관해서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그건 조금 뒤로 미루지……. 제논. 그럼 테어도어가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갈 거지?”
필립의 질문에 올리버가 품 안에서 한 얼음 조각을 꺼냈다. 피가 얼어붙은 얼음 조각을 말이다.
“이걸로 갈 생각입니다.”
올리버가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대량의 혈액을 부어 커다란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