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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35화 (335/633)

< 335. 재정비 (1) >

팍!

올리버는 필립에게 시가를 물려준 다음 손끝에 마력을 집중, 불을 만들어 줬다.

필립은 올리버가 만든 불에 시가를 태우며 숨을 뻐끔뻐끔 들이켰다.

“후……. 고맙군.”

필립이 연기를 내뿜으며 인사했다.

올리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인사하고는 잔에 술을 쪼르륵 따랐다.

그 모습을 보던 필립이 고개를 짓고선 올리버에게서 술병을 빼앗아 마력을 이용해 병을 차갑게 식혀 통째로 들이켰다.

적잖은 크기의 병임에도 2미터를 가뿐히 넘는 필립이 드니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하아……. 다시 한번 고맙네. 진심으로.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만. 설마, 술을 궤짝 채로 가지고 다닐 줄이야.”

필립이 담배와 술이 가득 든 상자를 보며 말했다.

“마탑에서 일하며 다른 직원분들이 이야기 해주신 덕분에 챙길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줬길래, 술과 담배를 이렇게 들고 다니지?”

“술이나 담배와 같은 기호 식품을 들고 다니는 게 사회생활의 첫걸음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교수님이나 주변 사람들 비위를 맞출 수 있게 말이죠."

“크하하하하하하하핫-!! 이 친구 완전 대박이군!”

한쪽 팔을 잃어 외팔이가 된 필립이 호탕하게 웃으며 올리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긴 안 웃는 게 이상했다.

필립조차 손대기 어려운 안개 결계를 역으로 잠식해 이용할 수 있는 실력자가, 행동이나 말은 영락없는 마탑 교수 개인 직원이었으니. 심지어 유능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언밸런스였다. 웃음이 날 만큼 말이다.

“지금 이게 웃을 일입니까……?”

한껏 웃으며 분위기를 풀던 필립을 향해 누군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학파에 납치돼 간신히 풀려나 목숨을 건진 마탑 출신 마법사로, 그의 감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오늘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으니.

“마탑에 흑마법사가 신분을 속여 잠입했습니다……. 이는 아주 참담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마법사는 핏대를 세워 주장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탑은 여러 학파의 마법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권리와 이권을 지키기 위해 세운 거대 기관.

마법사로 시작해 마법사로 끝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흑마법사. 그것도 란다에서 이름을 크게 알린 흑마법사가 신분을 속여 마탑에 들어왔다?

그 자체로 가히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관련자들의 옷을 벗기는 걸 넘어 마탑 자체적으로 처벌해야 할 만큼.

그러나 정작 가장 화내야 할 마탑의 지도층인 필립과 틸다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

눈으로도 보일 정도의 온도 차.

핏대를 높이며 이번 일을 문제 삼던 마법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필립 중장님!”

“시끄러워.”

상반된 반응 속. 누군가 경멸과 짜증을 담아 끼어들었다.

다름 아닌 케빈이었다. 그는 모포 위에 앉아 마력으로 데운 캔 수프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이런 사태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다가 학생 손에 구출돼 간신히 목숨 건진 놈이 어디서 무슨 자격으로 언성을 높이는 거야?”

케빈은 상대방의 기를 죽일 요량으로 경멸감이 한껏 담아 사실만 이야기했다.

사실이 가장 아픈 법이었으니.

실제로 효과는 있어 필립에게 따지던 마법사는 그 기세가 크게 위축됐다.

마법사란 결과와 모양새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족속이었으니.

물론, 해당 마법사를 비롯해 포로로 붙잡힌 마법사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대규모 안개와 조직적인 습격, 웬만한 마법을 압도하는 혈마법 등. 제압당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수준이었다.

허나, 그런 이야기를 잡힌 당사자들이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딱 한 명 빼고.

“입 닥쳐라, 홍인!!”

케빈이 분위기를 휘어잡으려는 찰나 한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그 역시 구출된 마법사로, 케빈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빛냈다.

“너야말로 감히 어떻게 입을 여는 거지! 신성한 마탑에 더러운 흑마법사를 데리고 온 건 다름 아닌 너잖아?!!”

끼어든 마법사가 케빈과 똑같이 사실로 말했다. 문제는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는 거였다.

"저번 학기 때부터 느낀 거지만 마탑 수준이 정말 떨어졌군.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멍청한 짓까지 하다니.”

“뭐?!"

“그 더러운 흑마법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게 누구고, 그 더러운 흑마법사가 준 모포를 덮은 게 누구고, 그 더러운 흑마법사가 준 포션과 캔 수프를 마시고 있는 건 누군지 되돌아봐.”

케빈이 이번에는 진짜로 경멸과 혐오를 담아 말했다.

케빈의 말마따나 지금 올리버를 욕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였고, 더 나아가 마탑의 고위층인 필립과 틸다마저 모욕하는 짓이기도 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 중 올리버가 준 모포와 간의 침대, 의약품을 안 쓴 자가 없고, 올리버가 제공한 회복 포션과 캔 수프를 마시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제아무리 우월주의 성향에 빠진 마법사라도 이 상황에서 올리버를 모욕하는 건 인간적인 거부감을 느껴 마땅했다.

혐오와 경멸로 물드는 공기. 그때, 필립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을 들어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진정하지……. 케빈 자네도 좀 진정하고.”

케빈은 필립의 명대로 경멸감을 거두며 입을 다물었다. 이를 확인한 필립은 다른 마법사들을 달랬다.

“자네들도 이제 그만하지.”

“하지만, 필립 중장님 이는-”

"-그만하라고 했어.”

필립은 아까 전과 같은 부드러운 태도가 아닌 단호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마력이 실려 있지 않음에도 위엄이 깃들어 있어 듣는 사람을 저절로 위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버가 여태까지 봐온 군인들과 비슷했지만, 그 수준은 아득히 높았다.

기선을 제압한 필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이 일의 심각성을 모른다고 생각하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면 명예 그랜드 마스터라는 명예직에 있어, 내가 마탑 일에 무관심하다 생각하나?”

“아, 아뇨, 아닙니다. 절대……."

올리버 건으로 따지던 마법사들은 마치 어린애로 돌아간 것처럼 쩔쩔매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말이 명예였지 필립은 실질적인 순수마력 학파의 그랜드 마스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명예직에 있는 건 이미 군의 고위직에 있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그와 비슷한 발언권을 가진 건 틸다밖에 없었다.

공기가 차가워지며 필립이 주도권을 가진 게 확실해지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차갑게 식힌 술을 병 채 들이켜며.

“평소였다면 자네들 말처럼 당장 따져야 할 사안이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마탑에 속해 있던 생명학파가 배신 그 이상을 했으니.”

아무도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사실이었으니.

케빈이 한 일은 분명 작은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개인의 일. 그에 반해, 생명학파의 배신은 조직 단위의 문제로, 그 사이즈가 남달랐다.

마탑의 명예와 힘, 영향력을 크게 위축시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 일을 주도한 게 마탑에서도 명성이 드높은 테어도어였으니.

경우에 따라 마탑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바로, 그거야. 케빈의 문제는 나중에라도 따질 수 있지만, 생명학파의 배신은 나중이 없어. 그러니 현명하게 우선순위부터 파악하자고. 마법사답게.”

"하, 하지만 이는 신뢰 문제이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은 그럼에도 안심이 안 되는 듯 올리버를 보며 불안하게 말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른 히스테릭한 반응이었다.

몰아치는 상황과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그저 분풀이하고 싶을 뿐인.

그때, 감정이 아닌 이성에 따르는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끼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야렐리였다. 올리버와 함께 마법사들을 구출한 마탑 학생이자, 틸다 원마스터의 손녀.

그녀는 이미 마탑 내에서 명성이 있었고, 직접 뛰어 사람들을 구한 덕분에 이곳에서 충분한 발언권을 가진 상태였다.

“솔직히 저도 제논……. 아니, 데이브 씨가 정체를 숨긴 것에 적잖게 당황했지만, 그와 별개로 당장 믿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립이 질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만약 뭔가 속셈이 있었다면 자기 정체가 들켰을 때 우릴 안 도와줬을 테니까요.”

야렐리는 혈마법에서부터 자신을 구해주고, 방대한 마력을 써 지하실 전체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안전을 확보해준 올리버의 활약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실제로, 올리버가 나서지 않았다면 야렐리를 비롯한 이곳 마법사 대다수가 무사하기 힘들 터였다.

따지고 싶은 것도 많고, 묻고 싶은 것도 많지만, 야렐리는 당장 눈앞의 명백한 사실과 행동으로 올리버를 평가해 믿어보려고 했다.

“저도 거기에 한 표 던지죠.”

테렌스가 필립처럼 술병을 통째로 들이키며 말했다.

“흑마법사……. 라는 건 솔직히 저도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뭣보다 여기 있는 사람 중 저 빌어먹을 안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친구밖에 없고요.”

테렌스가 사방을 다시 둘러싸고 있는 안개를 가리켰다.

케빈의 정령술과 화염 마법으로 붕괴했던 안개는 지금 점차 회복해 다시 사방을 막고 있었다.

“그러니 싫든 좋은 이 친구를 지금 우리 편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나쁜 뜻은 없어.”

“전 괜찮습니다.”

사과하는 테렌스에게 올리버가 답했다.

흑마법사에 대한 마법사들의 적대감과 경멸감은 이미 알고 있기에 올리버는 괜찮았다.

뭣보다 지금 상황 자체가 나쁘지 않았고.

마탑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와 마스터 둘, 촉망받는 학생까지 자신을 변호해 주고 있지 않은가?

후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진 않을 듯했다.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그럼에도 올리버에 대한 불신을 지우지 못한 마법사들은 도움을 청하듯 야렐리의 할머니이자,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를 바라봤다.

틸다는 흑마법사를 두고 양쪽으로 나뉜 마법사들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신분을 속여 마탑에 위장 취업한 것은 중죄입니다. 마탑의 보안과 안전, 신뢰를 해치는 거니까요. 그게 흑마법사라면 더욱 그렇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필립 중장 말대로 지금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학파가 배신을 했으니까요. 장기적으로는 마탑의 미래가 걸린 문제고, 단기적으로는 지금 우리의 목숨이 걸린 문제니, 사소한 일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죠……. 마스터 케빈.”

틸다가 중재자처럼 말하더니 케빈을 불렀다.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마탑 마스터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를 담아.

케빈이 대답했다.

“예, 원마스터 틸다.”

“저 데이브란 흑마법사 믿을 수 있나?”

신용 보증을 할 수 있냐는 이야기.

케빈은 올리버를 보고는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쾅一!

대답을 듣자마자 필립이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묵직한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럼, 이 문제는 끝이군. 그럼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생명학파 말이야……. 다들 보고 들은 게 있으면 이야기해 봐. 뭔가, 쓸만한 정보가 있을지 모르니까.”

필립은 유쾌한 태도로 말했으나, 현재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정보를 알아야 그에 걸맞게 대응할 수 있었으니.

모두가 눈치를 보던 중 유일한 흑마법사인 올리버가 손을 들어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는 평소처럼 말이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지금 생명학파에서 어떠한 큰 의식? 수술? 같은 걸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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