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칼 (2) >
"근데, 사실 흑마법사지?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칼이 대뜸 질문했다.
주변에 있는 모두가 놀라 침묵했고, 그 침묵이 최고조에 다다르려는 순간-
"죄송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올리버가 그 누구보다 뻔뻔하게 거짓말했다. 양심이 없을 정도.
그러나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현재 자신은 마탑의 교수 개인 직원 제논이었으며.
심지어 본명 역시 올리버.
지금 이 순간만큼은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와 자신은 전혀 상관없었다.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칼은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몰라주고 불쾌함과 분노의 감정을 빛낼 뿐이었다.
"지금 날 바보 취급하나?”
"죄송하지만, 전 바보 취급하지 않습니다. 공간 마법을 쓰시는 마법사를 상대로는 더욱요……. 반대로 여쭤보죠. 어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올리버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 차분히 물어보았다.
뻔뻔한 거짓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했다.
어찌 자신을 의심하는 건지 참으로 궁금했다.
의도치 않게 몇 번 수상쩍은 기색을 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칼은 그런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필체......."
"예?"
"필체라고. 너랑 데이브의 필체가 똑같거든.”
올리버는 뭔 소린가 싶었지만, 곧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마탑 직원 제논으로 일할 때 마운틴 페이스와 관련해 생명학파에 보고서를 제공한 적이 있었으니.
또, 데이브의 신분으로는 모이라이 학파에 세계수와 관련된 보고서를 제공한 적이 있었고.
생명학파와 모이라이 학파. 그 둘은 다른 학파지만, 마탑이란 큰 틀에 묶여있었다.
자세한 경로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해당 보고서가 생명학파에 넘어간 것 같았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다.
‘필체라니…….'
확실히 설득력 있었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증거.
들킨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올리버는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배울 수 있었으니.
다음에는 조심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망할 눈빛과 태도도 증거라 할 수 있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올리버를 향해 칼이 추가로 말했다.
그는 올리버에게 몹시도 큰 분노와 불쾌함을 빛냈다.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단순히 건방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분노와 그 결이 달랐다는 점이었다.
지금 칼이 느끼는 감정의 근원은 부조리였다.
압도적인 부조리함에서 오는 분노와 불쾌함 그리고 질투.
왜 저러는지 올리버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를 할아버지로 둔 사람이 자신에게 왜 부조리와 질투를 느낀단 말인가?
"눈빛과 태도라니요?”
"네놈 눈깥을 보는 순간 너인 걸 확신했거든……. 마치, 별거 아닌 존재를 보는 듯한 그 눈빛. 마텔에서도 그 눈빛을 했었지.”
마텔. 오래된 듯하면서도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마법의 단어.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손을 꼭 잡아 울면서 죄를 고백하던 소년이…….
"아, 반응이 있군.”
칼이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안개에 덮쳐지고, 습격받으며, 생명학파의 음모에 휘말려 지하실에 잠입, 피를 뒤집어쓰고, 혈마법을 쓰는 마법사와 목숨을 걸고 싸웠음에도 차분하던 올리버는 마텔 그 단어 하나에 반응했다.
문제는 올리버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뭐랄까……. 아주 뭐랄까.......
"......제가 무슨 반응을 보이고 있죠?”
올리버가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없자 칼과 야렐리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모습은 아주 이질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사람 흉내를 내는 듯했기에.
그래서인지 아주 불길하고, 거북한 동시에 안타까웠다.
주변의 그 누구 하나 올리버에게 그렇다 할 답변을 못 해줬고, 올리버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태도는 무엇을 뜻하시는 거죠? 칼 씨.”
올리버는 다시 한번 상황과 분위기에 맞지 않게 질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연구하는 학자처럼.
"바로, 지금 같은 태도를 말하는 거야. 주변이 어떻든 하찮다는 듯,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그 꼬맹이 때도 마찬가지였지. 침입자 주제에 정숙하라니.”
칼은 굴욕감을 느끼며 조용히 분노했다.
허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차분히 칼의 말을 정정했다.
"콜린입니다.”
“……뭐?”
"콜린이라고 했습니다. 칼 씨께서 말씀하신 꼬맹이요. 이름이 콜린입니다.”
올리버는 잔잔히 칼의 말실수를 바로 잡아줬다. 가급적 이름으로 부르는 게 예의였니 말이다.
"아……. 맞아. 콜린이었지. 기억나. 쓰레기 노동자 부부에게서 푼돈 주고 데려온 열등종 중 하나. 그나마 실험에 성공해 괜찮은 쓰레기였지만, 결국 중간에 실패한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지.”
칼이 올리버를 의식하며 도발했고, 올리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품 안을 뒤졌다.
잠시 후, 올리버는 반지함처럼 생긴 작은 약통을 꺼냈다.
핑크맨 조나단을 도와 크라임 펌의 경매품을 되찾은 대가로 받은 물건이었다.
수백 개의 포션과 맞먹는 고성능 포션.
한 번의 섭취로 안에 깃든 방대한 마력을 획득할 수 있는 최고급품으로, 약에 걸맞지 않은 자가 복용하면 마력이 넘쳐흘러 독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는 대단하면서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 알약은 뭐지?”
도발하던 칼은 다소 변한 올리버의 태도와 심상치 않은 약에 하던 이야기를 멈추며 물었다.
"알약입니다.”
올리버가 평범하게 대답하곤 알약을 먹었다. 말릴 새도 없이.
꿀꺽.
한입에 넘어간 알약.
그와 함께 올리버의 몸에는 포션 수백 개 분량의 양질의 마력이 채워졌다.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를 겨냥해 만든 물건답게 성능이 좋았다.
보통의 마법사가 복용했으면 마력 탱크가 그대로 터져 죽느니만도 못한 상태가 되었겠지만, 올리버는 바로 안정시켰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저 안정시키는 수준을 넘어 야렐리와 칼과 같은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들조차 눈치 못 챌 정도로 티 나지 않게 몸에 흡수했으니.
"하던 말씀마저 하셔도 됩니다.”
볼일을 마친 올리버가 칼에게 계속 말해보라 권했다.
원래 칼은 콜린과 함께 다른 아이들을 언급해 도발해 올리버의 평정심을 흔들 생각이었지만, 너무나도 차분해진 올리버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이 물러서지 말라 명했으나, 동시에 생물로서의 본능이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
자존심과 본능이 서로 자신의 말을 따르라 주장했다.
“……제안하나 하지.”
"제안요?”
"그래. 지금 네가 구출한 사람들과 얼음 공주를 무사히 나가게 해 줄 테니, 넌 날 따라와. 널 상대로 확인할 게 있거든.”
칼의 말은 진심이었다. 숨기는 게 있긴 했지만, 제안 자체는 진심이었다.
올리버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동했다.
종말론과 관련된 이번 습격과 자신에 대한 칼의 관심.
전혀 상관없는 두 개가 맞물리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떨어진 퍼즐 조각처럼.
문제는 올리버가 이것만으로 무언가를 유추할 만큼 영특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알아보기 위해서 칼의 제안을 따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었지만, 글쎄……. 그러기 싫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제가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되지요?”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 준다는 게 조건이었으니, 균형을 맞춰야지……. 네가 거절하면 이곳 지하실을 무너트려 너희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주지.”
"음.......그럼, 서로 곤란하지 않을까요?”
"난 상관없어. 조금 아깝긴 했지만, 저 녀석들은 메인은 아니거든.”
칼이 야렐리와 구출된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꽤 흥미로웠다. 메인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이번 일을 벌인 핵심 이유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였다.
"음……. 그럼 어쩔 수 없죠.”
올리버는 대답과 동시에 알약을 먹어 확보한 대량의 마력을 분출, 지하실 전체를 장악하려 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과 방대한 마력량에 당황한 칼은 반사적으로 마력을 뿜어 올리버의 행동에 맞대응했다.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고밀도의 마력. 야렐리와 구출된 마법사들은 몸을 짓누르는 압력에 당황했으며, 벽과 천장 역시 금이 갔다.
쩌적……! 쩌저적!!
상식을 초월한 통제권 싸움.
칼은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랐고, 올리버 역시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라 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마력량 하나만 놓고 본다면 혼자서 숲을 태우는 케빈 이상이었었다.
'다만, 통제 능력은 떨어지네.’
올리버가 속으로 평가 내리며 서서히 마력의 통제권을 빼앗아 왔다.
통제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걸 깨달은 칼은 몸 안에서의 마력 출력을 높여 압도적인 힘으로 올리버를 짓뭉개버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칼이 분출한 마력 대부분 올리버가 가져와 칼이 뒤늦게 꺼낸 마력 역시 족족 가져갔기에.
명백한 실력의 차이.
칼은 엄청난 부조리를 느꼈다.
마텔에서의 굴욕 이후 수많은 시술을 통해 신체와 마력량, 마력 통제 능력 등을 수차례 강화했건만 이렇게 밀리다니.
이건 옳지 못했다.
"크으으윽……!! 통제권을 빼앗는다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나?!!”
분노한 칼이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르며, 마력을 폭발시켜 이곳을 통째로 날려버리려 했다.
올리버의 시체 일부분만 있어도 충분할 터이니.
그런 속셈을 눈치챈 올리버는 빼앗은 마력의 통제권을 완전히 굳힌 다음 머릿속에 이미지를 형성해 그대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난 듯 지하실이 요동치더니,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올리버가 방대한 마력으로 지하실 전체를 감싸 지상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I
지반을 뚫고 위로 솟아나는 굉음이 고막을 넘어 몸 전체에 울리며 이윽고 안개로 뒤덮인 지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탑 내에서도 손꼽힐 규모의 마력 운용에 주변의 모두가 경악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다리에 마력을 집중 단순에 거리를 좁혀 칼에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톤파의 손잡이 부분을 도끼날처럼 세워 칼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갈고리처럼 끼워 포획하려는 것.
허나, 칼도 호락호락하지 않게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올리버의 예상을 초월한 속도였다.
"다리가……. 신기하네요.”
올리버가 말과 육식 동물의 다리가 뒤섞인 듯한 칼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마텔에서 싸웠던 마법사와 비슷한 신체 변형이었다.
"이것만 신기할 건 아닐걸?”
칼은 한 손에 마력,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의 감정을 추출해 양손을 맞잡아 두 개의 에너지를 하나로 뒤섞었다.
칼의 말이 맞았다. 매우 신기하고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궁금증이 들 만큼 말이다.
"어떻게……."
-[격뢰]
칼이 대답 대신 분노의 감정이 깃든 번개를 쐈다.
검은 번개는 올리버에 대한 직접적인 악의를 품으며 날아왔다.
***
"후우……. 후……."
불과 몇 분 전 언덕이었던 대지 위에서 케빈이 숨을 골랐다.
그 맞은편 한층 더 젊어진 테어도어가 서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군. 실험체 16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