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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29화 (329/633)

< 329. 원군 (2) >

타. 타. 타.

올리버와 야렐리는 이브가 가르쳐준 정보대로, 레이크 빌리지 한쪽에 설치된 연구소 내부로 잠입했다.

명칭은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의 공동 연구실이었지만, 실상은 이번 습격에서 납치한 마법사들을 보관하는 인간 창고였다.

이브를 통해 레이크 빌리지의 전체 상황을 살펴보던 중 알게 된 것으로, 이런 창고가 여기 외에도 세 곳이나 더 있다 하였다.

“어디로 가야 하죠.”

올리버와 동행하던 야렐리가 갈림길이 나오자 물었다.

올리버는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본 다음 전혀 다른 복도 한쪽에 손을 대 마력을 부여, 설치된 술식을 작동시켜 개구멍 같은 입구를 열었다.

올리브는 그 아래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여기 아래입니다.”

올리버가 쑥 들어가자 아래에 마련된 진짜 비밀 통로를 볼 수 있었다.

앞의 두 갈림길은 생명학파가 미리 파악해둔 비밀 통로로, 이브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대규모 사건을 준비한것 치고,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는 그렇게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로를 염탐할 수 있게 몰래 비밀 통로를 만들거나, 그런 비밀 통로를 모르는 척해 감시하는 게 그 증거.

‘하지만 그와 별개로 준비성 하나는 대단한 것 같네.’

올리버가 잘 마련된 비밀 통로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참으로 궁금했다. 단순히 수많은 마법사를 재료로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물론, 이만한 수와 질의 재료를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결정적인 게 빠진 느낌이랄까?

올리버가 그렇게 고민에 빠진 그때 야렐리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당겨드릴까요?”

입구에 가슴이 걸린 야렐리를 보며 올리버가 정중히 물었다.

선의로 한 말이었건만 이야기를 들은 야렐리는 민망함과 수치심을 빛내며 버둥대더니, 간신히 빠져나와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

말없이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는 야렐리.

그런 야렐리를 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제가 뭔 실수한 건가요?”

“……아뇨.”

야렐리가 거짓말했다.

아무래도 올리버가 뭔가 실수한 듯했다.

분명, 천사의 집에서 배운 것처럼 곤란함에 빠진 여성분에게 친절히 제안했는데 말이다.

‘손동작이 문제였던 걸까?’

고민하는 올리버를 보며 야렐리가 말했다.

“전 정말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마저 갈까요?”

올리버가 앞을 가리키며 물었고, 야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할머니를 더 구하고 싶어하던 것에 비해 의욕이 꽤 넘쳤다.

“일단, 죄송합니다.”

“뭐가요?”

“제가 여기 학생분들이 잡힌 걸 이야기해서 야렐리 씨도 이쪽으로 오셨지 않습니까?”

정곡을 찔렀는지 야렐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테어도어와 싸우는 할머니를 구하려고 했지만, 올리버 때문에 이쪽으로 배치됐으니.

물론, 생명학파에 납치된 데릭, 펠릭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케빈과 테렌스는 그러지 못하고 야렐리와 올리버를 이쪽으로 보냈다.

“아뇨……. 괜찮아요.”

“그렇습니까?”

“예. 어차피 테어도어와 필립, 할머니의 싸움이면 저나 당신이 가도 딱히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구해 주는 게 더 나아요.”

아쉬워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예. 이게 옳은 거죠. 마탑 학생이라면 말이죠.”

야렐리는 강렬한 의무감과 의지 등을 빛났다. 마치 갑옷처럼 자신의 몸을 지키면서도, 구속하는 느낌이었다.

약간 피곤해 보였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이를 이겨내려 했다. 실로,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제논 씨.”

“예? 저한테요?”

“예. 당신 정체가 뭐죠?”

야렐리가 두끼운 안경을 통해 올리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훅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올리버가 난감해했다.

“음……. 제가 아직도 수상쩍나요?”

“죄송해요. 나쁜 뜻은 없어요. 그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뿐이에요.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명학파가 갑자기 마탑을 배신한 것을 넘어 외부세력과 손을 잡고 습격까지 한 마당이니, 뭐든 주의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거기다 야렐리는 의문과 불안함을 빛낼지언정 올리버에 대한 적의는 없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그녀가 덧붙어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당신께 감사해요. 당신이 세계수를 통해 상황을 알아 내주시고, 안개 결계를 이용해 이동까지 시켜줬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불안하기도 하네요. 마스터 중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은 못 봐서요.”

“야렐리 씨.”

야렐리가 말하던 도중 올리버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야렐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이제 이쪽 환풍구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좁은 복도 크기의 환풍기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렐리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좁은 복도 크기의 지하실 환풍기로 진입했다.

두 번이나 질문했건만 제대로 된 대답을 못 듣다니.

제법 불쾌할 법도 했지만, 야렐리는 곧 환풍기 틈새로 보이는 광경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의 머리를 단 인간이 정육점 고기를 썰 듯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고 있었다.

야렐리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개량 인간의 일꾼 버전입니다. 생명학파에서 만든 거죠.”

야렐리는 어떻게 아는 거냐는 듯 올리버를 봤으나, 올리버는 개량 인간을 관찰하느라 그녀의 시선을 신경 쓰지 못했다.

“음……. 그래도 다행인 것 같네요.”

“……뭐가요?”

“세계수에서 알아낸 것처럼 저 위가 바쁜 탓인지 이 연구실 자체에는 마법사가 적은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조잡한 솜씨로 장기를 꺼내는 개량인간-C03을 살펴보며 추측했다.

일손이 충분하다면 저들에게 저런 섬세한 작업을 맡기지 않았을 테니……. 하긴, 당연한 걸지도.

제아무리 마을 사람들을 키메라로 바꾸고, 생명 연금술 학과와 동맹을 맺었다 해도 절대적 수는 생명학파 쪽이 적었으니, 이런 창고에 병력을 많이 배치하기 힘들 터였다.

그 말은 즉 붙잡힌 마법사들을 풀어줘 도망치기 쉽다는 이야기.

올리버는 야렐리에게 서두르자고 말했다.

그녀는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제논 씨는……. 이런 일에 익숙해 보이시네요?”

“야렐리 씨는 이런 일에 덜 익숙해 보이시네요?”

야렐리의 질문에 올리버가 질문으로 대답했다.

누군가 본다면 비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올리버는 그럴 의도가 아닌 진심으로 궁금할 뿐이었다.

마법사들은 이런 광경에 익숙한 줄 알았는데 말이다. 실제로 케빈 역시 해부라면 적잖게 해 봤다 그랬고.

그러나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오해했는지 야렐리는 약간 불쾌해했다.

“마법사라고 전부 해부에 익숙한 건 아니에요. 그건 마탑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차별적인 생각이에요. 실례죠.”

“아, 그런가요?”

“예. 마법사가 무슨 흑마법사도 아니고요.”

“흑마법사도 딱히 해부를 다 하는 건 아닙니다. 야렐리 씨. 계열에 따라 해부를 안 하기도 하거든요.”

그건 사실이었다. 시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조작계열과 임상 실험을 하는 질병 계열, 크리처를 만드는 지식이 필요한 창조 계열을 제외하면 해부를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즉, 4계열 중 화기계열 하나는 안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 흑마법은 해부(觸래)랑 친하구나.’

올리버가 뒤늦게 정정할까 했지만, 야렐리는 반대로 질문했다.

“흑마법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네요?”

“……케빈 교수님을 도우며 알게 됐습니다.”

올리버가 3초 정도 생각하다 케빈을 팔아먹었다. 어려운 임무를 맡겼으니, 재량껏 활동하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정말 감쪽같은 거짓말이라 생각하였지만, 정작 야렐리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다시 수상쩍은 눈빛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다행히 곧 주의를 돌릴 게 나타났지만.

“여깁니다.”

올리버가 환풍기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렐리는 올리버를 수상쩍게 바라보면서도 시키는 대로 환풍기 입구를 통해 안을 살펴봤고, 그곳에 구속된 데릭과 펠릭스 및 다른 학생들을 발견했다.

총인원 수는 열둘에 하나같이 벨트가 달린 의자에 결박되어 있었다.

벨트에는 마력이 흘러 구속된 상대의 마력을 교란했다.

‘다들 잠들어 있네. 좀 뭔가 이상한데? 약물인가?’

올리버가 미묘한 감정 상태와 생명력, 마력 등을 보며 생각했다. 잠에 빠져서 저런 건가 싶었다.

안을 살펴본 올리버와 야렐리는 시선을 마주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풍기 쇠창살을 마력으로 뜯어 내부에 들어갔다.

“세상에 맙소사……."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핀 야렐리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내부는 깨끗한 편이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하는 게 한껏 느껴졌기에.

야렐리는 눈앞의 현상에 끔찍함과 혐오, 분노와 미세한 공포를 느꼈다.

“이봐, 데릭. 괜찮아?”

야렐리가 데릭을 흔들어 깨우려 했다. 그러나 데릭은 도통 일어나지 않았고, 야렐리는 급한 대로 몸을 구속한 벨트부터 풀어헤치려 했다.

그 순간 올리버는 뭐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야렐리 씨. 일단-”

ㅡ펑!

올리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벨트가 풀리자 데릭의 몸뚱이가 풍선처럼 부풀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사방으로 튀기는 대량의 피와 살점.

그리고 내부 공간에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물풍선처럼 펑펑 터져나갔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비릿하고 붉은 피.

올리버는 기시감을 느꼈다. 마운틴 페이스에서 느꼈던 기시감을.

그래서였는지 올리버는 머리보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피를 뒤집어써 패닉에 빠진 야렐리의 어깨를 붙잡아 당기며, 동시에 몸에 머금은 마력을 사방으로 뿜었다.

바닥을 가득 메운 피웅덩이가 올리버가 디디고 있는 땅 위를 덮지 못하게.

다행히도 또 불행히도 올리버의 예상은 적중했다.

터져나간 크고 작은 살점들이 바닥에 고인 피에 빠지듯 피웅덩이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야렐리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뭐, 뭐죠?”

“피웅덩이. 혈마법 중하나입니다.”

과거 저것에 당한 올리버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혈마법 중에 저런 건 없어요……."

“마탑의 혈마법 말고, 흑마법사의 혈마법에 있습니다. 참고로, 데릭이랑 펠릭스는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터진 거 그분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말하고는 야렐리를 잡아당겨 옆구리에 끼고 앞으로 돌진.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나갔다.

일단, 피가 고인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었기에.

단단한 철문은 마력을 실은 올리버의 발차기에 부서졌고, 피칠갑을 한 올리버와 야렐리는 복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데릭과 펠릭스가 무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방금 제 눈앞에서 터졌는데.”

야렐리가 흔들리는 눈으로 물었다. 피를 뒤집어쓴 탓에 평정심을 다소 무너진 상태. 그럼에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이성을 놓지 않았다.

“외관(外觀)과 내관(內觀)을 잘 만들긴 했지만, 아마 본인들은 아닐 겁니다.”

“그럼……?”

“피 풍선일 겁니다.”

“피 풍선?”

“예. 제가 아는 피 풍선과는 많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을 겁니다.”

[맞아, 정답이야.]

갑자기 이질적인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올리버와 야렐리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가 고인 창고를 향해. 그곳에는 바닥에 고인 피가 인간의 형상을 한 채 서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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