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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27화 (327/633)

< 327. 이브(Eve) (2) >

“예, 오랜만입니다……. 모습이 좀 변하셨네요?”

이브를 살펴본 올리버가 뒤늦게 한마디 붙였다.

실제로 이브는 처음 올리버가 봤을 때와 그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지러울 정도로 형형색색이었는데, 지금은 녹색계열로 통일되어 있었고, 형태 역시 불안정한 과거에 비해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뭣보다 미세하지만, 사람의 형태 같은 게 보이고……. 여성분인가?’

에너지 덩어리 가운데 미세하게 도드라지는 형태를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왜 저런 모습을 했는지 올리버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으나, 최소한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심적으로 진정된 거 같았다.

이브가 대답했다.

[……예. 보기 괜찮습니까?]

사람과 달라 이질적이지만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브가 물었다.

“음……. 전에 봤을 때보다 진정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이브의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덕분이라는 게 자신 덕분이라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뭔가 도와준 기억이 없었다.

“아……. 혹시, 풀어준 것 때문이라면 안 고마워하셔도 됩니다. 저도 대가를 받았으니까요.”

이브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몹시도 조심스럽고 쑥스러워했다.

사람들 감정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브의 감정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니 상관없었지만.

올리버는 지금 상황을 상기하며, 이브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하였다.

이브가 보여 준 실력이면 최소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입을 열려는 찰나, 이브가 한 박자 더 빨리 말을 꺼냈다.

[올리버처럼 살펴봤습니다.]

그 말에 올리버가 하던 말을 멈추며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사람들요?”

[예.]

그랬다. 처음 올리버가 이브를 만났을 때 올리버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어쩌다 보니 한 말이었지만.

처음 올리버가 이브를 만났을 때, 이브는 드루이드에게 억지로 구속된 탓인지 엄청나게 분노했었고, 올리버는 그런 이브를 보며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이브는 올리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후 올리버는 이브와 거래해 이브를 풀어주는 대가로 셰이머스와 ABC투자 회사의 관련 정보를 받았다.

거래가 끝나고 셰이머스와 ABC투자 회사의 자료를 확인하던 중 올리버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한 이브를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너무 사람들에게 화내지 말아 주세요. 왜 화가 나신 건진 이해되지만, 재밌는 분들도 있고, 대단한 분들도 있거든요. 저도 살펴보면서 알게 됐죠. 그러니 이브도 너무 화내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자료는 다 확인했습니다.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이만 떠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말하자마자 이브는 떠났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르라는 말을 비밀스럽게 남기며 말이다.

분명 다급한 상황이었건만 올리버는 흥미가 동했다.

“사람들을 살펴봤다고요?”

[예, 많은 사람을 살펴봤습니다.]

올리버는 살짝 놀랐다……. 아니,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이브는 세계수에서 태어난 존재. 하고자 한다면 올리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세계수가 닿는 범위라면 어디든 살펴볼 수 있고, 수많은 과거 정보를 살펴볼 수 있었으니.

이브가 사람들을 살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어떻던가요?”

[재밌지도 대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브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분노나 악의가 없어 실망감은 더 두드러졌다.

“그렇습니까?”

[예.]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브는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허공에 수많은 영상을 끌어와 틀어냈다.

차와 케이크를 먹는 여성들과 가난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식과 함께 강에 뛰어드는 여성.

빈민가를 관광하는 부유한 일가.

파티를 즐기는 남성과 줄에 기대 잠을 청하는 노동자.

소풍을 즐기는 가족과 죽어가는 가족을 가만히 바라보는 가족들.

자유와 평등을 제창하는 정치인과 식민지 침략.

용기와 충성을 맹세하는 군인과 총칼로 민간인을 살해하는 군인.

아주아주 생생했다. 그도 그럴 게 이브가 만든 게 아닌 그저 세계수가 본모습을 가져온 거였으니.

[이게 재밌고, 대단한 겁니까?]

이브가 올리버에게 물었다. 약간 화가 난 듯, 혼란스러운 듯.

이브는 진지했고, 올리버 역시 그 진지함에 맞춰 대답해주었다.

“아뇨. 재밌지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의문만 들 뿐이죠. 왜 저러는 걸까 하고요.”

[그렇습니까?]

“예, 제가 처음 란다란 도시에 갔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 있거든요. 도시 중앙은 깨끗하고 번창한 데 반해, 도시 외곽은 그렇지 못해서요. 사람들의 감정도 너무 판이하였고요.”

[이유를 알아내셨습니까?]

“글쎄요? 확신은 못 하겠네요. 일단은 돈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야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환경과 치안에 투자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물었죠. 사람들이 가진 돈은 왜 이리 차이가 나는 거냐고요.”

[누구에게 물었죠?]

“폴 카버 씨요.”

[란다 내무부 장관이군요.]

이브가 바로 말했다.

올리버는 다시 한번 놀랐지만, 곧 납득했다.

이브는 세계수에서 탄생한 인공 정신. 카버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예, 맞습니다. 대단하시군요.”

올리버의 칭찬에 이브는 희미하게 기쁜 감정을 빛냈다.

[뭐라 대답을 들었죠?]

“음……. 그런데 이브라면 안 물어보고 알 수 있지 않나요?”

[듣고 싶습니다. 올리버께.]

이브가 진심을 빛내며 말했다. 부탁하는 기색마저 느껴질 정도.

올리버는 대답해줬다. 딱히 비밀도 아니고, 오히려 이런 대화는 언제든 환영이었으니. 즐겁지 않은가?

“효율적인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자원 투자와 분배 시스템, 일 자체의 가치 차이, 노동법의 부재, 최소 임금 제도의 부재, 제도적 한계 등등.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아뇨. 하나하나는 이해하겠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명쾌한 대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혼란스러울 뿐이죠……. 그래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무엇이 재밌죠?]

“처음에는 사무적으로만 대답해주시던 카버 씨께서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어 해당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관해 제게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시더군요. 근로 보장법, 최저임금법, 아동 노동법 등이요. 복지 쪽에서 소극적이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요. 여기서 뭐가 재밌는지 아십니까?”

[아뇨.]

“카버 씨는 딱히 도시 노동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그러는 게 아닌, 이러한 투자가 전체적으로 도시에 번영을 가져와 줄 거라 믿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안정되면 소비가 늘어날 거고, 이는 기업의 성장동력이 될 거라고요. 또 양질의 일자리가 더 생기면 뛰어난 인력이 도시로 몰려올 테니,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이쪽으로 올 거라 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거죠. 정말 재밌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이브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정말 흥미로운 거였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뭔가를 한다는 건.

[그런 게 재밌습니까?]

“개인적으로는요. 신념이나 의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거……. 재밌지 않습니까? 물론, 때때로 꺾이거나 실수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늦게라도 고치려고도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건 대단하고요.”

[그게 누구죠?]

“예?”

[꺾이거나 실수하지만 늦게라도 고치는 분이요.]

“아……. 그분은……. 죄송하지만, 나중에 대답해드려도 될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그분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가끔씩 실수하네요.”

올리버가 정중히 부탁하자, 이브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들어주었다. 참으로 배려심이 깊었다.

[하지만……. 올리버가 말한 경우는 더 적을 겁니다.]

이브가 대뜸 말했다.

“뭐라고요?”

[올리버 말한 경우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실망스럽습니다.]

“음……. 어쩌면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또,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주관이니, 이브께선 너무 여기에만 메이지 않으셔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재밌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거니까요. 이브는 저보다 대단하시니, 저보다 더 재밌고 대단한 걸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브는 혼란스러운 듯 감정을 일렁이며 침묵했다. 뭔가를 깊이 고민하듯.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건 좋은 것이니.

“이브.”

[예. 올리버.]

“죄송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잠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도움이 필요해서요.”

[……물론입니다. 말씀하시지요.]

***

이브의 도움을 받은 올리버는 접속을 중단하며 세계수에서 손을 뗐다.

좀 시간이 흐른 듯했다.

“접속에 성공했나?”

케빈의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테렌스와 야렐리는 놀라며 올리버를 봤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는 듯.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케빈이 질문했다.

“그럼, 뭐 어떻게 된 건지 파악했어?”

“시간이 촉박해 자세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교수님 말씀처럼 학회 주최 측인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가 저지른 일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지금 상황이 어떻지?”

“전부 파악하지 못했지만, 학회에 참가한 대다수가 안개에 갇혀 차례대로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개량 인간과 마법사들에게요. 개중에 선전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중 눈에 띄게 활약하는 분들은 안개로 집어삼켜 다른 공간에 흩뿌리고 있습니다.”

케빈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긴, 여러 실력자가 모인 마당이니 한꺼번에 몰아 처리하는 것보다 이렇게 흘어놓고 진을 빼는 게 훨씬 효율적이긴 했다.

안개로 공간 자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테렌스가 그때 끼어들었다.

“어르신은 어떻게 됐는지 아나? 필립 로어 중장님.”

“싸우고 계십니다.”

테렌스가 다급히 물었다. 올리버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싸우고 있다고?”

“예,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 님과 함께 한 어르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테어도어일 거야. 두 분을 동시에 상대할 건 그 사람밖에 없는 데다, 어르신께서 테어도어를 은밀히 만나러 갔거든.”

테렌스가 분노하면서도 필립이 아직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케빈도 이에 맞장구쳤다.

"다행이네. 필립 중장님과 틸다 원마스터 이 두 분만 구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보일 거야. 최소한 생명학파가 이 사달을 낸 걸 증명할 수 있겠지. 바로, 이동하자.”

케빈이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쉬지 않고 바로 움직이려 했다.

나쁘지 않은 행동이긴 했다. 괜히 꾸물거리다간 새로운 적의 습격을 받거나, 안개에 삼켜져 여기저기 흩어질 수 있었으니.

테렌스와 야렐리 역시 자기 가족 문제라 궁금한 것 투성이임에도 케빈의 명에 따라 움직였다.

“저기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모두가 급한 와중 올리버만이 움직이지 않은 채 손을 들었다.

다들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봐 압박했지만, 말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기색을 보이자 결국 케빈이 입을 열었다.

“뭐지?”

“다름이 아니라. 상당수의 학생이 비밀 실험실에 납치당해 묶여 있는데, 이분들은 안 구해도 되겠습니까? 데릭 씨와 펠릭스 씨 그리고 다른 마탑 학생분들도 꽤 많은데요.”

마치 선택을 강요하듯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 올리버가 덧붙이듯 말했다.

“아, 그냥 의견을 여쭤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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