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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25화 (325/633)

< 325. 개시(開始) (2) >

"……허.”

테어도어는 찢어진 자신의 손을 보며 소리 냈다.

예상외지만 별 건 아니라는 듯.

그리고 그것은 허세가 아니었다.

테어도어는 몸에서 고밀도의 마력을 뿜어내 몸 주변에 복잡한 술식을 형성, 그대로 팔에 집중시켰다.

겹쳐진 술식은 서로 반응하더니 마력 입자로 구성된 기계손을 형상화해 손상된 테어도어의 팔을 순식간에 복구했다.

순수마력학파와 생명학파의 기술이 복합된 기술로, 척 봐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정밀한 마법이었지만, 테어도어는 그랜드 마스터이자, 현 마법 사회의 원로라는 지위에 걸맞게 이를 가볍게 해냈다.

[그레네이드(Grenade)]

필립 로어가 거대화한 창에 마력을 때려 박으며 영창했다.

주인을 닮은 마력은 성난 말처럼 기세 좋게 창대를 타고 흘러가 창촉에 집중되며 폭발. 수류탄처럼 수많은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파바바바바밧!!

필립은 마력 장벽을 쳐 날아오는 파편을 막으며 앞을 봤다.

폭발로 인한 흙먼지가 가라앉자 마력 방어막을 몸에 갑옷처럼 둘러 폭발과 파편을 막아낸 테어도어가 보였다.

그는 아주 여유로웠다.

“대단하군요…….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말입니다.”

“나도 놀랐어. 로어 가문의 기술은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데도 당혹스럽더군.”

"안다고 이기면 책이나 읽는 탁상 마법사가 최강이겠지요.”

로어가 축소된 칼을 한 손에 쥔 채 있는 힘껏 투척하며 축소화 마법을 풀었다.

펄션, 바이킹 소드, 보위 나이프, 글라디우스, 롱소드 등등 다양한 검이 마력을 담은 채 날아가 테어도어를 꿰뚫으려 하였으나.

테어도어는 몸 안에 숨긴 방대한 마력을 개방. 진흙 덩어리와 같이 부드럽지만, 밀도 높은 마력 장벽을 펼쳐 날아오는 무기를 허공에서 모두 붙잡았다.

“좋은 공격이야. 이렇게 마력을 담아 투척하면 어설픈 마력탄보다 훨씬 낫지. 웬만한 마력 장벽은 그냥 꿰뚫릴 테고. 물론, 반격당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테어도어가 손을 까닥이자 특수 가공을 거친 검이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졌다.

테어도어는 그 상태로 마력을 주입해 다시 날려줬다.

“흡一!!"

두 번의 기습이 무위로 돌아가고, 수십 개의 강철 파편이 날아옴에도 필립은 기죽지 않고 그레이트 소드를 품 안에서 꺼내 마법으로 크기를 수십 배 키워 온몸으로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과가가각——!!!

구조물에 가까운 거대한 칼날이 호텔 벽을 부수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테어도어의 마력 장벽과 반격을 뭉겠다.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비록, 테어도어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가볍게 피했지만 말이다.

“겉모습만 젊어졌다 생각하나?”

공격을 피한 것도 모자라 거대한 칼날을 발판 삼아 코앞까지 순식간에 다가온 테어도어가 손에 번쩍이는 전격마법을 형성했다.

필립 역시 그레이트 소드를 버리고 도끼를 뽑아 들었지만, 반 박자 늦고 말았다.

테어도어가 손을 뻗자 전격 마법이 강렬한 빛을 발광했다.

퐈앙——지찌지지지지지직!!

쇠도 녹일 고압 전류가 필립의 얼굴을 불태우기 직전. 상황을 지켜보던 틸다가 끼어들어 필립을 구해줬다.

양손으로 얼음 방패를 만들어 테어도어의 공격을 막아준 것.

틸다의 얼음은 테어도어의 전격을 막는 것을 넘어 흡수하고, 역으로 테어도어의 손까지 잠식하려 했다.

“건방지군. 감히, 날 상대로 통제권 싸움을 걸다니.”

테어도어가 전격 마법을 해제, 얼음 마법으로 곧바로 바꿔 틸다의 얼음 마법에 간섭했다.

스카디 소학파의 원 마스터(One Master)에게 얼음 마법으로 싸움을 건 것.

놀랍게도 테어도어는 틸다에게서 얼음 마법 통제권을 빼앗아왔다.

"......!"

쩌저저저적!!

빼앗긴 얼음이 전(前) 주인을 삼켜 구속하려는 그때 필립이 도끼를 휘둘러 틸다를 구해줬다.

공기를 가르는 도끼날이 테어도어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간 것.

테어도어는 일반적인 마법사는 아득히 초월한 짐승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도끼를 가볍게 회피. 눈 깜짝할 사이 거리를 벌렸다.

“아까 전 도와주셔서 감사하오. 원마스터 틸다.”

“저도 고마워요. 필립 중장.”

멀어진 테어도어를 견제한 채 필립과 틸다가 인사를 주고받으며 거추장스러운 웃옷을 벗어 던졌다.

둘 모두 아차하면 테어도어에게 당할 뻔했으나, 기죽긴커녕 오히려 힘을 합쳐 맞서 싸울 생각을 했다.

조직의 수장들답게. 그 기개만큼은 테어도어도 인정해줬다.

“역시 두 사람은 대단하군. 실력이나 정신력이나. 자칫하면 죽을 뻔했는데도 이리 대응하다니……. 그래서 더욱 안타까워. 왜 내 손을 거절하는 거지? 닿지 못하는 목표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두렵지 않나?”

“군인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두렵긴 합니다.”

“그런데 어찌해?”

“그래도 세상만사 선이란 게 있습니다. 테어도어……. 아까 전에 말한 두 번째 질문. 지금 하지. 생명 연금술과 결탁한 건가? 흑마법사와 결탁한 건가?”

필립이 아까 전부터 신경 쓰이던 안개 결계를 보며 질문했다.

아무리 테어도어라 해도 협력자 하나 없이 혼자서 벌일 수준이 아니었다.

“……갑자기 말이 가벼워졌군. 필립 중장.”

“내가 당신을 존중한 건 위대한 마법사였기 때문이거든. 배신자 따위는 더 이상 존중해 줄 필요 없지. 대답이나 해.”

필립이 대답을 촉구했지만, 테어도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틸다를 바라봤다.

“그대는 왜 거절한 거지? 그대도 선을 넘기 싫나?”

“아뇨. 전 좀 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랍니다. 아이스아이 가문은 이성을 중시하거든요.”

“현실적인 이유?”

“당신이 위대한 마법사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멀린에게 이길 것 같지는 않거든요. 지는 쪽에 가문의 명운을 맡길 만큼 전 어리석지 않습니다."

틸다는 얼음처럼 차갑게 말했고, 테어도어는 치통처럼 시큰한 통증을 느졌다.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의 통증을.

어찌나 화가 나는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그럼, 어쩔 수 없지.”

대답과 동시에 호텔 최상층부 세 마법사가 방대한 마력을 뿜었고, 잠시 후 거대한 무기와 허연 얼음이 호텔을 뒤덮었다.

***

"크르르르르ㅡ"

ㅡ쩍!!

인간의 거죽에 개의 두개골을 집어넣은 듯한 마을 사람……. 아니, 마을 사람이었던 것에 올리버가 톤파를 휘둘러 목을 부러뜨렸다.

어떠한 공격과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던 키메라는 절명해 땅 위로 엎어졌고, 이를 확인한 올리버가 뒤를 돌아 케빈에게 말했다.

“이쪽은 정리했습니다.”

주변에 수십 구의 불탄 시체를 널브러트린 케빈이 대답했다. 시체 중에 키메라도 있었지만, 생명학파로 추정되는 마법사도 다수 있었다. 케빈 혼자서 그들을 쓰러뜨린 거였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올리버가 케빈의 복잡한 감정을 꿰뚫어 보며 질문했다.

“글쎄.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러지 못하군. 여기가 어딘지 조차 모르겠으니.”

케빈이 안개로 둘러싸인 공간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앞뒤 양옆은 물론 하늘까지 뿌연 안개로 뒤덮여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시연장에 있었건만, 안개가 자신들을 집어삼키자 올리버와 단둘이 이곳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가까이 있는 올리버를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혼자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흩트려 하나씩 공략할 생각인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군.’

케빈은 안개에 깃든 마력과 흐름, 패턴을 분석해 적의 전략을 유추해봤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결계 마법을 기본 바탕으로, 공간학파의 마법이 가미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규모는 레이크 빌리지를 다 뒤덮을 수준인데, 술식의 수준까지 높다니. 호수의 마력을 이용한다해도 이걸 통제하려면……. 감이 안 오는군.’

케빈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법에 경악하며 이런 일을 일으킬 사람이 누군지 추측해 봤다.

현재 이곳에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적잖게 있음에도 이 정도 되는 술식을 다룰 자들은 채 다섯 손가락이 안 됐다.

다수의 마법사가 힘을 합친 것이 타당하겠지만, 아까 전 안개가 자신들을 삼키는 것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기습이 실패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집어삼켜 대응하다니. 단체로는 이런 재빠른 대응이 힘들었다.

‘아니면 한 명에게 통제권을 넘겨줬나? 그렇다 해도 보통 실력이……. 잠깐 내가 뭘 하는 거야?’

케빈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했다.

너무 규격 외 상황에 놓여 어리석게 행동하고 말았다.

이 안개 결계를 분석하고,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이 누군지 밝히는 건 분명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 이전에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부터 모색하는 것이 순서였다.

비록, 수십 명의 적을 쓰러뜨렸다곤 하나 이곳에 벌레처럼 꼼짝없이 갇힌 건 여전했으니.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문제는 나 혼자서는 힘들다는 거고…….'

“제논.”

케빈이 상황을 파악,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살펴보던 중 올리버를 불렀다.

놀랍게도 케빈이 생각에 빠진 사이 올리버는 아까 전 제압한 키메라를 바닥에 눕혀 체크무늬가 박힌 단검으로 배를 갈라 속을 살펴보고 있었다.

해부라면 케빈 역시 질리도록 해봤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조잡한 해부를 하느라 손을 시뻘겋게 물든 올리버가 평소와 같은 억양과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기에 더 소름이 끼쳤다. 평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뭐가 신경 쓰이지?”

“개량인간입니다.”

“뭐라고?”

“마운틴 페이스에서 본 개량인간-C03과 몸 내부 구조가 흡사합니다. 아무래도 생명력과 마력이 미묘하게 이상한 건 이 때문인 듯합니다."

케빈이 사람 거죽에 개 머리가 들어간 형태의 키메라를 보며 물었다.

“마운틴 페이스에서 본 건 소머리라고 하지 않았나?”

“예, 소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개고요……. 아무래도 이건 노동력이 아닌 병사용인 거 같습니다.”

올리버가 나름대로 추측해 말했고, 케빈은 놀라지 않았다.

생명학파가 그런 짓을 하는 건 새로운 것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놀라운 건 이 난리에 생명학파가 연관되어 있다는 거였다.

‘정신이 좀 나간 건 알았지만, 이런 짓까지 벌이다니. 도대체 왜……?’

케빈이 고민하는 그때, 올리버가 의문을 표했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네요.”

“뭐가?”

“키메라도 절 보면 두려워하시던데, 이분들은 덤벼서요……. 여기 뇌 수술 때문일까요?”

올리버가 관자놀이를 시작으로 뒤통수까지 죽 그어진 수술 흉터를 가리켰다.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인간의 진정한 마음은 심장이 아닌 뇌에 있었으니까.

“글쎄, 내 생각에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케빈은 이야기가 다시 삼천포로 빠질까 싶어 단호히 말했다.

다행히 올리버는 바로 의미를 알아먹고 개인적인 호기심을 뒤로 미루며, 찢어진 옷을 수건 삼아 피 묻은 손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련의 동작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분위기를 풍겨 약간의 소름을 자아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괜찮아. 어차피 나도 그사이에 상황을 파악했으니……. 아무래도 학회를 주최한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가 이 짓을 벌인 것 같다.”

올리버도 같은 추측을 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머리가 조금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대로 당했다는 거야. 안개 자체는 우릴 해칠 기능이 없지만, 대신, 도망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가뒀으니. 또,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어 적들의 손아귀나 마찬가지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기본 결계 마법에 공간학파 마법이 가미된 것 같아 몹시도 까다로워 보입니다.”

“맞아. 그래서 문제인 거고. 공간 마법을 다룰 수 없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거니까.”

케빈이 답답한 심정으로 말했다. 공간학파조차 보조기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채 3할이 안 됐는데.

어떤 의미로는 가장 까다로운 결계였다.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을 사용해 결계 자체를 어그러뜨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체력과 마력 모두 소진해 다음 습격에 당할 수 있을 테니. 아니, 어쩌면 이 방대하고 복잡한 술식을 펼친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올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케빈이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진 그때, 올리버는 대뜸 안개로 다가가더니 손을 뻗어 안개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마법에 간섭해 제가 결계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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