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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17화 (317/633)

< 317. 학회 초대 (2) >

이십 대 중후반. 인위적이다 할 정도로 빛나는 금발과 벽안(善眼), 잡티 하나 없는 흰 피부,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건장한 체격, 쭉 뻗은 키, 꼿꼿한 자세, 안경을 쓰지 않는 눈.

생명학파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이자, 마텔의 책임자인 칼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다소 과한 표현일 수 있었으나, 올리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면 서로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논. 제논! 제논!!”

칼을 빤히 바라보던 올리버에게 데릭이 낮게 고함을 치더니, 어깨를 붙잡아 휙 하고 잡아당겼다.

힘 자체는 데릭이 올리버보다 더 좋았기에 올리버는 힘주는 대로 끌려갔다.

길을 비킨 올리버. 데릭이 칼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 죄송합니다. 칼 교수님……. 가끔씩 멍할 때가 있어서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늘 자신만만하던 데릭이 적잖게 난감한 기색을 빛냈다.

그만큼 마탑에서 칼의 위세를 짐작게 해주었다.

“저도 사과드립니다. 교수님. 제논 씨께서 놀라 그런 것 같습니다.”

펠릭스까지 옆으로 와 같이 사과하며, 올리버의 어깨를 툭툭 쳐 눈치를 줬다.

올리버는 양쪽에서 압박을 가하는 데릭과 펠릭스를 본 뒤, 자신을 뚫어지라 보는 칼을 봤다.

그는 올리버를 보며 의심과 의구심을 빛냈다. 마치 무엇인가를 확인하듯 말이다.

“……죄송합니다. 칼 교수님. 너무 놀라 실수했습니다.”

올리버가 칼을 다 살펴본 후 정중히 사과하였다. 일단, 자신이 실수한 것은 맞았으니.

칼은 그냥 무시하고 갈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그 유명한 제논이야?”

“절……. 아십니까?”

“그럼, 알고말고. 마운틴 페이스에서 우릴 도와준 유명인사인데.”

“아…….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같이 가주신 해결사께서 다 해결해주셨거든요.”

“교수 대신 마탑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초 훈련일 뿐이고, 교수님이 명하신 방법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 하던데? 먼 동방의 사막 땅에서 건너온 신묘한 시술(施術)을 한다고 이미 소문이 다 퍼졌던데……. 어디서 그런 재주를 배웠지?”

“죄송합니다. 개인 정보는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말할 수 있습니다.”

“교수 직원이 머슴이라곤 해도 그렇게까지 간섭은 안 하는데, 신기하구만?”

“교수님께서 정하신 거라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오, 그래? 그렇게 하라는 이유가 참 궁금하네.”

묘하게 팽배해지는 공기. 데릭과 펠릭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려는 찰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 다.

“아, 교수님! 이야기는 다 끝내셨어요?!”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아름다우면서도 활기찬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이십 대 초반 싱그러운 여성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눈, 코, 입, 귀. 심지어 몸매와 팔다리까지 전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마치, 예술가가 하나하나 계산해 깎은 조각상처럼.

외모뿐 아니라 사교성도 좋은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올리버와 펠릭스, 데릭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케빈 교수님 연구원이신가요?”

아름답고 활기찬 여성의 물음에 데릭이 대답했다. 여성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예,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로즈 씨.”

“어머 절 아시나요?”

“알고말고요. 로큘리 대학생명 연금술의 젊은 천재를 모를 리 있겠습니까? 다시 마탑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데릭. 올리버가 펠릭스에게 속삭이듯 질문했다.

“로큘리 대학이 뭐죠?”

“갈로스의 마탑이라고 보면 됩니다. 왕실에서 세운 마법 학교로 역사는 마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오래된 마법 대학입니다. 그만큼 수준도 높은 편이고요. 마탑과 자매학교를 맺었습니다.”

마탑에선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사실에 올리버는 ‘아…….’하고 탄성을 냈다.

한심한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올리버는 마탑 업무에만 집중했으니.

이점을 이해해준 건지 펠릭스가 몇 마디 더 보탰다.

“로즈 두 부아 씨는 그런 로큘리 대학에서 오신 천재시고요. 유명인사입니다.”

“어머, 낯간지럽게 천재라니요. 하지만 칭찬해 주시니 기분은 좋네요.”

데릭과의 대화를 마친 로즈가 어느새 이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특유의 사교성과 외모가 합쳐지니 어디든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펠릭스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뇨, 들은 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케빈 교수님 연구원인 펠릭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가워요. 이쪽 분은?”

“아, 제논. 제논 씨라고 합니다. 케빈 교수님 개인 직원입니다.”

“아! 제논……! 이름 들어봤어요. 이렇게 보니까 너무 반갑다. 안녕하세요. 우리 생명학파를 도와준 영웅!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리 만나네요. 너무 반가워요!”

로즈는 올리버가 봐온 마법사들과 달리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특유의 활기찬 태도와 어우러져 자연스러웠기에. 하지만 올리버는 그런 것에 전혀 눈이 안 갔다.

왜냐면 그녀의 감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에. 흡사, 두꺼운 불투명 유리가 쳐진 듯 그녀의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멀린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꽤 놀라웠다.

“반응이 없으시네....... 아아! 제가 실수했네요. 너무 호들갑 떨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로큘리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로즈 두 부아예요. 저번 학기 때 일이 있어 돌아갔다가 이번에 다시 돌아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로즈가 정식으로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악수 신청.

손을 맞잡는 것이 예의기에 올리버는 손을 뻗었다.

“아.”

올리버가 로즈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 내며 손을 휙 회수했다.

"......?!"

모두가 놀란 눈으로 올리버를 봤다. 몹시도 무례한 행동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행동에 모두 침묵하며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를 눈치챈 올리버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봐서요. 저도 모르게 실수했습니다."

“.....??!!"

“.....??!!"

데릭과 펠릭스가 자신의 두 눈과 귀를 의심하며 올리버를 부릅 바라봤다.

그 둘이 봐온 올리버는 저런 말을 지껄일 인간이 아니었으니.

더 놀라운 건 생각보다 말이 자연스러워 좀 어울린다는 거였다.

다들 뇌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침묵하는 도중. 로즈가 쿡쿡쿡 웃고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재밌으신 분이네요. 처음 보는 여자한테 그런 낯간지러운 말씀도 하시고……. 그럼 다시 악수할까요? 긴장되시면 천천히 해도 좋아요."

다시 악수를 제안하는 로즈. 올리버가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 교수연구실 문이 홱하고 열렸다.

케빈이었다.

“교수님?”

“방금,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데릭과 펠릭스가 바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말한 거 같습니다.”

***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케빈의 등장에 칼과 로즈는 조용히 떠났다.

데릭은 무슨 일인지 케빈에게 질문했으며, 케빈은 할 이야기가 있다며 교수연구실 안으로 부르더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학회 초대 말씀입니까?”

“그래, 이번에 로큘리 대학의 생명 연금술 학과와 생명학파에서 주최하는 학회가 있는데, 거기 날 초대했어.”

“아……. 축하합니다. 교수님.”

데릭과 펠릭스가 많이 놀랐는지 어색하게 말했다.

이야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와 별개로 아주 이상한 이야기였으니.

생명학파에서 홍인(紅人)인 케빈을 초대하다니.

본인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기에 딱히 데릭과 펠릭스의 반응에 뭐라 하지 않았다.

“여하튼,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가 힘을 합친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인지라, 마탑에서도 여러 사람이 갈거야. 각 학파의 마스터는 물론, 원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까지 ……. 단도직 입적으로 묻지 자네들은 가고 싶나?”

케빈의 제안에 펠릭스와 데릭은 눈을 빛냈다.

“네. 교수님.”

“갈 수만 있다면 당연히 가고 싶습니다.”

“좋아, 그럼 여기 참가 확인서를 읽고 사인하고, 일정 조율해 둬. 다행히 초대받은 교수 연구원까지는 경비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펠릭스와 데릭은 곧장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아무래도 그 학회라는 게 생각보다 대단한 자리인 듯했다.

케빈은 서류에 뒤이어 학회 팸플릿까지 챙겨줬다.

“이것도 미리 읽어둬. 생명학파가 메인이지만, 보름에 걸쳐 진행되는 학회라 로큘리 대학 다른 학과도 곁다리로나마 참가할 텐데. 거기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소스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예, 교수님.”

“알겠습니다.”

“좋아,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아까 전 말한 서류와 일정조율을 하도록 해. 학회에서 어떻게 보낼지 보고서도 써오고.”

케빈은 자연스럽게 데릭과 펠릭스에게 조기 퇴근과 숙제를 선물해줬다.

하지만 그게 나쁘지 않은지 두 사람은 기분 좋게 퇴근했으며, 교수연구실에는 올리버와 케빈만이 덜렁 남게 되었다.

“……다들 기뻐하시네요.”

“이런 학회는 보통 기회가 아니니까. 가는 것만으로 견문을 넓힐 기회고, 하기에 따라서는 큰 배움을 얻을 수도 있어.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뜻하지 않은 인연을 쌓을 수도 있고. 그래서 보통 이름 있는 가문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회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녀.”

“아, 그렇군요……. 혹시, 저도 갈 수 있습니까?”

“당연히.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아까 전에 직원은 언급하지 않으셔서요?”

“아……. 내가 실수했네. 교수 개인 직원은 원래 따로 언급 안 해. 교수의 외투나 신발 같은 존재라. 보통 신발을 신고 가냐고 말 안 하잖아?”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마탑의 행정에서는 교수 개인 직원은 사람보다 교수에 딸린 비품으로 본다는 뜻이었다.

뭐든 학회에 참가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지만.

케빈이 데릭과 펠릭스에 이이 올리버에게도 팸플릿을 건넸다. 신청서는 따로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교수의 비품이니까.

올리버는 팸플릿을 받자마자 안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로큘리 대학에 대한 설명과 생명 연금술 학과에 대한 설명, 지도 및 이번 학회에 관한 내용을 개략적으로 담고 있었다.

키메라, 신체 봉합 및 재생, 신체 개조를 통한 수명과 젊음 연장, 인위적인 마력 탱크의 확장, 초인적인 육체 강화시술 등등 일반인과 마법사 모두의 흥미를 돌게 만드는 항목이 있었다.

그러던 중 올리버의 눈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교수님? 학회가 시작되는 기간이 방학 기간과 겹치는데 괜찮은 겁니까?”

“뭐가?”

“계절학기 수업과 겹치지 않습니까?”

“걱정할 것 없어. 마탑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평소보다 일찍 시험 치르면 돼. 성적 조금 더 챙겨주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원래 마탑은 더 높은 사람들 편의를 맞춰주거든. 또, 학생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고.”

“어째서인지요?”

“교수가 수업을 맡고 있을 경우 학생들도 학회에 참가할 수 있어. 교수들을 위한 일종의 특권이지. 불만을 품게 할 수 없도록.”

“아……."

“그러니 다음 수업 때 해당 사실을 학생들에게 공고하고 학회에 참가하고 싶은 학생들을 받도록 해.”

“음……. 대부분 참가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올리버가 데릭과 펠릭스의 반응, 케빈의 설명을 토대로 물었다.

“맞아. 하지만 하고 싶은 거랑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다르지.”

“예?”

“참가할 자격이 있다 해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거든. 가령, 학회 참가비와 왕복 교통비, 여행 증명서, 보름에 걸친 학회 진행에 따른 숙박비와 생활비, 편의를 위한 뇌물 등. 꽤 적잖은 돈이 나가. 1인당 최소 800에서 1000만 란다 정도? 그만한 돈을 갑자기 내기 쉬운 학생은 잘 없지.”

“마탑에서 경비가 안 나오나요?”

“그건 어디까지나 교수와 교수 연구원 및 비품인 직원에 한해서야. 학생들은 자비(自費)로 가야 해.”

“그럼, 돈이 없는 학생분들은?”

“안타깝지만 못 가는 거지.”

“아……."

올리버가 소리 냈다. 조금 안타까웠다.

이번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 열심히 하셨는데, 이렇게 되다니. 물론, 케빈에게 뭐라 할 것도 아니지만.

올리버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교수님. 혹시-”

“-안 돼.”

올리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케빈이 단호히 거절했다.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 말이다.

“아직 말 다 안 했습니다.”

“네가 경비를 지원하면 안 되냐고 물으려고 그랬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올리버가 감탄하며 물었다. 설마 감정을 넘어 생각을 꿰뚫는 수준까지 넘어온 건가 싶었다. 허나, 그건 아니었다.

“네가 파이터 크루를 어떻게 교육하는지 봤으니까. 필요한 교육 장비와 건물, 글자 선생들 임금까지 전부 네가 지급하잖아.”

케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효율적인 훈련을 위한 장비와 공간, 소모품, 알을 비롯한 글 선생의 임금, 포레스트 수수료 등등 모두 올리버가 파이터 크루에서 받는 교육비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파이터 크루는 네 일이니 상관 안 하지만. 마탑에서 내 직원으로 있을 때는 안 돼.”

진심.

올리버가 물었다.

“왜 안 되죠?”

“넌 왜 돈을 쓰려는 건데?”

“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고, 또 열심히 하시는 분들인데, 갑자기 저희 사정 때문에 불이익을 보니까요? 또, 배우고 싶은데 돈 때문에 못 하면 안타깝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 돼. 네가 이런 식으로 도와주면, 다음에도 너한테 바로 달려와 도움을 청할 텐데. 그때 또 도와줄 거야? 나한테도 피해가 올 수 있고. 그걸 원하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또 규칙에도 맞지 않아. 이런 지원을 받으려면 마탑이나 소속 학파에 도움을 청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부유층의 지원을 받는 게 순서야. 그게 규칙이지.”

“부유층요?”

“그래. 마탑은 그들의 투자를 많이 받거든. 돈 나갈 곳이 많아서. 요컨대, 정 애들을 돕고 싶으면 네가 직접 도와주지 말고, 어디 뚱뚱하고 호색한 란다의 부호라도 찾아가 설득해봐. 그거라면 전혀 문제없으니 나도 상관 안 할 테니까.”

***

“그래서 제가 여기 왔습니다.”

올리버가 맞은편에 앉은 에디스에게 설명을 끝마쳤다.

에디스가 말했다.

“이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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