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학회 초대 (1) >
훈련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파이터 크루와 케빈 모두 말이다.
이런 식으로만 흘러가면 파이터 크루의 경우, 최소 1년 안에는 자체적으로 신입을 길러낼 수 있었으며, 케빈 역시 흑마법사로서의 소양을 무난하게 쌓을 것으로 예상됐다.
원체 타고난 이해력과 센스가 좋았기에 물꼬만 한번 터주면 곧잘 따라왔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그는 마탑의 마스터(Master)였으니.
하지만 그 못지않게 좋은 소식은 마탑 쪽 훈련도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는 거였다.
“오, 이제 알 거 같아요!”
주황 머리, 주근깨, 대략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연금술 학파 소속 학생으로, 케빈의 [마법 전투 기초] 수업을 재수강한 학생이었다.
물론, 저번 수업처럼 기초가 부족해 올리버가 맡게 됐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이를 꽉 깨물고 올리버의 훈련을 잘 따라와 줬다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올리버가 마력 흐름 요령을 잡게 도와주는 거였고.
‘물론, 그녀만이 아니지만.’
올리버가 훈련실에 일렬로 앉아 제각기 마력 흐름을 연습하는 다른 수강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올리버의 훈련을 따라온 성실한 학생으로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순차적 마력 흐름을 연습하고 있었다.
대부분 막히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열심히 했고, 올리버는 중간중간 도저히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줬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올리버가 가이아 소학파에서 나온 학생에게 말하며, 양 손바닥을 그의 등에 댔다. 그리곤 미간을 찌푸리고, 애쓰는 척했다.
사실 힘들지도 않고, 손가락만 대도 문제없었지만, 먼 동방의 사막 땅에서 건너온 시술(施術)이라고 거짓말한 마당이었기에 일부러 이런 연출을 했다. 있어 보이려고 말이다.
“……! 돼요. 됩니다!!”
올리버의 시술(施術) 아닌 시술(施術)을 받은 학생이 놀람, 만족, 기쁨을 빛냈다.
처음 도와줄 때만해도 다들 반신반의했는데, 이런 반응이 두 자릿수가 넘자 이젠 전부 믿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기요……. 저도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묠니르 소학파에서 나온 학생 하나가 말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계절학기 때 처음으로 신청한 학생으로, 그는 올리버의 도움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인 상태였다.
“음…….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연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정중히 거절했다.
돕기 싫어서가 아닌 아직 혼자서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았기에.
근래,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많아, 대충 보기만 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보였고, 그는 아직 자력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그저 안 그러는 것뿐.
올리버가 해당 사실을 이야기하자, 묠니르 소학파 학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얼굴과 감정 모두 말이다.
“왜 차별하시는 겁니까?”
“예?”
“저번부터 보니까. 계속 재수강한 학생들만 도와주고 있던데 말입니다. 왜 차별하는 거냐고요. 비싼 돈 내서 수업 들으러 왔는데.”
“아…….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에드빈 씨는 아직 도움이 필요 없어서요.”
올리버가 해당 학생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렀다.
파이터 크루와 조셉 패밀리 때와 마찬가지로 올리버는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해서.
“전 필요한데요. 며칠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아니면 제가 지금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겁니까.”
“예.”
올리버의 단호한 대답.
언쟁을 구경하던 학생들은 놀란 표정으로 올리버를 봤다. 예의가 바른 데 반해 묘한 데서 단호했다. 괴리가 있을 정도로. 더 웃긴 건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웠다는 거였다.
“뭐라고요?”
“에드빈 씨가 제대로 연습 안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조금만 더 연습해달라는 것뿐 입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케빈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순차적 마력 흐름 마지막 부분 때 계속해 힘을 빼시더군요. 집중력이 떨어지시는 것 같던데, 죄송하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끝까지 집중해서 해주십시오. 그 부분을 끝까지 힘내서 안 하면 제가 도와드려도 소용이 없어서요. 만약에 해도 안 되면 그땐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올리버가 정확한 발음으로,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하자, 에드빈은 말문이 막혀 몇 초간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정답이었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마탑 학생들도 올리버가 정답을 맞혔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낮게 깔리는 적막.
속이 꿰뚫린 에드빈은 얼굴이 약간 달아오르며 뭐라 말하려고 하였으나, 바로 그때, 누군가 훈련실 내부로 들어왔다. 케빈이었다.
“여긴 아직도 수업 중인가?”
마력이 미세하게 담긴 목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마탑에서의 위압감만큼은 손꼽히는 교수였으니.
당연히 에드빈도 예외는 아닌지라 케빈의 등장에 기가 움츠러들었다.
올리버만이 그에게 평범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어쩐 일입니까?”
“수업 시간이 끝났는데도 안 와서 내가 찾으러 왔다.”
그 말에 올리버는 시계를 확인했다. 케빈의 말대로 수업 시간이 5분 정도 지나 있었다.
수업에 열중하느라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
올리버는 케빈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곤 다급히 수업을 끝마쳤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고 에드빈 씨?”
“예? 예?!”
“내일 수업 시작하자마자, 에드빈 씨와 이번 수업 처음 수강하신 학생들부터 봐 드리겠습니다. 바로 감을 잡게는 못 도와드리겠지만, 어느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신경 못 써드려 죄송합니다.”
올리버의 정중한 말과 케빈의 등장, 미묘한 상황에 에드빈은 물에 쓸려나가듯 어안이 벙벙 고개를 끄덕였다.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학생들. 올리버는 곧바로 청소도구함에서 청소도구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훈련실 내부를 청소를 시작해 단 5분 만에 끝마쳤다.
“대단하군.”
먼저 떠나지 않고 기다리던 케빈이 대뜸 말했다.
“마탑에서 매일 청소한 덕분에 요령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런 뜻 아니야.”
케빈이 미묘하게 뿌듯해하는 올리버에게 말했다.
"예? 그럼?”
“계절학기가 시작한 지 꽤 됐는데도 아직 꾸준히 나오고 있는 걸 말한 거야.”
아…….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이쯤 때 올리버는 해결사 일을 한답시고 휴가를 냈으니. 케빈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설마, 그쪽 일이 안 풀리는 거야?”
올리버와 함께 연구실로 돌아가는 케빈이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해결사 일 자체는 별문제 없습니다.”
“그렇겠지. 올해 란다에서 손꼽히는 대형 사건을 해결하고, 란다의 살아있는 전설을 쓰러뜨렸으니.”
투자회사 ABC 건과 셰이머스 건을 의미했다.
불과, 얼마 전 일이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었다.
케빈의 말대로 해당 사건은 성공적으로 해결됐으며, 덕분에 올리버의 이름값은 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셰이머스란 이름값은 올리버의 예상보다 더 높았기에. 포레스트가 말하길 이대로라면 올리버가 란다를 대표하는 해결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아니면 모이라이 학파와의 일이 틀어진 거야?”
“아뇨. 그것 역시 잘 해결됐습니다.”
이 말도 사실이었다.
올리버가 멋대로 이브(Eve)를 풀어준 덕분에 모이라이 학파와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보고서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이는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아니면 이름값이 너무 올라가 활동하기 까다로워진 건가?”
올리버가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급속도로 높아진 올리버의 이름값으로 인해 모난 돌처럼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지만, 다행히 포레스트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줬다.
서로를 견제하는 란다의 정치 체계와 시(市)와의 비공식 동맹, 파이터 크루를 돕는 등 복합적인 상황 덕분에 말이다.
“이후부터는 시간이 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강렬한 인상이 희석돼 모난 돌 같은 제 상황은 수그러들고 이 도시의 일부가 될 거라고 말이죠.”
"음……. 그럴 수 있겠군.”
“쉬는 이유는……. 딱히 별거 없습니다. 저번 건으로 돈을 제법 벌었고, 마탑 일도 하고 있어서 그냥 쉬는 것뿐입니다.”
“성실하면서도 느긋하군. 뭐, 네 일이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번 주 테스트에는 몇 명이나 합격할 것 같아?”
“세 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테스트란, 다름 아닌 올리버가 맡은 학생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치르는 시험이었다.
해당시험을 통해 케빈의 수업을 들을 수준이 됐는지 아닌지 평가하였는데, 저번 1학기 수업 때 펠릭스 한 명만 올라간 데 반해, 이번 계절학기에는 벌써 여덟 명이 넘는 학생들이 올라간 상태였다.
실로,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잘하면 이번 수업에는 학생들 모두 내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겠군.”
“예……. 이렇게 수업을 진행해도 별문제 없다는 게 좀 신기하기는 하지만요.”
“마탑이란 별별 일이 다 있는 곳이고, 갑갑하면서도 널널하기도 하거든. 문제가 생기면 벌써 저번 학기 때 학파 행정부에서 사람이……. 응?”
케빈이 말을 하다 말고 앞을 봤다.
앞에는 교수연구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데릭이 보였다.
펠릭스와 함께 면접에서 합격해 케빈의 연구원이 된 데릭이 말이다.
데릭은 수업을 마치고 복귀한 케빈과 올리버를 보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왔다.
“교수님.”
“무슨 일이지?”
본능적으로 평소와 다른 것을 눈치챈 케빈이 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다행히 데릭도 이런 쪽으로는 케빈과 호흡이 맞아 미사 구어를 빼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올리버는 움찔했다. 아까 전 수업에 관해 이야기 나눴는데, 학파 행정부에서 사람을 보낸 건가 싶었다.
케빈이 물었다.
“어디 쪽이지?”
“생명학파 쪽에서 온 사람입니다.”
***
생명학파.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마운틴 페이스 바토리 사건 이후로 엮인 일이 없었으니.
그렇다 해도 막상 그 이름을 들으니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올리버가 생명학파와 은근히 엮인 탓일지도.
"......."
올리버는 생명학파와 그동안 엮인 일을 떠올리고는 같이 밖에서 대기하는 데릭과 펠릭스에게 말을 걸었다.
“생명학파에서 왜 사람을 보냈는지 아시나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놀랍게도 펠릭스보다 데릭이 먼저 대답해줬다.
“생명학파가 학문 특성상 다른 학파와 교류를 자주 하긴 하지만 여기 찾아온 것 좀 의외라서. 교수님 피부색이 좀……"
데릭이 조심스럽게 말꼬리를 흐렸고, 무슨 말인지 올리버는 바로 이해했다.
우생학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마탑이었지만, 그중 가장 심한 것은 생명학파. 그런 그들이 홍인인 케빈을 만나러 온 것은 좀 이상하긴 했다.
거기에 펠릭스도 불안한 듯 한마디 더 보냈다.
“심지어 온 사람이……."
“……? 온 사람이 누구죠?”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리던 펠릭스에게 올리버가 질문했다.
펠릭스가 눈치를 보다 입을 열려는 찰나 한 남자가 교수연구실 문을 열고 나왔다.
놀랍게도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이자, 마텔의 책임자인 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