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15화 (315/633)

< 315. 면접 (3) >

“어……. 게빈 씨라고요?”

저녁 여덟 시 반.

X구역에 도착한 올리버에게 조가 되물었다.

조는 올리버 뒤에 서 있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삼십 대 백인 남성으로,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케빈이었다. 순수마력학파 마법으로 위장한 케빈 말이다.

원래는 가죽 가면을 쓸 것을 제안하였으나 케빈은 이를 거절하며 마법으로 외형을 숨겼다. 사람 가죽을 벗겨 만든 흑마법 아이템은 거북하다고 말이다.

“예, 제가 근래 알게 된 분인데, 도움받은 게 있어 흑마법을 가르쳐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면 여기서 같이 가르쳐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게 효율적일 것 같아서요……. 아, 게빈 씨, 파이터 크루의 간부인 조입니다. 인사 나누세요.”

게빈이란 가명(假名)을 쓴 케빈은 올리버의 말에 따라 정중히 예를 갖춰 조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조는 근래 뒷골목에 퍼진 소문과 달리 제법 예의를 갖춰 인사를 받아주었다.

현재 크라임 펌과 전속 계약을 맺은 그는 근래 뒷골목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해 적잖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독특한 형태의 흑마법으로 란다 밖 외국인 갱단 연합을 무너트리고, 크라임 펌과 대립하던 이름난 해결사를 다수 참살했으며, 심지어 근래에는 핑크맨과도 부딪혀 간부 둘을 장사 치렀다고 말이다.

손속이 아주 잔혹하다고 하던데, 그런 것치고는 위장한 케빈에게 상당히 예를 갖췄다.

케빈은 곧 이 이유가 올리버 때문인 것을 알아차렸다.

막 익힌 흑마법사의 눈을 안 써도 조가 올리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여기서 흥미로운 건, 여느 뒷골목 인간들처럼 단순히 힘이나, 돈 때문에 따르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그는 힘과 돈이 아닌 올리버 자체를 따르고 있었다. 눈빛과 사소한 몸동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뒷골목에서 보기 힘든 영향력.

그리고 그런 영향력에 지배받는 건 조만이 아니었다.

넓은 공터에서 체력단련과 흑마법 수련, 홍인에게서 글자를 배우는 다른 파이터 크루 단원 모두가 올리버에게 조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 증거로 올리버가 얼굴을 비춘 것만으로 이곳 공기가 달라졌다.

개선장군을 영접한 병사들처럼 긍정적인 긴장감이 공간을 지배하였다.

하라고 해도 만들기 힘든 영향력. 그런 영향력을 올리버가 발휘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

케빈은 그런 올리버를 말없이 관찰했다.

“감정을 추출요?”

"예, 조. 아시다시피 사람에게서도 추출을 연습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대일로 가르치자니 그 부분은 연습할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말 인데, 게빈 씨가 연습을 좀 할 수 있게 여러분 몇몇이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아득해지는 부탁이었다.

감정 추출이라는 게 헌혈처럼 소량만 뽑으면 무해 하다고 하나, 그와 별개로 찝찝한 것도 사실인데 그걸 뽑게 해달라니.......

허나, 놀랍게도 파이터 크루의 조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꽤 신기한 경우였다.

가난하고 치안이 안 좋은 구역의 사람일수록 생존 욕구 때문에 이런 제안에 기겁하는데.

조금만 우습게 보여도 죽을 수 있는 환경에 놓였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런데 조는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

이는 셋 중 하나였다.

올리버에게 압도적인 공포를 느끼거나, 올리버에게 뽑아낼 건더기가 있든가, 그것도 아니면 올리버에게 엄청난 신뢰가 있든가.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것. 특히, 마지막은 불가능에 가까운 거였다.

조와 대화를 나누던 올리버가 케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정중히 부탁했다.

"교……. 게빈 씨?”

"응?"

“괜찮으시면 1시간……아니, 1시간 반만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파이터 크루 분들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인지 이해한 케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처지가 아쉬운 건 케빈이었고, 또 개인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기에.

케빈이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얼마든지 기다리겠다고 하자 올리버는 감사를 표하며 조와 함께 움직였다.

그 사이 케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Y, Z구역을 제외하면 가장 최악인 X구역이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

***

1시간 반 후, 올리버는 자신이 말한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10분 먼저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케빈이 그를 맞이해 줬다.

“왔나?”

“예, 게빈 씨. 늦어서 죄송합니다.”

케빈이 손목시계를 살피곤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정확히 1시간 반. 늦지 않게 딱 왔어……. 일이 생각보다 많았나 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는 우선 파이터 크루에 새로 들어온 신입들에게 기초 흑마법 교육과 앞으로 배울 흑마법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줬으며, 그 과정을 조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보여줘 어떻게 흑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동시에 두 개의 수업을 병행한 것.

생각보다 고생스러운 과정이었건만, 올리버의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번에 맡긴 테스트 항목을 살펴보며 파이터 크루 단원들 전체 수준을 다시 한번 평가하고 무엇무엇을 보강할지 개략적으로 잡아주며, 이를 기록까지 하였다.

그 외에도 조를 비롯해 성장 한계를 느끼는 간부나 단원들의 흑마법을 체크해 개선 및 성장 가능성에 관해서도 즉석에서 조언해줬고 말이다.

1시간 반 만에 끝내고 온 게 대단할 지경이었다.

“정말 대단하군.”

“그렇습니까?”

"그래."

“아……. 감사합니다. 교수, 아니, 게빈 씨. 게빈 씨께 그런 말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성적은 짜게 줄지언정 교수로서의 성실함과 유능함은 확실한 케빈의 칭찬에 올리버가 화답했다.

그러나 케빈은 누굴 기쁘게 해주겠다는 의도가 아닌 순수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올리버가 업무를 보느라 바삐 보내는 1시간 반 사이 케빈 역시 올리버의 동행인이란 신분으로, 주변을 기웃거리며 주변을 탐색하고,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기에.

가령, 군대 같은 규율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파이터 크루라든가.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규율이 아닌 그들의 훈련 구조였다.

규율이야 압도적인 카리스마나 힘으로 일시적으로 세울 있었지만, 체계적인 훈련 구조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보통 빈민가의 조직은 그런 체계성이 없었기에 강력한 1인이 등장해도 그 성장엔 명백한 한계가 있었지만, 파이터 크루는 마탑의 그것과 비교해도 될만한 나름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8인 1조로 나뉜 소대 단위 훈련, 그들의 훈련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는 평가항목, 평가항목을 바탕으로 한 훈련과 흑마법 수련법 등등…….

심지어 빈민가에서 보기 드물게 여러 사람이 단체로 글까지 배우고 있었다. 문자를 말이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는 것으로는 구축할 수 없는 시스템.

케빈은 이를 언급하며 올리버의 작품인지 물어봤다.

“예……. 작품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교수님의 [마법 전투 기초] 수업을 참고하고, 원소학파 타워와 순수마력학파 타워의 도서관에서 참고한 훈련 교재를 참고한 것뿐이지만요.”

마탑의 어설픈 천재들이 좋아하는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 아닌 진심으로 올리버가 답했다.

실제로 올리버의 말처럼 현재 파이터 크루의 훈련은 딱 참고한 수준이었다.

기초 체력과 흑마법을 테스트하고, 그에 맞는 모자란 부분을 보강하는 훈련……. 단순한 골격만 가져왔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추가하지 않고 딱 필요한 기초만 가져온 게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장 효과적인 게 뭔지 안다는 거였으니.

단순히 마법이나 흑마법에만 재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못지않게 일머리도 꽤 좋았다.

‘그러고 보니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답답하긴 해도 일을 못 하진 않았지.’

케빈이 서류 업무, 작업, 청소, 자료조사, 커피 타기 등등 어떤 일이든 곧 잘하는 올리버를 뒤늦게 떠올렸다.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타고난 개인의 힘과 재능, 타인에게 재능을 부여할 수 있는 설명할 수 없는 특성만으로도 거대한 조직을 세울 녀석이, 각종 업무는 물론, 시스템까지 이해하고 응용하며 적용하니.

과거 멀린에게 올리버가 마음먹기 따라선 수백 년 역사가 쌓인 학파나, 수십 년 역사가 쌓인 마탑도 혼자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였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 듯했다.

농담이 아니라, 올리버가 어떠한 욕심이나 의지가 생겨 하고자 하면 단신으로 마탑과 비견될만한 조직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단기간 내 말이다.

압도적인 개인의 무력, 험하기 그지없는 X구역 갱들을 사로잡는 영향력, 재능을 부여하는 특성. 거기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머리까지…… 오히려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건 오롯이 놈에게 그럴 의지나 생각이 없기 때문.

농담이 아니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이야기였다.

고작 한 학기 마탑 직원으로 잠깐 다닌 것으로 이 정도라니. 스승인 멀린이 왜 자신에게 올리버를 맡겼는지 이해됐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잡아 먹힐 것 같았다.

“게빈 씨? ……게빈 씨? ……교수님?”

상념에 빠진 케빈. 그런 케빈을 올리버가 불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케빈이 대답하자 올리버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문제 있는지요?”

“아……. 별거 아니야.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무슨 곤란한 일이 있으십니까?”

“곤란한 건 아니고……. 좀 신기해서. 저기 건물에서 파이터 크루 단원들이 웬 홍인(紅人)에게서 글을 배우고 있는 게 보여서.”

“아……. 알 씨 말씀입니까? 제가 자주 이용하는 레스토랑 종업원이십니다. 제 부탁으로 파이터 크루 분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있으시죠.”

"음……. 왜 파이터 크루 사람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라고 했지?”

“별거 아닙니다. 글자를 모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요……. 제 사견이지만, 시(市)에서 모든 시민에게 글자 정도는 가르쳐 줄 공공 교육을 제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요.”

올리버가 자신의 경험과 신문을 통해 얻은 식견을 토대로 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보적 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했다. 가령, 멀린이나 케빈과 같은.

“재밌는 말이군……. 근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제안할 게 있어서요. 괜찮으시다면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지?”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만 말고, 아예 이곳에서 흑마법을 정기적으로 배우시면 어떻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제안. 케빈이 다시 물었다.

“이유가 뭐지?”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제가 여기서 흑마법을 가르쳐드리고 있으니, 아예, 게빈 씨도 여기서 같이 배우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라 생각해서요. 서로 시간도 아낄 수 있고요.”

올리버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고, 케빈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배우는 것보다 같이 배우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랐고, 올리버가 이곳에서 뭘 하는지 바로 옆에서 감시, 관찰할 수 있었으니.

“……좋아.”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수업 들어가죠. 저기 도와주실 분들이 있습니다.”

올리버가 올리버의 손끝을 봤다. 조를 비롯한 파이터 크루 단원들이 서 있었다.

스스로 교보재를 자청한 이들이.

“저분들 감정을 한 번 추출해 보죠.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익숙해지면 양을 차차 늘려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단숨에 추출해 보도록 하죠.”

올리버가 연습의 내용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해줬다.

“어째 마지막은 조금 위험하게 들리는데?”

“약간 위험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올리버가 표정의 아무런 변화도 없이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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