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 면접 (2) >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인 오후 4시 정각.
올리버는 케빈과 이야기 끝에 일찍 퇴근하곤 마탑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식사했다.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비싼 가격만큼 맛은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 올리버는 상류층 거주지인 I구역 외관에 있는 케빈의 저택에 도착.
곧바로 지하에 마련된 훈련장에서 가벼운 테스트를 진행했다.
케빈이 흑마법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이다.
놀랍게도 또 당연하게도 케빈은 흑마법에 그렇다 할 재능이 없었다.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과거 멀린이 마법과 흑마법이 전혀 다르다고 한 적 있었으니.
'마법은 수학이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술식을 부여해 원하는 힘을 발휘하는. 물론, 그 술식도 숙련된 마법사는 자기가 편한 대로 형태를 바꿔 사용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규칙은 일치해. 법칙을 벗어나진 않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흑마법은 수학보다는 그림에 가까워. 마법보다 역사가 짧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모르지만, 숙련된 흑마법사는 어느새 자신만의 고유한 흑마법을 만들지. 규칙을 벗어나는 것도 많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의 학문.
당연히 요구하는 재능은 달랐으며, 마법에 재능이 있는 케빈은 흑마법에 재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눈에 신경을 집중해도 그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 저번에 네가 날 도와줬을 때는 분명 감정을 볼 수 있었잖아?’
‘감정은 추출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습니다. 추출한 후에나 보이죠. 마력처럼요.’
‘지금 네가 손에 쥔 감정은 추출한 감정이잖아?’
‘감정을 조작해 추출하기 전처럼 흑마법사의 시야로만 보이도록 했습니다. 가공을 거치는 순간 바로 모습을 드러내 전투에는 크게 효용성이 없지만, 이렇게 테스트하는 용도로는 괜찮죠.’
과거, 조셉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모난 초콜릿을 꺼내 테스트를 했다.
올리버는 케빈의 눈앞에서 감정을 조작해 보였다 안 보였다 하길 반복한 후 케빈의 눈에는 흑마법의 재능이 없다는 걸 다시 증명해 보였다.
썩 좋지 않은 케빈의 표정. 그래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별개로 감정을 손에 쥐여주면 가볍게나마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것.
과거 올리버가 간접적으로 감을 잡아주는 방법을 설명해줬을 때 가르쳐줬던 덕분으로, 케빈은 감정을 보지 못함에도 감정은 컨트롤할 수 있었다. 즉, 흑마법의 기초인 ‘개안(開眼)’은 건너뛰고 ‘핸들’부터 사용한 것.
참으로 엉터리와 같은 순서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 덕분에 지금 뭐부터 해야 할지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추출한 소량의 감정을 손에 머금은 채 케빈의 눈에 대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이었다.
흑마법사의 눈을 개안(開眼)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크으으으으으윽......!”
과거 약사의 부하 제임스에게 처음 사용해 본 방식으로, 이후, 파이터 크루 중 일부에게 몇 번 사용했었다.
제임스와 파이터 크루 단원들은 극심한 고통에 하나같이 발버둥 치며 욕설을 내뱉었건만, 케빈은 얼마 전까지 종군 마법사라 그런지 안구를 덮쳐 오는 극심한 통증에도 이를 꽉 깨물며 버텨냈다.
힘에 대한 열망이 그토록 크다는 증거.
그런 케빈을 위해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극도로 집중해 완전한 흑마법사의 시야로 빠르지만, 조심스럽게 케빈의 눈에 감정을 계속해 쑤셔 넣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올리버가 케빈의 양 눈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케빈은 올리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두 눈을 덮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정말 아프구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해보기만 해 봤고, 당해보지는 않아 얼마나 아픈지 몰랐기에.
“눈은 계속 아프십니까?”
올리버의 질문에 케빈이 고개를 저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케빈의 눈앞에 검지를 들어 보이며 질문했다.
눈에 서서히 초점이 맞춰진 케빈이 대답했다.
“……동그라미?”
“예, 맞습니다.”
올리버는 성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손에 머금은 감정을 도로 시험관 안으로 넣었다.
처음으로 감정을 본 케빈은 낯선 광경을 음미하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신기하군.”
진심이었다. 케빈은 그답지 않게 꽤 놀라고 감탄했다.
“뭐가 말씀입니까?”
"네가 한 것. 종군 마법사 시절 노획한 흑마법 서적이나, 일지, 일기 등을 읽어봤지만 이런 건 못 봤어……. 이거 이름이 뭐야? 감정을 억지로 눈에 쑤셔 넣는 거.”
“음……. 없습니다.”
“없다고?”
“예. 옛날에 어떤 분에게 흑마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임시로 해본 거라 딱히 이름을 짓진 않았습니다.”
“……임시로 해본 거라면, 네가 만들었다는 거야?”
“예……. 만들었다는 거창한 것보다 임의로 해본 것에 더 가깝지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흑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눈을 개안(開眼)시키는 이 방식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으나, 올리버에겐 그냥 어쩌다 한번 시도해본 방식에 불과했다.
“음……. 이름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겠습니다. ‘눈에 감정 넣기’ 어떨까요?”
경악스러운 작명 센스. 조금의 고민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케빈은 다른 사실에 놀랐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걸 몇 번 해본 거야.”
“열 번 남짓 정도요? 교수님을 포함해서요.”
“제대로 된 연구도 안 한 시술(施術)을 나한테 썼다고?”
“예, 자주 쓸 일이 없었거든요.”
올리버는 케빈을 존중하는 의미로 솔직히 대답했으나, 케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올리버를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게 눈은 인간의 감각기관 중 가장 중요한 부위. 그런 부위에 검증도 안 된 위험한 시술을 했으니 화가 나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막말로 케빈의 눈이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그러나 케빈은 따지지 않았다.
눈앞의 있는 흑마법사가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기에.
진짜 그 말을 들었다간 주먹이 나갈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소중한 수련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뭣보다 이 힘을 원한 건 자신이었고.
“괜찮으십니까?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하……. 난 괜찮아. 그러니 다시 한번 해보지.”
올리버는 곧바로 시험관에서 다시 감정을 추출해 즉석에서 모양을 만들었다.
케빈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흑마법사의 눈을 떴다. 마치 맞지 않은 안경을 쓴 듯 흐릿했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볼 수 있었다.
“……동그라미.”
“맞추셨습니다.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다시 동그라미, 원통, 네모, 거미줄, 물방울 모양.”
케빈은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감정 모형을 모조리 맞췄다. 올리버가 대단하다며 칭찬했고, 케빈은 양 눈 사이를 주물렀다.
억지로 눈을 연 탓인지, 흑마법사의 시야는 생각 이상으로 피곤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흑마법사의 시야를 떴다 감았다 하는 올리버가 감탄스러울 지경으로 말이다.
허나, 그런 케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리버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혹시 저기는 보이십니까?”
케빈이 지하실 통로 문 너머를 가리켰다.
"아니……. 뭘 했나?”
“별건 아니고 그림자를 매개로 문 너머로 감정을 띄워봤습니 다. 보이십니까?”
그 말을 증명하듯 올리버는 쭉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바닥을 따라 길게 선을 그린 그림자는 문틈 아래로 쭉 뻗어 나갔다.
“아무것도 안 보여.”
케빈의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의 그림자는 뱀처럼 구불구불 줄어들더니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올리버는 케빈 등 뒤로 가 감정 모형을 만들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감정을 볼 수 있습니까?”
“아니. 내 눈은 앞에만 달려 있거든……. 넌 뒤에 있어도 볼 수 있나?”
“눈에 집중하면 뒤뿐 아니라 위나 아래 등. 사방을 볼 수 있습니다.”
올리버가 흑마법사의 시야로 세상을 깊게 볼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시야는 점차 어둠에 잡아 먹히고, 남는 것은 감정과 마력, 생명력 등. 보이지 않는 에너지뿐이었는데, 그 정도가 심화되면, 앞뒤, 좌우, 위아래까지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유용하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주인님의 노트에서도 흑마법의 진정한 묘미는 강력한 화력이 아닌 감정을 꿰뚫는 눈과 그 눈을 이용해 의표를 찌르는 치밀한 기술이라고 했거든요.”
"주인님이라면 네 스승?”
"네."
"널 가르쳤다면 보통 실력은 아니겠군……. 어디서 뭘 하고 있지?”
"돌아가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죽였거든요.”
"......."
“주인님도 절 죽이려고 했으니,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질 이야기였으나, 케빈은 이해했다.
종군 마법사 시절 흑마법사를 여러 차례 보았으니. 그들은 힘과 지식이 최고의 가치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제자가 스승을 살해하고, 스승 역시 제자를 살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법사 역시 힘과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치긴 존재들이긴 했으나, 양지에서 활동하는지라 어느 정도 상식선을 지키고, 최소한 지키려는 척이라도 하는 데 반해, 흑마법사는 음지에서 활동하기에 그런 게 없었다.
케빈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수업에 다시 집중했다.
“그런 넓은 시야를 가지는 건 보통 수준이 아닐 텐데 어느 정도 수련해야 가능한 거지?”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계속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라……. 서적에서는 근육처럼 자주 사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하던데, 일단은 교수님께서도 보름 동안만 사용해보고 제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좋아, 그러지.”
케빈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개인적인 감정과 별개로 올리버의 실력은 믿었기에.
케빈의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곧바로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해당 교육 내용과 성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케빈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전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올리버는 아주 어수룩하고 답답해 보이면서도 특정 부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적응이나 응용이 빨랐다.
약간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 ……아, 교수님 이름을 적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기록 자체가 문제가 있는지요?”
“아니, 괜찮아. 배우면서 그런 것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어……. 그보다 개안(開眼)은 얼추 된 것 같은데 다음 단계는 핸들 맞지?”
핸들. 감정을 손으로 다루는 단계를 의미했다. 추출하고, 추출한 감정을 손에서 통제하는.
“다행이네. 그건 내가 이미 배웠으니.”
맞는 말이었다. 과거 올리버가 가르쳐준 적 있었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확인차 감정이 든 시험관을 꺼내 케빈에게 건냈다.
“일단, 감정을 추출해주시겠습니까?”
케빈은 바로 움직였다. 시험관의 뚜껑을 열어 감정을 추출했다.
비록, 그 기세가 졸졸졸 간신히 흐르는 시냇물처럼 약했지만 말이다.
케빈은 생각보다 시원치 않은 추출에 당황했으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감정을 손에 모았고, 올리버 역시 그런 그를 기다려주었다.
급한 것은 없었으니.
“끝났어…….추출은 좀 느리군.”
“괜찮습니다. 그럼, 감정을 동그라미 형태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부탁에 케빈은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과거 올리버가 직접 가르쳐 준 부분이라 그런지 개안(開眼)과 추출보다 더 능숙했다.
올리버는 네모, 세모 등 차례대로 다른 도형을 이야기했고, 케빈은 능숙하게 감정을 조종 해당 도형을 만들었다.
확인을 마친 올리버는 케빈이 쥔 감정을 가져온 다음 시험관에 넣어 다시 추출해 보라고 했다.
케빈은 아까 전처럼 졸졸 감정을 추출하였고, 올리버는 그 손에 손가락을 하나 올려 감을 잡게 도와주었다.
슈화하아一
아까 전보다 더 빠르고 많아진 추출. 올리버가 딱 아쉬운 지점에서 손을 땠다.
“대충 어떻게 하는지 감이 잡히십니까?”
“……어.”
케빈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냥하는 대답이 아닌 정말로 요령을 알 것 같았기에. 조금만 더 연습하면 완전히 익힐 정도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해당 부분도 혼자서 꾸준히 연습 부탁드립니다.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요. 음……. 시험관 추출 요령을 어느 정도 익히셨으면 이제 사람에게서 감정을 직접 추출해 보는 연습이 필요한데……, 좀 난감하네요.”
“왜 난감하지?”
“연습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요.”
올리버가 훈련장에 있는 단 두 사람 자기와 케빈을 가리켰다.
"……네 감정을 추출하면 안 되나?”
“어, 그건 힘들 겁니다. 전 감정이 적어서 그런지, 평소에는 추출을 못 하거든요.”
어느 정도 납득가는 말이었다. 케빈의 눈이 아직 약해 그런 것일지도 몰랐지만, 흑마법사의 시야로도 올리버의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평소라니?
“본인 감정을 뽑으셔도 되지만 타인의 것도 추출하는 연습이 필요하기는 한데, 음…….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어디 좀 같이 갈 수 있겠습니까?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 배우는 게 나니 상관은 없지만, 도움이라니, 누구에게?”
“제가 약간 도와드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감정 좀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