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면접 (1) >
"……맙소사. 뭘 한 거야?”
원소학파 타워 임시 면접실.
케빈은 자신이 든 커피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커피를 타 온 올리버가 대답했다.
“커피 탔습니다만?”
케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올리버를 봤다.
“네가 탄 거라고?”
“예…….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요?”
케빈이 고개를 저었다. 배려가 아닌 진심으로.
“아니, 커피 맛이 생각보다 좋아서.”
“아, 감사합니다. 아는 아가씨들에게 배웠는데, 이후 책을 보며 입맛에 맞게 몇 가지 레시피를 추가해봤습니다.”
“놀랍네……. 네가 아는 아가씨들이 있다는 거랑 입맛이라는 게 있다는 게.”
케빈은 진심으로 말했다.
올리버가 여성이랑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게 상상이 안 갔고, 커피의 맛을 신경 쓴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바쁘면 그냥 맨 빵으로 때우는 녀석이 말이다.
“아가씨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고, 커피는 저도 가끔씩 먹어서요……. 이왕이면 더 맛있게 먹고 싶지 않습니까?”
더 맛있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욕구였지만, 올리버가 말하니 참으로 이질적으로 들렸다.
늑대나 사자가 사냥감을 사냥한 후 후추를 뿌리는 것과 같은 느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올리버는 태연히 물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올리버의 질문에 케빈 고개를 저었다.
“없어. 이제 밖으로 나가서 차례대로 목록에 적힌 학생들을 들여보내 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실 지원자 목록을 챙긴 다음 면접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올리버가 앉을 의자와 책상이 있었으며, 그 맞은편으로 좌석에 앉아 기다리거나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모두 마탑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케빈의 연구실을 지원할 지원자이기도 했다.
그 수는 대략 열다섯 명 남짓.
많아 보였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경력을 쌓기 위해, 인맥을 맺기 위해, 실력을 기르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연구실을 지원하는 학생들은 많았으니 말이다.
인기가 많은 교수의 경우 한 번에 세 자릿수가 지원한다고도 했다.
그것에 비하면 케빈에게 지원한 수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뭐, 홍인(紅人)이란 점을 고려하면 꼭 적다고도 할 수 없지만.
여하튼 올리버는 의자에 앉으며 목록에 적힌 학생을 한 명씩 호명했다.
“짐 씨. 오셨습니까?”
***
끼이……탁.
다섯 번째 지원자가 면접실 문을 열고 나왔다.
이름은 서지였으며, 가이아 소학파 출신이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예상 질문지를 읽으며 준비하던 그는 불과 몇 분 만에 기진맥진한 채 나왔다.
물론,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그 내면은 당혹, 충격, 자괴감과 같은 감정이 멍이라도 든 것처럼 곳곳에 박혀있었다.
‘앞의 네 명과 똑같군.’
올리버가 아까 전보다 힘없이 걸어가는 서지를 보며 생각하곤, 다음 사람을 호명했다. 의외의 사람이었다.
“데릭 씨. 오셨습니까?”
올리버의 호명에 맞춰 인파들 사이에 숨어 있던 데릭이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좁은 복도에 서서 길을 가로막던 몇몇 지원자들이 데릭의 얼굴을 보자 기가 눌려 길을 비켜줬다.
뚜벅. 뚜벅. 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당당히 걸어오던 데릭이 올리버 앞에 멈혔다.
“딱히 놀라지 않네?”
“처음 봤을 때 놀랐습니다.”
좌석에 앉고. 첫 번째 사람을 호명한 후, 올리버는 목록을 살피고, 흑마법사의 눈으로 지원자들을 살펴보던 중 데릭과 펠릭스를 발견했다.
펠릭스는 그렇다 쳐도 데릭의 존재는 조금 놀랐다.
“지원자들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목록이 있지 않습니까?”
데릭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올리버가 정중히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데릭 씨."
데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올리버의 말에 따라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 처음 만났을 때보다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탁.
데릭은 면접실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곧이어 면접이 시작되었다.
방음 마법이 걸린 면접실 내부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으로 뒤쪽 면접실 두 사람의 감정은 엿볼 수 있었다.
흑마법사의 눈은 수련하기에 따라서 전방이 아닌 사방을 다 볼 수 있었으니.
다행히도 데릭은 케빈의 수업을 한번 들은 전적 덕분인지 이야기가 썩 나쁘게 않게 흐르는 것 같았다.
케빈의 감정이 실망에 물들지 않고, 이와 합을 이루듯 자신감을 계속해 이어가는 데릭의 감정이 그 증거였다.
‘뭐, 성적은 좋은 분이셨으니. 자신감도 완전히 회복한 것 같고……. 무슨 일 있으셨나?’
올리버가 자기 일에 집중하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다행히도 아직 차례를 기다리는 연구 지원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눠 올리버의 호기심을 해소해줬다.
“데릭. 결국, 가문에 쫓겨난 건가? 원래 가문 사업이나 연구를 도와야 하잖아?”
“쫓겨난 건 아닐 거야. 아직 학비랑 기숙사비는 본가에서 주고 있거든. 다만, 필수적인 것 외에는 좀 줄였다나 봐.”
“레드힐 가문이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다니까. 그 화력발전 투자가 엎어져서……."
“그럼, 데릭 녀석도 끝물이란 이야긴가?”
“쉿, 입조심해. 저번 종강파티 때 데릭 녀석 자기 뒷담화 하던 놈들이 있는 투기장에 가서 다 때려눕혔다니까. 혼자서 열 명 넘게.”
“스무 명이라 하던데?”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입조심해. 아직 성깔은 여전한 거 같으니.”
아무래도 데릭의 자존심이 회복된 건 자신의 실력을 다시 확인해 그런 것 같았다. 다행인 것 같았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좋은 거였으니.
그 외에도 올리버는 다른 이야기를 몰래 들었는데, 대부분 돈에 관한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지원자들 모두 학생들이었음에도 말이다.
뭐라고 할까……. 가만 보면 마탑은 부유하면서도 빈곤한 것 같았다.
끼이……탁.
잠시 후, 데릭이 문을 열고 면접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첫 번째로 당당히 자신감을 유지한 채 나왔다. 겉모습뿐 아니라, 속마음도.
그는 올리버를 보더니 눈으로 인사하곤 떠났고, 올리버는 똑같이 인사를 하곤 다음 지원자를 불렀다. 다음 지원자도 낯이 익은 자였다.
“펠릭스 씨. 오셨습니까?”
***
마지막 열여덟 번째 지원자까지 면접을 마치자 오후 시간이 거의 날아갔다.
아무래도 계절학기 학생 분류는 내일까지 이어 해야 할 듯했다.
아직 일정이 급한게 아니라 아쉬워할 것은 전혀 없었지만.
올리버는 케빈을 도와 면접실을 가볍게 뒷정리하곤 짐을 챙겼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짐은 다 챙겼습니다.”
올리버가 서류를 담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며 말했다.
“수고했어. 그럼, 돌아가지.”
올리버는 케빈의 발걸음에 맞춰 움직였다.
올리버가 케빈의 감정을 꿰뚫어 보며 질문했다.
“면접이 많이 실망스러우셨습니까?”
“솔직히 약간.”
케빈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뭐, 아주 실망스러운건 아니지만.”
“데릭 씨와 펠릭스 씨 말씀이시군요.”
"......어떻게 알았지?”
“눈이 조금 좋거든요.”
케빈이 올리버가 흑마법사임을 다시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데릭하고 펠릭스는 그나마 괜찮더군. 최소한 내 논문을 읽어보고, 내가 뭘 연구하려는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최소한 오늘 헛고생한 건 아니었어. 바보들만 지원한 줄 알았는데.”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연구원을 모집하시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방학 중 연구는 혼자서 하실 생각인 줄 알았는데요.”
“뭐, 원래 그게 계획이긴 했지. 다만, 상황이 바뀌었거든.”
“상황요?”
“그래, 학생들을 고용하면 그만큼 추가 연구비가 나오게 돼서. 우회적으로나마 경제적 지원……. 또, 연구실 순위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고.”
“아……. 그러면 많이 고용하는 게 좋은 겁니까?”
“그렇긴 하지만, 최소 인원수만 고용할 거야. 너무 많으면 비효율이 발생하고, 안전 면에서도 좋지 못하거든.”
올리버는 케빈이 무슨 말인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연구실에 학생을 고용하는 건 생각보다 신중히 처리해야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연구 효율성이나, 재정적 문제뿐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도 말이다.
왜냐면 연구실에 고용된 학생 중 일부가 다른 교수의 사주나 혹은 개인적 금전 이득을 위해 연구자료를 빼돌리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탑의 뒷거래 사업 중 하나로, 전격 마법사의 일기나 에이드리의 연구 일지 등에 기록되어 있었다.
뛰어난 마법 연구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떠올리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그럼, 역시 안 뽑는 게 나은 것 아니었습니까? 종합적으로 보면요?”
“꼭 그렇지도 않아. 원래 계획과 달리 계절학기 등 일을 맡게 돼, 기한 내 성과를 내려면 간단한 작업을 대신해줄 인력은 필요하거든.”
아……. 올리버는 자신 때문에 케빈이 예정에도 없던 계절학기를 맡은 걸 새삼 깨달았다.
"뭐가, 죄송하네요. 교수님……. 죄송합니다”
“됐어. 나도 손해 보는 거래만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혹시, 이후 일정 어떻게 되지?”
올리버가 시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현재 3시 54분. 저녁 6시까지 오전에 맡았던 학생 분류작업을 한 다음 퇴근할 계획입니다.”
"그다음에는 일정이 있나?”
“예, 저녁 여덟 시 반부터 개인적인 용무가 있습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근래, X구역의 파이터 크루를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으니.
현재 올리버는 파이터 크루 신입들에게 흑마법의 기초를 가르쳐주고 있었으며, 파이터 크루 간부 서른여섯 명에게 흑마법사 육성을 위한 기초 교육을 해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미리 작성한 평가표를 통해 기초 체력 훈련도 진행중이고, 그들의 발전을 위해 글자공부도 진행 중이지만, 그건 조와 알이 도와주고 있어 올리버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여덟 시 반부터?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 있나?”
케빈의 질문에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큰 비밀은 아니지만, 사적인 일이라 말씀드리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넌 남에게 이것저것 묻는 주제에 자기는 곧잘 숨기는군.”
“아,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단순히 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관련이 되어 있는 거라서요.”
“납득이 안 가지만, 내가 아쉬운 입장이라 넘어가도록 하지.”
“아쉽다니요?”
“저번에 나랑 거래한 거 기억나나?”
케빈과의 거래라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력과 감정을 융합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올리버는 케빈에게 흑마법을 가르쳐주고, 케빈은 올리버가 묻는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해주는 기괴한 거래를.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케빈이 대답했다.
“오늘부터 한두 시간씩이라도 꾸준히 가르쳐줘. 서류 작업은 아직 안 급하니 천천히 해도 되니까.”
올리버가 시계를 봤다. 시계는 현재 4시 정각을 가리켰다.
“음……. 그러시면 조금 일찍 저녁을 먹고 바로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곱 시나, 일곱 시 반까지는 여유가 있을 듯한데요.”
올리버가 자신의 휴식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시간이었으니까.
생각보다 적극적인 올리버의 태도에 케빈은 내색지 않아도 반겼다.
“그래도 되겠어?”
“예, 이왕 할 거면 저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교수님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럼, 바로 퇴근하고,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식사한 후 내 집으로 가지."
“교수님 집이요?”
“그 훈련을 마탑에서 할 수는 없으니까.”
“아……."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올리버가 탄성을 냈다.
"내 집에 훈련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집에 훈련장도 있습니까?”
“난 마탑 교수야. 그 정도 재산은 있어.”
“아……. 그렇군요.”
“그보다 훈련은 뭐부터 할 거지.”
“테스트 후 간단한 훈련부터 할 겁니다.”
올리버가 담담히 대답했고, 대략 1시간 후, 올리버는 케빈의 눈에 억지로 감정을 쑤셔 넣었다.
케빈은 고통 때문에 앓는 소리를 냈다.
"크으으으으으윽......!"
“예, 예.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 313. 면접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