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기간제 화해 (1) >
“꾸루루루룩……."
란다의 버려진 하수도 안.
올리버가 꺼낸 빅마우스가 불신, 경멸, 혐오의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를 뒤룩뒤룩 바라봤다.
아직도 새로운 먹보주머니와 싸움 붙인 게 마음에 남았는지 불만이 가득. 올리버가 어쩔 수 없는 조치라 거듭 설명했음에도 빅마우스는 마음을 풀지 않았다.
덕분에 올리버는 빅마우스에게 일을 시킬 때마다 기존에 줬던 금액의 2배를 지불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하고 싸움에 붙이는 건데.
올리버는 앞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빅마우스 옆에서 캠핑용 커피포트로 커피를 끓였다.
“……당신 먹보주머니인가요?”
제논일 때 올리버를 습격한 여성 흑마법사. 에르제베트 언너가 물었다.
그녀는 현재 살아남은 바토리 패밀리의 대장이었으며, 그 옆으로 에르제베트 오르쇼여, 에르제베트 커털린, 에르제베트 언드라시, 에르제베트 팔이 차례대로 앉아 있었다.
“예……. 빅마우스라고 제가 해결사 일을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준 먹보주머니입니다.”
“대단하네요. 저 정도 크기면 주인도 물 텐데.”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는데, 아직 그런 적은 없습니다. 고맙게도 잘 따라 주시거든요.”
“그런 것치곤 당신께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요?”
“아……. 몇 가지 오해가 있어서요. 커피 드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여섯 잔의 컵에 커피를 따라 바토리의 제자들에게 나눠주며 물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건만. 기괴할 정도로 괴리가 큰 태도에 그녀들은 묘한 두려움마저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생물을 마주한 듯.
“아…….커피는 드실 수 있나요?”
올리버가 문득 그녀들이 반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반송장이라는 걸 상기하며 질문했다.
마운틴 페이스에서 상대한 바토리의 제자들이 전부 인두겁을 뒤집어쓴 반송장이었으니.
아무래도 실례되는 질문이었는지 언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죄송합니다.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린 피를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거지, 음식을 못 먹는 건 아니에요.”
“아, 그렇군요.”
올리버가 사소하지만 궁금하던 사실에 눈을 살짝 빛냈다.
학구열에 찬 학자의 태도. 여느 학자가 그렇듯 곧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다.
"음……. 그럼, 화장실은 가시나요?”
“……지금 우릴 조롱하는 건가요?”
언너가 수치심과 굴욕감, 분노를 빛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저 정말 궁금……. 입 다물겠습니다.”
올리버가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사과했다.
다행히 그녀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
올리버는 그녀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빅마우스를 불렀다.
“읍읍. 읍. 으읍. 읍읍."
입을 다물고 말하느라 말보다는 울음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지만, 다행히 빅마우스는 알아듣고는 고체 연료와 커피포트에 이어 웬 상자 하나와 공책, 펜을 뱉어 줬다.
“꾸에엑! 꾸엑!!”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상자와 공책, 펜. 언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뭐죠?”
올리버는 대답하려다 말고 공책에 펜을 슥슥 끄적여 보여줬다.
[신선한 혈액 팩이 든 상자입니다.]
“……그냥 입으로 말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글자로 써서 말하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요.”
바보 같은 모습에 언너를 비롯한 자매들은 어이없음는 감정을 빛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마법과 흑마법, 혈마법을 구사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혈액팩이라고요?”
“예. 죄송하다는 의미로 드리고 싶거든요. 혈액팩 한 상자. 받아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정중히 부탁했다. 언너 입장에선 솔직히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언너 일행의 상황은 많이 좋지 못했다.
자금, 안전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물론, 그녀들의 힘과 능력이면 다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었지만, 쫓기는 처지라 활동이 제약되었고, 매일 일정량의 혈액을 섭취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이 소모됐기에 마냥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지금의 상황에서 너무나도 고마운 선물.
그러나 그녀들은 쉽게 기뻐할 수 없었다.
눈앞의 이상한 흑마법사는 자신들의 어머니와 싸웠던 흑마법사였고, 이런 친절을 그냥 베풀 남자 따위는 세상에 없었기에.
최소한 바토리의 딸이 되기 전 그녀들이 삶에서는 그러했다.
“너무나도 고마운 선물이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피를 많이 가지고 계시죠?”
“이상한가요?”
“솔직히 많이요. 피가 흑마법 재료로 쓰이긴 해도, 관리가 까다로운 재료라 이렇게 대량으로 보유하진 않거든요. 많이 쓰면 또 모를까.”
"오, 대단한 관찰력이시군요. 나중에 바토리 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한꺼번에 대답해 드려도 될까요? 지금은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실 차례라서요.”
올리버가 부드럽게 부탁했다.
실제로 올리버는 싸움에 이긴 대가로 자기 호기심을 먼저 충족시키고 싶다고 말했고, 언너를 비롯한 바토리의 제자들은 동의했다.
자신들은 졌고, 남자는 이겼기에.
오히려 흑마법사 세계에서 이 정도면 고마울 정도로 관대한 처사였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바토리 님이 이곳 셀랜드로 와 연락이 두절됐고, 그로 인해 여러분은 다른 흑마법사 패밀리에 습격받았다는 거 맞습니까?”
언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막았는데, 인육 요리사의 습격으로 수세에 몰렸고요?”
“……여동생.”
“예?”
“여동생이라고 했어요. 인육 요리사가 아닌, 인육 요리사의 여동생이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헷갈렸나 보네요. 근데, 신기하네요. 여동생이 있는 흑마법사라니요.”
올리버의 반응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아주 드문 건 아니나, 형제나 자매를 가진 흑마법사는 보기 드문 편이었다.
일단, 흑마법사 대부분 사회의 하류층이었기에 혈육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흑마법의 열악하고 이기적인 환경 탓에 형제를 계속 가지기도 어려웠다.
참으로 외로운 학문.
“음……. 혹시 그녀도 손가락입니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일부 몇몇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어머니께선 그저 오라비 덕분에 과분한 힘을 얻은 건방진 계집이라고 했어요."
“아……. 그런가요?”
“최소한 제가 알기로는요.”
"음……. 하지만 이미 여러 개의 패밀리를 격퇴한 여러분을 단숨에 궁지로 몰아넣은 강자이지 않습니까?”
도발하기 위해 한 질문은 아니었으나, 의도와 상관없이 언너와 그녀의 자매들을 불쾌함에 움찔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그랬지 약하다는 이야긴 아니에요. 그녀 역시 오라비와 함께 수백 년을 산 흑마법사니까요..…. 근래에는 무슨 마술사 왕의 시체를 먹어 치워 힘을 키웠다고 하고요.”
“마술사 왕이요?”
“예, 흑마법사긴 하지만 오라비 쪽과 다르게 마법에 심취했거든요.”
“아……."
“그녀가 손가락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강력한 건 부인할 수 없어요. 소문에 따르면 오라비보다 그 힘이 강력하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까 전에는……. 아닙니다.”
올리버는 손가락은 오라비 쪽이지 않냐고 되물으려다 이내 관뒀다.
애당초 검은손이란 조직 자체가 비밀스러웠기에 제대로 된 정보를 아는 게 힘들고, 서로 상충하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인육 요리사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수확이었다.
"어쨌건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그럼, 란다에는 바토리 님을 찾을 겸, 추적과 습격을 피하고자 온 겁니까?”
언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이 더 크냐면 후자였지만 말이다.
올리버가 언너의 감정을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음……. 그렇군요.”
“궁금한 건 그게 끝인가요?”
바토리의 제자 언너가 물었다.
솔직히 올리버는 그 외에도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궁금한 그녀들의 상황과 여기 온 이유를 알아냈으니.
좀 더 깊이 있는 대답을 위해서는 일단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예."
“그럼, 이제 우리 쪽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나요?”
패배한 흑마법사답지 않게 언너는 대답을 요구했다.
애당초 이게 약속이긴 했지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흑마법사에게 있어 승패란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는 승자 독식 게임이었건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대답을 요구하는 거였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하기도 했다.
단순히 죽는 것을 넘어 눈앞의 남자가 만든 룰에 물드는 것 같았기에.
“예, 질문하시죠.”
“우리 어머니께서 어디 있는지 아나요?”
“음……. 알고 있다 할 수 있겠네요.”
“? ……그럼, 어딨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물론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만나게 해 드릴 수도 있고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언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과 불안을 빛내며.
"만나게 해줄 수 있다고요?”
“예……. 대신,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죠?”
“화내지 않는다고요.”
"......??"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부탁에 언너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함과 불길함을 느꼈다.
아주 아주 심각한 불길함을 말이다.
"……노력해 보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빅마우스. 좀 도와주시겠어요?”
올리버가 부탁하자 토라져 한쪽에 앉아 있던 빅마우스는 곧장 벌떡 일어났다.
마치 삐져도 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는 것처럼.
빅마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왔고, 올리버는 거기에 맞춰 차일드-퍼스트가 든 시험관을 꺼냈다.
"꾸에에엑!!”
안을 게워내 송장인형-바토리를 꺼낸 빅마우스.
올리버는 시험관의 뚜껑을 열어 퍼스트를 송장인형-바토리에게 넣어 일으켜 세웠다.
“여기 바토리 님이-”
올리버가 뒤를 돌아 말하는 도중 바토리의 제자 언너가 분노에 물든 채 올리버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내질렀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것.
다행히 바토리에 들어간 퍼스트는 그녀보다 더 빨랐다.
휙————파앙!!
송장인형-바토리에게 들어간 퍼스트가 능숙하게 움직여 언너를 막았다.
올리버가 원하는 대로 과하지 않고, 적당히 말이다.
덕분에 송장인형-바토리와 언너는 몸으로만 대치할 뿐 과한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언너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하긴, 자신들이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가 웬 해결사의 송장인형이 되어 있으니 충분히 놀랄 만도 했다. 또, 화가 날 만도 했고.
그러나 올리버는 아직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에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뭐 하고 있어! 저놈을 당장 죽이지-”
-[블러드 웹(Blood Web)]
올리버는 한쪽에 배치해놓은 혈액을 곧바로 조종해 다시 그녀들을 피 거미줄로 묶었다.
커피를 준비하거나, 대화할 때 등 올리버가 빈틈투성이였음에도 공격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그녀들은 다시 거미줄에 붙잡힌 모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러분. 일단 진정-”
"-캬햐햐햐햐햐햐햐!!! 너 이 개새끼! 씨발 새끼!! 죽여버릴 테다!!! 죽여 버릴 거라고!!! 가죽을 벗기고, 눈을 뽑으며, 내장을 도려내 주마!! 캬햐햐햐”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언너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욕설을 뱉었다.
이성조차 잡아먹을 정도의 격분과 슬픔이었다.
그 증거로 그녀의 얼굴 근육과 힘줄이 흉할 정도로 도드라졌으며, 송곳니는 짐승의 것처럼 커졌다.
마운틴 페이스에서 만난 다른 바토리의 제자들처럼.
“……신기하네요.”
몇 분에 걸쳐 욕설을 들던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전 어머니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여러분은 그분을 정말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것 같네요?”
올리버가 눈물 없이 우는 바토리의 마지막 제자 다섯을 보며 말했다.
한차례 욕을 내뱉은 언너가 대답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두 번째 인생을 주신 분이야. 어머니라고!!”
대충 무슨 말인지 올리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반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반송장에, 어머니로 믿고 따르게 한다는 바토리의 과거 대사, 뭣보다 올리버의 스승인 조셉의 기억을 종합해 보면 아마 바토리가 그녀들을 도와준 건 사실일 터였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바탕으로 자신을 어머니라 믿고 따르게 해 충성스러운 제자들을 육성했을 것이었다.
‘자기 성까지 나눠주는 것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일까?’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토리는 자신의 제자를 여느 흑마법사들처럼 유용한 도구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올리버와 윌레스가 수많은 제자를 살해했을 때도 그녀는 슬픔보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쓸만한 도구를 잃어버린 안타까움 말이다.
올리버는 해당 사실을 이야기해줄까 하다 잠시 뒤로 미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에.
대신, 그녀들을 진정시켜보려 했다.
“음……. 전 일단 바토리 님에게 싸우지 말고, 평화적으로 헤어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싸우는 중에도 몇 번의 화해를 제안했고요. 하지만 바토리 님이 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 죽기 싫어서요……. 이해해 주실 수 없을까요? 바토리 님을 해한 건 저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거든요.”
어머니를 죽였지만, 이해해달라고 올리버가 부탁했다. 뒷골목 갱들조차 성호를 그을 광경. 그러나 올리버는 진심이었다.
그녀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에. 또, 가급적 해치기 싫었기에.
“왜 우릴 해치기 싫지? 우리 어머니도 해쳤는데?!”
“다시 말하지만, 전 바토리 님에게 악감정을……. 약간 가지긴 했는데, 처음부터 노린 것은 아니라서요. 여러분에게도 개인적인 감정은 없고요.”
“난 아주 많아!!”
전혀 합을 주고받지 못하는 대화와 감정.
언너는 머리와 가슴이 터질듯한 답답함과 분함을 맛봤다.
“음……. 그래도 이해해 주실 수 없을까요? 이곳 란다에 오신 이유는 바토리 님을 찾으러 온 것도 있지만, 남은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않습니까?”
올리버가 언너를 비롯한 그녀들의 감정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언너는 다른 네 명의 여성 흑마법사 오르쇼여, 커털린, 언드라시, 팔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반대로 오르쇼여, 커털린, 언드라시, 팔은 언너에게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언너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복수 못지않게 동료들의 안위를 생각했다.
바토리가 자신의 제자들을 딸이라 칭한 것이 단순한 술수일지도 모르나 그와 별개로 그녀들은 서로를 진짜 자매라 생각했다.
꽤나 흥미로운 형상이었다.
“……우리에게 원하는게 뭐야?”
“란다에 정착하게 도와드릴 테니, 저랑 잠시나마 화해해 주실 수 없을까요......? 최소한 1년 정도만요."
올리버가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