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 초대받지 않은 손님 (3) >
야렐리와 대화를 마치고 올리버는 유흥가를 빠져나와 야간 택시를 잡고 곧바로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짐을 풀며, 옷을 벗어 샤워한 뒤 가볍게 허기를 달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허나, 거기까지만 그럴 뿐. 이후 올리버는 예정과 다르게 움직였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설거지를 하곤, ‘약간의 준비’를 한 뒤 다시 옷을 입었다.
마탑 교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의 복장이 아닌, 해결사 데이브 라이트의 복장으로.
그리고는 아까 전 여성의 복부에 주먹을 날릴 때 부착한 스토커(Stalker)를 발동, 여성의 위치를 추적, 이곳 하수도까지 도착해 친근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하실 거죠?”
"......!!"
분명 대화 흐름에 맞춘 자연스러운 등장이었을 텐데, 바토리의 제자로 추정되는 여성 다섯 명은 화들짝 놀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전부 공격 태세를 잡았고, 올리버는 정중히 사과했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올리버는 생존을 위해 고아원과 광산에서 배운 예절과 사회에 섞이기 위해 거지패와 천사의 집에서 배운 예절, 마탑 생활 도중 자연스럽게 배운 예절 등을 총 발휘해 바토리의 제자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허나, 그녀들은 그 누구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넌……. 누구지?”
경계, 두려움, 희미한 분노를 빛내며 마탑 유흥가에서 만난 여성이 질문했다.
다들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이곳 대장인 듯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 데이브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데이브……. 들어봤어. 지금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해결사 중 하나.”
여성의 경계심이 한층 높였다.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아가씨들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이름을 모르나?”
“예.”
“……그럼, 여기 우연히 온 거야?”
여성은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경계심이 약간 사그라들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여기 온 이유는 아가씨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겁니다.”
“……우릴? 왜?”
“음……. 바토리 님의 제자가 바다 건너 란다로 오신 이유가 궁금해서요?”
말을 잘못했는지 수그러들던 경계심은 다시 바짝 조였으며, 다섯 명의 여성들은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들은 술식을 연동 마력을 합쳐 얼음 마법을 발동했다.
다수의 마법사가 힘을 합친 덕분인지 사용한 마력과 준비에 비해 위력은 위협적이었다,
바닥뿐 아니라 벽, 천장등 사면을 모조리 얼려버렸으니.
한 몸으로 움직이는 호흡을 가져야만 가능한 기술.
참으로 신기했다. 겉보기에만 사이가 좋은 일반적인 패밀리와 달리 속까지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쉐도우 텐다클(Shadow Tendacle)]
올리버는 감탄하는 것과 별개로 매섭게 다가오는 얼음을 향해 그림자 촉수를 발동. 바닥뿐 아니라 양쪽 벽, 천장을 덮치는 모든 얼음을 깨버렸다.
쩌저저저저저저저쩍!!
사면을 뒤덮으며 다가오던 얼음은 올리버의 성난 그림자에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보통 화력 싸움으로 가면 흑마법보다는 마법이 우위였건만 참으로 이례적인 경우.
그만큼 술식의 약한 곳을 공략하는 올리버의 요령과 흑마법 실력이 더 좋아진 것을 의미했다.
허나, 그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바토리의 제자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협공이 손쉽게 깨졌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한 명에게 통제권을 몰아줘 대응했다.
거리에서 올리버를 습격한 여성 흑마법사에게 말이다.
“흥!!"
그녀는 침착함과 책임감, 적의 등 여러 감정을 빛내며 마법을 통제.
놀랍게도 그림자 촉수에 부서진 얼음에 영향력을 발휘해 올리버의 그림자를 반대로 에워싸 얼려버리는 기교를 발휘했다.
방대한 마력을 세밀하게 컨트롤 능력이 없으면 힘든 기술.
올리버는 감탄했으며, 여성 흑마법사는 여세를 몰아 올리버까지 얼려버리려고 했다.
“그 계집이 우릴 잡으라고 보냈나?!!”
쩌저저저적!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와 함께 올리버의 발을 시작으로 얼음이 다리까지 빠르게 타고 올라왔다.
이대로라면 순식간에 온몸이 얼음에 잠식.
결국, 올리버는 몸에 저장시킨 마력을 방출해 역으로 얼음 마법에 간섭을 시도, 성공시켰다.
“이, 이게..!”
여성 흑마법사들은 기겁하며 소리 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가 그녀들이 협업에 만든 얼음 마법의 통제권을 빼앗아 반대로 그녀들을 얼렸기에.
운이 좋기도 했다.
그녀들이 힘을 합친 덕분에 술식의 구조가 단순해져 반대로 잠식하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가 자신의 몸에 덮인 얼음을 풀며 질문했다.
“그 계집이 보냈냐니…….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라는 거야?”
몸이 얼어 포박된 여성이 기죽지 않고 되물었다. 감정 역시 제압당했다는 패배감이나, 두려움, 압도감에 물들지 않았다.
곧 행동으로 그 이유를 알려줬다.
“그렇다면……. 너한테 이래저래 물어볼 게 많군!!”
여성은 고밀도의 얼음을 깨며 소리쳤다.
마력을 머금고 있는 얼음은 그 강도가 강철과 비견될 정도라 단순 완력만으로 푸는 것은 어려웠는데, 올리버의 예상대로 그녀는 걸치고 있던 팔찌에 내장되어 있던 피를 꺼내 바토리의 특기인 혈마법을 사용해 얼음을 부쉈다.
[혈화(血火)]
여성은 피를 단순히 흉기로 사용할 뿐 아니라, 기름처럼 불을 붙여 주변의 동료들을 도와줄 뿐 아니라 올리버에게 공격을 가했다.
저 공격에 당해본 올리버는 뒤로 물러섰다.
블랙 슈트조차 파고들어 자신을 불태울 뻔한 화염이었으니.
올리버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즉각 행동했다.
[보레시티(Voracity)]
올리버는 쿼터스태프 끝에 두른 블랙 슈트를 이용해 보레시티까지 사용. 점성을 가진 시뻘건 화염 혈화(血火)를 빨아들였다.
방어마저 파고드는 혈화의 특성상 막는 것보다 빨아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기에.
예상은 적중. 단순 방어보다 효과적으로 혈화를 막아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토리의 혈마법은 마법인 동시에 흑마법이기도 하다는 걸.
피를 매개로 감정과 마력을 뒤섞은 그녀의 혈마법은, 단순한 마법, 흑마법 보다 한 단계 위의 기술이었고, 어떤 마법과 흑마법이든 먹어치웠던, 보레시티 역시 그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거였다.
수십 개의 입이 달린 보레시티는 뜨거운 물을 삼킨 사람처럼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혈화를 토하려 했다.
케엑……!! 켁……!
그 짧은 찰나 혈화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올리버를 향해 동료의 도움으로 풀려난 다른 바토리의 제자 넷이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이빨과 손톱에는 제각기 육신의 자유를 빼앗는 흑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토하세요.”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전방을 향해 휘두르며 보레시티에게 말했다.
안이 익어버린 보레시티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끈적끈적한 불길을 뱉어냈으며, 올리버를 향해 달려오던 여성들은 그 불길을 정면으로 뒤집어썼다.
“꺄악……! 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악!!”
“뜨, 뜨거워!! 뜨거……!”
올리버의 기억이 맞다면 바토리의 제자들은 반은 좀비(zombie)나 다름없는 반송장. 그럼에도 그녀들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아마 이대로 방치한다면 저 악의적인 화염에 완전히 불타 재가 될 것이었다.
“물러서!!”
리더 격인 여성이 혈화를 꺼뜨리며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혈화로 화상을 입고, 뒤집어쓴 인두겁이 불탄 여성들은 고통과 분노, 수치심이 뒤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고,
그 타이밍에 맞춰 리더 여성이 소량의 피를 매개로 혈마법을 발동. 허공에서 거대한 종기처럼 생긴 살덩어리 풍선을 소환했다.
올리버의 기억이 맞다면 피 풍선.
대량의 피를 보관하는 바토리의 피조물이었다.
올리버의 예상이 맞다는 걸 증명해주듯 피 풍선은 부르르르르르- 떨더니 팍! 하고 터져 대량의 혈액을 쏟아냈다.
바닥에 쏟아진 몇 리터의 피.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성은 그 피를 매개로 다수의 피 풍선을 다시 소환해 혈액의 양을 늘렸고, 또, 그 피를 매개로 피 풍선을 소환해 바토리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양의 혈액을 순식간에 소환했다.
“어디 이것도 빼앗아 보시지!”
여성은 소리치며 혈액을 조종. 올리버를 포박하려 했다.
대사와 감정 상태를 봤을 때, 그녀 최후의 비기인 듯했다.
실제로 그에 어울릴 만큼 대단한 기술이기도 했고.
올리버는 그 나름의 존경을 담아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냈다.
감정이 아닌 피가 담긴 시험관을.
이곳으로 오기 전 한 ‘약간의 준비’로, 올리버는 시험관을 던진 다음 증오의 탄환으로 시험관을 깨 자신의 혈액과 여성 흑법사의 혈액을 한데 뒤섞어 그대로 통제권을 빼앗아 왔다.
과거 바토리를 상대했을 때처럼.
올리버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닌지, 도저히 빼앗을 수 없던 혈액은 올리버의 피가 몇 방울 뒤섞이자 곧바로 올리버의 통제하에 들어왔다.
"......!!! "
어찌나 충격적인지 바토리의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놀랐다.
말조차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뒤늦게 누군가 눈앞의 상황을 인지, 대응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올리버는 여성이 했던 방식 그대로 대량의 혈액을 뱀처럼 조종해 그녀들을 에워싼 다음 즉석에서 혈마법을 창조, 발동했다.
[블러드 웹(Blood Web)]
뱀처럼 길쭉하게 늘어진 혈액은 올리버의 의지와 영창에 반응해 거대한 핏빛 거미줄로 퍼져나가 그녀들을 포박했다.
퐈바바바밧——!!
단 한 호흡 만에 자신의 마법에 포박당한 여성은 충격, 공포의 감정에 물들더니, 이윽고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너, 너구나……?”
“어..…. 무엇이 말씀입니까?”
“제논이란 마탑 직원과 함께 마운틴 페이스로 간 해결사……. 노스인이라고 했는데……위장인 거야?”
무슨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녀의 감정 상태는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는 듯했다.
아니,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닐지도.
또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글쎄요……. 일에 관한 건 제삼자에게 가급적 제공하면 안 돼서요.”
그 말은 오히려 확신을 준 듯, 피의 거미줄에 묶인 여성들은 일제히 올리버를 향해 강렬한 적의와 의구심을 빛냈다. 물론, 이성을 잃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한 거지?”
“어머니라면 바토리 님 말씀입니까?”
“그래……. 부탁이야. 알려줘.”
그녀는 진심이었다. 바토리에 대한 걱정을 주로 올리버에게 질문했다.
다시 봐도 신기했다. 바토리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렇다 할 애정을 가지지 않았건만…... 기껏해야 유용한 도구 정도?
그런데 그녀들은 정말 어머니처럼 그녀를 따랐다.
보통 흑마법사 패밀리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
그 모습을 보자 올리버는 최대한 협조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호기심도 충족하고.
올리버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랑 화해하고, 제 질문에 대답해 드리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올리버는 제안했고, 다행히도 여성은 주변을 살펴보고는 승낙했다.
승낙을 받자마자 올리버는 혈마법을 풀었다.
“……우리한테 궁금한 게 뭐지?”
여성 흑마법사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물었다.
"음....... 우선, 여러분 이름부터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름을 알아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