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 초대받지 않은 손님 (2) >
"……당연히 당신이 수상쩍으니까요.”
진심. 야렐리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아……. 혹시 제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지.”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저 말도 진심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진 않지만, 수상쩍다니. 뭔가 모순된 느낌이었다.
말한 당사자도 그런 느낌을 받아서인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머리를 털어버리려 듯.
“물론……. 처음에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남들은 어떻게든 교문이라도 밟고 싶어 하는 마탑에 들어와 놓고 휴가를 남발했으니까요."
“아……. 그 점은 저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전 그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인맥이나, 경력만 쌓으려고 마탑에 들어온 도련님들을요.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될진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물을 흐리거든요.”
올리버는 이번에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학기 초창기 여기저기 불려 가며 그런 사람들을 본 적 있었으니.
인맥이나 경력만 쌓기 위해 마탑에 기부금을 내고 들어온 도련님들은 대개 일하는 척만 했으며,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일보다는 마탑 경력과 이곳 사람들을 사귀는 게 더 중요했으니.
물론, 그런 그들과 어울리는 마탑 학생들도 적잖은 편이었지만, 여하튼 야렐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충은 알 거 같았다.
“음……. 전 일단 도련님은 아닙니다.”
올리버가 자기 주변에 돌던 수많은 소문 중 하나를 상기하며 말했다.
야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아요. 일하는 걸 몇 번 봤으니까. 보통의 도련님은 확실히 아니더군요. 마법에 대해 아는 것도 제법 있는 거 같고, 특히, 도련님이었으면 데릭을 설득하지 못했겠지요.”
“아……. 그건 교수님이 명하신 거라서요.”
“명했다 해도 그걸 성공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대단하세요.”
야렐리가 이번에도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말했다.
무뚝뚝한 분위기와 다르게 사람을 잘 인정해주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절 왜 수상하게 보이시는 거죠?”
“혹시, 데릭이 어쩌다 수업에 안 나오게 됐는지 아시나요?”
질문에 대답 대신 질문으로 답하는 야렐리.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글쎄요……. 저도 소문만 들은 거라.”
“소문만이라도 대답해주시겠어요?”
“……무슨 파티장에서 어떤 흑마법사와 승부를 가졌고, 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아요. 도시의 부호들이 보는 앞에서요. 그건 꽤 치명적인 일이죠.”
“예, 압니다.”
“그래서 저도 싸우지 말라고 말렸어요. 위험하다고……. 왜 흑마법사와 싸웠는지 아시나요?”
데릭의 가문인 레드힐 가문의 새로운 화력발전 투자에 올리버가 초를 쳤기 때문이라 대답하려는 그 찰나.
올리버는 사냥감을 노리듯 감정을 빛내는 야렐리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음……. 글쎄요. 무슨 다툼이라는 건 알지만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래요?”
“예.”
"……흑마법사가 논리적으로 레드힐 가문의 사업을 비판해서 싸우게 됐어요. 이상하네요. 이것도 소문에 포함되어 있을 텐데."
다시 한번 야렐리가 미끼를 던졌고, 올리버는 그 미끼를 피했다.
“죄송합니다. 그 정도까지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다 들은 거라서요.”
“그러시군요.”
“예……. 혹시 그것과 제가 수상한 게 무슨 상관있습니까?”
“……아뇨, 없어요.”
야렐리가 처음으로 거짓말했다.
어디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고, 이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올리버는 그 행위 자체가 썩 좋지 못하다는 걸 깨달으며 이야기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때마침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말이다.
“괜찮으시면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뭐죠?”
“제가 무엇 때문에 수상쩍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수상하다는 건데……. 그럼, 왜 도와주신 거죠? 조금 전에요. 안 도와주시는 게 낫지 않았나요?”
올리버가 야렐리를 믿으며 바토리 제자의 공격을 받을 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만약, 야렐리가 돕지 않았으면 햇핀(Hatpin)에 찔려 꼼짝없이 끌려가고 말았을 터.
“제가 수상쩍게 여기는 것과 별개로 위기에 빠진 마탑 사람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탑 사람요?”
“예. 뭐가 됐건, 제논 씨는 마탑에서 열심히 일해주시는 분이니까요.”
이 말 역시 진심이었다.
야렐리는 개인적인 의심과 별개로 공적으로는 올리버의 안위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마탑 일을 열심히 해주는 사람 한정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탑에서 본 사람 중 관대한 편에 속했다.
학생이나 마법사가 아니면 마탑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마탑의 기조인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역시 멀린의 제안대로 마탑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책을 보는 것과 별개로 마탑 사람들도 보기 위해 온 건데, 여기도 꽤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리버는 호기심을 느끼며 천천히 야렐리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코앞까지 올 때쯤 거리가 좁혀진 걸 눈치챘다.
“왜 그러시죠?”
“질문 하나 더 해도 되겠습니까?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어서요.”
“왜 케빈 교수님 수업을 신청하신 거죠?”
야렐리가 움찔했다.
케빈의 말처럼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케빈 사이 탓인지 해당 질문에 조금 민감했다.
“……그걸 왜 물으시는 거죠?”
케빈과 야렐리의 아버지의 일화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뻔했으나, 눈치란 것을 기른 올리버는 다른 이유를 댔다. 그렇게 물으면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듯해.
“다름이 아니라 야렐리 씨가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해 많은 학생분이 찾아와 주셔서요……. 개인적으로는 고맙지만 이해가 약간 안 돼서요. 야렐리 씨 정도라면 더 좋은 수업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케빈 교수님 수업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교수님 수업은 이번 학기가 처음이고 인식도 안 좋아서 좋은 것을 미리 알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민감한 핵을 건드리지 않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야렐리는 살짝씩 반응하면서도 이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올리버는 만족스러웠다.
뭐라고 할까……. 자신이 평소에 입만 열면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사람들 신경만 긁은 것 같았건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란다에서 보낸 세월 덕분인지 제법 조리 있게 돌려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스스로가 약간 기특할 지경.
야렐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대답을.
“……남들보다 불리한 환경에서도 마탑에 들어오고, 마스터 직위까지 딴 분의 수업을 한번 듣고 싶었거든요.”
“오……. 그렇습니까?”
“예……. 학점은 여유가 있어서요. 이상한가요?”
"아뇨, 전혀요. 아주 멋진 이야기 같습니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도와주셔서 감사하고요.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올리버가 슬슬 헤어지려고 했다.
“예절에 따르면 나중에 식사를 대접해야 마땅하겠지만, 저랑은 그럴 시간이 없을 테니, 혹시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저기요.”
“예?”
“아까 전 당신을 그 여성……. 정말, 누군지 모르나요?”
“음……. 모르겠습니다.”
올리버가 거짓말했다.
***
후욱. 후욱. 후욱.
바토리의 딸이자 제자인 에르제베트 언너가 숨을 몰아쉬었다.
반은 죽은 몸이었음에도 반은 살아있었기에, 호흡은 필요했고 덕분에 퀴퀴하기 그지없는 하수도 내음이 비강을 사정없이 쑤시고 들어왔다.
그나마 최근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기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오늘 마셨던 피를 모조리 토할 뻔했다.
“괜찮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못 찾은 거예요?”
“부상을 입은 거예요?”
언너의 자매이자, 사매(師株)들이 병아리처럼 모여 걱정스럽게 언너의 몸을 살피며 물어봤다.
그녀들의 숫자는 다 합쳐 넷. 언너 자신을 포함해도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는 이것의 열 배가 넘는 자매가 있었건만,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의문이었다.
‘……어머니께서 행방불명된 이후부터 이렇게 된 건가?’
언너가 생각했다.
자신들의 스승이자, 두 번째 인생을 준 어머니 바토리를.
그녀는 자신에게 사기를 친 마탑 놈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또,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바다 건너 셀랜드로 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마탑의 한 기관을 소리소문없이 점령했으며, 그곳을 기반으로 마탑의 모든 자원과 지식을 빼돌릴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정기적으로 이쪽에 알려주었기에 언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토리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본거지의 책임을 맡은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바토리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그뿐 아니라, 바토리를 보조하기 위해 따라붙은 수십 명의 자매까지 모조리 연락 두절되고 말았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일.
그렇기에 언너는 자매들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 그랬고, 곧이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조사차 파견 나온 마탑의 웬 직원 나부랭이가 해결사 하나를 대동한 채 어머니가 계신 마운틴 페이스로 가 어머니를 물리쳤다는 이야기였다.
헛소리가 따로 없었다.
어머니는 뭐가 됐건 인육 요리사와 맞서 싸우는 강자였으며, 그녀를 보조하기 위해 따라붙은 자매들 역시 웬만한 마법사 이상의 실력자.
분명 그럴 진데, 고작 두 명, 그것도 어중이떠중이 2인조에게 당하다니,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언너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찌나 받아들일 수 없는지 이 소식을 다른 이들이 접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면, 그때부터였나……?’
어머니의 소식은 다른 흑마법사 조직에도 퍼졌고, 이는 피의 영약 제조법을 노리는 수많은 흑마법사 패밀리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남자에게는 건강과 정력을, 여성에게는 젊음의 축복을 되돌려 주는 피의 영약은 모두가 탐내는 물건이었으니.
그저 인육 요리사와 맞서 싸우는 바토리라는 존재가 그 존재를 억제했을 뿐.
그렇기에 바토리가 사라지자 모두 욕구대로 움직였다.
솔직히 초반까지는 괜찮았다.
어머니가 기른 자신들 역시 상당한 실력자였기에. 오히려 몇몇 패밀리들에 반격을 가해 그들을 괴멸시키고, 재료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뛰어난 흑마법사 역시 좋은 흑마법 재료였으니.
허나, 그녀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어그러지고 말았다.
인육 요리사의 여동생이 말이다.
소문으로만 들어봤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그녀는 오빠인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을 대동한 채 나타나 자신들을 습격했다.
흑마법의 비술이긴 할 테지만 겉보기에는 이십 대 초반에,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얼굴로 나타나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술식을 펼쳐 본거지에서 농성 중인 우리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수십 명의 자매와 그 이상의 피노예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언너는 어머니의 연구자료와 일지만을 챙겨 십수 명의 자매들과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인육 요리사 쪽의 끈질긴 추격과 타 패밀리의 습격으로 대부분 죽고 말았지만.’
언너는 이제 한 손가락밖에 남지 않은 자매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곳 란다로 온 것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격과 습격을 피하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물론, 어머니를 찾고 싶은 욕구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점점 그러한 희망이 약해지고 있을 뿐.
그렇지 않은가?
만약, 어머니께서 무사하시다면 이미 진즉에 우리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텐데.
어머니는 거동도 못 하는 상태이거나 최악의 경우 죽었을지도 몰랐다.
‘허나,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런 희망까지 빼앗기면…….'
언너는 어머니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의 손에 바토리 패밀리의 명운이 걸렸다는 사실에 암담한 책임감과 고뇌에 빠졌다.
스스로 짓눌려 숨이 막힐 것 같은 찰나, 자신의 자매이자, 사매(師味)들이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겉보기에는문제없는데, 어디 다쳤나요?”
언너는 그녀들의 말에 현실로 돌아오며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럼, 다행이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 다급히 후퇴하셨어요. 혹시, 이곳의 강력한 마법사나 흑마법사에게 걸리신 건가요?”
언너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년을 만나긴 했지만, 심각한 건 아니야. 그저 일이 커질 수 있어 후퇴한 거지. 지금 우리 상황에서 일이 커지는 건 달갑지 않으니.”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인육 요리사 여동생의 습격과 다른 흑마법사의 습격으로 자금과 인원 모두 잃고 고작 다섯 명만 연고지 없는 타지 하수도에 숨어 있는 처지였으니.
축 처지는 분위기. 언너가 능숙하게 좋은 소식을 꺼냈다.
“하지만 수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놈을 찾았거든.”
"놈이라면?”
“제논 브라이트. 종강이라고 해 유흥가에서 기다려봤는데, 역시나 마주쳤어. 자기 이름을 내게 밝혔고."
“역시, 언너! 대단해요!”
“놈의 얼굴을 확인했으니, 마탑 관계자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쓴 다음 놈에게 접근하면 돼. 그런, 다음-"
"-어떻게 하실 거죠?”
하수도 저편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