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08화 (308/633)

< 308. 초대받지 않은 손님 (1) >

밤 9시 25분.

올리버는 마탑에서 나왔다.

원래 퇴근한 것은 밤 9시였으나,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챙기니 대략 25분 정도가 더 걸렸다.

집에 도착하면 아마 밤 10시가 넘을 터.

‘음……. 아니지 10시 전에 도착할지도. 밤이니까 길이 안 막힐 테니.’

대략 10시 도착한다고 계산했을 때 아마 잠은 11시 반이나, 12시쯤에 자지 않을까 싶었다.

가볍게 운동하고, 씻고, 서적을 읽으며, 유머책을 복습하고, 송장인형-셰이머스의 상태 체크, 차일드-써드를 적응시켜야 했으니.

대략 2주 동안 올리버는 마탑 교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로 열심히 일했지만, 그렇다고 본업까지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드루이드 셰이머스를 비롯해 그동안 모아둔 시체 대부분을 제 역할에 맞게 송장인형 혹은 개조 좀비로 가공했으며, 차일드-써드를 송장인형-셰이머스에게 적응시키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퍼스트에게 맡길까 했지만, 하나에게만 고성능 송장인형을 몰아주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아 때마침 송장인형(넝마, 넝마2)을 잃은 써드에게 주었다.

전략적으로나, 연구적으로나 다양하게 나눠주는 게 좋을 듯해 말이다.

참고로, 써드는 퍼스트처럼 새로운 송장인형에 적응하지 못해 애먹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

그 외에도 올리버는 퍼스트를 송장인형-바토리에 넣어 피의 영약 제작에도 힘쓰고 있었다.

적법 근로시간(휴식시간 제외)인 18시간씩 매일 일 시킴에도 에디스에게 줄 양만 간신히 만드는 수준이었지만.

‘역시, 이완 님께 주문한 아이템을 빨리 받아야 효율성이 높아질 것 같은데……. 아니면 다른 생산방식을 내가 생각해 볼까?’

휴가는 고작 3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냥 재미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 전 빌린 [포션 제조 공정법 입문 초급 단계]를 참고하기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응?'

깊은 생각에 빠진 올리버가 인기척을 느끼며 몸을 틀어 피했다.

그러자 부딪힐 뻔한 한 무리의 청년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는 취했는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꼬부라진 발음을 했다.

“누운 떡바로 트고 다녀! 뒤질리고……!”

낯익은 얼굴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그가 누군지 알았다. 마탑 학생이었다.

마탑 학생임을 증명하는 망토를 걸치고 있었기에.

그는 올리버를 향해 한두 마디 더 욕을 내뱉고는 자신만큼 취한 친구들과 함께 가던 길을 다시 갔다.

다들 취하였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취한 게 그들만이 아니었다.

현재 올리버가 있는 마탑 주변 유흥가는 거리 전체가 축제라도 벌어진 듯 떠들썩했다.

원래 활기찬 거리였지만, 지금은 평소의 몇 배. 불이 안 켜진 곳이 없었으며, 시끌벅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1층 술집이나 커피 하우스에서는 학생들이 술과 말싸움에 취해 쌈박질을 벌였으며, 2층 레스토랑이나 클럽에서는 호화스러운 연회나 파티, 3층 테라스에서는 두 커플이 끌어 앉은 채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젊은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사이가……아, 정정. 학생이 아니라 여교수와 남학생인 거 같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여하튼 거리가 참 활기찼다.

“마탑 모든 학생이 나온 거 같네……. 무슨 날인가?”

올리버가 중얼거리며 요란한 거리를 빨리 빠져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올리버를 불렀다.

“저기요. 신사분.”

사람을 매혹하듯 끈적이면서도 요염한 목소리. 허나, 올리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저기요!”

아까 전보다 강해진 억양. 그제야 올리버가 멈췄다.

“절……. 부르신 겁니까?”

"예, 거기 신사분요.”

“아……. 전 신사가 아닙니다만.”

올리버가 대답하며 눈앞의 여성을 관찰했다.

여성은 이십 대 초반처럼 보였으며, 척 보기에도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피부는 눈결처럼 새하얗고, 가슴이 훤히 비치는 드레스에 붉은빛이 도는 가죽 코르셋을 위에 걸치고 있어, 몸매가 과할 정도로 강조됐다.

남자들의 혼을 빼놓는 전형적인 복장.

그러나 올리버는 그런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신사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들일까요?”

“음……. 제논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제논 브라이트. 그게 제 이름이거든요.”

“아……. 반가워요. 제논 씨. 저 같은 여성에게 본명을 밝히는 손님은 드문데 재밌네요.”

“아가씨 같은 여성분이 어떤 여성이죠?”

올리버가 진심으로 물었다. 여성은 대답하지 않고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후후후……. 짓궂으시네요. 그런 게임을 즐기나요?”

“게임요? ……어,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혹시, 제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요?”

“어쩌면요? ……오늘 장사가 안돼 그러는데 잠시 어울려주실 수 있나요?”

“음……. 알겠습니다.”

올리버가 잠깐 고민하곤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여성은 속마음과 전혀 다른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기이긴 하나 겉보기에는 꽤 자연스러운 거 같았다.

웬만해서는 모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올리버는 그렇게 일정에도 없는 샛길로 빠져 여성을 따라갔다.

뒷골목 깊숙이 인적이 멀어질 때쯤 올리버가 여성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슬슬 이쯤에서 볼일 봐도 될 것 같은데요?”

"어머, 생긴 것하고 다르게 성격이 급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쪽도 마음이 급하신 것 같아서요.”

“아하하……. 생긴 거랑 다르게 눈치가 빠르시네요. 제 마음은 어떻게 아시고!”

여성이 모자에 꽂힌 길쭉한 햇핀(Hatpin)을 뽑아 올리버를 향해 내지르며 대답했다.

몸동작이 아주 빨랐지만, 올리버는 그 짧은 순간 햇핀에 흑마법 딥 슬립(Deep Sleep)이 깃든 걸 보았다.

스치기만 해도 잠에 빠질 수준.

올리버는 양손에 마력을 능숙하게 모아 햇핀을 옆으로 쳐내고 곧바로 여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쉭ㅡ!

여성은 놀라운 민첩성으로 올리버의 주먹을 피했다.

역시나 낯이 익은 속도와 동작이었다.

아무래도 바토리의 제자인 듯했다.

마운틴 페이스에서 생명학파 연구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점거한 혈마법사 바토리 말이다.

도대체 여기 왜 왔는지, 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궁금하였는데,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여성은 올리버의 주먹을 피하는 것도 모자라 손끝에 마력을 모아 벽에 부여했다.

벽면에 빠르게 퍼지는 마력.

마력을 부여받은 벽에서는 벽돌과 시멘트로 이뤄진 돌기둥이 튀어나와 올리버를 앞뒤로 포위해 행동을 제약했다.

흡사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꼴이 된 올리버.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눈앞의 여성은 올리버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당장은 말이다.

그 증거로 모자에 꽂힌 햇핀을 뽑아 던짐에도 급소는 피해주었다.

날아오는 햇핀을 보며 올리버는 반격할지 말지 망설였다.

저 멀리 보고 있는 시선을 의식하며.

결국, 올리버는 마탑 학생을 믿어보기로 하며 방어를 포기했고 다행히 그 선택을 옳게 작용했다.

[아이스 월(Ice Wall)]

저 멀리서 들리는 낯익은 음성과 함께 바닥을 따라 성에처럼 새하얀 얼음이 뻗어져 오더니 올리버 바로 앞에서 마력이 폭발, 거대한 빙벽(氷壁)이 형성됐다.

덕분에 여성이 날린 가느다란 햇핀은 올리버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렐리는 발에 얼음을 형성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재빠르게 이동하며 마력을 끌어모아 양손을 바닥에 댔고, 그녀의 몸 안에 있던 방대한 마력을 폭발시켜 주변을 얼음으로 뒤덮어버렸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자신의 마력만으로 주변을 이토록 얼리는 게 쉬운 게 아닌데, 거기다 그녀는 이 와중에도 올리버가 있는 범위는 얼리지 않는 세심한 컨트롤을 보여줬다.

겉보기는 무뚝뚝해도 배려심이 깊었다.

“흥!”

바토리의 제자로 추정되는 여성은 양손에 화염을 만들더니, 정면에서 야렐리의 마법을 받아쳤다.

마력으로 화염을 조종해 야렐리의 얼음을 녹이는 것.

과거 마운틴 페이스에서 윌레스와 함께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황은 반대지만.’

그때는 바토리 제자 쪽이 다수였고, 얼음 마법을 썼던 데 반해, 지금은 이쪽이 한 명 더 많고, 얼음 마법을 썼다.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지금 눈앞 상대의 정체가 까발려지면 이래저래 귀찮아질 걸 직감했다.

과거 마운틴 페이스 건을 해결하고 돌아왔을 때 신경 쓰이던 시선을 다시 받을지도 몰랐고, 어쩌면 해당 문제를 재조사할지도 몰랐다.

그것만큼은 사양.

그래서 올리버는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일단락시켜야겠다고 판단. 얼음을 매개로 빠르게 다가오는 야렐리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마력을 주먹에 집중시켜 돌기둥을 부순 다음 그대로 얼음벽을 있는 힘껏 후려친 것.

꽝!! 소리와 함께 두꺼운 얼음벽이 부서졌으며, 그 파편 중 일부가 여성에게 날아갔다.

야렐리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린 여성은 웬만한 돌보다 더 단단한 얼음 파편에 맞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올리버는 다리에 힘을 꽉 줘 땅을 박차 순식간에 접근, 감정을 몰래 쥔 주먹으로 여성의 복부를 있는 힘껏 때렸다.

팡一!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여성을 뒤로 날아갔고, 여성은 통증과 함께 일단 물러설 때임을 깨달았다.

“물러서세요.”

어느새 다가온 야렐리가 하늘 위로 뛰어올라 얼음 마법을 투척했다.

마력의 양과 술식으로 봤을 때, 보통 마법은 아니었으나 다행히 바토리의 제자로 추정되는 여성도 보통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야렐리의 공격을 보자마자 몸에서 마력을 폭발시켜 화염을 방출해 야렐리가 던진 얼음 마법을 간신히 중화하고는 양손에 마력을 집중. 바닥에 대 마법을 발동했다.

[필드 쏜(Field Thorns)]

벽돌과 시멘트, 흙 따위로 이뤄진 다수의 돌창이 올리버와 야렐리를 향해 파파팍 솟구치며 다가왔다.

야렐리는 짧은 순간 상대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간파하곤 반드시 붙잡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야렐리는 상대의 마법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피하려고 하였는데. 그 찰나, 올리버를 떠올리며 뒤를 봤다.

그녀는 올리버가 공격을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였고, 올리버가 그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자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얼음 마법을 발동, 다가 오는 돌창을 막기로 했다.

그녀는 양손 끝에 마력을 모아 폭발시키듯 주변에 냉기를 퍼트려 성에가 아닌 거대한 빙벽(氷壁)으로 바닥을 뒤덮어 솟구치는 돌창을 침묵시켰다.

언제 봐도 능숙한 솜씨.

그녀는 올리버의 안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발을 통해 얼음 기둥을 만들어 앞을 가로막는 돌창 무더기를 뛰어올라 그 너머로 갔다.

허나, 소용없었다.

바토리의 제자는 야렐리가 얼음 마법으로 방어하는 사이 도망쳤으니.

야렐리의 마법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도를 쫓는 건 무리였다.

올리버의 예상은 적중했으며, 야렐리는 적을 놓쳤다는 실망감을 빛내며 다시 이쪽으로 넘어왔다.

그녀는 올리버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렐리 씨.”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어 인사했다.

"여기서 뭘 하시는 거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까 전 여성분이 잠시 볼일이 있다고 하셔서 따라왔습니다……. 야렐리 씨는 여기 어쩐 일입니까?”

야렐리는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올리버에게 수상쩍은 감정을 빛냈다.

“……종강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어요.”

"아......."

올리버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소리 냈다. 중간고사 직후 학생들이 유흥가에 몰려와 제법 시끄럽게 놀았던 적이 있었으니. 기말을 치른 후에 더 신나게 노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아, 덕분에 화를 피해서 감사하긴 하지만요.”

올리버가 다시 의문을 품었다.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곳 뒷골목은 유흥가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것도 아니기에.

최소한 종강 파티 중이던 야렐리가 우연히 옆에 있다 도와줄 곳은 아니었다.

다행히 이에 관해 야렐리가 대답해줬다.

“당신을 봤거든요.”

“절요?”

“예, 거리를 지나던 중 아까 전 여자 손에 이끌려 뒷골목으로 가는 모습을요.”

진심. 올리버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여성 분이 강도인 걸 눈치채신 건가요?”

“아뇨. 강도가 아닐 거예요.”

“예?”

“이맘때 취한 마탑 학생을 노리는 강도가 있긴 하지만 저 정도 실력자가 강도질이나 할 리는 없죠. 전 오히려 당신 동료인 줄 알았어요. "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동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연히 당신이 수상쩍으니까요.”

야렐리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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