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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06화 (306/633)

< 306. 뒷마무리 (4) >

파캉一!

야렐리에게 다시 접근하려던 찰나 거대한 얼음벽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 올리버와 야렐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캉一!

파캉一!

파캉一!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경기장 전체에 얼음벽이 솟구쳐 올라 사방을 가득 메웠다.

흡사, 미로.

올리버가 옆으로 돌아 야렐리를 찾아봤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경기장 전체를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바꾼 것.

올리버는 몸에서 마력을 뿜어 야렐리를 찾아보았지만, 실처럼 뻗어 나가던 마력은 사방을 가득 메운 얼음벽의 마력과 냉기에 영향을 받아주변 정보를 제대로 전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던 발이 바닥의 얼음에 영향을 받아 가랑비에 옷 젖듯 잠식당했으며, 경기장 내부의 얼음은 허연 냉기를 토해 경기장 안을 점점 냉동고로 만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방에 세워진 얼음벽은 거울처럼 야렐리의 모습을 반사해 시각적 혼란까지 주었다.

얼음의 반사(反射) 성질과 투과(透過) 성질을 이용한 눈속임.

얼음 마법의 특성 중 하나로,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구사하기 까다로운 기교.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 정식 마법사가 아닌 학생인 야렐리가 구사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마탑 정식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진짜인 듯했다.

‘어쩌면 좋다……. 바닥의 얼음은 계속에 다리를 얼리려 하고, 공기 중 냉기는 몸을 옥죄고, 얼음벽은 시야를 교란하는데.’

물론, 정말 곤란한 건 아니었다.

얼음 마법의 눈속임도 감정을 꿰뚫는 올리버의 눈으로 쉽게 파훼할 수 있었으니.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도 아니고 괜히 오해를 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에 빠진 사이 냉기는 점점 올리버를 둘러싸 체온을 빼앗았고, 바닥의 얼음은 마력을 침투해 발을 굳게 했다.

얼음벽에 비친 야렐리도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기회를 엿봤고.

결국, 올리버는 결단했다.

“항복하겠습니다.”

실제로 소리가 나지 않았으나, 고조되던 흐름, 분위기가 허무하게 끊어지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이들 모두 집중해 보고 있었기에.

그만큼 올리버가 야렐리를 상대로 잘 대응하고 있었다는 증거.

그런 와중에 올리버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항복을 선언했다.

구경하고 있던 주변의 학생들은 물론, 상대하고 있던 야렐리마저 당혹스러운 듯 멈칫하며 실망의 기색을 비쳤다.

실망하지 않은 것은 케빈이 유일.

그는 사무적으로 시합 중지를 선언하며, 마력 장벽을 거뒀고, 올리버는 야렐리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인사 후 경기장 아래로 내려오자 올리버는 훈훈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온도 차에 따른 것뿐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꽤 기분이 좋았다.

“아, 감사합니다.”

학생 중 하나가 조심스레 올리버에게 겉옷을 가져다줬다.

올리버와 함께 기초 훈련을 하던 학생으로, 그녀는 허무한 기색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올리버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걸지도. 허무하게 항복하긴 했지만, 그 야렐리를 상대로 나름 선전했으니.

최소한 앞의 시합에 비하면 그나마 싸움다웠다고 할 수 있었다.

올리버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후 겉옷을 걸치곤 원래 자기 임무로 돌아갔다.

케빈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곧바로 다음 시험 대상자를 불렀다.

***

잠시 후 시험이 끝났다.

모든 학생의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끝나갔다.

아마 다음 시간쯤 나머지 학생의 시험이 모두 끝날 터.

그렇기에 올리버도 슬슬 자기 할 일을 했다.

"이렇게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기다려 달라 요청한 다수의 학생 앞에서 말했다.

이들 모두 올리버와 기초 훈련을 하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처음 올리버를 마주했을 때의 적의와 불쾌함, 어색함, 거부감이 사라졌으며, 나름대로 익숙함과 친밀함을 내비쳤다.

올리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 같아 보람찼다.

“제가 여러분께 잠시 기다려 달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 공지사항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공지사항요?”

“예…….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 이번 [마법 전투 기초] 성적이 좋지 못할 겁니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도 않은 와중 너무한 말이었지만, 학생들은 그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 펠릭스처럼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대부분 제자리걸음.

거기다 시험 또한 대부분 2, 3 시합을 버티지 못하고, 패하거나 뻗어버렸다.

그렇기에 대부분 자신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 걸 예상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이번 방학 때 만회할 수 있도록 계절학기를 할 생각이라 하십니다, 혹시, 성적을 만회하고 싶거나, 실력을 올리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면 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다들 머뭇거렸다.

올리버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였다. 왜냐면 계절학기가 원래는 예정에 없었기 때문.

‘어르신께서 시켜서 하는 거지……. 나 때문인가?’

멀린의 대저택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필요한 이야기를 나눈 후 떠나기 직전 올리버는 마지막으로 펠릭스를 도왔던 방식과 그에 관해 이야기하며 좀 더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멀린은 대뜸 케빈에게 계절학기를 맡으라 하고는 올리버에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케빈에겐 조금 미안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죠?”

“그건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학생들 수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예상해 좀 더 잘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럼, 열심히 따라오시는 분들은 실력과 성적이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고요.”

"저……. 제논 씨도 도와주는 겁니까?”

정말 돕는 것인지 묻는 거라기보다는 속뜻이 있는 질문. 올리버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열심히 하시면 도울 수 있는 데 까지는 도와 드릴 겁니다.”

***

올리버의 대답을 들은 학생들은 저마다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망설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난감해하는 학생도 있었고, 의욕을 불태우는 학생도 있었다.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상황.

올리버는 그들에게 접수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 후 훈련실 뒷정리를 하고 케빈에게 돌아가기 위해 훈련실 밖으로 나왔다.

어느 정도 나왔을 때 그리 멀지 않은 저편 복도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낯이 익은 감정. 야렐리 아이스아이였다.

은빛 곱슬 장발을 뒤로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그녀는 훈련복에서 정갈한 사복 차림으로 바꿔 입고 서 있었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래도 올리버인 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제논 씨.”

“안녕하십니까? 야렐리 씨……. 혹시, 누구 기다리시는지요?”

“사실, 제논 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요?”

“예…….궁금한 게 있어서요.”

사실이었다. 야렐리는 올리버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그 외에도 의심과 확인 욕구도 있었고.

올리버가 대답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마지막에 왜 항복하신 거죠?”

의외의 질문.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마지막에 왜 항복하셨는지 물어봤어요.”

“음……. 글쎄요? 제가 질 게 뻔했으니까요?”

올리버가 어느 정도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계속 싸웠다면 어찌어찌 길이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

한정된 마력에, 순수마력학파 마법만 사용하는 상황에서 올리버는 야렐리를 이기긴 어려웠을 거였다.

그녀는 마탑의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마력의 질과 양이 우수했고, 마법 실력은 물론 전투 경험도 풍부했기에.

그 증거로 차가운 공기, 얼어붙은 바닥, 마력을 머금은 다수의 얼음벽 등으로 올리버를 켜켜이 압박했다.

냉기와 얼음이 지속해서 올리버의 신체 능력을 앗아갔으며, 야렐리 본인은 마력을 머금은 얼음벽을 이용해 몸을 숨긴 것도 모자라 얼음 마법 특유의 환영으로 올리버를 교란했다.

아마, 조금만 빈틈을 보였어도 순식간에 압박의 수준을 높여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을 터.

‘왠지 당하면 안 될 것 같았고.’

올리버가 경기 중 계속 느낀 찜찜함을 떠올렸다. 야렐리가 계속해 뭔가를 노리고 있었기에.

어쨌건 올리버가 이와 같은 이유를 설명하자, 야렐리는 의문을 표했다.

“이상하네요. 그 정도는 이겨낼 실력인 줄 알았는데요.”

“높이 평가해 주시니 감사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비록, 야렐리는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의심과 확신을 더욱 빛냈다. 그 의심과 확신이 뭔지만 알 수 없을 뿐.

“설사 안 되더라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몰랐어요.”

“그렇습니까?”

“예. 데릭을 설득하셨다기에 그보다 끈기가 있는 줄 알았거든요…….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더 해도 되나요?”

“예, 말씀하십시오.”

“케빈 교수님에겐 어떻게 고용된 거죠?”

"고용요?”

“예, 그분은 제가 알기로 직원을 고용하지 않거든요.”

***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지?”

아까 전 야렐리와 나눴던 이야기를 케빈에게 보고하자 그가 물었다.

“일단, 제가 멋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해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잘했어. 어설프게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그 대답을 들은 야렐리는 뭐라 했어?”

“별말 안 했습니다. 제 대답을 듣고는 알겠다 하곤 그냥 물러가셨습니다…….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절 수상하게 여기시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네. 실제로 수상하니까.”

“예?”

“내가 직원을 고용한 것부터가 수상한데, 너 자체도 꽤 수상하거든. 야렐리가 정상이란 소리야.”

케빈의 말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

밥 먹듯이 사용하는 휴가, 생각 이상의 전투능력, 의외의 마법 지식, 마운틴 페이스의 수상쩍은 활약 등등. 올리버는 누가 봐도 썩 수상했다.

“다만, 그 수상한 방향이 어느 쪽이냐는 게 문제지.”

자칫 자신에게 큰 문제일 수도 있는 사항이었음에도 케빈은 차분했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건 미련하게 품지 않으려는 것.

그런 케빈을 보며 올리버가 질문했다.

“교수님.”

“왜?”

“혹시, 야렐리 씨와 교수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케빈이 성적을 계산 중이던 손을 멈췄다. 제대로 된 질문이라는 증거.

케빈은 잠시 침묵했다. 대답해줄지 말지 고민하는 거였다.

그는 대답해주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가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답해줄 수 있지만, 그게 왜 궁금하지?”

“야렐리 씨가 절 수상하게 여기면서도, 교수님도 신경 쓰고 있어서요. 처음 수업 신청을 하러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교수님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다른 학생들처럼 어색해 그런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나싶어 여쭤보는 겁니다.”

“음……. 야렐리가 날 볼 때 품고 있는 감정이 좋은 감정이야? 나쁜 감정이야?”

“썩 좋은 감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쁜 감정도 아닙니다. 못마땅함, 의문도 있지만 중간중간 인정과 납득도 있습니다."

“대단하군. 제 아버지랑 다르게.”

“아버지요?”

“그래, 야렐리와 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야렐리의 아비와 난 관계가 있거든.”

“아……. 무슨 관계셨지요?”

“관계라고 해봐야 별 것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을 쓰러뜨렸거든. 마탑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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