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03화 (303/633)

< 303. 뒷마무리 (1) >

감정, 마력 그리고 생명력.

멀린의 말에 의하면 이 셋 모두 영혼에서 비롯된 거라고 하였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그저 설일 뿐. 육체를 단련하면 생명력이 강해지기도 하고, 마력의 기원 역시 육체나 정신, 뇌에 있다는 설도 있으니.’

멀린은 무수한 가능성을 열거하며 자신의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가설이라 거듭 못을 박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흥미가 동했다.

과거, 광산을 막 빠져나와 조셉을 따라갈 때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기에.

‘분노, 슬픔, 증오……. 감정은 영혼에서 나온 일종의 에너지인 셈이지.’

허나, 흥미로운 것과 납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

올리버는 질문했다.

감정과 마력이 합쳐지면 힘이 증폭되는 것과 두 개의 힘이 영혼에서 비롯된 것이 무슨 상관있냐고 말이다.

멀린이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만일이지만, 마력과 감정이 모두 영혼을 근본에 두고 있다면 그 두 개를 합치는 건 단순히 힘을 합치는 게 아니란 이야기지.’

올리버는 그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곧이어 멀린이 올리버의 생각이 맞다는 걸 알려주었다.

‘마력과 감정이 합쳐진다면 힘의 근원인 영혼에 한 단계 가까워진다는 거고. 그 말은 즉 단순히 강해지는 것을 넘어 격 자체가 높아지는 걸 의미하지.’

올리버는 그 말을 곧바로 납득했다.

실제로 마력과 감정을 뒤섞으면 그 힘은 단순히 더 강력해지는 것을 넘어 하나의 욕구, 의지 등을 가졌으니.

예를 들 건 차고 넘쳤다.

탐화(貪火)와 헝거(hunger)는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워 자신의 수명과 덩치를 늘렸으며,

격뢰(激雷), 격풍(激E)은 분노를 해소하듯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상대를 철저하게 부쉈다.

어쩌면 위력이 강해지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현상일지도…..

‘그러고 보니, 퍼펫 님께서 만든 인공영혼 역시 생명력과 감정, 마력을 한 데 뒤섞은 거였지....... 나도 그걸 흉내 냈고. 쉽진 않았지만.’

올리버는 바토리, 던칸과 싸울 때 만들었던 소량의 인공영혼을 떠올린 다음 고개를 돌려 파이터 크루 틈바구니에 섞여 응원하는 송장인형-흑마법사와 저격수, 던칸을 봤다.

퍼펫의 연구를 참고해 생명력과 감정으로 만든 미니언이지만, 미니언 보다 한 단계 높은 차일드를 말이다.

그들은 탐화(貪火), 격뢰(激富), 격풍(激風), 헝거(hunger)처럼 의지와 감정을 가진 채 소리 지르고 있었다.

“죽여라! 죽여어어어엇!!”

“눈깔을 씨바꺼!!”

“가드....... 가드 올려 . 가드!”

송장인형-흑마법사에 들어간 퍼스트는 경기장 울타리에 올라탄 채 응원하고 있었으며, 저격수에 들어간 세컨드는 여차하면 쏠 생각인지 총을 부들부들 쥔 채 경기를 구경했다.

던칸에 들어간 포스는 팔짱을 낀 채 비교적 얌전히 구경했지만, 그와 별개로 중간중간 큰 소리로 훈수 뒀다.

참고로, 응원의 대상은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두 마리의 먹보주머니 중 하나인 빅마우스였다.

"작은 게 데이브 씨 먹보주머니지요?”

올리버 옆에선 한 남자가 질문했다. 시(市) 공무원....... 아니, 이제는 시(市) 내무부 장관이 된 폴 카버였다.

란다를 뒤흔들었던 ABC사태를 미리 눈치채고 해결한 그는 시의원들에게 공을 인정받아 새로운 장관이 되었다.

이는 양지와 음지 모두에서 빅이슈였다.

유능한 시(市) 공무원 카버가 란다에서도 한 가닥 하는 내무부의 장관이 되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두 이야기 나눴다.

그만큼 카버의 명성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그가 올리버를 만나기 위해 손수 변장까지 하며 X구역을 찾아왔다.

“예, 맞습니다. 머리 하나 작은 게 제 먹보주머니, 빅마우스입니다.”

“이름도 있습니까?”

"예, 달라고 했거든요.”

빅마우스가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던 때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헤....... 신기하군요. 흑마법 아이템은 성능이 좋을수록 자의식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름까지 지어달라고 하다니."

“오, 어떻게 아신 거죠?”

“아, 직위가 올랐으니 거기에 걸맞게 공부 좀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이름까지 지어줬을 정도면 꽤 정이 들었겠군요.”

올리버가 곰곰이 생각했다.

“음..... 아마도요?”

“그런데, 괜찮으신가요? 제가 볼 땐 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카버가 경기장을 가리켰다.

그의 말처럼 올리버의 빅마우스는 스미스(빅마우스를 만든 흑마법사 장인)가 새롭게 만든 먹보주머니에 고전하고 있었다.

스미스가 새롭게 만든 먹보주머니의 덩치가 빅마우스보다 더 큰 탓인지, 빅마우스를 힘에서 압도했고, 덕분에 빅마우스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들려 밀리터리 프레스 슬램(Military Press Slam)를 당했다.

꾸륵! 꾸륵! 꽝一!!

시멘트 바닥에 직격으로 내리꽂히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먹보주머니가 환호성을 지르며 양팔에 힘을 줬다.

“꾸르르르르륵——!! 꾸룩!!”

싸움을 구경하러 온 파이터 크루 단원들은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고, 먹보주머니는 양팔을 벌린 채 그 환호성을 만끽했다.

꽤 신기했다. 먹보주머니는 돈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 나중에 이완이나 스미스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크하하핫!! 일어나!!”

“너! 당하면! 우리! 차례!! 카핫-! 일어나! 제발!!”

빅마우스가 맥을 못 추며 비틀비틀 기어서 도망치자 송장인형에 들어간 각 차일드들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응원했다.

말 그대로 진심. 어찌나 진심인지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픈 심정이었다.

옛날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빅마우스와 차일드는 사이가 참 좋은 것 같았다.

내무부 장관 카버가 질문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전투 중도 아닌데 송장인형을 왜 꺼내신 거죠?”

"글쎄요… …. 빅마우스가 싸울 때 자기들도 데려가 달라고 해서요?”

“아, 그렇습니까?”

“예, 얼마 전부터 뭔가 시무룩해서 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빅마우스의 용량을 키울 방법에 관해 들은 후부터 차일드는 시체 손질이라던가, 피의 영약을 만드는 작업을 위해 꺼내면 일단 부탁대로 움직여주지만, 어째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했다.

올리버가 보답으로 먹을 것을 많이 만들어줘도 배신감, 두려움, 원망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빛내며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럼, 위험하지 않습니까?”

“예?”

“아. 데이브 씨를 우습게 보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론 먹보주머니나 흑마법으로 만든 크리처는 주인도 해칠 수 있다고 해서요. 특히, 힘이 강하면 더욱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럼, 저런 커다란 빅마우스나, 송장인형을 조종하는 차일드? 라는 것도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불만을 품으면 주인에게 덤빌 텐데요.”

카버의 말은 정답이었다.

스미스는 커다란 먹보주머니를 올리버에게 주문받았을 때 그 위험성에 관해 거듭 설명했었고, 멀린 역시 크리처의 위험성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제 주인도 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딱히, 근거는 없습니다. 여태까지 차일드나 빅마우스가 제게 위해를 가한 적이 없어서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하긴, 주인이 강하면 덤비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다만,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예?”

"차일드가 자기 의지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요.”

담담하지만 꽤나 파격적인 발언에 카버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보통의 경우라면 초인 특유의 오만이나, 허세로 받아들일 터인데, 올리버가 말하니 너무나도 진심처럼 느껴졌다.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생각의 메커니즘이 정상은 아니었다.

“오오오오옷一!! 끝인가?!”

갑자기 들린 환호성에 카버와 올리버가 다시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기장에는 만신창이가 된 채 필사적으로 기어서 도망치는 빅마우스와 그런 빅마우스를 끝장내려는 먹보주머니가 보였다.

먹보주머니는 이미 승리를 확신했는지, 목으로 예상되는 부위에 엄지를 세워 가로로 긋는 제스처를 취했으며,

수세에 몰린 빅마우스는 ‘꾸르. 꾸르르……’ 소리를 내며 네발로 기다시피 경기장 한쪽으로 도망쳤다.

“음, 아무래도 새 먹보주머니를 사야 할 것 같네요. 이름을 붙여주실 건가요?”

“원하면요. 다만, 안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예?”

카버가 되묻는 그 타이밍에 맞춰 세컨드가 빅마우스에게 소드 오프 샷건을 던졌다.

올리버로서는 꽤 놀라웠다. 소드 오프 샷건은 세컨드가 가장 아끼는 총으로 자신이 잠시 빌려 달라고 해도 입술을 비죽 내밀어 싫은 티를 팍팍 낸 물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빅마우스를 위해 기꺼이 던져줬다.

소드 오프 샷건을 본 빅마우스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날렵함으로 총을 낚아채 그대로 먹보주머니에게 겨눴다.

“........꾸륵?”

퇑一!!

“총을 쐈어?!!”

익숙하면서도 강력한 총성과 함께, 파이터 크루 멤버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마치 반칙이라도 본 듯 충격에 빠진 채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일드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빅마우스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냅다 일어서 배에 구멍이 생긴 먹보주머니를 향해 달려들어 그동안 얻어터진 서러움을 쏟아냈다.

"꾸룩! 꾸루룩一!! 꾸룩! 꾸루루룩一!! 꾸룩! 꾸룩!! 꾸루룩——!!”

빅마우스가 뭐라 이야기하는지 올리버를 제외하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단 하나, 엄청난 분노와 서러움을 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긴, 해결사 초창기 때부터 같이해온 주인이 데스매치를 벌이라고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지만.

빅마우스는 기교는 없지만, 그만큼 투박한 주먹질과 발길질, 소드 오프 샷건질로 자신의 억울함을 분풀이했고,

어느 정도 분풀이를 끝마치자 차일드가 외치는 대로 상대 먹보주머니를 번쩍 들어 자신의 커다란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꾸르르르르..............."

“살았다! 살았다!!”

“삼켜! 그래! 삼켜!!”

“좋은 빅 마우스. 착한 빅 마우스.”

빅마우스에게 패한 먹보주머니는 바둥댔지만, 총상의 피해가 큰지 그렇다 할 저항을 못 했고, 결국, 뱀에 삼켜진 송아지처럼 자기보다 머리가 하나 작은 빅마우스에게 통째로 잡아 먹히고 말았다.

빅마우스의 승리에 기뻐하며 차일드들은 빅마우스에게 몰려갔다.

어찌나 기쁜지 세컨드는 사방을 향해 총을 쐈고, 그 모습에 파이터 크루 멤버들은 기겁하며 밖으로 도망쳤다.

“구룩……?”

"들어! 들어!”

“헹가래! 헹가래!”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차일드들이 힘을 합쳐 빅마우스를 번쩍 들어 하늘 위로 던져 올렸다.

빅마우스가 하늘 높이 도달해 떨어지는 찰나 던칸에 들어간 포스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잠깐........?”

그와 함께 빅마우스가 아래로 추락. 송장인형에 들어간 차일드들은 빅마우스의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아래에 깔리고 말았다.

“꾸르륵!”

“아파! 비켜!”

“내 총! 엉덩이! 치워! 총! 엉덩이!”

"........."

참으로 화기애애한 모습. 올리버는 그 모습에 만족하며 빅마우스에게 축하를 보냈다.

“대단하십니다. 빅마우스. 전 믿었습니다.”

허나, 빅마우스와 그 주변의 차일드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올리버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불신, 경멸, 험오 등의 감정을 빛내며 말이다.

카버도 이를 눈치챘는지 올리버에게 반 농담했다.

“잘하면 빅마우스와 차일드가 데이브 씨에게 덤빌 수도 있겠네요.”

“예, 가능성이 보이네요.”

꽤나 살벌한 농담이었음에도, 올리버는 담담했다.

실제로 그리된다 해도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쨌건 덕분에 재밌는 구경 했습니다. 저도 보답을 드리도록 하죠.”

카버가 품 안에서 파일을 꺼냈다.

“이건……?”

“아르크 고아원의 최신 정보입니다. 이걸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올리버는 곧바로 파일을 받아 안에 든 내용을 살펴봤다.

고아원의 자금 상황과 추가 근황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상황이 썩 좋진 않습니다.”

카버가 말했고,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에 담긴 자료에 따르면 이대로 재정난이 지속되면 고아원 아이들을 다른 고아원에 보내고, 몇몇 큰아이들은 조금 일찍 독립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살아본 올리버는 이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다른 고아원 텃세에 눌려 굶거나 맞아 죽을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이른 나이에 산업 전선에 뛰어들어 혹사로 죽을 수도 있었으니.

“운영비를 다시 확보하지 못했나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뭐, 신의 자비와 사랑은 무한해도 돈은 유한한 게 현실이니까요.”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빨리 알아 오셨네요?”

“신경 쓰지 마시죠. 데이브 씨에게 잘해줘 부담감을 주려는 것뿐이니까요. 부담 갖지 말고, 부담가지십시오.”

“...농담이신가요?”

카버가 피식 웃었다.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입니다. 데이브 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거든요. 이 도시를 위해서라도요.”

처음 제안했을 때처럼 카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물론, 타산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악의는 없었다.

건전한 계약관계를 통해 안전과 이익을 취하겠다는 속셈.

물론, 마음이란 게 유동적인 법이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였지만,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물론, 당장 대답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일주일 정도 더 생각-”

“-수락하겠습니다.”

“예?”

“시(市)의 비공식적 동맹요.”

“……진심입니까?”

“예, 카버 씨께서 별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셨으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어설프게 관계를 들먹이며 데이브 씨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카버가 진지하게 섰다.

“말씀하시죠.”

“제 통장을 조금 드릴 테니, 아르크 고아원에 딱 필요한 만큼만 정기적으로 기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대신 시(市)가 대신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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