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02화 (302/633)

< 302. 마탑 복귀 (3) >

휘이이이이잉一!!

눈보라가 치는 돌산 위 대저택.

그곳에서 세 남자가 막 식사를 끝마쳤다.

아카이브 멀린, 마탑의 마스터 겸 교수 케빈 그리고 올리버.

올리버는 새하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상석에 앉은 멀린에게 인사했다.

"식사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어르신.”

“잘 먹었으면 다행이고……. 저번 아침 식사 때도 느낀 거지만 생각보다 대식가군.”

멀린이 올리버 옆에 작은 탑처럼 쌓인 접시를 가리켰다.

저 접시들 위에는 두꺼운 스테이크가 담겨 있었지만, 현재는 전부 올리버의 배 속에 있었다.

“나무인형-골렘 분들이 잘 챙겨주셔서요.”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 음식을 내오라고 했거든. 배는 부르나?”

올리버가 눈을 굴려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케빈 자네는?”

“저도 잘 먹었습니다.”

“그거 기쁘구만. 또 내 초대를 거절하면 어쩔까 걱정했어. 늙으면 거절 받는 게 무서워지는 법이거든."

“오늘은 여유가 좀 있어서요……. 저 녀석 말도 듣고 싶고요.”

케빈이 눈짓으로 올리버를 가리켰다.

그가 말한 말이란 다름 아닌 이브(Eve)에 관한 것으로, 멀린 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나도 듣고 싶긴 하네. 제자에게 굳이 식사를 대접한 것도 그거 때문이니까……. 데이브?”

“예, 어르신.”

“정말 화가 난 이브(Eve)에게 조금만 참아 달라고 했나?”

“예……. 의외로 사람 말을 잘 들어주시더군요.”

올리버가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대답했다.

드루이드의 속박에서 풀려난 이브(Eve)는 강렬하게 발광하며,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빛냈다.

피부로 느껴질 정도.

셰이머스 탓인지, 축적된 정보 탓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브는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을 때려죽일 기세였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보다가 이브에게 대뜸 부탁했다.

"너무 화내지 말고 좀 참아달라고 말이죠.”

“왜 그랬지?”

멀린의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어....... 보통 그래야 하니깐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올리버가 그리 답했다.

아닌 말로 참지 말고 원하는 대로 성질부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의지를 가진 세계수 이브(Eve)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아……. 미안하네. 당연한 건데, 자네가 말하니 뭐랄까……. 응, 그렇네.”

묘하게 말꼬리를 흐리는 멀린. 감정을 읽을 순 없지만, 참으로 많은 뜻이 담긴 말 같았다.

올리버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르신. 제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혹시, 농담하시는 겁니까?”

“농담이 아닐걸?”

케빈이 식후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참고로 그는 진심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인 건지, 올리버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자신이 평소에 어쨌길래?

“뭐, 사소한 건 넘어가고……. 부탁한 후에는 어떻게 됐나?”

“아까 전 말씀했다시피 이브는 진정했습니다. 정말 진정했다기보다는 화를 가라앉힌 거에 가깝지만요……. 그렇게 나쁜 존재 같지는 않습니다.”

“그다음엔?”

“약속한 대로 ABC 투자금 위치 및 셰이머스 님에 관한 자료를 확보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브(Eve)는 놀라운 속도로 자료를 찾아 저장해줬고요. 배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브(Eve) 자체가 세계수라 할 수 있으니 당연한 거지.”

“네. 그래도 실제로 보니 대단하더군요.”

“그다음에는?”

“너무 화내지 말라고 다시 말씀드린 후, 이만 떠나라고 했습니다. 떠나고 싶은 눈치라서요.”

올리버는 마치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술친구를 떠나보내듯 말했다.

이브(Eve)가 어떤 존재인지, 멀린이 준 책을 통해 알았음에도 말이다.

너무나도 상식에서 벗어난 태도.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카이브 멀린조차도.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분석하듯 물었다.

“음……. 내가 준 책 읽어봤나? 세계수 진화론?”

“예.”

“근데도 그냥 풀어준 건가? 탓하는 건 아니고.”

“예,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또……."

“또?”

“……또, 스스로 의지가 있는데, 억지로 계속 붙잡고 있으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브(Eve)의 가치와 위험성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이유.

가만히 듣고 있던 케빈이 이를 지적했다.

"그렇다 해도 계속 묶어 놨었어야지. 이브가 있으면 세계수 학문은 일대 혁명을 일으켰을 텐데……. 어쩌면 마법사가 드루이드를 뛰어넘을지도 몰라.”

“죄송합니다. 풀어드린 직후 그게 떠오르긴 했지만 늦어서요.”

“다시 묶을 순 없었어?”

다시 묶는 다라……. 올리버가 생각했다. 다시 묶을 수 있었을까? 라고.

이브가 저항할 테니 쉽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확률로 따지면 반반?

드루이드들이 친 속박을 동시에 시전해 이브를 덮쳤으면 됐으니 말이다.

올리버가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이브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날뛰면 어떡하려고? 물리적인 피해야 끼칠 수 없겠지만, 세계수를 이용하면 그 이상의 피해는 끼칠 수 있어."

케빈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브가 날뛴다면 그 피해는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계수에 저장된 각 조직의 스캔들이나 비밀을 뿌리는 것만으로 세상은 충분히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그만큼 세상엔 더러운 비밀을 가진 자들이 넘쳤으니 말이다.

“안 그럴 겁니다. 참아달라고 했을 때 동의해 주셨거든요.”

“생각이 바뀌면?”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요?”

케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보통 사람과 감정선이 너무나도 달랐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멀린이 사태를 마무리하듯 가볍게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그냥 넘어가지. 이제 와 따져봤자 무슨 의미 있다고, 막말로 자네나 나나 원소학파 소속. 그렇게 속 쓰릴 일은 아니야.”

“그렇긴 하나 학자로서 안타깝긴 하네요.”

“원래 뜻대로 안 돌아가는 게 세상 이치지. 그래서 재밌는 거고……. 데이브?”

"예, 어르신.”

“다 큰 성인 남자 일에 왈가왈부하기 싫지만, 이브를 풀어준 것만 이야기했으면 좋겠군.”

“예?”

“모이라이 학파에 제공할 보고서 말이야. 인간에 대한 이브의 증오와 자네가 참으라고 한 것 등은 다 뺐으면 좋겠어.”

“아, 예…….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별거 없어.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면 약간 소란스러워질 수 있거든. 간신히 발견한 이브가 인간을 증오한다니……. 모이라이 학파로서는 비상사태지.”

올리버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그런 이브를 풀어준 자네를 수상쩍게 여겨 귀찮게 들러붙을 거고. 그 과정에서 나나 케빈도 귀찮아질 수 있지. 모이라이 학파가 다른 건 몰라도 정보력만큼은 알아주거든.”

“아……."

“그러니 이브를 풀어준 것만 이야기해.”

올리버는 별다른 저항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음, 어르신. 저도 질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어르신께서 보시기에는 이브(Eve)가 갑자기 왜 탄생한 것 같습니까?”

“책에 나와 있을 텐데?”

“예, 봤습니다. 축적되는 방대한 정보량으로 인한 인공적 정신, 의지의 발현된다는……. 다만, 전 이해가 안돼서요. 단순히 정보량이 많이 쌓인다고 정신, 의지가 깃들 수 있는 겁니까?”

“양도 질이라 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그럼, 왜 하필 지금에서 발생한 걸까요?”

올리버가 학자 특유의 눈빛을 빛냈다. 순수한 학구적 의문이었다.

멀린은 대답했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역사를 통틀어 지금이 세계수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대니까. 마법사들 말이야. 사용자가 늘어난 만큼 외부로부터 받는 정보량도 늘 테니, 생겨도 딱히 이상할 건 없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도?”

썩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반박도 하지 못했다.

멀린의 말대로 세계수 이용자가 최근에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로 인해 정보량이 더욱 축적돼 이브가 탄생한 것도 말이 안 되진 않았으니……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지만.’

올리버가 심각하지 않지만, 해소되지도 않는 궁금증에 괴로워할 때쯤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좋아, 식사도 했고, 내가 궁금한 것도 얼추 이야기 나눴으니, 이쯤에서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예?”

올리버가 갑작스러운 말에 되묻었다.

“왜 그러나?”

“아뇨……. 전 아직 여쭤볼 게 많아서요. 혹시, 다른 이야기는 못 들으셨습니까?”

멀린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자연의 힘을 추출한 거랑 감정과 마력을 섞은 것?”

"예. 혹시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제 지인분께선 흑마법사가 자연의 힘을 추출하고, 사용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씀하셔서요.”

“나도 처음 듣는 경우지만, 그리 이상한 건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혹자는 지금이 인류의 황금기이며, 지식의 절정기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볼 때 아직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많은 머저리들의 시대거든. 처음 보는 특성의 흑마법사가 나타나도 이상할 건 아니지. 불과 오십 년 전만 해도 검은색 백조가 있는 줄도 사람들은 몰랐어."

생각보다 차분한 멀린의 태도에 올리버가 곧 바로 설득됐다.

세상에는 배울 게 많았으니, 충분히 맞는 말 같았다.

하긴 애당초 포레스트가 겁을 줄 요량으로 강하게 말한 거라고도 했으니.

그러던 중 케빈이 끼어들었다.

“그럼, 마력과 감정을 섞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멀린과 올리버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케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강렬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빛냈다.

"전 처음 보는 경우라서요. 감정과 마력을 뒤섞는 건……. 이런 기술이 가능한 겁니까?”

올리버도 궁금증을 느끼며 멀린을 봤다.

실제로 어쩌다보니 섞은 거였지, 원래 섞을 수 있는 건진 올리버도 알지 못했다.

마치, 난다는 개념이 없이 하늘을 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멀린이 이에 해답을 줬다.

“감정과 마력을 뒤섞는 기술은 기존에 연구하던 분야야. 좀 많이 마이너한 분야긴 하지만.”

케빈은 물론 올리버도 관심을 보였다.

“그렇습니까?”

“그래. 소수지만 마법사 중에 흑마법과 감정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어. 심지어 선대 아카이브 중에도 몇몇 있었고……. 개중에 또 몇몇은 마력과 감정을 접목해보려고 했지.”

“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말했잖아? 마이너한 분야라고. 약간 터부시되는 영역이기도 하고.”

그 한마디에 올리버는 바로 납득했다.

흑마법은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았으니, 연구하는 것 자체에 사회적 장벽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마법과 흑마법에 필요한 재능도 달라 연구에 들어가는 노력도 배 이상이 필요했고.

“그럼에도 연구를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올리버가 맹점을 찔렀다.

멀린의 말대로 마법사가 흑마법을 연구하는 건 커다란 장벽이었지만, 그럼에도 연구한 이들이 있었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터였다.

멀린도 이를 부정치 않았다.

“선대 아카이브의 연구에 따르면 마력과 감정을 뒤섞으면 그 위력이 단숨에 수 배가 된다고 하거든. 위험도 마찬가지지만.”

올리버는 바로 이해했다. 탐화(貪火)와 격뢰(激重), 격풍(激風), 헝거(Hunger) 등 그 위력을 체감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이유가 뭐죠? 그러니까 힘이 강화되는 구체적인 원리요?”

“글쎄? 집중적인 연구가 아닌 개인의 산발적 연구라 거기까진 알아내진 못했어. 다만, 가설은 하나 있지.”

“가설요?”

"그래, 마력과 감정 이 두 개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갑자기 툭 던진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글쎄요?”

“영혼에서 비롯된 에너지라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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