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97화 (297/633)

< 297. 임무가 끝나고 (2) >

벽.

정식 명칭은 아니고, 여러 뜻을 가진 일종의 은어였다.

재능에 따른 성장 한계일 수도 있었고, 혹은, 그로 인한 마탑에서의 성장 한계를 뜻할 수도 있었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뜻이기도 한 참으로 애매하면서도 직관적인 단어.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케빈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됐다.

"데릭 씨 가요?”

“어째 믿지 못하는 말투군.”

“솔직히 약간 그렇습니다.”

실로 그랬다. 올리버는 데릭과 총 2번의 대련을 했다.

첫 번째는 마탑에서의 수업, 두 번째는 투자 파티에서.

그리고 그 와중 올리버는 데릭의 놀라운 실력 향상을 보았다.

그는 단순히 마법을 날려 공격하는 수준에서, 다른 마법과 섞어 사용해 효율성과 위력을 극대화하며, 화염 마법의 특성을 살려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수준까지 마법의 깊은 이해도를 보였다.

특히, 마지막쯤 거대한 회오리바람과 불길을 합쳐 경기장 자체를 메워버린 것은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올리버는 술식의 약한 부분을 노려 마법을 파훼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힘으로 화염을 무력화시켰다.

“솔직히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재능은 괜찮은 편이지. 가르쳐 주면 핵심을 곧잘 이해하고.”

“재능뿐 아니라, 의지도 대단하십니다.”

"그래?”

“예, 보통 큰 공격이 무력화되면 사람들은 대개 주춤하는데, 데릭 씨께선 허공에 흩어진 화염을 몸에 두른 채 연이어 공격하셨거든요. 보통 투지가 아니면 힘듭니다.”

과장도, 폄하도 하지 않고 올리버는 자신이 느낀 바를 말했다.

케빈은 그런 올리버를 관찰하듯 빤히 바라봤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무엇이 말씀인지요?”

“별거 아니야……. 일단, 네 말은 부정하지는 않지. 데릭 그 녀석. 거만하지만 그만큼 근성도 있는 녀석이긴 했으니. 지는 게 싫은지, 조금만 긁어주면 수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따라왔고. 다만, 의지라는 건 여러 가지가 있어.”

“여러 가지요?”

“그래. 자신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그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과 고역도 이길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부심이 꺾이면 그 의지도 같이 꺾일 수 있거든. 아주 연약하게.”

“데릭 씨께서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마법사도 아닌 교수 개인 직원과 비등비등하게 싸워 모두에게 의심받던 중, 도시의 부호들이 모인 파티에서 웬 흑마법사에게 망신을 당했으니까.”

“좀 지난 이야기 아닙니까?”

“문제는 아직 거기서 못 벗어났다는 거지. 뭐,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야. 어설픈 천재의 숙명 같은 거니까. 진짜 천재를 만나 절망하고, 주변의 실망과 비웃음을 들어야 하는…….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수업에 안 나오고 있는 거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리버는 과거 노획한 전격 마법사와 에이드리의 일기와 연구 일지 내용이 떠올렸다.

재능이 있어 마탑에 들어왔지만, 재능이 밑천을 드러내자 쫓겨난 자들.

그 충격은 상당히 큰 것으로 추측됐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주변의 눈총, 수근거림……. 올리버가 감히 상상할수 없는……

그럼에도 그들은 마탑의 뒷거래에까지 손대면서까지 발버둥 쳤으나, 결국, 길거리로 내몰렸고, 제각기 음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봐야만 했다. 처절했지만, 그만큼 존경스러웠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지?”

“그냥……. 과거 노획한 마법사분들의 일기와 연구일지가 떠올라서요.”

“무슨 내용일지 예상이 가는군. 그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

"데릭 씨도……. 쫓겨나실까요?”

“본가에서 지원을 끊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마탑의 학비는 비싸니까.”

“본가에서 지원을 끊을까요?”

“가능성은 꽤 높지. 데릭 때문에 준비 중이던 화력 발전 투자가 결국 엎어졌거든. 그런 와중에 본인도 저런 상태면……. 더 이상 투자하기 힘들지.”

그 말은 즉 지원을 끊을 수 있다는 거고, 데릭 역시 길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거였다.

뭐, 그것도 하나의 길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올리버는 자신이 교수 개인 직원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교수님께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뭘?”

“데릭 씨께서 그렇게 방치되는 것 말입니다. 교수님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아직 단어를 제대로 숙지 못했나 보군. 마법사에게 있어 제자와 스승이란 특별한 관계야. 서로가 정식으로 이야기를 나눠 동의를 구해야만 성립 되는 관계이지. 데릭은 내 제자가 아니야. 그냥 내 수업을 듣는 여러 수강생 중 하나일 뿐이지.”

"그럼, 데릭 씨가 안타깝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넌 안타깝나?”

“네, 재능도 있고, 의지도 있는데 저렇게 쉽게 꺾이면……. 좀 아깝지 않습니까?”

“네가 데릭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는데?”

“교수님 수업을 듣는 제……. 아니, 수강생이고, 전 교수님 개인 직원이니까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케빈이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관찰하듯.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난 관심 없어. 이렇게 꺾일 놈이면 원래 그런 놈인 거니까. 허나, 네가 돕겠다면 딱히 말리지 않지. 할수 있는 건 없겠지만."

케빈이 차갑게 말했다.

올리버의 능력을 의심하기보다는 데릭의 성격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당사자 협조에 응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으니까.

허나, 올리버의 반응은 단순했다.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요.”

"단순해서 좋겠군……. 오늘 바로 만나러 갈 건가?”

올리버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곧 퇴근 시간이라 힘들 것 같습니다. 먼저 갈 곳이 있거든요.”

올리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

“여깁니다.”

란다의 밤. 올리버는 옆구리에 상자를 끼고, 한 거지의 안내를 받아 미로와 같은 하수도를 돌아 한 거대한 공간에 도착했다.

다름 아닌 가난한 형제들의 새로운 거처였다.

셰이머스의 습격으로 위치가 노출된 탓에 캔트는 기존의 거처를 버리고 새로운 거처로 옮겼다.

이를 증명하듯 해당 공간은 아직 어수선했다.

가난한 형제들에 소속된 남성들은 좁다란 통로에 시멘트로 채운 드럼통을 세워 엄폐물을 만드는가 하면, 여자와 아이들은 힘을 합쳐 텐트를 설치했다.

올리버는 그들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갔고, 그중 가장 큰 텐트 앞에 도착했다.

다름 아닌 가난한 형제들의 대가리 캔트의 텐트였다.

“자네 왔나?”

올리버를 안내해준 거지가 캔트를 불렀고, 캔트는 쿼터스태프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옛날처럼 비니와 롱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한쪽 소매가 축 늘어져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캔트 님.”

올리버는 그를 보자마자 인사했고, 캔트는 웃으며 받아줬다.

길 안내를 해준 거지는 바로 빠져줬으며, 캔트는 그에게 수고했다곤 말하며 배웅하곤, 올리버를 텐트 안으로 불러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고말고. 남들 다 일할 때 쉬고 있지 않나? 어쨌건 걱정해줘서 고맙네. 그건 술인가?”

캔트는 올리버가 가져온 상자를 가리키며 실없이 농담했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올리버의 걱정을 덜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아뇨……. 다치셨을 때 술을 마시면 회복이 더디다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쉽군……. 그럼, 뭔지 물어봐도되나?”

“의수(議手)입니다.”

올리버가 대답과 함께 상자를 열었다.

“그냥 의수가 아닌 것 같은데?”

“골렘 의수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상자 안에는 나무나 고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진 팔이 있었다. 마력과 돌로 이뤄진 팔이 말이다.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닌 거로 아는데.”

“그래서 성능이 확실하죠. 받아주시겠습니까?”

캔트는 자신에게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올리버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히 받도록 하겠네. 내일 곧바로 기술자에게 찾아가서 시술받도록 하지.”

올리버가 품에서 명함과 영수증을 내밀었다.

“이 제품을 산 곳입니다. 영수증과 함께 가져가면 그냥 시술해줄 겁니다.”

“배려 고맙군……. 골렘 의수 시술이 몹시 아프다고 하던데.”

“예, 그렇다더군요. 생살을 찢어서 신경과 골렘 부품을 연결해 몹시 아프다고 합니다.”

올리버가 아서의 말을 토대로 대답했다. 캔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고맙군. 덕분에 용기가 생겼어.”

“하지만 시술만 성공하면 원래 팔보다 훨씬 편하다고 합니다. 앉은자리에서 멀리 있는 물건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고요.”

“그거 포기하기 힘든 이점이군. 용기 내서 받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도움을 받은 건 내 쪽인데……. 혹시, 이것만 전해주려고 온 건가?”

캔트가 뭔가를 꿰뚫어 본 듯 질문했다.

"사실, 여쭤볼 것도 있어 왔습니다.”

“뭔가?”

“뭘 보수로 받으셨습니까.”

“보수?”

“예, ABC 건요. 가만 생각해보니, 캔트님께서 이렇게 위험한 일까지 한 게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닌 것 같아서요.”

꽤나 정확한 판단이었다. 가난한 형제는 길거리와 술집, 음식점, 호텔, 택시 등지에서 온갖 이야기를 엿들어 파는 제법 거대한 조직이었지만, 뿌리는 도시의 빈민.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캔트도 이 사실을 알기에 늘 깊게 개입하지 않았고 아슬아슬한 선에서 활동했다.

이 도시에서 빈민의 죽음을 슬퍼해 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셰이머스 건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왜 궁금한가?”

"그냥 평소 캔트 님 답지 않은 결정이라, 조금 궁금해서요. 말씀하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선물까지 받은 마당에 이야기 안 하면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잖아. 설마, 그걸 노리고 가져온 건가?”

“예? 아……. 예.”

올리버가 캔트의 감정을 보고 농담인 걸 깨달으며 뒤늦게 맞장구쳤다.

상당히 어색했으나, 캔트는 웃어주었다.

“허허, 자네도 이제 농담을 할 줄 알게 됐군.”

“잠자기 전에 30분씩 공부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농담인가?”

“아뇨, 진짜입니다.”

“아……. 좀 더 노력해야 할 거 같구만.”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제법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게.”

“아,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원래 주제로 넘어가지. 내가 받은 대가를 알고 싶다고 했나?"

“예……. 물론, 곤란하신 거면-”

“-딱히, 곤란한거 아니야. 그저 시(市)의 예산을 받을 수 있는 복지단체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였으니.”

“복지단체요?”

“그렇네. 거지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구빈원이나, 순간의 불행으로 수입이 끊겨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잠시 재정비할 기회를 주는 쉼터 말이야. 시에서 이걸 조건으로 내걸었거든. 일정 기간 동안 시(市)에서 예산을 줄 테니, 원한다면 만들어서 운영해보라고.”

“그거 때문에 ABC에 임무를 수락하신 겁니까?”

“그래,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거든.”

“음……. 그럼, 받으셨습니까?”

“기간과 액수를 두고 협상 중이네.”

"협상 안 하고 수락하신 겁니까?”

“그렇게 됐네. 바보 같긴 하지만, 때때로 그런 선택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거든.”

캔트가 그리 대답했다. 솔직히 올리버도 뭐라 말할 처지는 못 됐다. 애당초 올리버도 제대로 된 보수를 약속받고 일한 게 아니었으니.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네.”

올리버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캔트가 말을 잘랐다.

“뭐가 괜찮으시다는 건지요?”

“도와주겠다고 할 생각 아니었나?”

캔트가 올리버의 속을 훤히 꿰뚫어 봤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글쎄,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캔트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나도 귀가 있어 자네 요즘 명성에 대해서는 듣고 있으니. 셰이머스를 혼자서 쓰러뜨렸다고?”

“복수는 아니고, 그냥 일이었습니다.”

“아네, 애당초 해결사 일을 알선해 준 게 나니 일일이 뭐라 할 생각 없어……. 아마, 자네가 나서준다면 시(市)는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맞춰 줄거야. 시(市)는 강자를 좋아하니. 하지만 그러지 말게.”

“이유가 있나요?”

“과도한 도움은 독이 되기 때문일세.”

“예?”

“과도한 도움은 독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네. 아기가 제 발로 일어서기 힘들어한다고, 계속 도와주면 아기는 결국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못 터득하지 못하거든. 물론, 이미 자네에게 도움을 수차례 받았지만, 이번 건은 우리끼리 할 수 있어. 그 과정이 다소 힘들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 힘으로 해야 하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어.”

“오…….뭔가 멋있는 말이군요.”

"그렇지? 사제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응용한 걸세.”

“사제님요?”

“그래, 거지패로 날 거둬준 사제님. 그분이 말씀하시길 신께서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할 머리와 스스로 움직일 두 팔다리를 준 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라 하더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위해. 그러니, 도움은 마지막의 마지막 수단이라 하셨네.”

“오, 더 멋있는 말이네요.”

“그렇지? 그러니 지금은 자네 도움 사양하겠네……. 나중에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도움을 청하겠네. 그때 도와줄 수 있겠나?”

“음……. 봐가면서요.”

“그거면 충분하네.”

캔트는 진심으로 만족했다.

이후로 올리버와 캔트는 공적이 아닌 사적인 짤막한 잡담을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본능적으로 서로의 일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건전한 거리감을 위해 말이다.

슬슬 이야깃거리가 바닥날 때쯤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술을 가져왔으면 좋겠네.”

“상처가 다 나으시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가려는 그때, 캔트가 올리버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꼭 나를 통해 안 해도 되네.”

“……예?”

“누굴 돕는다는 행위 말일세. 꼭 나를 통하지 않아도 되네. 사실 나도 이런 거 잘못해.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뿐이지."

"……딱히, 그럴 생각은 아니지만, 그럼 누굴 도와야죠?”

“자네 눈에 띄는 사람. 좋은 일에 최선이 어딨겠나? 일단, 하고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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