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 임무가 끝나고 (1) >
아르크 고아원.
카버가 준 파일 정보에 따르면 성기사 요안나는 갈로스의 아르크 지방, 아르크 고아원 출신이라 하였다.
추운 겨울, 고아원에 덩그러니 버려진 그녀는 그곳에서 자랐으며, 어린아이임에도 남들과 다른 밝은 성정과 배려심, 정의관,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녀, 고아원 모두가 의지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지역 사제의 눈에 될 만큼 말이다.
지역 사제는 요안나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성기사 시험을 치르게 했으며, 거기서 높은 재능을 보이자 바로 성기사 후보생으로 발탁되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시험인지는 모르며, 교단에서 어떤 훈련을 받는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요안나가 성기사 후보생으로 간 덕분에 파테르교에서 아르크 고아원에 기부를 시작했다는 건 확실하지요.’
카버는 친절하게도 아르크 고아원의 재정명세와 사진, 고아원 사람 등을 철저하게 조사해주었다.
요안나 덕분에 경제적 여유가 생긴 아르크 고아원은 아이들의 숫자를 늘렸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 고아원을 벗어난 이후에도 정당한 생계수단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했다.
‘보기 드물 정도로 건실한 고아원입니다. 가축처럼 키우는 게 아닌 생계수단까지 마련해 줬으니까요. 이건, 시(市)에서도 보고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올리버는 파일에 있는 고아원 사람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그때, 카버가 말했다.
‘뭐, 갑자기 사정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요.’
‘예?’
‘갑자기 파테르교에서 기부금을 줄인 덕분에 상황이 다소 안 좋아진 상태입니다. 지원이 늘어난 만큼 아이들을 늘리고, 교육 비용 등을 늘렸는데, 갑자기 지원이 줄었으니 당연한 거지만요.’
예상치 못한 소식에 올리버는 어째서인지 물어봤지만, 카버는 어깨만 으쓱 일 뿐이었다.
‘그거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사적인 정보라……. 다만, 세속적 관점에서 추측할 수는 있죠.’
‘추측요?’
‘예, 돈을 줄인다는 건 더이상 돈 줄 이유가 없거나, 혹은, 괴롭게 해 길들이려는 거거든요.’
제법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돈만큼 평화롭게 사람을 옥죌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
다만, 왜 갑자기 요안나의 목을 옥죄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이에 잠시 고민하자 과거 엘튼 성기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요안나와 짝을 이루던 성기사 말이다.
그는 파테르교가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조직이라 설명하며, 때때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은 자는 꺾이고 만다고 말이다.
‘요안나. 그 아이는 마법사가 끔찍한 인체 실험을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몇 개월에 걸쳐 상부에 주장했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났다…….'
성기사 앨튼은 분명 그렇게 말했고, 이건 일종의 좌천이라고 했다.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자에 대한.
올리버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고아원의 기부금을 줄인 것 역시 그 좌천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많이 힘든가요?’
‘보통 고아원은 많이 힘들죠……. 원하신다면 좀 더 조사해 드리겠습니다. 고아원 사정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 주실 수 있나요?’
‘비공식 동맹을 위한 선물 정도면 싸게 먹히는 셈이니, 물론이죠.’
‘음, 그럼-’
“-다시 출근하는 건가?”
마탑. 원소학파 타워 가장 구석에 있는 교수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올리버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케빈이 서 있었다.
마탑의 마스터이자, 교수, 멀린의 제자 케빈 던바 말이다.
실로 오랜만의 출근이었지만, 그는 올리버에게 그렇다 할 불쾌함이나 짜증을 품지 않았다.
“예, 교수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케빈은 그런 올리버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교수 연구실 문을 열며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ABC 건은 다 끝났나?”
올리버가 문을 닫자, 케빈은 방음 마법을 자연스럽게 펼치며 질문했다.
“오해하지 마. 내가 조사한 게 아니라, 소문이 멋대로 내 귀에 들어온 거니까.”
“소문요?”
“설마, 조 단위 금융사기가 일어났는데, 마탑이 못 들었을 것 같나?”
“아……."
“심지어 그 조 단위 사기가, 드루이드와 세계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지……. 당연히, 세계수를 다루고, 감정과 마력을 섞으며, 자연의 힘까지 추출해 사용하는 흑마법사 이야기도 들을 수밖에 없고.”
“아아……."
올리버가 다시 한번 소리 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때 정신이 없어 주변의 눈을 너무 과할 정도로 신경 안 쓴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과했던 거 같습니다.”
“조금?”
케빈은 올리버의 말을 되짚으며 말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으니, 정작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올리버가 다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사과할 건 아니지…….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네 일이니까. 다만,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더군. 란다에서 강력한 힘은 무기이지만 동시에 표적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야.”
"거기에 관해서 거래하고 있는 중개인께 들었습니다.”
“그럼, 더 이상 입 아프게 이야기 안 해도 되겠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몇몇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야.”
“……많이 심각한 겁니까?”
“심각까지는 아니야. 그저 소문이 퍼진 상태에서 몇몇 관심을 가진 사람만 생긴 정도니까. 기껏해야 마법사나 학생들 사적으로 협력해 널 습격하는 정도겠지.”
“아, 그럼 다행이네요.”
전혀 다행히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그리 반응했다.
“다행?”
“아, 다름이 아니라, 한동안 해결사 일은 좀 쉴 생각이라서요.”
“음……. 좋은 생각이군. 활동이 멈추면 그만큼 언급도 줄 테고, 위험도 줄 테니. 그동안 뭘 할 거지?”
“일단, 그동안 쉬었던 만큼 마탑 일을 열심히 해볼까 합니다.”
“휴가를 이렇게 사용한 시점에서 열심히는 물 건너간 게 아닐까? 거기다 곧 방학이고 말이야.”
“……방학요?”
“그래, 방학. 이번 학기는 곧 끝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올리버는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방학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벌써 그 시간이 왔다니. 시간이란 게 참으로 빠른 것 같았다.
“그럼, 전 할 게 없나요?”
“그건, 아니야. 방학 기간에도 난 연구를 계속할 거거든.”
“저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상관은 없지만, 왜 돕겠다는 거지?”
“교수님 연구를 돕는 게 재밌을 거 같고, 제가 배울 것도 많을 거라고 생각돼서요. 또, 급여를 계속 받고 있는데,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도 그렇고요."
올리버가 솔직히 대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건방질 수 있는 발언이었으나, 말하는 이가 올리버가 보니, 케빈은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냥 올리버답다는 생각을 했다.
"뭐, 좋아. 때마침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있으니.”
“저한테요?”
“그래. 셰이머스 임무에 관한 거라던가, 감정 마력을 어떻게 섞은 건지, 또, 드루이드의 힘은 언제부터 사용할수 있었는지 궁금하거든.”
전부 설명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질문.
올리버는 고민 끝에 가장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답했다.
“드루이드 힘에 관해서는 제가 딱히 대답해 드릴 게 없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추출했는데, 추출된 거라서요.”
“그냥 해봤는데, 됐다?”
“예.”
“……내가 듣기로 셰이머스의 기술을 똑같이 흉내 냈다고 하던데, 그것도 그냥 한 거야?”
“예, 정확히는 셰이머스 님을 똑같이 흉내 낸 거지만요.”
마치, 그게 뭐 그리 힘드냐는 말투였다. 실제로 그런 뜻이기도 했고.
올리버가 한 거라고는 셰이머스가 한 걸 자신의 맞게 변형시켜 똑같이 흉내 낸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가 찬 대답일 뿐이었다.
“ABC 임무는 비밀 유지를 해야 해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 외의 것이라면 보고서를 써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말이죠."
"음....... 됐어. 어차피 나도 내 일이 있어, 당장은 못 살펴보니까. 스승님이 돌아오시면 그때 듣도록 하지."
“아, 예……. 어르신은 아직 안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네. 하지만 곧 돌아올 거야……. 일단, 나가봐. 학생들 중간 평가해야 하니.”
케빈이 허리에 낀 공책을 책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그는 수업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업 성과를 확인, 그에 맞춰 수업 내용을 조정하거나, 때때로 다시 가르치기도 했다.
학생들과 마탑에 대한 감정은 좋지 못하지만, 그와 별개로 성실한 태도만큼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케빈이 일할 수 있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케빈이 올리버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네, 교수님?”
“할 이야기가 많아 이 말 전한다는 걸 깜빡했다.”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펠릭스 기억나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 소학파 소속이자, <마법 전투 기초>의 수강생, 케빈의 수업을 따라갈 실력이 되지 못해 올리버와 같이 기초 훈련을 했으며, 올리버가 셰이머스 건으로 휴가를 내기 직전 감을 잡게 도와준 학생.
“네가 떠나고 며칠 후, 실력이 급상승해 내 수업으로 넘어왔어.”
“오, 그렇습니까?”
“약간 기분 좋아 보이는군.”
“성취는 큰 기쁨이니까요.”
올리버가 여느 때와 같이 솔직히 말했다. 방금 말마따나 성취는 큰 기쁨이었으니.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성취마저 말이다. 타인의 성취를 보고, 자신 역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셰어머스의 성장이 올리버의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이 대표적 예시였다.
올리버는 호기심이 일었다.
“실력이 많이 좋아지셨나요?”
“그래, 체력이나 마력량은 괜찮았지만, 마력 통제능력에서 늘 발목이 붙잡혔는데, 그게 해결됐거든. 마력을 더 빠르고 유연하게 사용하게 됐고, 거기에 마법의 연계도 좋아졌고. 계속 막히던 부분이 뚫리자 그만큼 빠르게 실력이 향상돼 눈에 띄게 실력이 좋아졌어.”
“그거 다행이네요.”
“다만, 그거 때문에 또 너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어. 펠릭스가 입을 다물긴 했지만, 너랑 몇 번 만난 걸 주변에서 봤거든. 네가 뭔가 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고 애들이 몇몇 있어.”
다행히 펠릭스가 약속을 지켜준 것 같았다.
펠릭스를 봐주고 나서 올리버는 그에게 혹시 무슨 성과가 있어도 케빈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근데, 왜 먼 동방의 사막 땅에서 건너온 방법이라고 한 거야?”
“어르신께서 동방이나, 사막을 이야기하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합쳤습니다. 둘 다 좋은 거니, 합치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돼서요.”
"놀라운 사고방식이군…... 어쨌건 그거 때문에 몇몇이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올 거야. 조용히 처신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저도 남용할 생각은 없으니, 시키신 대로 가만히 있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가봐.”
“저기……. 괜찮으시다면, 질문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올리버가 케빈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펠릭스 씨는 그럼 성적을 어느 정도 받게 될까요?”
올리버가 필렉스의 성과가 궁금해 물어봤다.
펠릭스가 케빈의 수업을 듣게 된 것은 대단하지만, 이미 케빈의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도 상당수 되니.
“이대로 계속 노력하면 마지막 시험에서는 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때마침, 한 녀석이 포기해서 더 수월하지.”
“포기했다고요? 누가요?”
올리버가 케빈의 수업을 떠올리며 의문을 가졌다.
케빈이 홍인(紅人)이라는 이유로, 적잖은 이들이 케빈의 수업을 우습게 봤지만, 케빈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에 점점 동화돼 개인적 호감과 별개로 다들 수업은 열심히 따라왔다.
그런데, 갑자기 포기한 사람이 나온다니. 이해가 안 됐다.
“데릭 레드힐. 그 녀석은 아무래도 벽에 막힌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