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93화 (293/633)

< 293. 싸움이 끝나고 (2) >

알버트를 비롯한 모이라이 학파의 마법사 다수가 세계수 통나무를 둘러싸 마력을 주입, 저장된 정보를 살펴보았다.

숲 주변을 가득 메운 무장 병력은 긴장한 채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도 그럴 게, 3조……. 정확히는 3조 1302억 5500만 란다란 돈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거기에 정치적,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그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다.

시(市)는 방만한 운영을 트집 잡혀 중앙의회에 자유도시 지위를 빼앗길지도 몰랐고, 크라임 펌과 시스터후드 역시 자칫 셰이머스와 엮여 때아닌 재앙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물론, 핑크맨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일의 사이즈가 사이즈다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가 다른 생각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올리버가 몇몇 핑크맨 간부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다소 타산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고용주인 카버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때, 모이라이 학파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접속을 중단했다.

저장된 정보의 양이 상당했는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어떻습니까?”

시(市) 공무원 카버가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올리버가 말한 대로, 통나무에는 셰이머스가 빼돌린 돈의 위치와 다른 엔조이먼트의 검은돈 흔적이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알버트가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고는 올리버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데이브 씨가 알려주신 대로 무기명 통장과 통장을 보관한 비밀 금고의 위치, 각각 필요한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말이죠.”

알버트는 대답과 함께 의문과 감탄, 그리고 낯선 존재를 마주한 듯한 미지의 공포를 빛냈다.

모두 올리버를 향한 감정이었다.

“오, 신이시여……. 란다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버가 진심으로 안도했는지, 마음속 구석 희미하게 남아있는 신앙심을 빛내 성호를 그었다.

“……혹시 그것도 있습니까? 다른 엔조이먼트가 사기 친 흔적이요.”

놀랍게도 카버는 초조와 공포, 위기, 안도 등 하룻밤도 안돼 극심한 감정의 격차를 느껴 피곤한 와중, 다시 열정을 빛내며 자신의 손에 들어온 카드를 파악하려 했다.

알버트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올리버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크레이그라는 드루이드와 다른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들이 해외에서 행한 사기 수법과 관련 자금에 관한 흔적이 대략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확답을 듣자마자 카버는 피로를 한쪽으로 밀어내 머리를 바삐 굴렸다.

그의 감정은 예상 이상의 성과에 대한 기쁨과 이를 이용할 타산적 감정 등으로 번쩍번쩍 복잡하고 빠르게 빛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혹시, 모를 의심과 의문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카버는 올리버를 바라봤고, 올리버 그런 카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문제없습니까?”

“예,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데이브 씨. 란다가 당신께 큰 빚을 졌습니다. 정말 대단하고, 감사합니다.”

카버는 올리버에게 고마움과 두려움 등. 여러 상충된 감정을 느껴 혼란한 와중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올리버에게 궁금한 게 참으로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올리버 덕분에 이번 임무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거니까.

“제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카버는 고개를 저었다.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고, 감사받아 마땅합니다. 혼자서 임무를 성공시킨 것도 대단하지만, 3조란 돈의 행방을 알면서도 순순히 자리를 지켜주신 거요…….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었을 텐데, 란다는 당신께 두 번이나 큰 도움을 받은 겁니다.”

“제 돈이 아니니까요……. 어쨌건 말씀은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겸손도 과시도 아닌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3조가 매우 큰 돈이라는 것과 약속을 어겨가며 가지고 싶은 건 별개였으니.

허나,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지 기관단총을 든 갱이나, 마법 장비로 무장한 핑크맨, 보안국 팀장 등 적잖은 이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몰이해의 감정을 품으며 올리버를 봤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3조란 돈은 한 개인의 양심은 물론 인간성을 팔아서라도 차지할만한 액수였으니까.

애당초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 모두 돈 때문에 있는 거였고.

그런데, 그런 돈을 챙길 기회와 능력이 있음에도 챙기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저게 뭔가 싶은 의구심마저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카버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올리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후 저 세계수 통나무에서 나온 정보를 확인할 때 도움을-”

“-저기 카버 씨?”

모이라이 학파의 중년 마법사 중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으나, 속은 의문과 초조를 빛내고 있었다. 특히, 초조라는 감정을 심하게 빛냈다.

"……예, 게리 씨?”

중년 마법사의 이름은 게리인 듯했다.

“괜찮으시다면, 슬슬 우리가 말 좀 해도 되겠습니까? 우리도 우리 일이 있어 말이죠.”

카버는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아……하고 탄성을 내뱉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이라이 학파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닌,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시(市)와 잠시 손을 잡은 동업자에 더 가까웠으니.

터벅. 터벅. 터벅. 중년 마법사 게리가 올리버 앞에 다가왔다.

분위기상 그가 여기 온 마법사 중 가장 계급이 높은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브 씨. 모이라이 학파의 마스터 게리 헤스라고 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게리 님.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 나도 반갑습니다. 데이브 씨의 명성은 익히 들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까 누구에게 부탁해 셰이머스에 관한 정보를 파헤쳤다고 했는데, 뭡니까? 그 존재가 저기 자료도 저렇게 정리한 겁니까?”

게리 헤스가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칭했다.

거기에 감정 상태 역시 의문에 대한 질문이 아닌, 예측에 대한 확인에 더 가까웠다.

“예."

“뭐가……. 저걸 저렇게 했죠? 뭐에 부탁한 겁니까?”

“음……. 이브(Eve)요?”

“이브(Eve)를 아는 겁니까?”

게리의 뒤에 서 있던 알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는 놀랐다. 그것도 몹시.

올리버는 그 반응을 살피며 적당히 둘러댔다.

“글쎄요……? 그분이 스스로 이브(Eve)라고 자길 이야기해서요. 확신이 있는 거 같지는 않지만요.”

올리버가 세계수에 접속한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셰이머스를 해치우고, 호기심에 따라 세계수에 접속해 하늘도 땅도 없는 밤하늘처럼 검은 허공 세계에 진입한 그때를.

올리버는 그곳에서 묶여 있는 한 존재를 발견했다.

무수한 마력과 약간의 감정, 자연의 힘이 뒤섞인 에너지 덩어리를 말이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으며, 형체가 없는 만큼 불안정한 상태였다.

자신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으며, 그저 드루이드들이 붙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브(Eve)란 이름만 알고 있었다.

‘이브(Eve). 어르신이 주신 서적 [세계수 진화론]에 나오는 이름. 과도한 정보량이 축적되고 축적돼 특이점이 발현돼 생기는 인공적인 의지 혹은 자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생길 가능성이 높아, 모두 이브(Eve)라고 임의로 부르기로 했지. 마법사와 드루이드 모두가.’

책에서는 그 이브가 세계수를 한 단계……. 어쩌면 몇 단계를 더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 추측하며, 그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할지 이야기 했는데,

그래서인지 드루이드들은 행여 놓칠까 싶어 이브를 철저하게 구속했다. 그들의 이념과 자존심에 맞지 않는 기계까지 사용하면서 말이다.

허나, 그건 실수인 듯했다.

이브는 구속된 탓인지, 몹시도 포악해졌으며,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모이라이 학파 게리가 태연한 척 연기도 하지 못한 채 물었다.

“풀어줬습니다.”

"......."

게리를 포함한 모두가 침묵했다.

입은 꾹 다물고, 눈은 사백안(四白眼)이 될 정도로 크게 뜨며.

사람 표정이 잘구분이 안 됐지만, 꽤 심각해 보였다. 실제로 감정 상태도 꽤 심각했다.

충격, 의심, 분노 등으로.

게리다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풀어줬다고 했습니다.”

“……왜?”

“음……. 많이 불편해 보여서요?”

올리버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실제로, 드루이드에게 묶인 이브는 말이 묶여 있는 거였지, 거미에게 붙잡힌 먹이처럼 칭칭 감긴 상태라, 형체가 없는 에너지 덩어리임에도 답답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올리버 나름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지만, 게리는 동의하지 않는지 냅다 올리버의 양어깨를 잡았다.

무슨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본능적으로 잡은 것에 더 가까웠다.

“불편해 보여……? 고작, 그따위 이유로 이브를 그냥 풀어줬다고??!!”

“그냥 풀어준 것은 아닙니다.”

"......??"

“풀어주는 조건으로 저기 세계수 통나무에 있는 정보를 찾아, 정리해 옮겨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임무를 위한 일종의 거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올리버의 어깨를 꽉 잡던 게리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올리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는 이브를 잃었다는 사실에 크나큰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느꼈으며, 동시에 그 원흉인 올리버에게 그 이상의 분노와 원망, 증오를 빛냈다.

“이거……. 보기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조가 올리버의 멱살을 잡은 게리의 팔을 움켜잡으며 끼어들었다.

란다 음지의 지배자인 크라임 펌과 전속 거래를 한 덕분인지, 과거보다 훨씬 예를 잘 갖췄다.

속마음은 전혀 아니었지만.

‘왜 화가 나신 거지?’

올리버가 조의 감정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감히, 깡패 새끼가- 큭!”

조는 게리 못지않은 분노와 불쾌감을 빛내며 손에 힘을 줬고, 그 악력에 의해 게리는 손이 우그러드는 통증을 맛봤다.

신체적 위협을 느낀 게리는 마력을 이용해 조의 손을 뿌리친 다음, 마법을 시전하려 했고, 조 역시 멈추지 않고 능숙하게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갑옷처럼 겹겹이 몸에 둘렀다.

흡사, 외골격 장갑처럼 위압적. 조는 올리버가 없이도 계속 수련해 기술의 숙련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맞게 사용법을 개선한 듯했다. 대단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게리와 조 사이에 쿼터스태프를 끼워 넣어 흑마법을 발동했다.

[보레시티(Voracity)]

올리버가 얼마 남지 않은 감정을 사용해 쿼터스태프 끝에 작은 입을 몇 개 만들어, 조의 흑마법을 흡수한 다음, 해당 흑마법을 분해해 감정으로 되돌리곤 보레시티를 강화, 게리의 마법까지 흡수했다.

단계는 꽤 나뉘었지만, 전개 속도가 빨랐기에 두 사람은 곧 무장해제 상태가 되었다.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

"......!"

눈 깜짝할 새 무장해제된 조와 게리.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 모두 올리버의 기교에 놀랐다.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동시에 무력화시키는 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기에.

거기에 둘 다 실력자라면 그 어려움은 배가 됐다.

셰이머스도 홀로 제압한 해결사이니,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였다.

올리버가 말했다.

"두 분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건 좋지 못하다고 배워서요.”

그 무심한 한마디에 달궈졌던 공기는 빠르게 식어갔다.

조가 올리버를 살피더니, 먼저 사과했고, 게리 역시 알버트의 귓속말을 듣고는 마지못해 사과했다.

올리버의 멱살을 붙잡은 것을 포함해 말이다.

“그……. 죄송합니다.”

“아뇨, 제 잘못인데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피곤해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어느 정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실제로 셰이머스를 쓰러트린 후 피로가 밀려왔고, 이브를 확인하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그 부탁을 들어줬다.

아마, 피곤해 실수한 듯했다.

“이제 제가 좀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던 올리버와 모이라이 학파 마법사 사이로, 시(市) 공무원 카버가 끼어들었다.

“서로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건 알지만, 이제 동이 틀 시간이니. 일단, 란다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까 전 전투 탓에 이곳에 사람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그 말에 모두 남색으로 물드는 하늘과 뒤집히다시피 한 숲을 둘러봤다.

모두 자리를 피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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