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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92화 (292/633)

< 292. 싸움이 끝나고 (1) >

“크아아아아아아악!!”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두른 던칸이 허공에서 셰이머스와 충돌했다.

셰이머스는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며 팔을 내질렀으나, 흑마법으로 된 장갑(裝甲)을 두른 던칸은 능숙하게 톤파를 방패 삼아 셰이머스의 공격을 흘려버렸다.

허공에서 허무하게 터지는 충격파.

셰이머스는 눈을 번쩍 뜰만큼 놀랬다.

힘을 흘린다는 것도 최소한의 힘이 받쳐 줘야 가능한 법.

그런데 자신의 공격이 일개 송장인형에게 막힌 게 어지간히 충격인 듯했다.

놀라긴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던칸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그와 별개로 힘의 크기 자체는 셰이머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났기에.

‘기술이 먹히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지금 먹히고 있었다.

올리버가 씌워준 블랙 슈트와 아머 그리고 이완이 만들어준 고기 톤파 덕분에 말이다. 기대 이상의 성능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던칸이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며 발로 셰이머스를 걷어찼다.

도약이 막히고, 추진력까지 잃은 셰이머스는 그대로 추락, 반대로 던칸은 중력을 추진력 삼아 셰이머스를 향해 돌진했다.

아까 전과 정반대가 되어버린 상황.

셰이머스는 콩 줄기를 채찍처럼 휘둘러, 나무 거인의 몸에 들러붙으려 했지만, 이미 거리를 좁힌 던칸이 톤파를 휘둘러 콩 줄기를 가볍게 끊어버렸다.

“이런 개……!”

셰이머스는 분노하며, 코앞에 다가온 던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강력한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자세 탓에 공격은 어설폈고, 던칸은 다시 한번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했다.

톤파를 쥔 채 주먹을 내지르고, 팔을 당겨 채찍처럼 휘갈기는가 하면, 재빠르게 바꿔 잡아 도끼처럼 찍고, 갈고리처럼 팔을 걸어 잡아당겼다.

"......!!!"

톤파에 의해 가드가 내려가자 셰이머스의 가슴속에 서서히 공포가 빛났다. 그 틈새 사이로 던칸은 반대쪽 톤파를 똑바로 고쳐 잡아 셰이머스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그 일격이 먹힘과 동시에 셰이머스와 던칸은 숲 아래로 추락했다.

쾅——!!

***

쿠룽……!! 쿠투루루투루루루……!! 쿵!! 콰릉!! 콰롸롸롸라라랑一!!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거인의 뼈와 살이 되어주던, 나무줄기와 뿌리, 흙, 풀은 그 힘을 잃고 아래로 흘러내려 갔으며, 그 여파로 숲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괜찮으시면 저기 좀 내려주실 수 있나요?”

숲을 뒤덮은 흙먼지가 점차 가라앉을 때쯤 올리버가 한 곳을 콕 짚으며 부탁했다.

던칸과 셰이머스가 떨어진 자리이자, 기이한 기운 두 개가 느껴지는 숲 중앙이었다.

올리버의 부탁을 받은 나무 거인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 무릎을 끓으며 올리버 앞으로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올리버는 그 손 위에 올라타 천천히 땅 위로 내려갔다.

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올리버는 나무 거인의 손에서 내리며 감사를 표했고, 나무 거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원래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자욱하게 이는 흙먼지.

주변을 둘러보자 여러 가지가 보였다.

첫 번째로, 보인 것은 거대한 세계수로, 세계수 주변에는 여러 기계 장치와 세계수로 만든 통나무가 있었다.

두 번째로 보인 것은 수많은 시체로 쌓은 제단. 이 역시 범상치 않은 물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가장 시선을 끄는 건 가슴에 구멍이 난 셰이머스와 그 주변에 널브러진 몇몇 드루이드의 시체였다.

상당수의 드루이드가 셰이머스의 패배를 보고 도망치던 와중, 이들 소수는 어떻게든 셰이머스를 구하기 위해 던칸에게 덤볐다.

비록, 셰이머스를 지원하느라 힘을 다 소진해 던칸에게 죽긴 했지만……. 아무래도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부하들 전부가 셰이머스의 힘과 돈만 보고 복종한 건 아닌 듯했다.

올리버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패배가 확실히 갈린 와중에도 목숨을 걸려면 돈과 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음......."

올리버는 주변에 널린 드루이드의 시체를 지나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죽어가는 셰이머스를 내려다보며 침음성을 냈다.

상처는 치명적이었고, 힘도 거의 다 소진한 터라 회복은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셰이머스는 단순히 공포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물론, 통증과 코앞에 다가온 죽음 탓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물들었지만, 그 사이에서 꺾이지 않는 강렬한 목적의식과 의지 등이 빛나고 있었다.

아주 아름다웠다.

“컥……! 커억……! 왜……? 왜 하필……지금……? 왜?”

죽어가는 셰이머스는 의문과 억울함을 빛내며 올리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도움을 구하는 건지, 목을 조르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을.

올리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천천히 손을 뻗어 셰이머스의 가슴에 대고 감정을 추출했다.

슈화아아……

뚫린 가슴 사이로 피뿐만 아니라 셰이머스의 마지막 감정까지 뿜어져 나왔으며, 올리버는 해당 감정을 손안에 모아 빈 시험관에 담았다.

추출이 끝나자 셰이머스의 숨은 끊어졌고,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주변의 드루이드들은 전부 죽거나,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음.......'

올리버는 잠시 고민했다. 저 드루이드들을 쫓을지 말지.

그렇게 고민한 끝에 올리버는 쫓지 않기로 결정했다.

좀 피곤했고, 감정도 거의 다 사용했기에……. 어차피 반(反) 셰이머스 연합이 숲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니, 그들이 잡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뭣보다 저게 신경 쓰이고…….'

올리버가 수많은 기계 장치와 연결된 세계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해당 세계수는 숲에 있는 세계수라 그런지 란다에 있는 세계수보다 컸으며, 그 내부에는 이질적이면서도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왔다.

‘뭔가, 익숙한데……. 저것도 마찬가지고.’

올리버가 시체를 쌓아 만든 제단을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당장 알 수 없는 것은 뒤로 미루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만 확인하자는 결론을 내려 세계수에 다가갔다.

놀랍게도 인기척을 느끼는 것인지, 올리버가 가까이 다가가자 세계수 내부의 존재는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혼란과 분노, 반가움 등을 빛내며 말이다.

올리버는 품 안에서 감정과 마력이 든 시험관을 꺼내 추출한 다음 양손에 쥐었다.

그리곤 천천히 세계수에 가져다 댔다.

***

셰이머스와 올리버의 전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중심을 둘러싼 나무 기둥이 하나둘 무너지며, 그 틈새 사이로 수많은 무장 병력이 밀고 들어왔다.

이번 임무의 공식적인 책임자인 시(市) 보안국, 시스터후드에 고용된 핑크맨, 크라임 펌 이사 직속 병력, 파이터 크루 등,

그들은 전투의 흔적으로 엉망이 된 숲 내부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윽고 숲 중심에 앉아 있는 올리버를 발견했다.

“오셨습니까?”

휴식을 취하며 앉아 있던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와 똑같이 인사했다.

바로 전에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허나, 그런 올리버와 달리 란다에서 내로라하는 무력집단인 그들은 긴장한 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나무 성벽 너머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보았기에.

셰이머스는 경악스러운 주술을 통해 자연재해와 거인을 만들었고, 올리버는 더 경악스러운 흑마법으로 이를 정면에서 깨부쉈다.

그러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폭력을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기에,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는 바이니.

그러던 중 유일하게 폭력이 아닌 펜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예, 왔습니다.”

수많은 무장 병력 사이를 뚫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시(市) 공무원 폴 카버.

그 역시 올리버의 활약을 봐 경악과 감탄,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일이 먼저라는 책임감을 원천 삼아 태연한 척 올리버를 상대했다.

란다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진심으로 말이야.’

카버가 말했다.

“데이브 씨…….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말씀인지요?”

“셰이머스와 싸우지 않았잖습니까? 성벽 너머로 봤습니다. 몸은 괜찮습니까?”

그 말에 올리버는 셰이머스가 만든 나무 성벽을 봤으며, 이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아……. 예, 괜찮습니다.”

올리버가 평소처럼 대답하자 많은 사람이 다시 한번 놀랐다.

천재지변(天災地變)과도 같은 싸움을 하고도 다치지 않고, 심지어 태도도 평소와 똑같았으니 여러모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셰이머스는 쓰러뜨렸습니까?”

“예.”

“그럼, 그는 어디 있습니까?”

올리버가 허리춤에 멘 가죽 케이스. 더 정확히는 가죽 케이스에 든 빅마우스를 가리켰다.

“여기 제가 챙겼습니다. 몇몇 다른 드루이드 분 시체와 함께요.”

“시체요?”

“예, 죽었거든요……. 혹시, 문제 있습니까?”

“음……. 솔직히 셰이머스가 죽은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그가 가지고 도망친 ABC 투자금은 회수해야 해서 이왕이면 살아있는 게 좋죠. 최소한 다른 드루이드나요.”

“아……. 죄송합니다. 설명하면 복잡한데, 어쩌다 보니 다른 드루이드 분들은 도망치거나, 송장인형이 죽여버려서요. 그래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장 병력 사이에서 이번에 마법사들이 나왔다.

알버트를 비롯한 모이라이 학파의 마법사들이었다.

“우리가 조사하길, 이곳에 드루이드의 정보가 대량으로 저장된 걸 확인했습니다. 지금 바로 세계수에 접속하면 셰이머스 놈이 빼돌린 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저기……."

중년의 모이라이 학파 마법사가 말하는 와중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중년 마법사는 말이 끊긴 것에 불쾌한 감정을 빛냈으나, 아까 전 올리버의 활약을 본 탓에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왜 그러시는 거요?”

“우선,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 다만,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엇을 말이오?”

“그 ABC 투자금 위치는 전부 저기로 옮겨 놨습니다.”

올리버가 각종 기계 장치로 둘러싸인 세계수 옆에 있는 커다란 통나무를 가리켰다. 세계수로 만든 통나무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올리버가 가리킨 방향을 보더니, 의문을 빛내며, 다시 올리버를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라고 묻는 듯 말이다.

“저……통나무에 말입니까?”

모두가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를 때 카버가 질문했다.

올리버는 담담히 대답했다.

“예, 세계수로 만든 통나무인 거 같은데, 저 안에 ABC의 투자금 3조 1302억 5500만 란다를 어디 숨겨놨는지 저장했습니다. 주로, 무기명 통장에 예금되어 있으며, 통장은 은행이나 보관업체의 비밀금고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크레이그라던가? ……어쨌건 다른 엔조이먼트가 사기 친 돈의 흔적도 있을 겁니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뱉는 올리버.

수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침묵한 채 듣는 것뿐이었다.

“……혹시, 데이브 씨. 넷 내비게이터(Net Navigator)입니까?”

모이라이 학파의 알버트가 납처럼 무거운 침묵을 깨며 질문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세계수에 접속할 수 있는 것뿐이지. 넷 내비게이터처럼 거창한 건 아닙니다.”

“세계수에 접속할 수 있으면 넷 내비게이터입니다……. 심지어 해당 정보를 파헤칠 수 있으면 실력이 아주 뛰어난 넷 내비게이터입니다.”

“아, 그건 제가 알아낸 게 아닙니다. 부탁드린 거죠.”

“부탁...…? 누구에게요?”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심각한 표정의 카버가 끼어들었다.

그는 갑자기 몰아치는 막대한 정보 탓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가장 중요한 목표가 뭔지 상기하려고 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도록 하죠. 마법사 여러분. 저기 세계수 통나무에 접속해 데이브 씨가 말씀하신 게 사실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모이라이 학파는 잠시 머뭇댔지만, 카버가 재촉하자 이내 마지못해 세계수 통나무로 다가갔다.

카버는 올리버를 봤다.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듯한 몰이해와 의문, 약간의 두려움을 빛내며 말이다.

“죄송하지만, 데이브 씨께선 말씀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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