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셰이머스 (2) >
조는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조를 포함한 반(反) 셰이머스 연합 모두가 침묵했다.
시(市)의 새로운 무력집단인 보안국,
란다를 포함한 연합 왕국 널리 이름을 알린 핑크맨,
압도적인 수와 조직력을 갖춘 이사 직속 병력,
심지어 뒷세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파이터 크루까지.
모두 조금 전까지 셰어머스의 부하들과 싸우느라 다들 피가 뜨거워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일어난 산사태와 나무 성벽에 쓸려나가자 피가 차갑게 식고 말았다.
셰이머스……. 란다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수차례 들었지만, 지형을 뒤바꿀 정도의 힘을 사용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인 군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셰이머스를 상대로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거였다.
나무 성벽 너머로 울리는 소름 돋는 타격음이 그 증거. 조는 그게 누군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데이브 씨…….'
갑자기 땅이 진동하며, 나무 성벽 안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흙으로 이뤄진 해일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재주인가 싶었지만, 곧이어 더 경악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타고 흉흉한 검은 화염이 용오름 쳐 흙으로 이뤄진 해일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것 아닌가?
흡사, 자연재해끼리 싸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식에서 벗어난 광경이었다.
블랙 슈트(Black Suit)와 블랙 아머(Black Armor)를 드디어 완벽하게 습득해 제대로 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
란다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 역시 눈 앞에 펼쳐진 장관(壯觀)에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허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흙의 해일을 무너트린 불기둥이 성난 뱀처럼 갑자기 요동쳐 땅으로 고꾸라졌다.
마치, 먹이를 덮치는 괴물과 같은 형상. 그러나 지진과 함께 일어난 거인이 곧바로 괴물을 제압했다.
갈색과 진녹색으로 이뤄진 거인이 말이다.
J구역의 마천루와 맞먹는 크기의 거인은 어깨에 셰이머스를 태운 채 일어나, 거대한 두 손으로 검은 불기둥을 잡아 비틀어 숨통을 끊어버렸다.
피가 식는 것을 넘어 전의마저 꺾이는 광경.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에 싸울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슈화화화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아아악———!!!
그렇게 모두가 압도되는 와중 거인의 몸에서 자연의 힘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반쪽짜리 흑마법사이긴 하나 조는 그것이 ‘추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데이브가 드루이드의 힘을 빼앗는 거였다.
거인은 당황하며, 자신의 힘을 빼앗아가는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무래도 소용이 없는 듯했다.
추출이 끊어지긴 했지만, 곧이어 다른 거인이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초록빛 자연의 힘과 검은빛 흑마법의 기운이 뒤섞인 거인이 말이다.
새롭게 일어선 거인은 놀랍게도 셰이머스가 탄 거인보다 머리가 하나 더 컸으며, 그 거인의 어깨에는 데이브가 당당히 타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
“높은 곳은……. 조금 시끄럽네요.”
셰이머스처럼 거인을 만들고, 그 어깨 위에 올라탄 올리버가 말했다.
둔탁한 바람 소리가 계속해 올리버의 귓가를 때렸다.
"......."
셰이머스는 올리버의 말에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뭔가 이상했다.
셰이머스는 분명 잘 싸웠고, 그 와중에 놀라운 성장을 이뤘음에도 전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올려다보며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부조리 그리고 절망감을 빛냈다.
도대체 왜?
올리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투 중 성장을 이뤄 저토록 대단한 기술을 사용하였는데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덕분에 자신도 한 수 배웠고.
셰이머스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셰이머스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유쾌함과 여유가 사라졌다. 실제로 감정 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격, 부조리, 절망감 다음에는 의문과 초조, 분노가 서서히 빛났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무엇을 말씀이시죠?”
“어떻게 나무 거인을 만든 거냐고……. 흑마법사 주제에.”
“아……. 이거 명칭이 나무 거인이군요?”
올리버가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는 나름의 가르침에 대한 보답으로 대답했다.
“셰이머스 님을 보고 흉내 낸 것입니다. 물론, 재료가 부족해 똑같이는 흉내 내지 못했지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자연의 힘을 추출하는 도중 셰이머스가 나무 거인으로 방해하는 통에 올리버는 중간에 추출을 중단하고, 부족한 대로 셰이머스의 기술을 따라 해야만 했다.
자연의 힘이 꽤 부족했지만, 다행히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할 에너지는 있었으니까.
“감정이라고?”
“예, 제 몸에 걸치고 있던 로브요. 이제는 없지만요.”
그 말 그대로 올리버의 몸에는 더 이상 감정 로브가 없었다.
셰이머스의 흉내를 내 나무 거인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에너지를 감정 로브로 대체하였기에.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감정으로 사물을 조작, 가공하는 ‘블레스(Bless)’로 대략적인 거인의 골격을 주조해, 나머지 부분을 자연의 힘으로 보충하면 됐기에.
“덕분에 얼추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것을 가르쳐준 보답으로 나름 성심성의껏 대답했지만, 셰이머스는 그렇다 할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숨을 거칠게 쉬며 가만히 침묵했고, 감정 상태는 아까 전보다 더 복잡하게 빛날 뿐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워했으며 동시에 분노했다.
"나는……. 인정 못 한다. 인정……못한다고!!”
셰이머스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거인을 움직였다.
셰이머스의 분노에 반응하듯 거인은 거대한 주먹을 움켜쥐며 팔을 뒤로 뺐고, 올리버도 이에 맞춰 나무 거인을 움직였다.
“부탁합니다.”
그 한마디에 가만히 서 있던 올리버의 나무 거인 역시 주먹을 쥐며 팔을 뒤로 뺐다.
잠시 후, 마천루와 맞먹는 크기의 두 거인은 덩치에 걸맞은 육중한 움직임으로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상대적으로 느린 움직임에도 타고난 질량과 힘 탓에 엄청난 풍압(風壓)이 사방으로 퍼졌으며, 이윽고 주먹이 맞부딪혔다.
..........!!!!!
귀를 찢는 것을 넘어 몸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진동이 요동치며, 셰이머스의 ‘진짜 나무 거인’이 기우뚱 비틀거렸다.
한쪽 팔이 부서진 채.
물론, 올리버의 나무 거인 역시 휘두른 팔이 반파(半破)되는 등 멀쩡하진 못했지만,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구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올리버의 나무 거인이 반파된 자신의 손을 보더니 생물의 것이 아닌 괴성을 지르며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을 붙잡아 팔을 물어뜯었기에.
콰앙……! 콰콰과과곽!!
바위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은 살점이 뜯겨 나갔고, 올리버의 나무 거인은 그 살점을 섭취해 반파한 자신의 손을 스스로 회복시켰다.
"......!"
그 모습에 셰이머스는 경악했다.
그는 서둘러 나무 거인을 조종해 올리버의 나무 거인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콰아아앙……!!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으로 괜찮은 표현인 것 같았다. 산과 산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으니 .
다만, 소리는 요란할지언정 셰이머스가 만든 나무 거인은 그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올리버의 나무 거인은 별다른 피해 없이 고개를 돌려, 화가 난 듯 주먹을 들어 똑같이 휘둘렀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나무 거인은 서로 뒤엉켜 드잡이질했다.
흡사, 어린아이들이 서로 뒤엉키는 것처럼 투박하였으나, 압도적인 크기와 힘 때문에 오히려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기교가 없는 단순한 힘 싸움답게 머리가 하나 더 큰 올리버의 나무 거인이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을 서서히 압도했다.
비틀비틀 뒤엉키던 두 거인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며, 주먹이 오가는 핏수는 점차 올리버 쪽이 더 많아졌다.
서서히 부서지는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
올리버의 나무 거인은 괴성을 지르며 더더욱 몰아붙였고,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을 자연의 힘과 함께 물어뜯어 집어삼켰다.
와자작……! 와지지직……! 뚜둑……!
전투로 인한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질 때마다 올리버와 셰이머스의 눈높이는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죽어리——!!”
셰이머스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나무 거인을 조종. 올리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무 거인을 쓰러뜨리는 대신 술사인 올리버를 해치우겠다는 속셈.
올리버의 나무 거인은 눈을 굴려 올리버를 보더니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올리버를 보호, 덕분에 자신은 얼굴 한쪽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별 상관없는 듯했다.
오히려 쭉 뻗은 상대의 팔을 아가리로 물어 붙잡은 뒤, 주먹을 뒤로 쭉 빼 그대로 내질러 상대측 나무 거인의 얼굴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주먹을 맞자마자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 팔 한쪽이 뜯겨 나갔으며, 얼굴도 산산이 부서졌다.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셰이머스의 나무 거인.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각성한 셰이머스는 콩 줄기를 채찍처럼 던져 올리버의 나무 거인 팔목에 두른 후 그대로 당겨 주먹 위에 올라탔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저건 참……. 대단하시군.”
진심을 담은 올리버가 말했다.
셰이머스는 나무 거인의 팔을 타고 올리버를 향해 돌진했으며, 달릴 때마다 육체도 점차 변해갔다.
안 그래도 길고 탄탄했던 다리는 더욱 길고 탄탄해져 사람의 다리보다는 사슴의 다리에 더 가깝게 변했고,
셰이머스의 양팔은 1.5배 더 길어져 손등과 팔이 길쭉한 녹색 털로 덮였다.
셰이머스의 목과 승모근 역시 길고 굵직해져, 사람보다는 반인반수(半人半獻)에 더 가까운 형상이 이뤘다.
“부탁드립니다.”
올리버가 나무 거인에게 부탁했고, 나무 거인은 자신이 물고 있던 거인의 팔을 뱉고는 반대 손을 들어 셰이머스를 노려 내리쳤다.
“우어어어어어엉!!!”
셰이머스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점프, 콩줄기를 채찍처럼 이용해 나무 거인의 손을 피한 것도 모자라 다시 그 손등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대퇴근이 풍선처럼 부풀 정도로 힘을 모으곤, 폭발시키듯 나무 거인의 손등을 박차 올리버를 향해 점프했다.
어찌나 다릿심이 좋은지 먼 거리임에도 순식간에 올리버 앞까지 다가왔다.
“써드.”
그 모습을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부름과 함께 올리버의 품속에 있던 차일드-써드가 밖으로 나왔으며, 또, 축소마법으로 숨겨놨던 송장인형-넝마2가 미리 설정해놓은 마력에 의해 튕기듯 앞으로 나갔다.
“축소마법 해제.”
올리버의 말에 맞춰 축소마법이 풀렸고, 송장인형-넝마2가 원래 크기로 돌아와 셰이머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송장인형-넝마2에 들어간 써드가 양팔을 활짝 벌려 셰이머스를 가로막았다.
송장인형-넝마2는 양팔은 물론 온몸에서 면도칼과 송곳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이따위 잔재주 진즉에 봤다!”
셰이머스가 고함치며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고, 송장인형-넝마2는 충격파와 함께 산산 조각났다. 단 일격에 말이다.
몸통은 퍼즐 조각처럼 깨졌으며, 억지로 이어 붙인 열두 개의 팔은 곤충 다리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거는 보셨습니까?”
올리버가 손짓했고, 그 손짓에 맞춰 송장인형-넝마2의 팔 접합부에서 칼이 툭 튀어나와 셰이머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 거기에 허공에 뜬 상태인지라 셰이머스는 피하지 못했고 등과 옆구리, 어깨 등에 칼날이 박혔다.
퍽一! 퍽一! 퍽一! 퍽一!
칼날이 박히자마자 머금어져 있던 질병-약화 계열 흑마법 ‘이그저스천(Exhaustion)’이 셰이머스의 몸으로 침투했으며, 독과 같은 피로가 셰이머스의 육체와 정신을 둔화시켰다.
“이따위 것……!!”
그럼에도 셰이머스는 타고난 투지로 피로를 밀어내며, 다시 올리버를 향해 날아왔다.
몸에 두른 감정 코트가 없기에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며 말이다.
그런 셰이머스를 향해 올리버가 다시 한번 말했다.
“폴스."
올리버의 부름에 차일드-폴스가 품 안에서 나왔고, 그와 함께 축소마법으로 줄인 송장인형-던칸이 품 안에서 튕겨 나왔다.
축소마법이 풀리자 송장인형은 원래 크기로 돌아와 셰이머스의 앞을 다시 한번 막았다.
“같은 잔재주를——!!”
"폴스. 선물입니다.”
올리버가 허리춤에 맨 고기-톤파를 던칸에 들어간 폴스에게 던졌고, 폴스는 허공에서 톤파를 낚아챘다.
톤파는 다행히 올리버의 부탁대로 폴스를 주인으로 인정. 미리 저장해 놓은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토해 주인의 몸에 둘러주었다.
“부탁드립니다. 폴스.”
“크아아아아아아악!!”
블랙 슈트와 블랙 아머를 두른 던칸이 허공에서 셰이머스와 충돌. 가슴에 있는 힘껏 주먹을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