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이해해 보려는 자 (5) >
“아니……. 계약은 여기서 끝이다.”
붕대와 로브로 온몸을 가린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너무나 느닷없는 타이밍이라 셰이머스는 자기 두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소?”
“계약은. 여기서. 끝이다……. 전부 철수한다.”
원로가 다른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광기의 의식을 치르고 있던 개발 반대 위원회 멤버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다른 형제들도 모두 불러라. 우리의 목표는-”
“-잠깐만!!”
결국, 참다못한 셰이머스가 냅다 손을 뻗어 원로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키만 약간 큰 말라깽이 늙은이는 놀랍게도 수백 년이나 된 고목처럼 무거웠다.
“이런, 빌어먹을……. 당신 나랑 장난쳐? 갑자기 철수라니 뭔 개소리야?!”
“우리의 목표는 달성했다.”
처저적.
차자작.
셰이머스와 원로를 경계선으로 드루이드와 개발 반대 위원회가 서로를 향해 전투태세를 잡으며 대치했다.
셰이머스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줬다.
"난 당신들을 돈 주고 고용했어. 받은 만큼 일하라고……!”
“우리가 종이 쪼가리 때문에 움직였다고 생각하나?”
“내 돈을-”
“-주기에 받았지만, 말했을 텐데? 우린 우리의 신탁에 따라 널 돕는 것뿐이라고. 그렇기에 얼마든지 중간에 그만둘 수 있다고. 기억 안 나나?”
셰이머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실제 사실이었다.
처음 셰이머스가 위험을 감수하고 개발 반대 위원회와 만났을 때, 그들은 신탁에 따라 자신과 협력 관계를 맺겠다고 말했다. 또 그렇기에 신탁에 따라 얼마든지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고.
당시 셰이머스는 손해 볼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별생각 없이 그 말을 수락했는데, 그렇다고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말이 되는가 말이다.
꽈악.
셰이머스는 더 강하게 멱살을 움켜쥐었다.
일반인이라면 진즉에 목이 부러질 정도.
다른 개발 반대 위원회 멤버들이 적의를 드러냈으나, 현재 이들의 수장인 원로가 손을 들어 멈췄다.
“우린 미리 통보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돈이 부족해? 더 주지!”
“위대한 자의 뜻을 돈으로 해결하라 하나?”
“위대한 자라니? 도대체 누가?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가서 데이브 그놈을……!”
셰이머스는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아까 전 듀간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데이브의 얼굴을 보고 소환한 정령이 도망쳤다는 개소리가 말이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개 같은 타이밍이었다.
“……네놈의 그 목표. 데이브냐?”
"......."
“어서 내 말에 대답해! 데이브 그 개-”
-탁. 촤좌좌좡———!!!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는 셰이머스가 소리치던 중 손을 가볍게 쳐 멱살을 풀고 반대 손으로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대지에 뱀처럼 길쭉하고 복잡한 자상(刺德)을 새겼다.
힘과 기교 모두 최고라는 증거.
심지어 땅에 새겨진 자상은 셰이머스뿐 아니라 주변의 드루이드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선택해라.”
"......."
"여기서 우리와 목숨을 걸고 싸울 건지. 아니면, 우릴 그냥 보내줄지. 네놈의 죄악과 건방짐은 목을 잘라 마땅하나, 위대한 분을 위해 참겠다. 어떡하겠느냐?”
“……하나만 묻자.”
“질문하라.”
“그 위대한 분이라는 것. 누구야?”
얼굴을 붕대로 감싼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가 미소 지었다.
***
"정말 이상하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이번 임무는 정말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다.
정령은 올리버를 보더니 갑자기 사라졌고,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도 똑같이 올리버를 보고 물러섰다.
분명, 공격하기 최적의 타이밍이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올리버를 보고는 뒤로 물러서더니 잠시 더 살펴보곤 정중히 인사한 뒤 그냥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멈추지 않았다.
드루이드들을 대신해 숲 곳곳에서 반(反) 셰이머스 연합을 막던 개발 반대 위원회가 갑자기 철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숲 중심부에서 느껴지던 이질적인 기운도 멈췄고 말이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아까 전 물러난 쿼터스태프-붕대 사내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뭐…….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올리버는 당장 알 수도 없는 일은 뒤로 미뤄버리고, 처음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셰이머스를 만나 질문하는 것 말이다.
다른 이들이 합류하기 전 만나기 위해 올리버는 숲 중앙을 향해 걸어가던 중 숲에서 이변이 일어나는 걸 알아차렸다.
다름 아닌 숲 전체를 두르고 있던, 자연의 힘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숲 중앙에 집중되는 거였다.
울창한 숲은 살아있는 드루이드의 요새에서 평범한 숲으로 되돌아왔으며, 그와 함께 강력한 자연의 힘이 깃든 존재가 출현했다.
셰이머스였다.
[땅의 분노]
거대한 숲에 퍼트린 자연의 힘과 수많은 드루이드의 힘을 지원받은 셰이머스는 온 숲이 울릴 정도로 크게 영창했다.
그러자 이질적인 기운과 다수의 드루이드가 있는 숲 중앙을 중심으로, 대량의 흙이 솟구쳐 올라 거대한 산사태를 일으켰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숲 전체를 울리는 산사태는 술사의 의지대로 방사형으로 퍼져 진격 중이던 반(反) 셰이머스 연합을 밀어냈고, 올리버까지 덮치려 했다.
올리버 자신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산사태를 보며 감정 입자를 뽑아 그대로 손과 연동,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이-----------앙————!!!!
대량의 감정 입자는 거인의 손처럼 흙더미를 포함한 숲 일부분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덕분에 올리버는 자연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의 벽]
셰이머스는 멈추지 않고 거대한 나무 기둥을 촘촘히 땅 위로 솟구치게 해, 숲 중앙을 지키는 거대한 성벽을 만들었다.
어찌나 큰지 숲을 뚫고 나오는 게 보일 지경.
사방에서 진격하던 반(反) 셰이머스 연합은 모두 적잖은 피해를 보며 진격이 가로막혔으며, 그뿐 아니라 올리버 역시 사방에 솟구치는 기둥에 압박당했다.
탐화(食火)로 순식간에 재로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짝. 짝. 짝.
올리버가 주변의 나무 기둥을 재로 만들고 탐화를 꺼트리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셰어머스였다.
“대단한데. 아주 대단해! 산사태에 나무기둥까지. 죽일 생각으로 사용한 건데……. 원래 이 정도로 실력자였나?”
셰이머스는 숲 전체에 걸어둔 자연의 힘과 드루이드 다수의 힘을 자신의 몸에 넣은 상태로 나타났다.
힘이 어찌나 방대한지 단련된 육체를 뚫고 녹색 자연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매우 강력했고, 동시에 위태로웠다.
“셰이머스 님은 괜찮으십니까?”
“오……. 나 걱정해주는 거야?”
셰이머스가 일부러 밉살스럽게 말을 돌렸다. 현재 무리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내보이기 싫어서 말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분노와 비장한 각오, 무엇보다 책임감을 빛냈다. 자신이 벌인 일과 부하들에 대한 책임감 말이다.
몸이 자칫 터질 수 있는 무리한 행위를 한 것 역시 그 이유에서였다.
셰이머스가 계속해 입을 열었다.
"그거 참 의외군. 날 진심으로 걱정하면, 이렇게 쳐들어오지 말았어야지..…. 이해가 안 돼. 네가 날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대답해봐. 왜 날 적대한 거지? 너랑 나 파티에서 재밌게 즐겼는데 말이야?”
“아……. 그때, 친절하게 대해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전에 셰이머스 님이 개발 반대 위원회로 저뿐 아니라, 포레스트 님과 알씨도 습격하셨으니,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하! 음험하구만.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하다니.”
“알기는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은 누구야? 너랑 포레스트 죽이려고 한 건 맞는데, 알은 누군지도 모르겠네?”
“당시 차를 운전하고 계시던 포레스트 님 부하 직원입니다. 레스토랑 직원 겸 안내원이죠.”
“그딴 놈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해?”
“글쎄요? ……다만, 전 신경 쓰거든요. 친절하고, 레스토랑 농담도 잘 아셔서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절 왜 습격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크라임 펌에 나 같은 놈이 또 생기는 걸 원치 않거든. 일종의 사다리 차기지. 뭐, 불만 있냐?”
“아뇨,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좋은 태도야. 넌 기분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 그런 태도가 좋지. 다들 돈 벌려고 이 지랄 하는 건데,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안하지.”
“제안요?”
“그래, 지금 주변을 둘러봐.”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두 눈으로 숲을 둘러봤다.
웬만한 나무보다 더 크고 굵은 나무 기둥이 빈틈없이 둘러쳐져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이 성벽 안에 있는 건 너뿐이야. 나머지 시(市) 병력은 저 밖에 있지. 즉, 넌 혼자라는 거야.”
“셰이머스 님도 혼자시지 않습니까? 다른 드루이드 분들도 모두 셰이머스 님을 지원하느라 움직일 여력이 없어 보이는데요.”
올리버가 나무와 뿌리, 땅 등 자연물을 통해 셰이머스에게 지속해 힘을 지원하는 후방의 드루이드를 보며 말했다.
그들은 저 멀리서 자신의 힘을 뽑아 셰이머스에게 계속 주입하고 있었다.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찌르는군.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
"글쎄요……. 전 제 성격이 어떤지 몰라서요. 다만, 제 친구께선 제가 독특한 성격이라 했습니다. 어리숙한 것 같으면서도, 똑똑하고, 유약해 보이면서도, 자기 고집이 세고, 화를 내지 않으며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보는……. 그런, 제 성격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이군. 바이올린으로 연주라도 해줄까?”
“그 친구분이 셰이머스 님 부하에게 습격당했습니다.”
"뭐?"
“팔 한쪽이 잘렸거든요. 분풀이로요.”
“아……. 혹시, 네 친구 가난한 형제들 단원이야?”
“예.”
“어쩌다 거지새끼랑 친구 먹었는지 궁금하군……. 근데, 뭐? 설마, 복수라도 하러 온 거야?”
“아뇨, 그분께서 복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분노하지도 말고요. 란다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니. 그래서 질문하러 온 겁니다. 셰이머스 님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요. ”
“이해?”
셰이머스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감히 날 이해한다고?!”
“노력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잘 됐군……. 아주 잘 됐어! 나도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저 먼저 질문해도 될까요?”
“어디 해봐.”
셰이머스가 자신의 육체에 자연의 힘을 응축하며 대답했다.
힘줄이 도드라져 피부 너머로 보일 지경이었다.
“셰이머스 님은 해결사가 되고, 사업가가 된 이유가 돈 때문입니까?”
“당연하지. 모두가 그러하듯.”
“하지만 셰이머스 님처럼 성공하고도 무리하게 돈을 버는 분은 못 봤습니다……. 그토록 돈을 원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미, 해결사로도,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정도로는 기별도 안 오거든. 자고로, 돈이라는 건 말이야 있어도 있어도 모자란 법이야.”
진심.
“난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어. 너 정도 되는 실력자면 남 심부름 안 하고도 쉽게 돈 벌 방법이 많을 텐데, 왜 그러지 않는 거지? 어디 소속되기 싫다는 같잖은 이유나 대면서 말이야……. 넌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아름다운 빛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셰이머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맞다……. 저번에 말했지? 조금 특별한 감정이라고? 그래도 그걸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힘을 기르고 돈을 모아야지? 나도 저번에 말했어.”
“음……. 사실, 그거 때문에 몇 번 실험해 볼까 하는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뭐? 실험?”
“예, 인체실험요. 제 주인님 서재에 극한의 감정을 뽑아내는 책을 몇 권 읽은 적 있거든요. 가령, 아이와 어머니를 거대한 통속에 같이 넣은 다음......"
올리버가 말꼬리를 흐렸으나, 셰이머스는 본능적으로 보통 실험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물질적 탐욕이 아닌 그보다 더 악의적이고 음험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했나?”
“음……. 아뇨,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동시에 산사람을 상대로 그런 실험을 하긴 좀 그래서요. 그리고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하지 않고도 여러 흥미로운 감정과 사람들을 볼 수 있거든요.”
올리버는 떠올렸다.
“마탑과 가문에 쫓겨나도 포기하지 않는 마법사와 마력사용자, 악마와 거래하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흑마법사, 거지임에도 거지를 보호하려는 자, 목표를 위해 어떠한 굴욕과 위기를 맛봐도 포기하지 않는 사생아, 동의하지 않지만 자신의 신앙을 위해 거대한 조직을 세운 흑마법사,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음에도 실력으로 인정받은 마법사, 뒤늦게나마 신념을 지키려는 성기사,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생을 건 공무원, 안 좋은 일을 겪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 하며 그 와중에 편지를 보내주시는 아이들……. 세상은 말입니다. 정말 재밌는 곳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재밌는 놈인지 궁금하다?”
“예, 정말 돈 욕심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강력한 목표의식과 동료분들에 대한 책임감이 엿보여서요. 꽤 예쁘네요.”
“미친 변태 새끼. 되는대로 지껄이기는……."
“왜 무리하게 위험을 감수하고, 란다까지 적으로 돌리며 돈을 탐내시는 거죠? 무엇을 원해서요?”
셰이머스가 욕을 하려다 말고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야.”
“……예?”
“내가 오롯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혹시 아나? 왕국과 란다는 자칭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정치체계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지껄이는 거?”
“……예.”
“근데, 실상은 아니거든. 돈도 힘도 없는 새끼들은 자유롭지도 못하고 평등하지도 못하지. 노예나 다름없어. 그게 세상의 이치지. 믿으라고 옛날에 내가 그랬으니까.”
올리버는 말없이 동의했다. 자신 역시 고아원과 광산 시절 그랬으니까.
“과거 난 형제들과 제비뽑기를 했고, 거기서 뽑혀 아버지 손에 이끌려가 드루이드에게 팔려나갔지. 감자 한 포대랑 바꿔서. 이후에는 한 번도 원치도 않은 드루이드가 되기 위해 피를 토하며 수련했어. 나와 같이 들어온 아이들 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말이야.”
진심.
“그런데, 기회가 왔어. 정통파 늙은이들과 개혁파 중늙은이들이 서로 싸워서, 우리 엔조이먼트는 가까스로 자유를 손에 넣었지……. 그런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힘을 휘두르는 데 뭐 불만 있나?”
"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없습니다.”
“그거 고맙군……. 난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런 것뿐이야. 어디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려면 돈이 필요하거든. 어마어마한 돈이.”
“얼마나 필요하기에 이러는 거죠?”
“글쎄? 원하면 나라를 세우거나, 마탑 이상으로 강력한 조직을 세울 만큼…….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면 되지. 돈은 영원하니까. 또, 그런 의미에서 제안을 마저 하지.”
“말씀하시지요.”
“네가 원하는 액수를 이야기해봐. 지금 여기 너밖에 없으니까 솔직하게. 네가 말하는 만큼 돈을 줄게. 그러니 이번 일에서 그만 빠져. 그럼, 보너스로 내 부하들 죽인 것도 용서해 줄 테니 말이야.”
“저한테 돈을 줘도 저기 밖에 많은 분이 계십니다만?”
“그건 괜찮아. 나머지는 나 혼자서 다 죽이면 되니까. 아직, 나무 기둥을 못 뚫고 들어온 게 그 증거야.”
그건 사실이었다. 천 명이 넘는 병력은 셰이머스의 나무 기둥을 뚫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고, 그건 힘이 격차를 의미했다.
바깥쪽 사람들이 못나서라기보다는 셰이머스가 너무 규격 외라 그런 거긴 했지만.
"다 죽여서 뭐 어쩌시려는지요?”
“다 죽이고 도망칠 생각이야. 일이 좀 꼬였거든. 그럼, 매듭 자체를 잘라내야지. 위대한 정복자처럼.”
진심이었다. 셰이머스는 진심으로 혼자 천여 명 되는 병력을 해치울 생각이었다.
올리버가 고민 끝에 말했다.
"......정말 마음대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냥 미친 척하고 질러봐. 10억? 100억? 1000억? 달라는 대로 주지.”
“그럼, 3조 1302억 5500만 란다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셰이머스가 움찔했다.
“……ABC투자금 총액이군.”
“예, 그것만 돌려주시면 물러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설득해서요. 캔트 님이 팔을 잘리긴 했지만……. 서로 일하다 생긴 불상사니까, 저도 제 일만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겁이 나서 너한테 이런 제안을 한 것 같아? 그냥 귀찮아서야.”
"압니다. 다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전 제 일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하…….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예?”
“나도 네놈 정체가 뭔지 궁금해 이대로 보낼까 말까 고민한 거거든. 위대한 분이라니……. 이로써 확실해졌어. 그냥, 너도 같이 재껴야겠다.”
자신의 정체라니. 올리버가 무슨 말이냐 되물으려는 찰나, 셰이머스는 몸에 깃든 자연의 힘을 사방으로 분출하며 냅다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