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세상을 한번 구한 사람 (1) >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중심으로 한 위장 회사가 전부 문을 닫고,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셰이머스의 ABC는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던 중 한 기사가 란다를 조용히 흔들었다.
[익명제보. 투자회사 ABC. 희대의 사기범과 밀회를 가지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셰이머스가 호텔에서 한 남자와 만났다는 것인데, 하필 그가 대륙 중앙에서 벌어진 대규모 금융 사기극의 범인이라는 거였다.
올리버는 기사에 첨부된 세 장의 사진을 봤다.
첫 번째 사진은 2미터가 훌쩍 넘는 거구의 남자가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남자는 나름대로 외모를 숨긴답시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꼈다.
그럼에도 남자는 눈에 띄었다.
거대한 덩치와 곰처럼 두끼운 손발 등 외형부터가 모두의 이목을 끌만했다.
흡사, 셰이머스처럼.
그는 강인한 외형처럼 당당하게 호텔로 들어갔으며, 해당 사진 아래에는 호텔에 들어간 남자의 옆모습을 확대한 사진과 대륙 중앙에서 대규모 금융 사기범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모습과 정면이.
구도가 다른 탓인지 헷갈리긴 했지만, 꽤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음……. 얼굴의 문신은 화장으로 가린 걸까요?”
올리버가 두 개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질문했고, 카버가 대답했다.
“예, 저 덩치가 얼굴 문신까지 있으면 두 배로 눈에 띄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저 키와 덩치를 가진 남자가 얼굴에 문신까지 하고 있으면 두 배는 더 눈에 띌 것 같았다.
“근데, 위장할 거면 차라리 가죽 가면을 쓰는 게 더 확실하지 않나요?”
“물론, 그러면 더 안전할 테지만, 사람은 그렇게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예?”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말씀드렸습니다. 가죽 가면을 안 쓰고, 선글라스와 모자만 쓴 건 드루이드의 자존심 때문일 겁니다. 사람 가죽으로 만든 흑마법 아이템을 께름칙하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특히, 드루이드는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음……. 예를 들어 볼까요? 드루이드는 누가 되는지 아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가난한 분들이 주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답입니다. 드루이드는 대부분 자식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집 출신이 많습니다. 수련 과정이 혹독한 데 반해, 온갖 규율에 묶여 답답한 생활을 강요받으니, 얻을 수 있는 힘에 비해 인기는 낮은 편이죠. 그런 와중에 운이 좋게도 그린랜드를 벗어나, 자유를 손에 넣게 되면 무엇을 할 거 같습니까?”
“글쎄요?”
올리버는 진짜 몰라 그리 대답했다. 애당초 금욕적이라던가, 혹독하다던가 올리버에겐 잘 와닿지 않는 단어였다.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무슨 보상요?”
"여러 가지가 있죠. 가난하게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닥치는 대로 쓸어모아 사치스럽게 살 수도 있고, 겸손과 의무만 강요당한 인생의 보상으로, 남을 찍어 누르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할 수도 있죠. 늘 인내했기에 성질머리대로 굴 수도 있고요……. 공교롭게도 셰이머스는 여기 전부 속하는군요.”
올리버가 그동안 본 셰이머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싼 옷을 걸치고, 비싼 차를 타며, 과시적인 말투에 세 명의 애인, 넘치는 식욕, 개발 반대 위원회를 통한 공격까지…….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 사람 역시 그냥 선글라스와 모자로 자기 얼굴을 숨긴 걸 겁니다. 그 이상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서요. 바보 같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죠.”
카버가 기사에 실린 남자의 사진을 다시 한번 짚었다.
단순히 추측이 아닌 일정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다.
"음……. 대단한 추측이군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진짜 대단하신 건 모이라이 학파죠. 보안 회사 세계수를 해킹해 오래된 연락망을 찾아 복구, 이를 바탕으로 거꾸로 올라가 드루이드들의 비밀 통신 기록까지 찾아냈으니까요.”
며칠 전 알버트가 한 말이 이제야 이해됐다. 그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였다.
“세계수로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언제 오는지 날짜만 확인하면, 누가 셰이머스랑 만날지 추측할 수 있죠. 물론, 밀수선 같은 불법 루트로 오면 어렵지만, 굳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카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올리버는 해당 작업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어렴풋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란다에 하루 동안 오가는 사람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으니.
“고생 많으셨겠군요.”
“여러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뭣보다, 도둑놈도 도둑질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집주인도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지요.”
“대단하시군요. 음…….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 사진 하나로 셰이머스 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신문을 보며 질문했다.
자칫, 카버의 능력을 의심하는 무례한 발언일 수도 있었으나, 그만큼 합리적인 의심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위장 회사가 토벌당했음에도 ABC의 자금 흐름은 끄떡도 하지 않는 저력을 보였으며, 바지사장들은 심문을 받는 중에도 셰이머스를 팔아먹는 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관리력을 가진 이가 이 정도 기사와 사진에 흔들릴 것 같지 않았다.
“맞습니다. 이것만으로는 확실히 힘들겠죠.”
“……이것만으로는요?”
“예……. 다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데이브 씨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자고로 이런 일은 말은 아끼는 게 좋거든요.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예,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이 상황만 설명하기 위해 찾아오신 겁니까?”
“상황을 설명하러 온 건 맞습니다. 몸값이 비싼 분을 말도 안 되는 조건에 고용했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설명해 드리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또, 선수금도 드려야 하고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곧 알 수 있었다.
카버가 가져온 가방에서 P-J라고 적힌 파일을 꺼내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이건……?”
“부탁하셨던 선수금입니다. 파테르교가 폐쇄적인 기관이라 성기사의 인사(人事)를 알아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뇨,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알아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리버가 대답과 함께 파일을 열어 확인했다.
파일 안에는 요안나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들어 있었다.
“음……. 카버 님?”
“예, 데이브 씨.”
“퍼스트 스텝이 어디죠?”
“신대륙에 있는 식민 도시입니다.”
***
퍼스트 스텝.
카버는 그곳이 신대륙에 세워진 연합왕국의 식민 도시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첫 번째로 세워진 식민지로, 한때, 신대륙 탐사를 위한 중요 거점이자, 노예무역의 중심지이며,
노예무역이 폐지된 지금은 중요 군사거점 겸 마석 공급처라 했다.
‘전부 프로메테우스 사 덕분이죠. 그들이 마석 광맥을 기적적으로 찾아낸 덕분에요. 요즘 다시 광맥이 말라간다는 이야기가 나돌던데, 또다시 마석 광맥을 발견했지요. 기적처럼요.’
카버가 퍼스트 스텝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연합 왕국의 신대륙을 묶어 관리하는 행정의 중심이자, 중요 군사 거점 겸 마석이라는 필수 불가결한 자원의 중요 공급처라고 말이다.
올리버는 요안나가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 역시 카버가 어느 정도 대답해 줬다.
‘그곳에서 성기사가 하는 대략적 임무는 사제들을 보호해 원주민들에게 파테르교를 전파하고, 또 흑마법사를 소탕하는 겁니다.’
‘신대륙에서도 흑마법사가 있나요?’
‘오, 당연히 있죠. 어떤 의미로는 더 극성입니다.’
카버가 말하길 신대륙 원주민 중 일부가 흑마법에 아주 심취하며, 그것으로 왕국군을 습격한다고 했다.
그래서 성기사는 왕국군과 협조해 그들을 주기적으로 토벌한다고 하였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신대륙의 퍼스트 스텝이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보는 것도 나쁠 거 같지 않았다.
‘그전에 지금 맡은 일부터 무사히 끝내야겠지만, 다행히 진전이 있네.’
올리버는 두 부의 신문을 보며 생각했다.
첫 번째 신문에는 셰이머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ABC를 설립한 후, 신문에 자주 언급된 그였으나, 해당 신문은 그 성향이 달랐다.
다름 아닌 자기나 ABC를 광고하는 게 아닌, 자신이 대륙 중앙의 금융 사기범과 만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인터뷰였다.
그는 우호적인 신문사를 통해 자신은 사기범을 만나지 않았고, 설사 만났더라도 자기가 빌린 6성급 호텔에서 만났을 거라 농담했다.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는데, 실제로 해당 해명기사가 나온 후 ABC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가라앉았다.
허나, 이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셰이머스가 해명하자마자 카버는 기다렸다는 듯 다른 기사를 냈다.
[셰이머스의 거짓말이 밝혀지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 아래, 호텔 객실에서 금융 사기범과 만나는 셰이머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실렸다.
사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셰이머스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충분했다.
해명이 효과적이었던 만큼, 그 반작용도 컸으며, ABC에 투자한 수많은 투자자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적절한 타이밍에 찍힌 사진은 셰이머스가 그토록 쌓은 신뢰를 단 한 번에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레스토랑 사무실. 포레스트가 기사를 읽으며 운을 땠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요?”
“그래, 여태까지 했던 공격 중 셰이머스를 가장 아프게 했지만, 그렇다고 끝장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진 않거든. 사람들이 잠시 동요하고 있긴 하지만, 투자 수익금을 계속해 지불하면 이내 다시 잠잠해질 거야.”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자신이 봐도 지금 상황은 수상한 데 말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게 맞지. 하지만 사람이란 게 논리적으로만 살 수는 없는 존재거든.”
“……? 신기하네요. 카버 씨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시(市) 공무원이니 여러 사람과 사회 현상을 블 테니……. 음, 다소 예민한 질문을 해도 되겠나?”
“예? 아,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 저금은 얼마나 있나?”
“저금요?”
“그래, 통장 잔고……. 최소한 억은 넘겠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산층 거주구역인 L구역에 집을 장기 임대하고, 좀 더 나은 연구작업실을 준비하며, 음식이나 옷에도 돈을 더 썼지만,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제법 커 아직도 넉넉하게 있었다.
심지어 현재 생활비는 마탑에서 받는 급료로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고 말이다.
2, 3년 전만 해도 광산 노동자였던 올리버는 란다의 풍족한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진심으로. 자네 나이에 억 되는 돈을 만지기란 쉽지 않거든……. 대부분 사람이 억이란 돈을 보지도 못하고 죽지.”
“그건 압니다.”
“머리로 아는 거랑 여기로 아는 건 다르네.”
포레스트가 자기 심장에 손을 올렸다.
“가난이란 생각보다 무서운 거거든. 농담이 아니라, 가난은 사람을 멍청하고, 저열하며, 옹졸하게 만들어. 매일매일 생존의 위기를 느끼기에 품위를 유지할 수 없거든.”
올리버는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실제로 고아원과 광산에서 그런 걸 숱하게 봐 왔다. 심지어 올리버조차도 그랬고.
굶어 죽는 옆의 아이를 보고도 올리버는 오트밀을 나눠주지 않고 혼자 다 먹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말이다.
“도시 노동자 중 대부분은 젊음과 건강을 다 갈아 넣었음에도, 1천만 란다를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야. 그리고 그 돈으로는 늙어빠진 육신을 부양할 수 없지……. 참으로 슬프지 않나? 평생 성실히 일했음에도, 자기 몸을 부양할 수 없다니.”
"그건 슬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 1천만 란다를 넣어두면 매달 100만 란다씩 주겠다는 회사가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 거 같나?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말이 아니지.”
오…….올리버는 납득했다.
그동안 흐릿한 안갯속에 있어 이해가 잘 안 되던 이유가 그나마 선명하게 와닿았다.
자신이 조셉을 따라간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를 잘 알지 못했음에도 그것밖에 길이 없어 따라갔으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추면 잠시 요동치다 끝날 거야. 여유가 없는 사람은 불에 데고 나서나 손을 거두는 법이거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꽤 잘 아시는 것 같군요?”
“설마, 내가 처음부터 이런 레스토랑을 가진 채 태어났다고 생각한 건가?”
“예? 아……. 그렇군요.”
올리버는 뒤늦게 말뜻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포레스트 역시 밑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의 주인공인 듯했다.
“그건 그렇고 재주도 참 좋군.”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 사진 말이야. 정말 절묘하게 잘 찍었어. 모이라이 학파가 누가 언제 올진 알아낼 수 있다 쳐도, 이 거대도시에서 이렇게 딱 찾아내 사진까지 찍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 어떻게 찍은 건지 궁금하구만.”
포레스트가 말하자 올리버도 그제야 의문을 가졌다.
사진을 찍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특히, 호텔 객실 안은 세계수로도 한계가 있었다.
“음……. 나중에 카버 씨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대답해 주겠나?”
“안 해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요.”
***
“후……. 누구라고?”
육성급 호텔 스위트 룸 안.
셰이머스는 차갑게 식힌 수건으로 얼굴에 덮은 채, 안락의자에 한껏 늘어져 있었다.
“가난한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셰이머스의 부하 듀간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가난한……. 씨발, 뭐?”
“가난한 형제라고 했습니다. 사장님.”
“좆 같은 이름이네. 가난한 놈이 형제가 어디 있어……. 뭐 하는 놈들인데?”
“거대한 거지패입니다. W구역을 중심으로 생긴 조직인데, 주로 정보를 수집한답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말이죠.”
셰이머스가 하하하 웃었다. 자신이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쓰레기들에게 발목이 잡혔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말이다.
셰이머스는 얼굴에 덮고 있던 수건을 내린 다음 노기가 섞인 눈으로 듀간을 바라봤다.
그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상황이 더럽게 된 지금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쓰레기나 뒤지는 쓰레기들이 어떻게 호텔 사진을 찍은 거지? 입구에서 막힐 텐데."
"몇몇 조직원들을 지원해 술집이나 호텔 종업원으로 취직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 수준이 낮은 대신 범위는 매우 높죠. 이 때문에 크레이그가 들킨 것 같습니다.”
“씨발이로군.”
셰이머스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으로 말했다.
어디 물릴 데가 없어서 거지새끼들에게……
좀 더 판을 키워 한탕 제대로 해 먹으려던 계획이 반대로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되돌아왔다.
이럴 바에는 지금 확보한 자금만 굴리는 게 나았을 텐데.
상황이 다급해졌다.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면 언제 떠날 수 있겠어?”
“벌써, 철수할 생각입니까? 이 정도는-”
“-얼버무리며 뭉갤 수 있지. 하지만 느낌이 안 좋아.”
느낌. 지극히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이건만 듀간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셰이머스의 감은 남들의 감과 그 질이 달랐기에.
"으음……. 최소한 일주일, 될 수 있는 한 2주는 필요합니다.”
“좋아, 그럼, 2주 준다. 내가 사람들을 달래 볼 테니까. 그동안 준비해.”
“예……."
“많이 아까운 표정이구만.”
셰이머스가 듀간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실제로 듀간은 아까웠다.
불과 몇 개월 만에 2조 8000억 란다라는 거금을 모았건만 여기서 손을 털자니……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셰이머스의 말대로 서너 배, 어쩌면 열 배를 해 먹었을지도 몰랐다.
“나도 같은 심정이야. 미친 듯이 아까워. 미친 듯이……. 근데, 너무 아까워하지 마. 뭐가 됐건 2조는 큰돈이고, 대충 요령도 터득했으니, 한 몇 년만 몸을 숨기다 다시 하면 돼. 지금보다 더 치밀하고, 장기적으로.”
듀간은 감탄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 당장의 일이 그르쳤음에도 셰이머스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었다.
“뭣보다 우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브(Eve)를 확보했어. 당장은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잠재력은 무한하지. 이것만으로 다른 드루이드 상대할 때 우위를 점할 수 있어. 그러니 아까워하지 마. 아까워하면 미련이 남고, 미련이 남으면 일에 차질을 빚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투자금 챙기고……. 우리랑 커넥션 있으면서 연줄 없는 갱들 좀 조심스럽게 모아놔. 우리가 도망칠 때 대신 이목을 끌어줄 놈들이 있어야 하니까.”
“예."
“개발 반대 위원회는 아무래도 내가 찾아가 봐야 할 것 같고……. 아, 그리고 그놈들 정체 좀 캐봐.”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가난한 형제들이란 놈들. 날 찍었다는 건 우리 애들도 감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니까. 난 날파리가 내 근처를 돌아다니는 게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