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잠자는 숲 (2) >
팔랑. 팔랑. 팔랑.
요정의 날개를 단 노파가 동화에나 나올법한 지팡이를 든 채 앞으로 날아갔다.
노파는 상당히 늙었으며, 몸집도 비대했지만, 웃기게도 나는 모습은 나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부드러웠다.
“여깁니다……."
노파가 한 문을 가리켰다.
낡고 거대한 성문으로, 시간에 의해 퇴색되긴 했으나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참으로 놀랍군. 이렇게 거대한 성을 왜 일주일 동안 못 찾은 거지?”
정말 몰라서라기보다는 감탄에서 나온 말이었다.
성을 찾지 못한 이유는 멀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멀린은 선대 아카이브의 연구와 지식을 승계받은 존재니까.
“이곳은 공주님의 숲이니까요. 작은 바늘도 그분이 원하면 단번에 찾을 수 있고, 거대한 성이라고 그분이 원하면 절대 찾을 수 없죠. 노파는 자기 멋대로 설명했다. 반박할 말이 없냐면 그건 아니지만, 멀린은 손님의 예를 지키기 위해 따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학술적 토론이 아닌, 질문하기 위해 방문한 거였으니.
끼이이이익一
멀린이 발을 내딛자 육중한 성문이 스스로 열렸다.
성 내부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다.
성문이 열리면 당연히 로비가 나와야 했건만, 어째서인지 침실이 나왔다.
아주 거대한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침실이 말이다.
“오셨군요……."
커튼이 사방을 가린 침대 위.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껏해야 십 대 중후반 정도 될 법한 앳된 목소리였다.
멀린은 뚜벅. 뚜벅. 뚜벅. 침실로들어갔다. 끼이이이익一성문이 닫혔다.
“내가 올 걸 알고 있었소?”
“예……. 꿈에서 봤답니다.”
"대단하시구려. 그럼 좀 더 일찍 불러주지 그랬소?”
“죄송합니다. 졸렸거든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 이름에 걸맞은 대답과 함께 침대 주변을 덮고 있던 커튼이 부드럽게 젖혔다.
그와 함께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피부에 풍성한 꿀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그녀는 갓 맺힌 열매처럼 파릇파릇하고, 아름다웠다.
외형만 보면 도저히 손가락과 견주는 흑마법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또, 수백 년을 산 사람이라고도 생각되지 않고.’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네요?”
공주가 멀린의 생각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멀린은 그 말을 인정했다.
“그렇게 실례되는 생각은 하지 않았소. 그저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된 그대의 젊음에 감탄했을 뿐이지.”
“이 축복이 부럽나요?”
“그대 그걸 축복이라 생각하시오?”
“음……. 아뇨. 저주라고 생각하죠.”
“같은 생각이오. 축복이나 저주나 사실 한 끗 차이니……. 삭신이 쑤실 때면 젊어지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양하고 싶소.”
공주는 소녀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여느 소녀들의 웃음처럼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나, 은은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아……. 역시, 아카이브. 지혜로우시군요. 인간은 늙어 죽기에 비로소 아름답고 가치 있지요.”
“딱히, 원한 지혜는 아니오.”
“그러나 그 지혜를 택했고,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죠……. 전 여러분이 참으로 존경스러워요.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그런데도 미치지 않고 받아들이다니요…….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공주의 말에 멀린이 뚜벅 뚜벅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둘 모두 서로에게 적대하는 감정은 없었다.
“공주께서 잘못 알고 계시구려.”
“제가요?”
“그렇소. 아카이브는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소. 남들보다 조금 더 알 뿐이지. 그리고 무력하긴 하나,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또 아니요. 발버둥 칠 수는 있거든.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거요.”
공주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사과드리죠. 잠에서 막 깨 실언을 했답니다…….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궁금한 것에 대답해드리죠. 제게 물어보고 싶은 게 뭐죠?”
공주가 질문을 허락했다. 멀린은 늙은 심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종말은 시작된 것이오?”
“글쎄요?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멀린이 하하! 하고 웃었다. 이보다 명쾌한 대답이 없었기에.
“[세상 끝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그 순간 바늘이 움직이노라] ……난 내가 예언의 첫 단추가 될 줄 꿈에도 몰랐소.”
“저도 수백 년 동안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렇기에 인생이 괴롭고 또 즐거운 거지요.”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공주의 발언에 멀린은 입교리를 올렸다.
허나, 동시에 속은 전혀 웃지 못했다.
당연한 거였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마주한 인간 중 과연 웃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심지어 그 종말이 다름 아닌 인간 본인들 때문에 시작했는데 말이다.
더 심지어는 아카이브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수백 년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자책하지 마시죠. 아카이브시여. 애당초, 선대 아카이브 역시 손대지 못한 문제였답니다.”
“위로 고맙소. 공주……. 그럼, 예언대로 지옥의 왕자와 천사의 아들이 지상에 강림한 것이오?”
“글쎄요? 아시다시피 전 직접적인 대답은 할 수 없어서요……. 다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지옥의 왕자가 존재한다면, 천사의 아들 역시 존재하며, 천사의 아들이 존재하면 지옥의 왕자 역시 존재한답니다. 이 둘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죠.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요.”
“그럼, 천사의 아들과 지옥의 왕자가 어딨지도 못 물어보겠구려.”
“예, 하지만 아카이브께서 천사의 아들을 만나고, 지옥의 왕자도 만났다는 건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대답을 듣는 순간 멀린의 머릿속에 여러 사람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중 단 두 사람만이 남았다.
한 명의 확실했으나, 다른 한 명은 좀 애매했다.
그 역시 특별함이 느껴졌으나, 전자와 비교하면 부족한 느낌이 많았다. 촛불과 태양처럼 말이다.
“……질문 하나 더 하겠소. 정말 종말은 인간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오?”
“뻔히 아시는 걸 왜 물으시는 거죠?”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종말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 물어보는 것이오. 공주.”
멀린은 무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멀린의 마음속에 남은 어리석은 인간적 감정이 이 역시 방법이 아닐까라고 자문했기에....... 자신은 정말 어리석은 것 같았다.
“그 역시 하나의 방법일 수 있죠.”
공주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진심이오?”
“예, 전 정답을 모르니,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네요.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예언자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닙니다. 사실, 가장 모르는 존재죠. 그저 꿈이 보여주는 대로 말하는 존재일 뿐이거든요. 다만……”
공주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카이브께서 그 무엇을 하든 그것은 예언으로 가는 한 가지 과정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분께 말을 걸어 책을 권한 것도, 그분께 조언해드린 것도, 그분을 도와줘 제자로 거두고, 그분께 편지를 줘 혹시 모를 위기에 대처한 것도 모두요……. 뿌린 대로 거둘 뿐이랍니다.”
“크하하하하하하핫!!!”
멀린은 광소를 터트렸다. 그분이란 추상적인 단어에도 그가 누군지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참으로 고약한 것 같았다. 저 하늘 위 위대하신 분께선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인형 놀이?
“실례했소……. 내 새로운 제자, 아니, 내 임시 제자를 꿈에서 본 것이오?”
“예."
“그 아이에 관해 묻는다면 대답해 줄 수 있소?”
“아뇨, 전 그분에 관해 대답해 줄 권한이 없답니다……. 다만, 한가지는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이오?”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그분께 편지를 미리 준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아주 아주 좋은 선택요.”
공주가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포레스트 레스토랑 1층 홀 구석의 한 테이블.
올리버가 맞은편에 앉은 알버트에게 인사했다.
이번 ABC 임무를 같이 맡은 모이라이 학파의 마법사였다.
“저야말로 이렇게 만나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곳이 데이브 씨의 거래처군요?”
알버트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예.”
“언제 한번 올까 했는데, 이렇게 오게 되는군요.”
진심. 올리버가 질문했다.
“여기 생선 요리가 맛있다는 게 마탑에도 퍼졌습니까?”
“어…….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한번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생선을 좋아하거든요.”
“그거 다행이군요. 꽤 맛있답니다.”
올리버가 대답하며 종업원을 불러 생선 요리 두 접시를 시켰다. 종업원은 친절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평소에는 이곳 레스토랑에 계십니까?”
“아뇨, 평소에는 여기 잘 안 있습니다. 이것저것 할 게 있어서요. 다만, 요즘은 여유가 생겨 이곳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습니다."
“흐음..…. 책을 좋아하십니까?”
“재밌는 걸 배울 수 있으면요.”
“그래서 이것도 요청하신 거군요?
알버트가 가져온 서류 가방을 내밀었다.
척 보기에도 묵직했는데, 안을 열어보자 대량의 서류 더미를 블 수 있었다.
“보안국 아서 씨께서 저희에게 요청하신 성공 보수입니다.”
알버트가 말한 성공 보수란 다름 아닌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 세계수에서 확보한 내부 정보였다.
올리버는 홀로 알버트를 지키고, 세계수 해킹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성공 보수로, 아서에게 해당 자료를 모두 공유해 달라 부탁했다.
아서는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하곤, 카버를 통해 알버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모이라이 학파와 시(市) 공무원 카버의 계약 때문이었다.
임무에 관한 자료는 공유하되, 세계수에 관한 자료는 모이라이 학파가 가지는 것이 조건이었기에.
즉, 해당정보의 권리는 시(市) 관계자가 아닌 모이라이 학파에 있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이라이 학파가 이번 임무에 참가 한 건 다름 아닌 드루이드의 세계수 기술이 탐난 거였으니.
그런데, 그걸 웬 흑마법사가 공유를 부탁한다?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분명 그랬을 진데, 알버트가 직접 가져왔다.
“물론, 모든 자료는 아닙니다. 드루이드의 세계수 관련 핵심 자료는 없습니다. 설득해 봤지만, 윗선에서 듣질 않아서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심. 알버트는 올리버가 묻지 않았음에도, 자진해 상황을 솔직히 설명해줬다.
올리버의 실력과 태도를 보고 어설픈 거짓말보다는 사실을 통한 설득이 더 먹힌다는 걸 아는 거였다.
그리고 그 계산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알겠습니다. 오히려 이렇게나마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설득이 쉽게 먹히자 알버트는 긴장이 풀리며 다소 태도가 느슨해졌다.
태도가 느슨해지자 호기심이 일어섰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호기심이 말이다.
“그런데 세계수의 자료를 왜 요청하신 건지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해결사분들을 폄하할 생각은 아니지만, 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세계수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예, 신기한 존재라 호기심이 가더군요.”
“뭐, 하긴, 데이브 씨는 희귀- 아아, 실례. 데이브 씨는 마력도 사용하실 수 있으시니, 세계수에 관심을 가져도 이상하진 않겠죠. 세계수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올리버는 잠시 생각에 빠지다 기초적인 정보만을 이야기했다.
순수하게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해, 알버트와 해당 내용에 관해 가감 없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알버트의 감정에 어떠한 숨은 뜻이 있었기에 자제하였다.
허나, 그럼에도 알버트는 놀란 눈치였다.
“호……. 세계수에 대해 제법 잘 알고 계시는군요.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책을 구해 읽었거든요.”
“아, 블랙마켓과 그레이마켓요?”
사실, 멀린의 헌책방이었지만, 올리버는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하긴 요즘은 그곳에서도 괜찮은 책을 구할 수 있기는 하죠……. 괜찮으시다면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제가 세계수에 관해 조금 알려드릴까요?”
타산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호의가 뒤섞여 빛났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알버트는 올리버가 말한 정보를 기초 토대 삼아 세계수에 관한 여러 정보를 블록 쌓듯이 설명해줬다.
대다수 아는 내용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알버트의 설명은 썩 훌륭했다.
다소 모호한 개념이나, 현재 다투고 있는 가설에 관해서도 쉽게 잘 설명해줬다.
잠시 후, 생선 요리가 왔고, 다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해가 잘 되네요.”
“쉽게 설명하긴 했지만, 그래도 알아듣는 건 듣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생각보다 대단하시군요.”
진심. 올리버는 감사 인사를 표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친절하시군요.”
그런 올리버의 태도에 계속해 고민하던 알버트는 확신을 빛내더니, 품 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냈다.
“이건 뭐죠?”
“아까 저더러 친절하다고 하셨지요?”
“예? 아, 예.”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뻔뻔한거 같지만, 란다에서는 공짜가 없습니다. 호의조차도 말이죠. 사실, 저희 모이라이 학파는 데이브 씨와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요?”
“예, 데이브 씨요. 아실지 모르지만, 란다는 거대한 권력 투쟁의 장입니다. 작게는 거리의 노점상, 크게는 시의회까지요. 어디서든 권력을 가지려 서로 헐뜯죠. 마탑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야기 정도라면 들어봤습니다.”
“저희 모이라이 학파는 마탑 내에서 생명학파와 공간학파와 더불어 새롭게 떠오르는 강력한 신생 학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어느 정도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드시면요?”
"무력을 들 수 있죠.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한 무력요.”
“아……."
올리버는 소리 냈다. 허나,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몰랐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모이라이 학파는 힘보다는 정보를 첫 번째 가치로 삼는 학파였으니.
다른 학파에 비해 무력이 부족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이번 임무에 참가한 것도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
“드루이드의 세계수 기술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게 가장 크긴 하지만, 시(市)에 우호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번 ABC는 작게 보면 회사 하나지만, 크게는 란다 시(市) 권력 구도를 개편할 수 있는 큰 건이거든요. 아십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이야기라면 포레스트에게 들었다.
현재 란다 시의회 일부는 셰이머스에게 돈을 받아먹은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눠 경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는지 모르겠으나, ABC 임무가 어찌 마무리 되냐에 따라 몇몇 시의원과 시(市) 공무원의 운명이 뒤바뀔지도 몰랐다.
"만약, 카버 씨가 일을 잘 마무리한다면 그분을 후원한 시의원들과 저희 모이라이 학파가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음……. 이해했습니다. 시의회를 통한 마탑 경쟁에서의 우위군요. 그러나 그것과 저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흑마법사이지 않습니까?”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희 모이라이 학파는 세계수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학파입니다. 즉, 다른 학파에 비해 머리가 좀 트여있다는 거죠……. 그저 흑마법사란 이유 하나만으로 데이브 씨 같은 실력자를 무시할 만큼 꽉 막혀있지 않습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저희는 흑마법사 중에도 마법사 못지않은 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데이브 씨도 그중 하나이고요. 저희는 그런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같은 마법사라곤 하나, 다른 학파는 계속 저희를 하나의 하부기관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올리버는 납득했다. 실제로 마탑에서 일해 보니 그런 기색이 있긴 했다.
“물론, 당장 뭘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인사를 미리 드리는 것에 불과하죠. 저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주신다면 그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음……. 세계수에 관한 지식도 가르쳐줄 수 있습니까?”
“지식은 까다롭지만, 제가 잘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중개인이신 포레스트 님께 말씀해두겠습니다.”
“그 정도면 만족합니다.”
“다만, 일이 잘 풀렸을 때 이야기겠군요.”
“예?”
“일이 잘 풀린 후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맥클러스키 보안회사를 습격한 후, 적잖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와 그 회사가 담당하던 위장 회사가 시 경찰에 의해 전부 문을 닫고, 적장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ABC는 여전히 건재했다.
투자 수익금을 늘 제때 지급했고, 덕분에 ABC에 몰린 투자금은 더더욱 늘어 2조를 돌파한 상태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요?”
"예, 조만간 재밌는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거든요.”
알버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때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며칠이 지난후 <카산드라>신문사에서 한기사를 1면에 실었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익명제보. 투자회사 ABC. 희대의 사기범과 밀회를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