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 잠자는 숲 (1) >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에서의 전투는 심심하게 끝났다.
숲 인근의 드루이드가 자그마치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렇다 활약을 하지 못했으니.
허나,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제아무리 강자라도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무래기처럼 죽을 수 있었다.
가령, 건물 밖에 있던 코너는 혼자서 일곱 명이나 되는 보안국 요원을 상대해야 했고,
건물 안에 있었던 드루이드 넷은 시체가 가득한 밀폐된 공간에서 흑마법사를 상대해야 했다.
조작계열이 특기인 흑마법사를 상대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뭐, 올리버는 조작계열 특기인 흑마법사가 아니긴 했지만……
여하튼,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 습격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일어나긴 했어도, 큰 문제 없이 끝났다.
“그런 탓인지 일이 끝난 후에도 뭔가 심심하네요.”
포레스트 레스토랑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는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 앉아있었으며, 그 맞은편에는 포레스트가 앉아있었다.
“그런가?”
“예.”
올리버가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 포레스트를 바라봤다.
포레스트도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테이블 위엔 여러 신문이 쌓여있었다.
“이 정도면 나름 요란한 것 같은데.”
포레스트가 자신이 읽고 있던 신문 기사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해당 페이지에는 [거대 범죄 커넥션! 보안국이 밝히다!!]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다.
테이블 위 다른 신문도 해당 기사를 1면에 싣고 있었다.
“란다에서 한가지 이야기로 1면에 가득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야. 신분에 상관없는 공통된 관심을 끌어야 하니.”
“범죄를 소탕한 게 그 정도로 큰 관심을 끌 만한 겁니까?”
올리버가 질문했다.
란다를 깎아내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발전되고, 부유한 도시에는 바퀴벌레처럼 수많은 범죄 조직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대다수 시민이 공생하면 된다고 생각할 정도.
그렇기에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건 란다에서 그리 대단한 게 되지 못했다. 어차피 그 빈자리를 다른 조직이 채울 테니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범죄 조직을 소탕한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지. 다만, 이 정도 규모면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어. 뭣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보안국이 했다는 거야.”
포레스트가 신문에 실린 아서의 사진을 짚었다.
그는 엉망이 된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 앞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눴는데, 특유의 강인한 인상과 함께 지적인 모습이 부각됐다.
“사진이 잘 찍힌 거 같기는 하지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보안국이 했다는 게 왜 중요하죠?”
“음……. 하긴, 자넨 그럴 수 있겠구만. 설명하기 좀 애매해. 일종의 자부심 문제거든.”
“자부심요?”
“그래, 란다 사람으로서의 자부심.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왕국에 소속되어 있지만, 또 아닌, 특별한 사람이라고……. 화장실 청소부도, 공장 주인도 이건 똑같이 생각할 거야.”
“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란다 사람은 왕국 사람과 다른 특별한 걸 가지고 싶어 해. 가령, 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와 경찰 사이의 조직이라든가.”
“그게 보안국입니까?”
“그래, 왕국에 없는 조직이 생겨 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고 하면, 왠지 기뻐하거든. 이성적인 건 아니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뭔지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신문사가 해당 기사를 1면에 싣는 거야. 잘 팔리니까.”
“예, 그렇군요……. 하지만, 제가 심심하다고 하는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왜 ABC나 셰이머스 씨를 기사에 다루지 않았냐는 겁니다.”
올리버의 말대로 각 신문사는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와 그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한 범죄 회사에 관해 자세히 다뤘지만, 정작 실질적 주인인 셰이머스에 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셰이머스에게 적대적인 신문사인 <카산드라(Cassandra)>조차도.
즉, 아서……. 아니, 카버가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없어 모르겠네. 다만, 추측할 수는 있지.”
“추측요?”
“그래, 늙은이의 사견인데, 듣고 싶나?”
“물론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부탁드겠습니다.”
정중한 올리버의 부탁에 포레스트는 살짝 웃으며 커피를 마시곤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 꺼내도 소용없기 때문일 거야.”
"소용이……없다고요?”
“그래,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제외하고는 셰이머스하고 관련된 게 거의 없거든."
“하지만-”
“-무슨 말을 할지 아네. 모두 셰이머스에게 돈을 빌리고, 투자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려는 거겠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프 론(leaf loan)은 위장 회사에 돈을 빌려줘 창업하는 데 힘을 보탰고, ABC는 그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해 사업이 성장할 수 있게끔 해줬다.
둘 모두 이 과정에서 큰 이익을 봤고. 올리버가 보기에는 충분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 해도 안 돼. 돈 빌려주고, 투자한 놈들이 범법자라고, 채권자와 투자자까지 엮으면 이 도시 사람 절반은 감옥에 있어야 할 거야……. 실제로 감옥에 갈 인간들이긴 하지만.”
“아……."
“물론, 좀 더 파고들면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미 없어. 모두 셰이머스에게 열광하고 있거든.”
포레스트가 테이블 위 신문 중 하나를 펼쳐 한 기사를 보여줬다.
ABC에 관한 기사로, 높은 수익률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는 기사였다.
기사에 포함된 사진에는 함박웃음을 피운 도시 노동자들이 찍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셰이머스까지 수사가 진행되면 어떨 거 같나?”
“음……. 사람들이 싫어할까요?”
올리버가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봤다. 포레스트가 기뻐했다.
“그래, 맞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천사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입에 거품을 물 거야. 자기들이 돈 버는 게 그렇게 배 아프냐며. 그럼, 셰이머스에게 뒷돈을 받는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이 이를 이용해 수사를 방해하겠지. 즉, 지금은 별 쓸모없는 무기라는 거야. 더 상황 이 무르익을 때까지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거군요.”
“그렇네. 일단 주 수입원 중 하나를 붕괴시켰으니, 지켜보자는 거지, 약점을 보일 때까지.”
올리버는 셰이머스를 떠올렸다.
그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가 쉽게 약점을 드러낼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행동이 가볍고, 요란한 듯했지만, 감정 상태나 결과를 보면 꽤 심계가 깊었다.
투자 파티에서 올리버를 이용해 모두의 시선을 끈 것이 그 일례였고.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포레스트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동의하네. 아마, 셰이머스가 쉽게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거야. 방탕, 화려, 요란……. 그는 지혜와 연관 없는 인상을 풍기지만,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닌 결과니. 그는 뭐가 됐건 해결사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 쉽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역시 자기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라는 거지.”
“예?”
“셰이머스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란다에서는 모두가 특별하거든.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휘두를 수 있을 만큼 란다는 하찮은 도시가 아니야.”
포레스트가 자신 있게 말했고, 올리버는 묘한 감각을 느끼며 그 말을 곱씹었다.
란다에서는 모두가 특별하다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멋진 말 같았다.
“괜찮은 문구네요.”
“란다에서는 모두가 특별하다?”
"예.”
“한때, 란다에서 밀었던 광고 문구네.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지.”
“오……. 앞으로 광고도 열심히 봐야겠네요.”
“결론이 뭔가 이상하지만 자네만 만족스럽다면야……. 어쨌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딱히 초조해할 필요 없다는 거야. 내무부 소속 엘리트가 작정하고 맡았고, 란다의 다른 이들도 계속 ABC와 셰이머스를 주시하고 있어. 정말 문제가 없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한 번은 기회가 올 거야. 시(市) 공무원, 특히, 내무부 소속은 길거리의 초인들과 다른 의미로 대단하거든.”
“잘 아시는군요.”
“이 바닥에 오래 있으면 싫어도 알게 되지……. 뭐, 젊은 시절 그들과 같이 일한 적도 있고.”
“혹시, 캔트 님과 같이 일할 때입니까?”
느닷없이 혹 치고 들어온 질문에 포레스트가 움찔했다.
당황할 때가 좀 있긴 해도 특유의 능청스러운 태도와 경험으로 곧잘 회복했는데, 이번에는 쉽사리 그러지 못했다.
“후우……. 대답을 기다려 준다고 생각했는데?”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여쭤봤습니다.”
"불쾌한 건 아니지만, 갑자기 질문하니 좀 놀라긴 했네……. 혹시, 무슨 일 있나? 임무에 사견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야."
정답이었다. 포레스트는 미묘한 올리버의 변화를 바로 알아맞혔다.
현재 올리버가 임무에서 사견을 내고, 기다리던 질문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품속에 있는 다섯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임무를 맡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쪽에 신경이 쏠려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기일 때는 그게 안 돼 약간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올리버는 평소 하지도 않던 임무에 대한 사견을 내거나, 다른 질문을 해 이 호기심을 잠시나마 잊으려 했다.
허나, 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 올리버는 적당히 시치미를 땠다.
“별거 아닙니다.”
무엇인가 있다고 눈치잰 포레스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커피를 마시곤 입을 열었다.
“음……. 확실히 슬슬 이야기해줄 때가 됐을지도 모르지. 나랑 캔트에 관해서.”
“오, 진심입니까?”
“사과한 것치고는 반응이 너무 빠르군.”
“아, 죄송합니다. 기뻐서요.”
"그런 거로 기뻐한다니 자네도 참……. 이번 임무가 끝나면 이야기해주도록 하겠네.”
“임무가 끝나고요?”
“그게 순서 아니겠나? 임무 중인데? 뭣보다 나도 생각 정리할 시간은 있어야지. 문제 있나?”
“음……. 아뇨, 없습니다.”
올리버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당장듣고 싶긴 했지만, 포레스트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올리버의 속을 꿰뚫은 포레스트. 올리버는 품속의 편지를 매만지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편지에 대한 호기심을 잠시 다른 호기심으로 달랠 수 있었기에.
그와 함께 의구심을 가졌다. 도대체 멀린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빨리 오셔야 내가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데..….'
***
“내가 도대체 여기서 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만.”
두꺼운 외투와 묵직한 배낭을 멘 멀린이 손을 뻗으며 한탄했다.
늘어지는 말투와 달리 멀린의 손에 웬만한 마법사는 평생에 걸쳐도 쌓을 수 없는 강대한 마력이 모였다.
마력은 술식과 의지에 따라 강렬한 청색 번개로 변하더니, 다섯 갈래로 뻗어져 나가 다시 한 점으로 모여 눈앞의 5미터가량 되는 거대한 해골 거인을 강타했다.
퐈촤아아아아아앙!!!
가느다란 번개 줄기 다섯 개가 목표물에 닿자마자 강력한 스파크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발생한 충격파는 해골 거인뿐 아니라 주변의 나무까지 산산이 부쉈다.
“이건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멀린이 부서진 해골 거인이 버터처럼 녹아 땅속에 스며들고, 충격파로 부서진 나무가 연기와 함께 멀쩡히 원상 복귀하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잠자는 숲은 참으로 기이한 곳이었다.
“애당초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에서 벗어난 거지만……. 그대들 생각은 어떤가?”
휙——탁!
멀린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마력으로 낚아채며 질문했다.
조잡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단추 눈에 커다란 코, 고깔모자와 웃옷만 입은 난쟁이가 보였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전혀 없는 몽환적 외형. 약간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 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됐다.
아까 전 멀린이 쓰러뜨린 해골 거인과 마찬가지로 저것 역시 흑마법으로 만든 크리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크리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근처 그루터기로 갔다.
놀랍게도 그루터기에는 문이 있었고, 크리처는 작은 몸집을 이용해 그루터기 안으로 들어갔다.
멀린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
멀린은 그루터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라운드 어렙션(Ground Eruption)]
영창과 함께 그루터기 아래 땅속 깊숙이 요동치며, 화산처럼 폭발하듯 위로 대량이 흙이 솟구쳤다.
그 흙 속에는 수많은 난쟁이 크리처가 있었다.
[컴프레셔(compression)]
멀린이 공중에 뜬 흙과 나무뿌리, 바위, 돌, 크리처를 마력으로 붙잡아 그대로 손을 꽉 쥐었다.
하나의 점으로 모여 압축된 크리처들은 마력의 압력에 의해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이거 이거 끝이 없구만.”
멀린이 멀쩡히 원상 복귀된 바닥과, 울창한 숲속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는 온갖 크리처를 보며 말했다.
질문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결국, 멀린은 예의를 약간 어기고 좀 더 쉬운 길을 가기로 했다.
자기는 나이가 좀 있는 노인이니 약간의 예의는 어겨도 되지 않겠는가?
멀린이 손에 마력을 모아 허공에서 책을 하나 소환했다.
멀린은 그 책을 찢어 그대로 하늘 위로 날렸다.
이 잠자는 숲을 한꺼번에 다 태우기 위해 말이다.
“그래도 원상 복귀될까?”
그렇게 마법을 발동시키려는 찰나, 숲속에 있던 크리처의 기척이 사라지더니, 등에 요정과 같은 날개가 달린 노파가 나타났다.
“……공주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