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작전 시작 (1) >
“이게 투자 회사 ABC의 관계도입니다.”
란다 시(市) 보안국의 안전가옥.
그곳에서 시(市) 공무원 폴 카버가 말했다.
카버는 뒤에는 소켓이 있었으며, 소켓은 복잡하게 얽힌 투자 관계도를 벽면에 띄우고 있었다.
웬만한 의학서적이나, 마법책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올리버였건만, 여태까지와 결이 다른 복잡함에 눈을 어디에다가 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카버가 마력을 이용한 포인터로 바로 중심을 잡아줬다.
“우선, 여기 중심을 봐주십시오.”
카버가 말한 중심이란 다름 아닌 ABC투자 회사였다.
관계도 중심에 있는 네모난 ABC는 화살표로 모든 것들과 얽혀있었다.
흡사, 거미집의 중심.
올리버는 ABC 주변에 포진한 이름을 하나하나 차분히 읽었다.
‘개인투자자, 거물 투자자, 은행, ABC 에이전트? ……주식, 부동산, 채권, 위장 회사……'
얼핏 보면 질서 없이 널브러뜨린 것 같았지만, 올리버 그게 아닌 걸 곧 알 수 있었다.
관계도는 나름 기준에 따라 제법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묘하게 질서가 느껴지는 화살표가 그 증거.
그럼에도 복잡하게 보이는 건, 판 자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저 정도나마 정리한 카버의 솜씨를 칭찬해야 마땅했다.
젊은 나이인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나 카버는 으스대지 않고 냉정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 위쪽은 ABC에 돈을 넣는 자금원들입니다. 크게 네 가지로, 개인투자자, 거물 투자자, 은행 그리고 에이전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는 뭡니까?”
그렇게 좁지도 넓지도 않은 안전가옥 구석.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벽에 기댄 채 질문했다.
모이라이 학파에서 온 마법사였다.
포레스트의 예상대로 이번 일에 모이라이 학파와 협력했다.
“셰이머스에게 고용된 대리인들입니다. 가깝게는 인근 소도시, 멀게는 그린랜드와 노스랜드까지 ABC 대리인 자격으로 투자 유치를 하는 자들이지요. 개중에는 아예 자기가 투자 회사를 세워 ABC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투자 회사를 세워, 다른 투자 회사에 투자한다니.
이런 쪽 이야기를 잘 모르는 탓인지 올리버의 귀에는 좀 이상하게 들렸다.
허나, 올리버는 굳이 손들어 질문하진 않았다.
잘 모르고, 관심도 덜한 분야인지라, 가급적 입은 닫고 귀만 열 생각이었다.
‘뭣보다 포레스트 님이 투자판에는 온갖 기이한 형태가 성행하니, 일일이 놀라지 말라고 했고. 그럼, 끝이 없다고.’
올리버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카버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에이전트에서 들어오는 자금도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ABC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 파급력을 주변에 퍼트려줄 도화선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진심.
카버의 마력 포인터를 아래로 내렸다.
깔때기처럼 한 점으로 모이던 화살표는 ABC를 걸쳐 주식과 부동산, 채권, 위장 회사로 각각 퍼져나갔다.
“ABC는 현재 이 네 곳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투자 회사라고는 하나, 주식시장에만 머무는 게 아닌 란다의 재개발 사업과 각종 채권 등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곳 위장 회사입니다.”
옆으로 따로 쭉 빼낸 위장 회사를 카버가 짚었다.
카버의 말과 함께 소켓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는 간단한 도형이 아닌 간판을 단 실제 건물이 여러 개 찍혀있었다.
“콜 국제 무역회사, 게일 약재 유통회사,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 등등.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회사지만, 모두 셰이머스가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초라한 회사의 소유주가 셰이머스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약간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이머스는 옷부터, 자동차, 행동 모두 화려하고 요란했기에.
누군가 이 사실을 지적하자 카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린 것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지만, 그 덕분에 셰이머스와 이들 회사의 연관성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실제로, 서류상으로 보면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제외하면 셰이머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아하……. 그럼,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나 보군.”
시(市) 보안국 팀장 아서가 말했다.
올리버와 함께 윌레스를 잡는 시외(市外) 임무를 맡은 퇴역군인이자, 전(前) 해결사.
그는 이번 카버의 일에 자진해 참여한 특수 보안국 유일한 팀장이었다.
"맞습니다. 아서 씨. 실질적으로 나머지 회사 역시 셰이머스가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바지사장만 앉혀놨고, 자기 부하들을 통해 운영하고 있죠. 당연히 정상적인 회사는 아닙니다.”
소켓의 영상이 다시 변했다.
콜 국제무역 회사에 대량의 총기와 각종 중화기가 들어가는 모습이 나왔다.
“콜 국제무역 회사는 란다 경계지라는 특성을 이용해 란다 밖 무기공장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여, 노스랜드나 중앙 대륙, 신대륙에 팔고 있습니다.”
“그게 가당키나 한가? 돈이 좋다지만, 위험이 엄청날 텐데.”
“정상적인 경우라면 어렵겠지만, 거래하는 무기공장이 셰이머스와 부채 관계로 얽혀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또, 감독해야 할 기관 역시 셰이머스와 커넥션이 있고.”
“거, 골 때리는구만.”
아서의 동료 중 하나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올리버도 동감이었다.
해결사에서 사업가로 변모한 셰이머스의 수완을 이미 수차례 들었지만, 설마, 란다 밖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줄이야.
옳고 그럼을 떠나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게일 약재 유통사는 법망이 느슨한 약초를 따로 유통해 란다 밖에서 섞어, 갈로스와 동방회사에 저가형 마약을 공급하는 마약 공장이며, 다른 사업체도 매한가지입니다.”
소켓에서 각 회사의 간판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검은 사업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이들 회사는 모두 초반만 해도 리프론(leaf loan) 휘하의 작은 사업체에 불과했으나, ABC가 출범하며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린 이곳부터 파고들어야 합니다.”
카버가 작전의 방향성을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던 올리버가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위장 회사가 ABC의 가장 큰 수입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ABC는 주식, 재개발, 채권으로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가장 큰 수입은 위장 회사인 것으로 판단되거든요. 즉, 위장 회사가 흔들리면 ABC의 민낯이 드러날 가능성이 큽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위장 회사의 수입을 끊어 ABC의 자금 흐름이 꼬아, 투자 흐름에 제동을 걸어주겠다는 거였다.
아차 하면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었지만, 폭탄이 쌓이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랐다.
“두 번째는, ABC를 공략하기 가장 좋은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 모두 아시겠지만, ABC는 일부 시의원과 공무원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바로, ABC부터 노리면 역공을 당하는 것은 저희일 겁니다.”
"하지만, 무기 밀매, 마약, 불법 외환 거래 등. 검은 사업을 하는 곳이라면 문제없지. 아니,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지. 그건 보안국의 임무니까.”
카버와 함께 이번 일의 핵심인 보안국 팀장 아서가 덧붙였다.
즉, ABC부턴 노리기 위험이 따르니, 뒤가 구린 곳부터 거꾸로 파고 들어가겠다는 이야기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카버가 포인터로 화면을 넘겼다.
란다 최외곽 숲속에 있는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가 나왔다.
건물 자체는 투박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딱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다.
건물 중심에 나무가 자라나고 있다는 거 였다.
“이곳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의 세계수 정보를 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셰이머스가 이곳 세계수에서 수상한 작업을 한 흔적이 수차례 포착했거든요. 즉, 우리의 목표는 ABC의 돈줄인 위장 회사의 중앙 컨트롤타워 맥클러스키 보안 회사를 급습, 다른 위장 회사의 범법 증거를 찾아내고, 그와 함께 셰이머스가 이곳에서 무슨 작업을 했는지 알아내는 겁니다.”
***
브리핑이 끝마친 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올리버도 떠날 생각이었지만, 카버의 요청이 있어 잠시 남아있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남아달라고 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우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는데,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거래라 안 그러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사실, 아서 씨께서 반드시 데이브 씨를 고용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걱정했는데, 한숨 돌렸습니다……. 혹시, 이번 임무에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음...... 고용된 해결사는 저밖에 없는 겁니까?”
안전가옥에 들어와 사람을 둘러본 올리버가 확인 차 물었다.
이번 작전의 참가자는 모이라이 학파에서 파견 나온 넷 내비게이터(Net Navigator)와 올리버를 제외하면 외부인력은 없었다.
나머지 인원은 모두 보안국 요원인 아서와 그 부하들.
즉, 해결사는 올리버 혼자란 소리였다.
“예,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어째서죠?”
“이번 임무는 보안이 중요하거든요. 셰이머스에게 매수당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해결사는 데이브 씨 외에는 고용하지 않은 겁니다."
“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감사받을 건 아닙니다. 신용은 당사자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거니까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 카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저도 그에 걸맞은 믿음을 보여야 하는 법. 포레스트 씨를 통해 데이브 씨가 원하는 걸 들었습니다. 파테르교 누구의 인사가 궁금한 건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선수금으로 알아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거 감사하네요……. 요안나라는 여성분이십니다.”
“요안나요?”
카버가 따라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음…….설마, 성기사 요안나 님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성기사 요안나. 다른 곳으로 발령 났다고 하던데, 어디 가셨는지 알수 있겠습니까?”
***
카버는 올리버의 부탁을 별다른 말 없이 수락했다.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으나, 그는 질문하진 않았다.
올리버도 그런 그를 믿으며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작전 시행 호출이 왔다.
올리버는 호출기에 표시된 결집장소인 란다 최외곽으로 이동했다.
개발금지 구역과 거의 붙어 있다 할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말이다.
“대단하네요.”
올리버가 마력 장벽에 둘러싸인 임시 캠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어벽 역할을 하는 일반적인 마력 장벽과 달리, 은신을 위한 마력 장벽으로, 위장색을 구현했을 뿐 아니라, 기척과 감정, 생명력 등을 숨기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올리버의 눈에는 통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상당한 수준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 돈의 힘이지. 보안국은 시(市)에서 예산을 받아서, 해결사 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 장비를 쓸 수 있거든.”
캠프를 둘러싼 마력 장벽 내부에서 현장 지휘하던 아서가 올리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올리버를 보며 웃고 있었고, 실제로 올리버를 봐 반가운 감정을 빛냈다.
“아서 씨 오랜만입니다.”
“그래, 아주 오랜만이야.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구만, 그래.”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 몫이지. 자넬 넣어달라고 내가 부탁하긴 했지만, 진짜 수락할 줄은 몰랐거든. 자네 이름값이 너무 올라서 말이야.”
“카버 씨의 조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나누고 싶은 말은 많지만, 우선 일이 먼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