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채비 (1) >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 상태로 블 때는 몇 마디 더 조언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올리버를 알기에 괜한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도시 사람들 다들 아닌 척하지만, 꽤 배려심이 깊었다.
“아……. 그런데 저 때문에 포레스트 님께서 피해 입지는 않겠습니까?”
올리버는 뒤늦게 물었다.
"나 말인가?”
“예, 셰이머스 님이 돈도 엄청나게 모으고, 부하분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사실이지. 요즘은 크라이 펌 이사들도 눈치를 볼 정도라더군.”
“만약 잘못되면 포레스트 님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는 거 아닙니까?”
“흠…….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 발언이구만. 설마, 내가 그 정도 대비도 안 했을 것 같나?”
아……. 올리버는 탄식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산 세월보다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인물.
그런 그를 걱정하는 건 확실히 건방진 행동이었다.
올리버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셰이머스 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만 들어서요……. 또, 저희를 습격할 만큼 행동력도 좋고요.”
“부정하지는 않지. 하지만 나 역시 보통 중개인은 아니네.”
맞는 말이었다.
현재 포레스트는 크라임 펌과 파이터 크루를 연결해주는 중개인. 아무리 셰이머스라도 함부로 손대기 어려울 터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건 내가 자네와 같이 일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뿐이니, 더더욱 신경 쓸 게 아니지."
“……네?”
갑자기 나온 묘한 대답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포레스트는 냉정하면서도 초연한 감정을 빛냈다.
“혹시나해서 하는 말이야.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 힘 좀 생겼다고 방심하는 사람들이.”
“딱히, 방심한 것은 아닙니다.”
“이 바닥에서 남 걱정해주는 게 곧 방심이야.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 바닥은 아주 더럽고 치열한 곳이지. 대부분 제 코가 석 자. 걱정 자체가 과한 행동이야. 설사……."
포레스트가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설사, 죽는다 해도 스스로 이 바닥에 들어온 대가를 치른 것뿐이니, 슬퍼하거나 억울해할 건 아니지. 위험한 곳에 들어왔으면 그만한 대가는 각오해야 하는 법이니. 그러니 함부로 남 걱정하지 말게.”
올리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히 따져보면 포레스트의 말은 전부 다 맞는 말이었다.
올리버나 포레스트나 스스로 이 바닥에 들어온 사람.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늘 각오해야 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제가 해이해진 것 같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일만 신경 써. 여긴 남 걱정해주는 사람보다, 자기 일만 잘하는 사람이 환영받는 곳이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카버 씨에겐 내일 바로 말 전하도록 하겠네. 아마, 임무를 바로 시작하진 않겠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저쪽도 느긋하진 못할 테니.”
올리버는 동의했다.
카버가 특유의 이성과 냉정으로 태연함을 유지했지만, 이번 일을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으니.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테지만, 기회만 포착된다면 사정없이 일을 진행할 터였다.
올리버도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게끔 채비해야 했다.
‘스케줄을 조정하고, 전력도 보강하고……. 아무래도 다시 휴가 신청을 해야겠네.’
올리버가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중 포레스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자네만 괜찮다면 내가 협상해보고 싶은데 해도 되겠나?”
“협상요?”
“그래, 카버 씨가 이것저것 조건을 걸었지만, 결국, 당장은 아무것도 못 해 준다는 거니. 이때 잘만 하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거 같거든."
“예, 상관……아, 그럼, 그거에 관해 미리 알아봐 달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파테르교 인사말인가?”
“예, 궁금한 분이 있거든요.”
***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말을 수락했다.
‘좋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것부터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네.’
올리버는 그 말에 만족감을 느끼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볼일도 다 봤고, 시간도 충분히 늦었기에.
다만, 바로 집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올리버는 밤늦게까지 운행하는 택시를 하나 잡고 웃돈을 얹어 무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랙마켓에 방문했다.
일반 무기부터 군용 무기, 사제 개조 무기 등 다양한 무기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파이터 크루를 성공적으로 훈련한 보상으로 다른 블랙마켓을 몇 개 알게 된 것인데,
올리버는 그곳을 방문하자마자, 폭탄과 같은 무기와 총기, 염산 분출기 따위를 주문했다.
‘파운더가 쓴 섬광탄과 안개탄……. 쓰기에 따라서 송장인형의 전투력을 배가시켜 줄 수 있어, 던칸과 같은 근접용 송장인형은 특히……. 송장인형-저격수의 총도 한번 강화해야 하고 말이야.’
평소 전력 강화에 대해 이것저것 틈틈이 구상한 올리버. 때마침 기회다 싶어 한꺼번에 주문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무기 주문을 마친 올리버는 피곤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블랙마켓에 방문했다.
골동품, 장물, 위작 등 잡다한 물건을 다루는 블랙마켓으로, 근래 올리버가 자주 방문하는 곳 중 하나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오셨습니까?”
대머리에 양복을 입은 점원이 올리버를 반겨줬다.
이 블랙마켓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주로 서적을 취급했다.
일반적인 서적뿐 아니라 예술품 가치를 가진 고서(古書), 흑마법과 마법 서적 심지어 악마의 서적까지 다뤘다.
“혹시, 그 책은 들어왔습니까?”
‘그 책’이란 다름 아닌 악마의 서적을 말했다. 물건을 취급한다고 해도 남다른 위험성과 본능적인 두려움 탓에 구체적으로 칭하지 않았다.
점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들어왔습니다. 딜러들 말로는 한동안 구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네요.”
진심. 올리버가 아쉬워했다.
"그렇습니까?”
“예……. 다른 곳에서 구매하거나, 새로 발견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저번에 사가신 책은 벌써 다 읽으셨습니까?”
점원이 말한 책이란 다름 아닌 악마와 거래한 미친 남자의 일기 번역본이었다.
대륙 중앙의 남성으로,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은 것임에도 7천만 란다였는데, 솔직히 만족스러운 물건은 아니었다.
‘내용도 잘 이해가 안되고, 에디스 님께 받은 책도 먹질 않아서.’
이에 관해 이야기하자 점원이 사과했다.
“실망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손님.”
“아닙니다. 각오하고 산 거라서요.”
올리버가 말했다.
실제로 직원은 올리버가 책을 사기 전 설명했다.
블랙마켓이라고 악마의 서적을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일단, 제대로 된 물건 자체를 구하기 힘들고, 설사 구하더라도 저기 높으신 분들에게만 허용된 컬렉터 시장에서 채간다고 하였다.
그나마 흑마법사인 올리버가 이렇게 대놓고 구할 수 있는 것도 란다에서 쌓은 명성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제대로 된 물건은 이사님급에서 먼저 챙기시기에 제 선에서 물건을 구하기 약간 어렵습니다……. 원하신다면 이사님께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되면 안 좋을 것 같았다.
저쪽에서 의뢰라고 먼저 다가오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사적인 일로 자신이 먼저 다가가면 너무 깊게 얽힐 것 같았다.
악마의 서적을 원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급한 것은 또 아니기에.
그래서 올리버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괜찮은 물건을 찾으시면 챙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돈이라면 최대한 맞추겠습니다.”
“예, 당연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볼일을 다 본 후 올리버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 곧바로 잠들었다……
떼르르르르르! 떼르르르르르! 떼르르르르르!
눈을 감자마자 올리버는 눈을 떴다. 분명 몇 시간 정도 잤건만, 체감상 1분도 안 된 것 같았다.
떼——달칵.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 올리버.
올리버는 졸음을 쫓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 몸을 풀고, 라디오를 켜며, 가볍게 운동한 후, 샤워했다.
그런 다음 간단한 아침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똑. 똑.
음식 준비가 다 되었을 때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앞으로 갔다.
자신의 집에 방문할 사람이 없었기에. 도대체 누가 온 건가 싶었다.
스륵 부드럽게 열리는 현관문.
올리버는 문 앞의 선 남자를 보곤 질문했다.
“……도대체 제가 여기 사는 줄 어떻게 아시고 온 거죠? 어르신.”
“난 늘 내 제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거든. 들어가도 되나? 음식 냄새도 나는데."
***
".....설마, 늙은이에게 아침 식사 대접하는 게 아깝나?”
구운 스테이크 한 장, 굵은 소시지, 블랙 푸딩, 달걀 세 장, 식빵 세 조각, 베이크드 빈스, 신선한 샐러드와 사과, 생오렌지 주스, 커피를 먹어치운 멀린이 대뜸 질문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뇨, 그저 어르신께서 여기 어떻게 알고 오신 건지 너무 궁금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까 전에 말했잖나? 난 내 제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내 삶의 보람이지.”
두터운 마력의 벽 때문에 올리버는 멀린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허나, 왠지 그라면 진심이라 해도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 자네 원래 이렇게 많이 먹나? 아침치고는 양이 상당한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적해 준 사람이 없다 뿐 올리버의 식사량은 상당한 편이었다.
식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최소한 음식이 많아 남긴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글쎄요? 그냥,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해서요.”
“이런 미안하군. 나 때문에 괜히 못 먹은 거 아닌가?”
“아뇨, 괜찮습니다. 사과랑 빵, 우유로도 충분합니다……. 그보다 어쩐 일로 오셨는지 여줘봐도 되겠습니까?”
“날 만나고 싶다고 한 건 자네지 않나?”
“아……. 그렇긴 한데, 이리 갑자기 찾아오셔서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잠시 멀리 가볼 일이 생겼거든.”
예상치 못한 말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멀리 간다고요?”
“그래, 놀랐나?”
“솔직히 놀랐습니다. 갑작스러워서요.”
“나도 동감이야. 근데, 나름 급한 일이 생겼거든.”
“아……. 어디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용무라 답해주기가 곤란하구만. 난 남자가 나한테 관심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제해주게.”
“……? 죄송합니다?”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과했다.
멀린은 살짝 웃더니 음식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하튼. 오늘 찾아온 건 내가 잠시 떠날 거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나도 몰라, 미리 말해주는 게 예의 같았거든..... 자넨 뭐 때문에 날 만나고 싶다고 했나?”
“아…….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뭐지? 급한 거부터 빨리 말하게. 난 의리 있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떠날 생각이거든.”
갑작스러운 제안.
올리버는 반쯤 비워진 아침 식사를 봤다. 물어볼 게 꽤 있었건만, 많이 할 수 없을 듯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 다행인가?’
올리버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급한 것부터 질문했다.
“혹시, 제 교육법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들었네. 케빈에게서. 간접적으로 감을 잡게 해 주는 거 맞지?”
“예, 그렇습니다. 그걸로 학생분들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거 없지.”
“정말입니까?”
시원한 대답에 놀란 올리버가 되물었다. 케빈의 반응 때문에 안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멀린이 조건을 덧붙였다.
“단, 남용하지 말고, 최소한으로 써. 그리고 누가 그거에 관해 질문하면, 누구에게서 배운 거라고 대답하게. 사막이나 먼 동방의 기술이라고."
“아……. 그쪽에는 비슷한 게 있습니까?”
“아니. 그냥 사막과 동방의 기술이라 하면 뭔가 있어 보이잖나?”
다시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어르신……. 설마, 어르신도 이와 비슷한 기술을 모르십니까?”
“대답해줘도 상관없긴 한데, 괜찮겠나? 나 다 먹어가고 있어.”
멀린이 거의 다 비운 접시를 가리켰다. 실제로 접시 대부분이 깨끗이 비어있었다.
“좀 천천히 드시지요.”
“난 제자의 말 따위 듣지 않지. 특히, 임시 제자는…….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늙은이 상처받아."
“죄송합니다. 어, 음……. 그럼, 세계수에 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세계수로 미래를 알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건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도 신문이라면 보거든. ABC 투자 회사……. 요즘 시끄럽지 않나? 왠지 자네라면 물어블 것 같았거든."
“그렇군요……. 가능합니까?”
“이론상은.”
멀린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불가능이란 대답이 나올 줄 알았건만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이야.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지.”
“어떤 원리로 그게 가능한 거죠? 나름대로 생각해 봤지만, 정보량이 아무리 많다 해도 과거의 일이라 미래를 예견하는데, 한계가 있을 듯한데요.”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군. 내가 직접 대답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난 자기주도학습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이걸 주도록 하지.”
멀린이 품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놓았다.
정식으로 출판한 책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제본한 듯 소박한 형태의 책이었다.
“세계수..…진화론?”
올리버가 건네받은 책 표지를 따라 읽었다.
“세계수에 관한 이론 중 하나를 다루는 책이네. 자네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책을 파르르 넘기며 인사했다.
놀랍게도 전부 손으로 일일이 적은 책이었다. 이를 이야기하자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비싼 물건이지. 원래라면 돈을 받아야겠지만, 음식 맛이 좋아 이걸로 받은 셈 치지.”
“그러셔도 됩니까?”
“물론, 자네 요리 솜씨가 제법 괜찮거든.”
멀린의 칭찬에 올리버가 감사를 표하곤 다시 책을 훑어봤다. 아직 제대로 내용은 모르겠지만, 보통 책이 아니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그럼, 난 슬슬 일어나야겠군.”
멀린이 깨끗하게 접시를 비운 채 말했다.
“벌써, 가시려고요?”
“식사도 다 했는데,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뭔가?”
올리버가 다시 멀린을 바라봤다.
“아, 내가 그런 눈으로……잠깐만.”
멀린은 말을 하다 말고 품 안에서 뭔가를 뒤적였다.
“나도 정말 늙었나 보군. 이걸 까먹다니.”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죠?”
“잠깐만……. 아, 찾았다.”
멀린이 한 뭉치의 편지 다발을 내밀었다.
"받게. 자네한테 온 편지야.”
“저한테요?”
“그래, 왜 끝에 물음표가 붙지?”
“저한테 누가 편지를 보내죠?”
올리버가 진심으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이 없었기에.
허나, 멀린의 대답에 그 의문은 해소됐다.
“누구긴 누구야. 로스번이랑 다른 아이들이지.”
***
“……그래서 제가 한동안 못 나올 것 같습니다.”
원소학파 타워 체력 단련실. 올리버가 그곳에서 서른 명쯤 되는 학생들 앞에서 말했다.
말한 내용은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내 한동안 수업에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맡은 일이 있다 보니 이러기는 싫었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학생들이 그다지 실망하진 않았다는 거였다.
‘과연 다행인 걸까?’
올리버가 그렇다 할 의욕이 없는 학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올리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사람 의욕을 불태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다른 분을 알아보신다고 하니, 수업 진행에는 별다른 문제 없을 겁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개인 사정으로 일을 소홀히 해 정말 죄송합니다.”
학생들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 관심이 없는 것.
그러나 올리버는 화가 나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
올리버가 이야기를 마치자, 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여느 때처럼 터벅터벅 체력 단련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중에는 펠릭스도 있었다.
“펠릭스 씨?”
그를 불러 세우는 올리버.
학생들 틈에 섞여 나가던 그는 멈추며 올리버를 돌아봤다.
“……예?”
“혹시, 다음 수업 있으십니까?”
“……왜 그러시죠?”
“바쁘신가 해서요.”
“바쁘지는 않은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직원이 학생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문 경우. 펠릭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와줄지 말지 고민하며 말이다.
“……뭡니까?”
잠시 고심한 끝에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며 펠릭스가 올리버 쪽으로 다가왔다.
“떠나기 전에 펠릭스 씨의 마력 흐름을 한 번만 더 체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지금요?”
“예."
“의미 있습니까?”
“아마, 있을 겁니다.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실험? 아니…….하, 뭡니까.”
“그……먼 동방의 사막 땅에서 건너온 방법이 있거든요.”
“……예?”
펠릭스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치, 약장수라도 본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