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 전진(前震) (3) >
생각과 달리 마탑 학생 교육은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원래대로면 올리버는 자신의 교육 방법을 써 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학생들의 의욕을 끌어올렸을 텐데, 케빈이 허락해 주지 않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케빈을 원망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케빈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 특이한 기술인 것을 인지했으니.
그래도 안타깝긴 안타까웠다. 의욕 없이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나, 열심히 노력함에도 같은 구간에서 헤매는 학생을 보면 말이다.
“그나마 이쪽은 성과를 보여 다행이려나?”
올리버가 사다리 위에서 나사를 마저 조이며 중얼거렸다.
“저기, 괜찮아 보이나요?”
"......어......."
올리버가 뒤를 돌아 질문했고, 송장인형-바토리 안에 있는 퍼스트가 어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처음 퍼스트는 송장인형-바토리에 적응하지 못해, 말보다는 울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계속된 훈련과 막대한 감정, 생명력, 마력을 먹음으로 어느 정도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송장인형-바토리의 지식을 이용해 피의 영약 기초 설비 구축에 성공했다.
‘……지식일까? 기억일까?’
올리버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공구 벨트를 한쪽에 놔두며 해당 의문을 기록했다.
차일드와 송장인형에 관한 기록 일지에 말이다.
[……지식인지, 기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차일드가 송장인형에 들어갈 경우 송장인형의 단순 기교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이 어디까지인지도 아직 확인할 수 없다. 좀 더 관찰이 필요하다.)]
서걱서걱서걱……. 깔끔하고 멋들어진 글씨체로 일지를 작성한 올리버는 잠시 펜을 멈추고 피의 영약 생산 설비를 살펴보는 퍼스트를 다시 바라 봤다.
아직도 행동이 어색한 구석이 있었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자연스러웠으며, 뭣보다 지성이 엿보였다.
‘그전에도 어느 정도의 지성은 있었지만, 퍼스트의 경우 그 성장폭이 더 커……. 먹이를 많이 먹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일까?’
올리버는 차일드의 성장에 또 다른 가설을 의심해봤다.
감정, 생명력, 마력 등. 먹이만 많이 먹이고, 오래 개체를 유지하면 지성이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았다.
가령, 차일드가 사용하는 송장인형의 질이 좋을수록 차일드 역시 성장한다든가 말이다.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올리버가 어느 정도 확신했다. 차일드가 송장인형의 기술을 습득한다는 가설도 있었으니.
오히려 충분히 자연스러웠다.
올리버는 해당 사실을 빠르게 차일드 관찰일지에 적었다.
당장은 확인할 수 없지만, 차일드, 특히, 퍼스트가 조금씩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으니, 나중에 대화로 알 수 있을지 몰랐다.
“……역시, 재밌네.”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궁금한 걸 아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그리고 일하는 것도 몹시 즐거웠다.
특히, 이번 피의 영약 생산 설비 준비는 꽤 힘들었지만, 그만큼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괜한 시선을 끌 수 있어, 신분을 숨긴 채 블랙마켓 여러 곳을 돌아다녀 주문하고, 직접 설치하느라 고생했지만.’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올리버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
생산 설비 부품을 사 와 직접 조립해야 한다니……. 생각해 보면 당연하였지만, 어리석게도 직접 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덕분에 부랴부랴 책을 뒤지고, 여기저기 공구 쓰는 법을 묻는 등 정신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됐지. 생산 기구도 혼자 설치할 수 있게 됐으니…...."
“……다 살펴봤나요?”
올리버가 생각을 마치며 다시 퍼스트에게 물었다.
설비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살피던 퍼스트가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없는……것……같아……."
퍼스트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음....... 퍼스트? 울음소리 그런 거 억지로 참지 말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 눈치를 보시는 것 같은데, 안 그러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혹시나 해서 말했다.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퍼스트를 비롯한 다른 차일드가 올리버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말한 것뿐이었다.
마탑에서 교수와 후원자의 눈치를 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몇몇 봤는데, 개인적으로 좀 그랬다.
자고로 공부나 연구, 수련은 당장 결과가 안 나와도 편한 마음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은가?
“크으으……어……알았다……캬햐.”
“네, 그래 주세요. 전 여러분이 제 눈치 안 보고 편하고, 주체적으로 하는 걸 보고 싶거든요. 그게 더 재밌을 거 같아서요."
차일드는 잠시 올리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캬햐.”
“예, 고마워요…….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세요.”
올리버가 고개를 뒤로 돌려 탁자 위 플라스크 시험관에 있는 다른 차일드를 봤다.
네 개의 플라스크 시험관 중 첫 번째 퍼스트 자리는 비어있었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는 각각 세컨드, 썰드, 폴스가 있었다.
짙은 검은색 뭉치처럼 생긴 그들은 올리버와 퍼스트의 대화를 지켜보더니 끄덕 움직였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퍼스트. 이제 괜찮으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에디스가 말한 피의 영약 여분을 계산하며 올리버가 물었다.
아직 여분이 있다고 하지만 가급적 서두르는 게 좋을 듯했다.
퍼스트는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구석에 있는 송장인형-여성 흑마법사 1, 2, 3에게 손을 뻗었다.
“캬햐……!”
그러고서는 몸속에 있는 탱크에서 감정을 뽑아내 여성 흑마법사 1, 2, 3을 움직였다.
잘린 목 단면에 씌워진 철 뚜껑을 중심으로 움찔거리는 여성 흑마법사들.
처음에는 약간 어설펐으나, 이내 연습한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여성 흑마법사 1, 2, 3은 비틀비틀 움직여 퍼스트의 통제대로 대량의 혈액팩과 약초 가루와 같은 재료를 이쪽으로 가져왔다.
툭. 툭. 툭……. 조심스럽게 물건을 지정된 위치에 내려놓는 여성 흑마법사들.
올리버가 이를 보며 퍼스트를 칭찬했다.
“훌륭합니다. 이제 잘 통제하네요.”
"……캬하하.”
퍼스트가 기쁜 감정을 빛내며 소리 냈다. 감정적으로 격해지면서 울음소리가 더 힘찼다.
올리버가 다시 말했다.
“송장인형은 여기까지만 사용하고, 이제부터는 저희가 직접 하도록 하죠. 지금은 약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어……그럼, 먼저……."
퍼스트가 대답하며 혈액팩을 하나 뜯었다.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것으로, 젊은 남성의 피였다.
퍼스트가 말하길 젊고 건강한 피일수록 상품의 질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리고 성별에 맞춰 약을 제조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했지.’
올리버가 퍼스트의 말을 받아 적은 피의 영약 레시피를 확인하며 작업을 지켜봤다.
혈액팩을 뜯은 퍼스트는 내용물을 여과기 안에 넣었다.
피는 여과기의 길쭉한 관을 타고 서서히 흘러가더니, 한 비커 안에 모였다.
혈액팩 안에 뭉쳐있던 피를 풀어주는 과정이라 했는데, 이때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기다리는 것 정도?
이때 다른 것을 해도 괜찮을 듯했지만, 올리버는 한 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퍼스트와 함께 피가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똑. 똑. 똑. 똑......
한참을 기다리자 여과기에 들어간 피가 다 내려왔으며, 퍼스트는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여과기 비슷한 길쭉한 관에 다시 한번 피를 비우는 것으로, 겉보기에는 앞의 과정과 비슷했지만, 목적이 달랐다.
앞의 것은 피를 한번 부드럽게 풀어주는 거라면, 이번 것은 혼합하는 작업이었다.
한층 깨끗해진 피는 관을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더니 옆으로 쭈욱 빠졌고, 그와 함께 혼합관에서 새어 나오던 감정과 한 데 뒤섞였다.
‘감정은 탐욕, 갈망과 같은 흡수 성향이 있는 감정으로.’
올리버가 레시피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감정과 섞인 피는 좁다란 관을 따라 밖으로 나왔고, 퍼스트는 혈마법을 이용해 피를 통제. 그대로 피와 감정을 다시 한번 뒤섞었다.
허공에 붕 뜬 채 하나로 섞이는 피와 감정은 점점 그 크기가 커졌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크으으으......."
퍼스트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노는 손으로 생명력을 추출해 피와 감정의 혼합물에 추가했다.
피에 깃들어 있던 감정은 생명력을 탐닉했고, 그러자 피는 한층 더 붉고 진해졌다.
왜 피의 영약이 귀하다 귀하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바토리만 생산할 수 있어 그런 줄 알았는데, 그와 별개로 수준 높은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해도 바토리처럼 섬세하게 피와 감정, 생명력을 다루지 못하면 준비과정도 마칠 수 없었다. 준비과정도 말이다.
“캬하하하하......"
퍼스트가 울음소리로 올리버를 불렀다. 그는 감정과 생명력의 혼합한 피를 들고, 한 탱크 앞에 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업이었다.
퍼스트는 원기둥 모양의 탱크 뚜껑을 열어 피를 넣은 다음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파우치를 차례대로 들어 안에 비웠다.
‘블랙마켓에서 주문한 각종 약초와 건조한 태반 가루, 신선한 젖, 체력 포션과 마력 포션, 신선한 피 5리터와 대량의 생명력 올리버는 퍼스트가 넣는 재료를 하나씩 확인하며 빼먹거나, 더 넣은 게 없는지 확인했다.
텅ㅡ
닫히는 탱크 뚜껑.
퍼스트는 뚜껑을 돌려 완전히 봉한 다음 제어판으로 가 버튼을 눌러 탱크를 가동했다.
우우우웅....... 기계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안에든 내용물이 서서히 끓기 시작했다.
“이대로……끓인다……이만큼.”
퍼스트가 왼손을 쫙 펴고, 오른손은 중지를 세웠다.
“……여섯 시간요?”
“어!”
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레시피와 퍼스트의 작업 동선을 다시 살펴보며 생각했다.
‘얼핏 기계의 힘을 빌려 쉬워 보이지만 중요한 부분은 전부 수작업인 셈이네.’
올리버는 퍼스트가 했던 작업을 머릿속으로 수차례 떠올려 연습했고, 그사이 퍼스트는 탱크 앞에서 계속 기다리며 제품을 살펴봤다.
대략 여섯 시간이 되자 퍼스트는 탱크 내용물을 따로 뺄 수 있는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 혼합물의 상태를 살피더니, 그대로 탱크에 관을 연결에 압착 가공 탱크로 옮겼다.
걸쭉해진 검붉은 액체는 관을 타고 이동해 길쭉한 원뿔형 탱크에 들어가 다시 압착 가열됐다.
췩-! 췩-! 췩-! 췩-!
그렇게 한참을 다시 끓이다 이윽고 반 컵 불량의 검붉은 액체가 나왔다. 퍼스트는 이를 올리버에게 보여줬다.
올리버는 수첩을 살펴본 다음 질문했다.
“이대로 감정을 이용해 불을 피워 이 액체를 졸이는 거죠?”
“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했다.
전부 중요한 거긴 했지만, 마지막 졸이는 단계에서 상품의 품질이 크게 갈렸기에.
철퍽-!
퍼스트가 덩어리처럼 끈적이는 피의 혼합물을 페트리접시에 올려 탐욕, 욕망의 감정으로 불을 일으켜 페트리접시 채 가열했다.
몹시도 끈적여 더 이상 끓지 않을 것 같던 액체는 놀랍게도 다시 끓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는 피의 혼합물은 얼마 있지 않던 수분까지 증발해 점점 굳어 같으며, 탐욕의 감정에 반응해 알약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색이 너무나도 진해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보이는 알약으로 말이다.
퍼스트는 완성된 알약을 족집게로 조심히 집어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수많은 감정과 마력, 생명력이 압축된 알약을 살피며 올리버가 시계를 봤다.
분명, 낮에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이미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있었다.
하루의 반을 써 고작 알약 하나라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과 노동력이 보통 드는 게 아니었다.
생산 특성상 대량 생산하기도 쉽지 않은 거 같은데 말이다.
“일단, 개선점을 찾아볼까?”
올리버가 레시피를 다시 훑어보며 말했다.
생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초반의 피를 준비하는 과정. 생산력을 높이려면 이 부분부터 손대야 했다.
‘공정의 문제보다는, 재료가 문제야. 여러 사람의 피를 섞으면 안 돼 한 사람의 피만 써야 해서 말이지.’
이 문제만 해결하면 피의 영약을 대량 생산하기 쉬울 터였다.
"그런데, 한 사람의 피를 대량으로 얻기가 쉬운 게 아닌데 말이야. 재료는 갓 뽑은 신선한 게 필수고……."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람을 하나 죽여 피를 있는 대로 짜내면 되니까 말이다.
“근데 그건 좀 그렇잖아?”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다른 방법이 뭐 없나 고민했다.
일꾼을 늘려 생산 라인을 늘리는 방식도 있었지만, 이 역시 쉬운 것은 아니기에 보류하기로 했다.
생산 라인을 늘리는 것은 넓은 공간과 많은 설비,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기에, 더 많은 자본과 시간, 시체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고민하던 중 삐- 삐- 삐- 익숙한 통신음이 들렸다.
포레스트 개인 통신장치였다.
“포레스트 님?”
[그래, 날 세. 뭐하나?]
“개인 용무 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올리버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저번 재개발 보호 임무 이후, 한동안 일이 바빠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기에.
보통 이 경우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먼저 나타날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줬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면 말이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음……. 아직은 아니야.]
수수께끼 같은 대답. 올리버가 다시 물었다.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네……. 미안하지만 일단, 한번 나와줄 수 없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