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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69화 (269/633)

< 269. 전진(前震) (2) >

케빈은 설명해보라 했다.

올리버가 말한 교육 방법에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며 말이다.

웬만한 상황에는 놀라지 않는 그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

올리버는 그 반응에 걸맞게 자신만의 교육 방법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자체적인 연습을 통한 실력향상을 추구하지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감을 잡게 도와주는 방식을 말이다.

케빈이 질문했다.

“감을 잡게 도와준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

“신체를 살짝 접촉해 제 요령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드리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두 발 자전거를 탈 때 뒤에서 잡아 주는 것과 비슷하지요."

올리버는 겸손도 거만도 떨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효과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결국, 자전거를 잡아주는 것과 크게 다른 바가 없었으니.

그러나 케빈의 반응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그는 올리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놀라고, 의문을 빛냈다.

마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듯 말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 경우는 처음 들어봐.”

케빈은 진심이었고, 올리버도 살짝 놀랐다.

처음 들어본다니……. 애당초 이 능력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 케빈 정도라면 견문이 넓어 비슷한 것 정도는 알 거라 생각했는데……

과장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케빈의 반응은 진짜였고, 올리버가 말한 것에 적잖은 충격과 감탄을 받았다.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말이다.

이에 관해 묻자, 케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자세히 아는 분야가 아니니 함부로 의견을 낼 수 없지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대단한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교육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거니까.”

교육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인다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이걸로 마리를 비롯한 조셉 패밀리와 파이터 크루를 빠르게 성장시켰으니.

‘음……. 생각해보니까 아주 편하게 잘 썼네?’

지금 생각해보면 순조로웠던 교육과정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자기 손을 봤다.

상념에 빠진 올리버. 그런 올리버에게 케빈이 말을 걸었다.

“그걸 이용해 훈련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의심하는 건 아니고.”

이번에도 진심이었다. 케빈은 올리버의 말을 다 믿어줬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두 번 정도 있었습니다.”

올리버는 조셉 패밀리와 파이터 크루를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하지 말라고 약속한 건 아니지만, 멋대로 이야기하는 건 어째 실례일 것 같아서 말이다.

다행히 케빈도 자세히 파고들진 않았다.

“그렇군……. 훈련일지나, 기록물은 있나?”

“아뇨, 없습니다.”

“안타깝군.”

“저도 약간 안타깝습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마탑 학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훈련 일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기에.

케빈이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럼, 나한테 한번 시험해 볼 수 있나? 처음 보는 경우라 내 눈으로 보고 싶은데.”

올리버는 잠깐 고민하다 손끝에 마력을 응축한 다음 튕겼다.

딱-

그와 함께 두 가지 마법이 동시 발동했다.

하나는 이 방 전체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방음 마법이었고, 또 하나는 주변의 접근을 알리는 센서 마법이었다.

흑마법사의 눈이 있는 올리버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한 것이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손을 내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케빈은 망설임 없이 두 손을 내밀었다.

올리버는 그대로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내 감정을 추출. 케빈의 양손 사이에 올렸다.

“뭔가 느껴지십니까?”

"아니. 난 흑마법사가 아니거든.”

대답을 듣자마자 올리버는 케빈의 바깥쪽으로 손을 빼 그 위에 포겠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잘 될지 의문이었지만, 뭐, 실패해도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았다.

“오……. 되네요.”

잠시 후, 올리버가 말했다.

케빈의 두 손 사이에 있던 무형의 연기 같던 검은빛 감정이 케빈과 포개진 손에 의해 동그라미로 변한 거였다.

“......호.”

케빈이 흥미를 빛내며 소리 냈다.

“이건 뭐지?”

“주인님께 거둬졌던 시절 배운 기초 훈련 중 하나입니다.”

“기초 훈련?”

“예, 마법사분들이 마력을 다루듯 흑마법사도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요. 우선, 감정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추출, 통제 순으로 배웁니다.”

올리버가 과거 있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한 2, 3년 정도 되려나?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건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흥미롭군……. 전쟁터나 도시에서 흑마법사를 상대해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의 교육 방식에 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의 경우 마법사들의 교육 방식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멀린이 마탑으로 가라 했을 때 흔쾌히 수락한 이유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냉정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동일 선상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누가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더 이상 올리버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다만, 조직의 규모와 체계성은 아직 마법사 쪽이 훨씬 위였다.

마탑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조직력을 보고 느낀 올리버는 그리 생각했다.

“이다음은 뭐지?”

다시 생각에 빠진 올리버를 향해 케빈이 질문했다.

올리버는 정신을 차리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점점 더 복잡한 도형을 만드는 겁니다.”

올리버가 케빈의 손을 통해 감정을 조작해 모양을 바꿨다.

동그라미에서 네모, 세모, 별, 원뿔, 나선형, 더 나아가 거미줄 형태까지……

“대충 이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대다수 빠르게 감을 잡았고요……. 느껴지십니까?”

케빈은 감정을 조작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놀랍게도 그는 감정을 다뤄본 적이 없는 마법사임에도 제법 능숙하게 감정을 통제했다.

“오, 훌륭하십니다. 이쪽에도 재능이 있으셨군요.”

"글쎄……?”

케빈이 의문을 빛내며 대답했다.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올리버는 응원했다.

“아닙니다. 최소한 제가 봤을 때는 재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로 다루는 분은 드물거든요.”

케빈은 자신의 손에서 움직이는 감정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올리버의 말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했다.

“……또, 이다음은 뭐지?”

“감정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됐으면, 그다음에는 더 빠르게 조작하는 겁니다.”

올리버가 검지를 세워 케빈의 손등에 대고 다시 한번 감정을 통제했다.

케빈의 손 사이에 있는 감정은 마치 살아있는 부정형의 생물처럼 일정한 흐름을 그리며, 자유롭게 제 모습을 바꿨다.

눈으로 좇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속도만 아니라, 형태도 정확히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좋아, 이해했어……. 마법과 비슷하구만.”

"오……. 저도 동감입니다. 마법과 흑마법이 많이 달라 보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맥이 닿는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반기며 말했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생각을 마법사가 동의해 준다니……. 어째 즐거웠다.

허나, 케빈은 생각이 다른지 올리버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제가 또 말실수를 했나요?”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보다 이걸 마법에 접목할 수 있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마법사를 가르쳐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맞는 말이지만, 묘하게 뻔뻔한 대답이라 듣는 사람을 당혹케 했다.

다행히 케빈은 올리버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 그렇게 동요하진 않았다.

“잘 됐군. 그럼, 나한테 한 번 실험해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오히려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야.”

"아, 그럼, 감사히 실험해보겠습니다.”

올리버가 손을 걷어붙이며 대답한 후, 케빈의 손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못하시는 마법 있으십니까?”

올리버가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며 물었다.

케빈은 마탑의 마법사. 그것도 마스터였다.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와 원 마스터(One Master) 다음 가는 계급인 마스터(Master).

그런 그에게 간접적으로 마법을 가르쳐준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케빈도 해당 사실을 이제야 인지했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글쎄……. 공간마법?”

“그건 저도 제대로 못 씁니다……. 얼음이나, 공기마법은 못 쓰십니까?”

“숙련도 차이만 있지 난 모든 원소마법을 다 쓸 수 있어. 순수마력도 마찬가지고.”

“아……."

너무나도 우수한 케빈을 보며 올리버가 소리 냈다.

너무 유능한 게 발목을 잡다니. 난감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좋은 생각이 올리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올리버가 다시 케빈의 손등에 자기 손을 포겠다.

“뭘 하려는 거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올리버가 양해를 구하며 정신을 집중했고 케빈의 손등을 통해 케빈의 마력을 조종, 양손 사이로 작은 화염을 일으켰다.

“이것은-”

“-보통 화염이 아니군.”

설명하려는 올리버의 말을 케빈이 중간에 잘랐다.

“윌레스의 화염이야.”

"서로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 그저 종군 마법사 시절 소문을 들어봤지. 마력을 빨아먹는 흉악한 화염을 쓰는 녀석이 있다고……. 그런데, 네가 쓰고 있군."

“저번 출장에서 같이 일했는데, 그때 보고 흉내 낸 겁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올리버는 말했지만, 듣는 케빈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해당 마법에 흥미를 느껴 연구해 봤지만 그렇다 할 성과를 못 건졌는데, 올리버의 흉내라는 성의 없는 대답으로 이를 구현했다.

허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를 케빈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손을 접촉한 것으로 그 복잡한 술식과 미묘한 요령을 이해시켜주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아시겠습니까? 술식과 이를 다루는 요령 말입니다.”

올리버가 물었고, 케빈은 대답했다.

“……알 것 같아.”

케빈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자칫 술사마저 집어삼킬 수 있는 화염을 조심스럽게 통제했다.

약간 어설폈지만, 지금 처음 다루는 거라는 걸 고려하면 아주 대단한 거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 방식을 써서 지금 맡은 학생분들을 도와줘도 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줄 생각이야?”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저 어려워하는 부분만 살짝 도와줄 겁니다. 동그라미를 못 만들면 동그라미를 어떻게 만드는지 한 번 감을 잡게 해주는 거지요. 나머지는 스스로 익히셔야 하고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군……. 네가 가르친 다른 흑마법사도 그런 식으로 가르쳤나?”

“예.”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그런 식으로 가르친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방식으로 가르쳐줬으면 더 빠르고 편했을 텐데.”

"……? 전 그저 그분들이 노력하셔서 도와준 건데, 그러면 본말전도이지 않습니까?”

올리버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대저택 내부에 있는 서재. 그곳에서 멀린이 책을 찾아보며 물었다.

케빈은 답했다.

“처음과 똑같았습니다. 그 방법을 써 펠릭스를 비롯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도와줘도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열심히 하는 몇몇 학생들을 도와주면 다른 학생들도 의욕을 얻을 거라고요.”

“나쁜 생각은 아니군. 그래서 자넨 뭐라 대답했나?”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스승님의 의견을 여쭤봐야겠다고 말이죠.”

“내 의견?”

“예, 이 일의 책임자는 스승님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잘못되면 바로 모르는 척할 생각인데?”

멀린이 농담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케빈은 받아주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말이다.

“농담할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가?”

“예. 여러 상황에 부닥치게 해야한다고 말한건 분명 저지만, 이건……. 상상 이상입니다.”

어느 정도 소란을 각오한 케빈이 그리 말했다. 정말 상상 이상이었기에.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데이브의 재능이 엄청나긴 한가 보구만.”

“스승님……. 사람에게 있어 재능이라는 건, 남들보다 더 힘이 세거나, 더 다리가 빠른 걸 이야기하는 거지. 하늘을 날때 쓰는 표현이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과장이 심하다고 할 발언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케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도 절제한 표현이었다.

“데이브는 그저 요령을 잡아 준다는 것으로 알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전혀 아닙니다.”

“그럼?”

“……제가 이런 감성적인 표현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재능을 나눠주는……. 아뇨, 이것도 틀린 말이군요. 나눠주는 건 자기 것을 떼서 주는 건데요. 그 녀석은 그냥 부여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축복처럼요.”

"정말 자네답지 않은 표현이구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케빈이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고작 단 한 번만의 간섭을 통해 고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준 것은 축복,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재능이란 널리고 널린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데이브가 마음먹기에 따라선 수백 년 역사가 쌓인 학파나, 수십 년 역사가 쌓인 마탑도 혼자서 단기간 내 만들 수 있는 재주입니다……. 아직도 정체가 뭔지 모르십니까? 혹시, 지금 뒤적이고 있는 예언서와 종말론, 아카이브의 연대기, 악마의 서적과 관계있는 겁니까?”

케빈의 추궁에 멀린은 고민하다 대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설을 몇 개 세워봤네.”

“무엇입니까?”

“그건 나중에 말해주지. 가설일 뿐이거든.”

케빈이 뭐라 항의하려 했지만, 멀린의 표정을 보고 이내 관뒀다.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정식으로 아카이브를 승계받았을 때와 똑같은 표정.

“……많이 심각한 겁니까?”

“심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무슨 일이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데이브가 스승님을 만나 뵙고 싶다며 연락할 방법이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날?"

“예, 세계수에 관해 궁금한 게 있다고 말이죠. 뭐라고 대답해 줄까요?”

“음……. 잘 됐군. 나도 확인한 게 있어 슬슬 다시 찾아갈까 했는데, 서로 만나 궁금한 걸 해결해주면 되겠군. 훈련에 관한 것도 그때 내가 이야기 하도록 하겠네. 이만 물러가 봐.”

멀린이 그렇게 말을 마치며 다시 오래된 고서(古書)를 책장에서 꺼냈다.

책장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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