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전진(前震) (1) >
집으로 돌아온 올리버는 한두 시간 잠을 자는 대신 그동안 읽지 않고, 모아둔 신문을 꺼내 읽어봤다.
투자 회사를 다룬 기사 위주로 말이다.
드루이드 셰이머스와 그 애인들이 힘을 합쳐 설립한 투자 회사는 <더 토커(The Talker)>,<노 크레딧(NO Credit)>.<라이어(니ar)>,<지브리쉬(Gibb erish)> 등등 수많은 신문사에서 다뤘으며, 그 내용이 몹시도 흥미로웠다.
강렬한 헤드라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설립한 여성 투자자들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써 흥미를 유발하고, 이미 수백억대의 투자금을 확보 했다는 사실을 언급해 신용을 보장해줬다.
돈이라도 받고 쓴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투자 회사 자체는 정말 흥미로웠다.
수백억대의 투자금이 모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그 투자금을 낸 투자자 역시 란다의 부호나 지방에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 등 하나하나 굵직한 사람들이었기에.
그중에서도 올리버의 흥미를 가장 끄는 건 세계수에 관한 것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셰이머스는 세계수 일부에 막대한 투자 정보를 기재해 ‘투자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투자할 것이기에 절대 손해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실수하죠. 하지만, 자연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세계수는 더더욱 실수하지 않고요.]
한 기사에서 셰이머스가 그렇게 주장했다.
딱히, 논리적인 말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계수는 마법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마법 중의 마법이었고, 일반인들에게 있어 더더욱 미지의 영역이었으니.
그런 대단한 기술을 투자에 사용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더욱 강렬한 관심과 신뢰를 보였다.
물론, <인콘비니언 트루(Inconvenient Truth)>와 <카산드라(Cassandra)>와 같은 일부 신문사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셰이머스를 의심하고, 더 나아가 사기꾼이라 매도했지만,
셰이머스가 세계수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드루이드라는 점과 이미 막대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재무제표, 투자자들의 증언을 내놓았기에 그렇다 할 호응은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란다의 가장 큰 신문사 <뷰글러(bugler)>는 셰이머스의 투자 회사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기적의 투자법을 쓰며, 이로 인해 란다는 모두가 부유해지는 유토피아가 될 거라 확언했다.
며칠간 쌓아놓은 신문을 다 읽어본 올리버는 만족감을 느꼈다.
잠을 자지 않으면서까지 읽은 보람이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허나, 동시에 올리버는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세계수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 뭐라 의견을 내놓기 어려웠지만, 정말 저게 되는 건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수는 아직 마법사들도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말이다.
“제논 씨? 제논 씨? 제논 씨 ……!”
상념에 빠져 있던 올리버. 그런 올리버를 향해 누군가 소리쳤고, 올리버는 뒤돌아봤다.
그곳에는 한 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올리버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고 있었다.
물론 숨을 몰아쉬는 것은 올리버도 매한가지였지만, 아주 약간 더 여유가 있었다.
“왜 그러시죠?”
“시간 다 됐습니다.”
그가 올리버의 훈련복 호주머니를 가리켰다. 훈련용 시계가 삑. 삑. 삑. 울리고 있었다.
올리버는 시계를 끄며 이제 그만 뛰어도 된다고 선언했다.
뭐, 그래 봤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진작에 포기한 상태였지만.
"음......."
올리버가 의욕 없이 포기한 채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며 침음성을 냈다.
그들은 조금 뛰는 척하더니, 숨이 차오르자 그냥 주저앉았다.
체력보다는 의지의 문제.
강제로 훈련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일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의 의욕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그러고 보니 책이나, 다른 수업에서 가르치는 요령은 배웠는데, 의욕을 불어넣는 법은 잘 못 배웠네. 음……?'
올리버는 문득 마탑 교육의 이상한 점을 느끼며 시선을 앞쪽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아까 전 소리친 학생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이아 소학파의 펠릭스.
올리버가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당당히 불만을 말하고, 이후 설득하는 과정에서 끈질기게 덤빈 학생.
그는 평소 보여줬던 모습처럼 훈련을 잘 따라줬다.
"……왜 그러십니까?”
펠릭스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올리버에게 물었다.
올리버는 펠릭스가 의욕을 내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왜 멈추지 않았죠? 시계 소리가 들리면 멈춰도 된다고 했는데요?”
“정확히는 제논 씨가 멈추면 멈추라고 했죠.”
"아……. 그건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해서요.”
“됐습니다.”
“어쨌건 열심히 훈련 따라줘서 감사합니다. 교수님도 기뻐할 겁니다.”
교수란, 다름 아닌 케빈으로, 그는 저 위층에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솔직히 이게 의미 있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펠릭스가 의심과 후회, 부정 등의 감정을 빛내며 말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했다는 점이었다.
같이 기초 훈련하는 날이 꽤 됐음에도, 그는 대답 외에는 입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먼저 의사를 내비친 거였다.
올리버는 흥미로웠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렇게 기초 훈련을 하면 다시 위층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실력이 나아지면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그게 의문이라는 겁니다. 달리기랑 근력 운동을 한다고 제 실력이 좋아지냐는 말입니다."
불평, 불만. 허나, 올리버는 그마저도 고마웠다.
뭐가 됐건 자기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해 준 거였으니. 올리버는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다.
“좋아질 겁니다. 육체가 강해지면 한 번에 출력할 수 있는 마력량도 높아지니까요.”
올리버가 책과 다른 수업을 토대로 대답해 줬다.
마력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마력을 감당해야 할 육체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했으니.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해당 부분을 체감하지 못한 올리버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않습니까? 전 기본적인 체력은 되는 데 말입니다.”
펠릭스가 짜증과 억울함 등을 빛내며 말했다. 실제로, 펠릭스나 다른 몇몇 학생은 기본 체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케빈이 펠릭스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에게 체력 단련을 시키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재능. 야렐리와 데릭 같은 재능이 말이지.’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선택받은 재능이었지만, 재능이 모이면 유독 더 눈에 띄는 재능이 있는 법.
야렐리와 데릭이 그런 경우였고, 펠릭스는 아닌 경우였다.
각자 타고난 마력량이나, 마력 통제 능력이 그들에게 떨어졌기에 케빈은 펠릭스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의 체력을 더 높이려 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다른 곳에서 메꿔야 했기에.
그러고 보면 참 운이 좋은 거 같았다. 재능 있는 사람이란.
“하다 보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렇겠죠. 하지만, 이번 학기 끝날 때까지 원래 수업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 아닙니까?”
“교수님 수업에 빨리 복귀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올리버의 질문에 펠릭스가 당황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거 같았다.
“……그냥 이러고 있는 게 창피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교수한테는 직접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더 노력해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케빈 교수님 수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저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펠릭스는 ‘뭘 어떻게’라는 의문을 빛내며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올리버는 그 시선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럼,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죠."
*
“여기 보고서입니다.”
<마법 전투 기초> 수업이 끝나고 올리버는 학생들의 소화한 훈련량과 이에 관한 개인적 의견을 담은 간략 보고서를 케빈에게 제출했다.
케빈은 여느 때와 같이 서류를 파르르 빠르게 넘겼다.
대충 훑어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기 전 한 번 훑어보는 준비과정이었다.
“학생들이 수업을 잘 안 따르는 모양인가 보군.”
"죄송합니다.”
케빈이 고개를 저었다.
“왜 네가 사과하지? 못 가르치는 건 가르치는 사람 잘못이라도, 의지가 없는 건 본인들 탓인데.”
케빈이 경멸감을 담아 말했다. 실력과 책임감은 확실했지만, 그만큼 엄격한 사람다웠다.
“그래도 펠릭스 씨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케빈이 펠릭스에 관한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다시 펼치며 자세히 읽어봤다.
"……의욕은 있나 보군.”
“예.”
“하지만 마력을 다루는 통제 능력이 모자란 편이야. 치명적이진 않지만, 평균 혹은 그 이하. 마력량은 상당한데 아쉽군.”
아쉽다. 경멸감은 없지만, 좋지도 못한 평가였다. 올리버가 되물었다.
“그 정도입니까?”
"슬프지만 그게 사실이지. 마력 통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다룰 수 있는 마법 수준이 한계가 있다는 거고, 그 이전에 시전 속도가 느리다는 이야기니까. 모든 전투가 마찬가지긴 하지만, 특히, 마법은 순발력이 중요해. 화력이 아무리 강해도, 먼저 당하면 끝이니까.”
올리버는 케빈의 말에 동의했다.
얼핏 마법이라는 게 화력으로 단순히 찍어 누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가장 큰 특징과 장점일 뿐 마법의 전부는 아니었다.
순발력과 자연스러운 연계, 응용능력 등 여러 능력이 뒷받침돼야 화력은 그제야 제빛을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원소마법일수록 그러한 성향이 두드러졌다.
“마력 통제 능력도 연습하다 보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데릭 씨처럼 말입니다.”
올리버는 저번 파티장에서 대련한 데릭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그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단순히 마법을 써 공격하는 것을 넘어, 다른 마법과 합쳐 최소한의 마력으로 최대 위력을 발휘했으며, 화염마법의 특성을 살려 공간 자체를 지배했다.
올리버가 본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나은 수준,
그러나 케빈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반화하긴 어렵지.”
“예?”
“마력 통제 능력 역시 노력하면 더 좋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모두 같은 성과를 거두는 건 무리가 있거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아니지.”
케빈이 확언했다.
“타고난 재능에 의해 남들 한걸음 갈 때 열 걸음 가는 사람이 있으니. 재능이 부족할수록 벽도 빨리 만나고.”
“벽이요?”
올리버가 과거 노획한 전격 마법사와 에이드리의 일기, 연구일지를 떠올리며 되물었다.
그 벽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은 마탑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 벽. 능력의 한계치.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지.”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공감하지 못하며 대답했다.
“……그래, 아까 전에 네가 데릭의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야. 물론, 곧 한계에 부딪히겠지만."
“그런가요?”
“그래, 놈의 재능은 거기까지니까.”
“뭔가 좀 불공평하네요.”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야.”
케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념이라 할수 있는 강렬한 감정을 담아서 말이다.
올리버도 이에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그렇다 해도 기분이 좀 그런 건 어쩔 수 없었다.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교수님. 혹시, 제가 맡은 학생분들께 제가 제 방법으로 교육해도 괜찮을까요? 과하지는 않고 적당한 범위 내에서요.”
“……? 이미 재량권을 줬으니 뭘 하든 상관없긴 한데, 따로 말하는 걸 보아하니, 뭐 특별한 건가? 네 방법이라는 게?”
“아뇨,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학생분들이 빨리 교수님 수업에 빨리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실력이 나아지면 빨리 되돌아올 수 있겠지.”
“예, 그겁니다.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되나요?”
“그러니까 어떻게?”
“마력 통제 능력을 감 좀 잡게 제가 직접적으로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일단, 허락을 구하는 게 순서일 거 같아서요."
케빈이 한참을 생각하다 되물었다.
“……뭐라고?”
“마력 통제 능력 감을 잡기 위해-”
“-아니, 아니. 그 이야기는 제대로 들었어. 내 말은……. 그게 가능한 거야?”
“아마도요? ……마법사한테 해본 적은 없지만, 흑마법사분들은 그렇게 가르쳤거든요.”
올리버가 덤덤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