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일상 (3) >
“늦은 밤 고생하십니다.”
은은한 불빛과 선율이 감도는 레스토랑 안.
올리버가 알의 안내를 받아 레스토랑 구석에 있는 바(Bar)에 왔다.
포레스트의 새로운 레스토랑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이제야 방문했다.
“고생이야 자네가 하지.”
바(Bar) 한쪽에 앉아 있던 포레스트가 올리버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는 맞은편 자리에 올리버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올리버가 알기로 포레스트는 낮에도 레스토랑에 머물며, 레스토랑 관리, 손님 대접, 중개인 등. 각종 업무를 돌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그러나?”
“궁금한 게 있어서요……. 밤늦게까지 가게 문을 여는 이유가 있습니까? 전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그때는 손님이 없었고, 지금은 아니거든.”
포레스트가 다른 자리에 앉아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는 손님들을 가리켰다.
대다수 해결사, 정보상, 브로커 등. 음지쪽 인사들로, 그 수가 제법 됐다.
알이 말하길 레스토랑이 이 근방에서 일종의 휴식처가 됐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았다.
포레스트가 이어 말했다.
“여태까지 야간 장사를 안 한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득이 없어서였거든. 돈이 되면 하지.”
"그렇군요.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하시면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일하는 것처럼 보이나?”
포레스트가 술이 든 크리스털 잔과 신문을 들어 보였다.
얼핏 보면 부유한 노인이 한가로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올리버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개인에게 있어 정보를 모으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으니.
그리고 신문은 그중에서도 좋은 수단이었다.
“재밌는 이야기 있습니까?”
“공교롭게도 있군……. 그러데 이상하구만. 자네도 신문이라면 매일 읽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 요즘은 못 읽고 있습니다.”
“못 읽는다라……. 귀찮아서는 아닐 거고. 뭐 바쁜 일이라도 있나 보군?”
포레스트는 정확히 맞췄다.
근래, 올리버는 마탑 훈련과 피의 영약 제작을 위한 생산 시설 준비 때문에 꽤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읽던 신문까지 빼먹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두 업무는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마탑 학생들의 훈련을 돕는 건 흑마법사 때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없어, 책을 읽거나, 다른 수업을 청강해 나름대로 요령을 익혀야 했으며,
피의 영약을 위한 생산 시설 준비도 꽤 난항을 겪고 있었다.
차일드-퍼스트가 아직도 송장인형-바토리를 다 장악하지 못해 영약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재료나 기구가 뭔지 다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
올리버가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일 진행이 더딘 것은 사실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올리버는 근래 신문을 잘 읽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조금요……. 별거는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자, 그럼 난 본업으로 돌아가지. 이번 임무는 성공했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철거민-노동조합 연합을 지키고, 철거업체를 밀어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대답을 듣자마자 포레스트는 만족을 빛내며 올리버에게 손수 술을 따라줬다.
"어떻던가?”
“좋았습니다.”
올리버가 솔직히 답했다.
이번 임무는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딱 한 번만 움직이면 되기에 시간이 부족한 올리버의 여건에 딱 맞았으며, 들어가는 시간에 비해 보수도 훌륭했다.
선수금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임무 성공 시 노동조합이 받을 보수의 8퍼센트를 올리버가 받을 수 있었기에, 3~4억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포레스트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노동조합 측에 먼저 접근해 일을 당겨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아주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골렘도 노획했습니다.”
“골렘?”
“예, 바위로 이뤄진 골렘요. 몸통에 눈이 달려 있고, 집채만 한 망치를 든 골렘이었습니다.”
“철거용 골렘이군. 디자인을 들어보니 2번 모델인 거 같고……. 근데, 그걸 어떻게 노획한 건가?”
"때려서요?”
“아……."
심플한 대답에 포레스트가 탄성을 뱉었다.
그런 걸 물은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처음 질문부터가 파운더는 상대할 만했는지 물어본 거였으니.......
무사한 모습이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 올리버는 파운더나 골렘에게 그리 애먹은 거 같지 않았다.
파운더는 란다에서 정평이 난 용병이고, 골렘은 웬만한 화력 없이는 막기 힘든 병기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실력이었다. 이제는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포레스트 질문했다.
“골렘은 어디 있나? 자네 빅마우스에도 넣을만한 물건은 아닐 텐데.”
“예, 맞습니다. 넣어보려고 했지만, 빅마우스가 제정신이냐고 묻더군요. 일단, 삼킬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라고……. 그래서 노동조합에 잠시 맡겼습니다.”
"노동조합에?”
“예, 제 덕택에 큰 덕을 봤다면서요. 자기네들이 가진 창고에 잠시 보관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올리버 덕분에 질뻔한 싸움을 이긴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그에게 작은 호의를 베푸는 것은 도의적으로나, 타산적으로나 전혀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거기서 골렘을 빼돌리지는 않을 테지만, 빨리 찾아오는 게 좋겠군.”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급해서 맡기긴 했지만, 계속 부탁드리자니 미안해서요.”
“원한다면 내 소유 중인 창고에 맡아줄 수도 있네.”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지. 자네 덕분에 오늘도 막대한 수수료를 벌었으니. 그런데, 골렘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부서졌다고 해도 골렘은 꽤 비싼 물건이라, 아무리 못해도 한두 장 정도는 건질 수 있을 텐데. 원한다면 우리 가게 단골 브로커를 소개해줄까?”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하지만, 돈은 이번 일로 충분히 벌었으니, 그냥 제가 가질까 합니다.”
"가져서 뭐 어쩌게?”
“연구해 보려고요.”
“연구?"
포레스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골렘은 전문 기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물건.
같은 마법사도 전문 지식을 보유한 자가 아니면 손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흑마법사가 그런 골렘을 연구하겠다고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어이없는 것은 왠지 올리버라면 정말 할 수 있을 거 같았다는 거였다. 아무런 근거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예?”
“아니야, 아무것도……. 노획물을 획득한 사람 마음이니 자네 편한 대로 하게. 다만, 골렘을 연구해 보려면 상당히 큰 공간이 필요할 거야.”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해당 문제에 대해 짧지만 고민도 해보았다.
올리버의 새 거주지 지하실도 넓긴 편이었지만, 골렘을 연구하기에는 비좁았다.
“내가 맡아 놓을 테니, 편할 때 찾아가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럴 생각 아니었으면 받아주지도 않았겠지. 그냥 고맙다고 한마디만 해줘.”
“친절한 배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난 원래 돈 잘 벌어다 주는 사람에겐 친절해. 속물이거든……. 노동조합과 건설업체는 아마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 협상을 시작할 거야. 현재 유리한 건 철거민과 노동조합 측이니, 아마, 그쪽 요구를 수용할 테지. 그만큼 자네 보수도 늘어나고. 협상이 채결되는 대로 자네에게 알려주고, 노동조합에 잔금을 받아 지불하도록 하겠네.”
“네, 천천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빨리할 거야. 그래야 나도 수수료를 받아먹지.”
포레스트가 자연스럽게 농담했다. 저런 능력이 부러웠다. 올리버는 도통되지 않았기에.
대화가 어느 정도 끝에 다다르자 올리버는 무심코 시계를 확인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도 1, 2시간 잘까 말까 한 수준.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도 될지 포레스트에게 양해를 구했다.
“물론이지. 너무 늦게까지 붙잡고 있었군.”
“아닙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잘-아! ……그건 안 물어봐도 되나?”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내가 신문에서 재밌는 소식을 봤다고 했잖나?”
“아… …. 깜빡했습니다. 재밌는 소식이 뭐죠?”
“셰이머스가 투자 회사를 설립했다더구만.”
포레스트가 그렇게 말하며 해당 기사가 있는 신문을 돌려 올리버 쪽으로 내밀었다.
올리버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글자를 볼 수 있었다.
[란다 여성 투자자들. 드루이드와 혁신 투자 회사를 세우다!!!]
***
신문 기사를 본 데이브는 잠시 흥미를 보이더니 떠났다.
포레스트도 슬슬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까 했다.
기다리던 사람이 떠났으니 계속 죽치고 있을 이유가 무엇 있다는 말인가?
때마침 배웅을 나간 알이 다가왔다. 빳빳하게 다림질된 제복을 입어 몹시도 깔끔한 인상을 풍겼다.
“사장님. 데이브 씨께서 떠났습니다.”
“고생했네. 자네도 피곤할 테니 슬슬 퇴근해야지?”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무슨 할 말은 있나 보구만?”
오랫동안 알을 봐온 포레스트가 바로 알아챘다. 알도 부정하지 않았다.
"예, 사장님.”
포레스트가 크리스털 잔에 담긴 술을 천천히 비우며 말했다.
“……말해보게.”
“저따위가 주제넘게 나설 문제는 아니지만, 데이브 씨를 슬슬 설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득이란 다름 아닌 데이브를 파이터 크루의 대장으로 만드는 거였다.
몇몇 크라임 펌 이사들이 부탁한 것으로,
이유는 데이브가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 되면 자동적으로 크라임 펌의 동맹이 돼 그 힘을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활약과 명성에 비해 유순한 성격 탓인지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었다.
그때마다, 포레스트가 적당히 쳐냈지만, 크라임 펌의 이사들은 좀 귀찮았다.
‘애당초 파이터 크루 녀석들에게 데이브를 설득해보라 한 것도 그 녀석들이고. 욕심이 과해.’
“알. 자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크라임 펌 이사들의 부탁이니까요. 사장님께서 수락하셨고요.”
"정확히는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이미,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계속 떼를 써서 말이야.”
“그래도 이야기는 꺼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하는 티도 내지 않으면 이사님들과 관계가 나빠질 텐데요.”
거물들과의 거래가 익숙하지 않은 알이 말했다. 그와 반대로 포레스트는 담담했다.
“어차피 억지를 부리는 상대야. 내가 뭘 하든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기분 나빠할 인간이라는 거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말 통하는 이사들과 친분을 맺고, 자체적인 방어 수단을 알아보는 게 나아. 거절할 것을 뻔히 아는 데도 부탁하는 것만큼 실례인 것도 없지”
명쾌한 대답에 알이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건 아니야. 자네는 경험이 없는 것뿐이니…….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도 자네랑 자네 동료 생계수단은 마련해놓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알아, 알아.”
포레스트가 허둥대는 알을 진정시키며 대뜸 신문을 내밀었다.
"그보다 이거에 관해서 알아봤으면 좋겠군.”
포레스트가 말한 이거란 다름 아닌 데이브에게 보여준 기사 내용이었다.
란다의 여성 투자자들이 드루이드와 협력해 투자 회사를 세웠다는 이야기였다.
돈이 넘실거리는 란다에서 투자회사가 세워지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포레스트는 한 가지 사실이 걸렸다. 몹시도 말이다.
“세계수를 이용한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 아주 신경 쓰이는 문장이야.”
알은 고개를 갸웃댔다.
“조사까지 할 필요 있을까요?”
“작정하고 파고들자는 건 아니고, 대충 알아만 보자는 거야. 근래, 내 덩치가 커졌지 않나? 그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하거든. 덩치가 커지면 파도에 쉽게 휩쓸리니……. 나 왠지 이 대단하신 사업가는 아주 큰 파도를 만들 것 같거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야.”
포레스트가 사진에 찍힌 셰이머스를 가리켰다.
그는 세 명의 미녀와 함께 라는 글자가 새겨진 간판을 들고 서 있었다. 활짝 웃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