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63화 (263/633)

< 263. 파티가 끝나고 (2) >

‘왕국군 장교와 군수업체 사람들과 미팅을 가졌어. 내 연구 때문에.’

케빈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케빈의 개인 연구는 화염 마법을 극대화한 군용 마법이 대부분이었다.

원거리에서 대규모 공습을 하는 폭격 마법부터, 화염 마법을 아이템으로 가공해 병사들에게 보급하는 등.

물론, 이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연합왕국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 식민지를 넓히는 중인지라, 군사 부분에 많은 자원이 몰렸고, 그로 인해 그쪽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은 케빈 외에도 많았다.

신문이나, 라디오만 들어도 쉬이 알 수 있는 부분.

“또,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겨룰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 보상은 말할 것도 없고.”

케빈이 자신이 군용 마법 연구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개인적 흥미는 아닙니까?”

케빈의 감정 상태를 보던 올리버가 확인 차 물었다.

자신의 맡은 연구에 관해 케빈은 막대한 책임감과 강렬한 목적의식을 빛냈지만, 그와 별개로 학자로서의 개인적 호기심과 즐거움은 없었다.

그건 꽤 신기한 일이었다.

투자나 지원금을 타기 위해 연구를 하는 마법사가 많긴 해도, 기본적인 성격이 학자이기에 그들은 자신의 흥미 분야 혹은 흥미와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케빈은 그렇지 않았다.

연구의 성과와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 지식과 별개로 그는 군사 부문에 학자로서 그렇다 할 호기심이나 열망이 없었다.

케빈이 되물었다.

“뭐라고?”

“개인적 흥미로 군사 연구를 하는 건 아니냐고 여쭤봤습니다.”

올리버는 흥미도 없는 분야를 연구하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돈이나 보상은 표면적 이유고, 그 아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케빈은 눈을 빛내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생각을 꿰뚫어 보듯이 말이다.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건지?”

“그냥 궁금해서요? 흥미도 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

"혹시, 제가 실례되는 이야기를 한 거라면 죄송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야.”

"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상은 이야기해줄 수 없군."

"아……. 알겠습니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하지 마. 공짜가 아니니까. 때마침 나도 묻고 싶은 게 생겼거든.”

"저한테요?”

“그래, 투자 파티장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해.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

“예, 물론입니다. 딱히 말씀드릴 만한 건 없지만요……. 지금 이야기할까요?”

“아니, 지금은 일해야 해서. 퇴근 후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지.”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그러는데,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요?”

“선약? 무슨 일인데?”

“죄송합니다. 그건 사생활이라 말씀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나도 말하기 난감한 걸 이야기해줬어. 한 조각이라도 이야기하는 게 예의가 아닐까?”

제법 일리 있는 말. 올리버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개인적 호기심이 있어, 거기에 관해 자문을 구하러 갑니다. 부탁할 것도 있고요.”

“자문? 부탁?”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케빈과의 약속을 뒤로 미룬 후, 올리버는 마탑 업무에 들어갔다.

오늘 상대한 학생들에 관해 올리버 관점에서 보고서로 작성했으며, 작성을 마친 후 케빈에게 제출하고 퇴근했다.

이후, 올리버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볍게 식사한 뒤 다시 외출 준비했다.

다른 스타일의 옷으로 갈아입고, 구두를 바꿔 신으며, 허리띠와 시계, 향수 등 세심한 부분도 신경 써 바꿨다.

그렇게 공을 들인 뒤 올리버는 집 밖으로 다시 나와 T구역 30번 거리에 있는 포레스트의 새로운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제때 왔구만. 식사는?”

“간단히 먹었습니다.”

“다행이군.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차에 타시게.”

포레스트가 손수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올리버는 감사 인사를 하며 차에 탔고, 뒤이어 포레스트가 합석하자 차가 움직여 목적지인 X구역으로 이동했다.

“여기 리스트네. 자네에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하는.”

포레스트가 갈색 종이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안에는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서류 다발이 들려 있었다.

올리버는 감사하다고 대답하며, 해당 리스트를 확인해 봤다.

올리버도 한번 들어봤을 법한 회사가 있는가 하면 핑크맨, 셰이프티 가드 등. 란다에서 이름 있는 용병단도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간혹 이런 이들이 있었는데, 이번 리스트에는 유독 그 비율이 늘어났다.

이에 관해 질문하자, 포레스트가 답했다.

"당연한 결과야. 돈도 돈이 있는 사람에게 몰리듯, 괜찮은 일도 괜찮은 사람에게만 몰리는 법이거든. 역시, 파티에 나간 게 큰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

“파티요?”

“그래, 거기서 마탑 학생을 아주 밟았다고……. 그게 꽤나 인상 깊었나 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왜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고할 정도로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포레스트는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따지진 않았다. 올리버가 원래부터 이런 녀석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건 안 중요한 것 같아도 이야기 좀 해주게……. 어쨌건 이걸로 란다의 상류층이 자넬 더 선호하게 됐어. 흑마법사는 약간 기피 대상인데, 파티에서 직접 본 것만으로 이미지가 개선되고, 신용도 생긴 거 같아. 좋은 소식이야. 경매장 건으로 점점 입소문을 타더니, 거기서 굳히기에 들어간 셈이야.”

포레스트가 기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서류를 확인한 올리버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의뢰인의 수준이 높아져서인지 임무의 질이나 보수도 한층 더 높아졌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올리버 편의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났다는 거였다.

란다에 온 지 거의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올리버에겐 돈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반가운 이야기였다.

‘이 임무랑 이 임무는 마탑 업무 시간이랑 걸리지 않네. 다행이다. 학생들 수업을 맡게 돼서 이제 함부로 휴가 내기 어려워졌는데……. 아, 나 이제 진짜 바쁘구나?’

올리버가 뒤늦게 선택의 결과를 깨달았다.

더 이상 휴가를 자유롭게 쓰기 힘들었다.

물론,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맡은 일이 있기에 전보다 부자유스러워진 건 맞았다.

아차 싶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제 와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나마 운이 좋게도 좀 더 편하게 일을 맡을 수 있게 됐으니, 그냥 만족하려고 했다.

“뭐, 질문할 거 있나?”

포레스트가 리스트를 살펴보는 올리버에게 물었다.

“음……. 당장은 없습니다. 일들은 대부분 마음에 드는 거 같습니다.”

“당연한 결과니 기쁘게 받아들이게. 자네가 쌓은 성과에 대한 보답이니. 다만, 무슨 일을 맡을지는 가급적 빨리 답해주게. 고객들에게 대답해줘야 하거든.”

올리버는 다시 리스트를 살펴보곤 알겠다고 대답했다.

올리버와 포레스트의 대화가 거의 끝날 때쯤, 운전대를 잡은 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 데이브 씨.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저기 사람들이 나와 있습니다.”

포레스트와 올리버가 알의 말에 맞춰 앞을 봤다.

슬슬 땅거미가 지는 시간 때라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었고, 그 끝으로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성들이 보였다.

그들은 제각기 편하게 바닥에 걸터앉았는데, 올리버가 탄 차량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각을 잡으며 일렬종대로 섰다.

어딘가 익숙했다.

“……저분 조 아닌가요?”

“맞아.”

차량이 멈추자 포레스트가 대답하며 내렸다.

***

“오셨습니까?”

올리버와 포레스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장으로 쫙 빼입은 조와 파이터 크루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했다.

올리버가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뭔가 이상해 파이터 크루 사람들을 살펴봤고, 이윽고 그게 뭔지 깨달았다.

“어째 저랑 옷이 비슷하네요?”

올리버가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비슷했다.

해결사가 되고, 정장을 입기 시작하면서 올리버는 일부러 한 가지 스타일의 정장만 입었다.

고정된 인상을 줘 여차하면 신분을 숨기고,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기 쉽게 말이다.

그런데 그 스타일과 현재 파이트 크루 사람들의 옷 스타일이 아주 비슷했다.

올리버가 이에 관해 묻자 포레스트가 대답했다.

“흐음……. 크라임 펌이랑 일하다 보니, 전부 정장으로 맞췄네, 하나란 팀이란 인식을 주기 위해. 크라임 펌 역시 거대 조직이니, 거기에 맞춰 사람들도 품위를 유지해야 하거든.”

“대답에 저랑 옷이 비슷한 이유는 없는 거 같은데요?”

올리버의 질문에 포레스트가 난감해했다.

이에 조가 대신 대답했다.

“저희가 이런 식으로 맞춰달라 부탁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조.

그는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예를 갖췄다. 올리버에게 보이는 감정 역시 더 공손해졌고.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올리버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뇨, 화가 난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이러면 이상한 소문에 부채질할 것 같아서요……. 여러분도 들으셨죠? 제가 여러분 대장이라는 허무 맹랑한 소문요.”

“그건-”

“-해우는 조금 있다 나누고, 일단 일 이야기부터 하면 안 되겠나?”

조가 대답하려 하자 포레스트가 끼어들었다.

올리버와 조가 그를 보자 그는 손목시계를 두들기며 다시 말했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하는 법이거든. 여기 온 목적이 뭔가?”

올리버는 이완을 만나기 위해 여기 온 걸 기억해냈다.

“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 혹시 이완 님 만나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알고 계신다고 들었거든요."

“예,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확보요?”

“예.”

대답과 함께 조가 손짓했고, 그 손짓에 맞춰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올리버와 포레스트 주변을 경호했다.

이게 뭔가 싶어 포레스트를 보자 그는 앞을 가리켰다.

“따라가지.”

***

“오늘 계속 놀라게 되네요.”

올리버가 한 창고에 들어와 말했다.

창고 안에는 양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채 술에 곯아떨어진 이완 브렘너가 있었다.

빅마우스를 만들어준 스미스의 스승이자, 고기 해머를 만든 흑마법사 장인이 말이다.

그의 주변에는 술병이 가득 널브러져 있었고, 올리버는 아직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다시 봐도 똑같았다.

“왜 이러고 있는 거죠?”

“그 설명하자면 긴데, 짧게 요약하면, 이분이 스미스를 만나러 여기 왔고, 온 김에 여기 술집과 도박장에서 놀았습니다.”

“문제가 있는 건가요?”

“가짜 돈을 내면 문제가 되죠.”

“네?”

"이 양반이 술값이랑 도박 군자금으로 내놓은 돈이 하루 지나자 나뭇잎이 되어 버렸거든요.”

"......??"

올리버가 자기 귀를 의심하며 이완을 봤다.

포레스트도 듣고 어이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실제로 당한 놈들이 산채로 포를 뜨려고 했는데, 때마침 저희 애들이 찾았거든요. 일단, 저희가 대신 갚아주고 확보했습니다. 족쇄는 도망칠 거 같아서 묶어둔 것입니다……. 이봐, 빨리 가져와!”

조의 재촉과 동시에 한 파이터 크루 단원이 물이든 양동이를 가져왔다.

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족쇄에 묶인 채 널브러진 이완에게 양동이에 든 물을 뿌렸다.

촤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완이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아-!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이이이!!! ……다들 뭐야? 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이완이 물에 젖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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