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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61화 (261/633)

< 261. 타고난 협상가 (2) >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그냥 드릴게요.”

에디스의 진심을 들은 올리버가 답했다.

이질적인 침묵이 객실을 가득 메웠다.

공기가 차가워질 지경.

에디스는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으며, 올리버도 똑같이 침묵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말이다.

"......."

"......."

"......."

"......."

"......지금 날 가지고 노나?”

한참을 침묵 후, 에디스가 물었다.

그는 놀람과 당혹, 몰이해, 굴욕, 분노 등 여러 감정을 빛냈다.

“예?”

“날 가지고 노는 거냐고 물었다.”

“아뇨……. 전 에디스 님을 가지고 놀 의도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 무슨 생각으로 그냥 준다고 한 거지?”

“어……. 아주 공짜는 아닙니다.”

"......?"

"재료비랑 제작에 필요한 기구 등 생산 비용은 에디스 님께서 지급해 주셔야 합니다. 요즘 저도 저금이-”

“-오, 신이시여……!!”

에디스는 분노와 짜증을 폭발시키며 신을 찾았다. 그와 함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숨을 헐떡였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너 때문이니까. 제발 닥쳐! 날 화나게 해서 죽일 생각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마……!”

에디스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입을 다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에디스는 병 채로 술을 들이켜 심신을 안정시켰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날 협박할 방법도 있었어.”

“예?”

“날 협박할 방법도 있었다고. 그냥 거래를 파투내고, 내가 천천히 죽어가는 걸 기다리는 방법이 있었어. 그런데 왜 그러지 않은 거지? 내가 중간에 겁먹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안 바꾸실 것 같아서요? 마음을 아주 강하게 먹으셔서……."

“마음은 늘 바뀌는 거야.”

“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듣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자발성이 중요하거든요.”

“곧 죽을지도 모르는 인간에게 와서 자발성을 논해?! 끙….. 아니면 다른 걸 요구할 수도 있지. 내 재산의 반을 떼어달라고 하던가, 뒷배가 되어 달라는……. 최소한 그냥 준다고 해서는 안 되지.”

“건방지게 굴 생각은 아니지만, 그건 제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이건 상식에 어긋나는 수준이거든.”

“굳이 말씀하시라면, 그 외에는 에디스 님에게 딱히 원하는 게 없어서요. 물론, 돈도 좋긴 하지만, 돈으로 달라고 하면 뭔가 다른 걸로 합의한 거 같이 느껴져서요. 그건 제가 손해인 거 같고요……. 그래서 그냥 드리는 겁니다.”

“……타고난 협상가군.”

에디스가 말했다.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말이다.

협상이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칼이 아닌 말로 다투는 것.

얼핏 보면 폭력보다 온화한 수단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치열하고, 더러울 수 있었다.

서로의 민낯이 가감 없이 드러났으니.

그 탓에 협상을 지속할수록 상대방의 밑바닥을 볼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 가지고 있던 우열은 희석되어 갔다.

그런데, 눈앞의 어린 해결사는 정반대였다.

조금이라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저 원하는 걸 상대방이 스스로 내놓게끔 제안할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자신의 힘이나 호의도 일절 과시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호구 같아 보였지만, 글쎄……

직접 상대하고 있는 에디스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는 나약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오히려 형용하기 어려운 존재감만이 각인되었다.

눈앞의 존재가 뭔지도 모를 그런 존재감.

투기판에서 반평생을 보냈음에도 이런 것은 느껴보지 못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행동에서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이가 들어 감성적이게 된 것일까?

그래도 이상했다. 자식뻘만 한 애송이에게 압도감마저 느꼈으니 말이다.

단순히 힘과 재력이 더 세다는 일차원적인 압도감이 아닌, 그 이상의 압도감을 말이다.

에디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혹시, 파이터 크루도 그렇게 도와줬나?”

“파이터 크루요?”

“그래, 내가 듣기로는 네가 파이터 크루를 도와줘서 대장이 됐다고 하던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파이터 크루 분들을 도와준 건 맞지만, 대장인 건 아닙니다.”

올리버가 제인에게 설명했듯이 세간에 알려진 잘못된 소문에 대해 해명했다. 에디스는 찬찬히 들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상심이 크겠군.”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예?”

“파이터 크루가 상심이 크겠다는 거야.”

“죄송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딱히, 이해하라고 한 말이 아니야. 그보다……. 정말, 피의 영약을 내게 그냥 주겠다는 거지. 내가 비용만 지급하면.”

“확실하진 않지만, 생산에 성공하면 그럴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아냐, 됐어. 말하지 마. 너랑 대화 길어져 봤자 내 복장만 터지니까. 그냥 약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 조건을 걸지 않고 내게 피의 영약을 줄 수 있는지.”

“음……. 피치 못할 상황만 아니면 지급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제작 비용은 계속 지급해 주셔야 하지만요.”

피치 못할 상황이라……. 보통 사람이라면 나중에 약속을 어길 밑밥이었겠지만, 에디스는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데이브였기에.

“끝까지 네 호기심에 대답은 안 해줄 거야.”

“뭐……. 그럼, 아쉽긴 하겠지만, 별수 없는 거겠죠?”

“좋아, 그럼, 이거 받아.”

에디스가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이건 뭐죠?”

“내 개인 통신번호. 개인 통신 장치 정도는 있겠지?”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핑크맨 팀장 조나단이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 해서 L구역에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할 때 같이 마련했다.

“다행이군. 일이 있거나, 돈이 필요할 때 이쪽으로 연락해.”

“아, 감사합니다. 통신 장치 쓸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그리고 조언 하나 하지.”

“조언요?”

“그래, 내 목숨줄 연명해 줄 인간이 괜한 소란에 휘말리길 원치 않거든.”

“아……. 뭐죠?”

“셰이머스를 조심해.”

“셰이머스 님이요?”

“그래, 친한 거 같던데, 거리를 유지해.”

“안 친한데요?”

올리버가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에디스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럼, 다행이고. 어쨌건 거리를 둬. 그놈은 널 이용할 생각이 가득해 보이니까.”

올리버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그는 자신을 볼 때마다 속셈을 품었으니. 물론,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란다에서는 원래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법이니,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흥! 말은 잘하는군…….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똑똑한 놈이면 이용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 놈들은 이익을 나눌 줄 아니까. 하지만, 셰이머스는 아니야.”

“그렇습니까? 똑똑하시고 능력도 있는 거 같은데요.”

“능력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해결사 나부랭이가 사업가로 대성했으니. 허나, 그걸 고려해도 그놈은 욕심이 너무 많고, 행동력도 너무 좋아. 대개 그런 놈들은 자기 욕심을 주체 못 해 사고를 크게 치고 말지. 내 개 같은 마누라와 쥐새끼 같은 자식들에 맹세컨대, 조만간 그놈은 큰 사고를 칠 거야. 사회가 떠들썩할 정도로 말이다.”

예언에 가까운 수준. 그러나 과장이 없는 진심이었다.

“그럼, 제인 아가씨에게도 조심하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셰이머스 애인분들과 같은 그룹에 있고 친분도 있으시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파티에 참석한 것도 제인 때문이었지? 이해가 안 되는군. 그 정도 명성을 세웠으면, 더 예쁘고, 돈 많은 아가씨랑 어울릴 수 있을 텐데.”

에디스가 악의를 빛냈다.

올리버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제인 아가씨가 좋거든요.”

"......그래? 왜?”

“그거야……. 아차차, 말씀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어째서?”

“불공평하니까요. 에디스 님은 대답해 주지 않으셨는데, 저만 대답하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바보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군……. 그럼, 거래하지.”

“오, 에디스 님도 말쏨하실 생각이 드신 겁니까?”

“아니, 씨발아……. 내가 좋은 정보를 하나 줄 테니, 그거랑 교환하지.”

“좋은 정보요?”

“그래……. 내가 준 악마의 서적이 있지?”

"예, 책 내용이 거의 다 비어 있긴 하지만요.”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해주지.”

“……책이 비워진 이유가 있다고요?”

“그래, 그리고 채우는 방법도. 난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그걸 이제야 말씀해주시는 거죠?”

“난 너한테 책을 준다고 거래했지, 책의 비밀까지 알려 준다고는 안 했으니까. 또, 이렇게 써먹을 수도 있고……. 그러니 거래할 건지 말 건지만 이야기해. 그런 눈빛으로 날 빤히 바라보지 말고, 소름 돋으니까.”

에디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올리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

에디스와의 대화 후, 올리버는 객실 밖으로 나와 제인에게 인사하고 다급히 파티장을 벗어났다.

셰이머스를 비롯한 시스터 후드 멤버들이 아쉬워했지만, 제인은 별다른 말 없이 올리버를 보내줬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믿으며.

올리버는 제인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곤, 택시를 타고 바로 L구역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 다음 지하실로 갔다.

그리곤 빅 마우스를 꺼내 책을 한 권 뱉어달라 부탁했다.

크라임 펌의 경매품 회수 임무를 맡고 획득한 악마의 서적을 말이다.

“꾸에에엑!!”

빅마우스는 주둥이를 우물거리더니 서적을 뱉었다.

올리버는 빅마우스에게 고생했다고 말한 뒤 지폐를 한 장 건네고 잠시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꾸르륵.”

빅마우스가 대답하며, 지하 실험실 구석에 쭈그려 앉았고, 올리버는 서적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크라임 펌의 보수로 받은 악마의 서적을 악마들로 인해 생긴 피해를 기록한 일종의 기록물로, 올리버는 틈틈이 책 내용을 살펴봤다.

내용 중에는 제법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마을이 하룻밤 만에 사라졌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나, 혹은 너무 오래돼 와닿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파르르르 책을 다 넘긴 후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원래는 보관할 생각이었는데……. 빅마우스. 괜찮으면 다른 서적도 꺼내 주시겠어요?”

실험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던 빅마우스는 정수리에 있는 머리를 다시 우물거리더니 책을 뱉어냈다.

이 책은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으로 72 군주와 마왕에 관한 설명이 적힌 서적이었다.

그래 봤자, 채워진 부분보다 비워진 부분이 더 많아 책이라고 하기 민망한 물건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다라…….'

올리버는 에디스에게 받은 책을 잠시 바라보고는 마음을 다지며 방금 꺼낸 책 두 권을 같이 놓았다.

그다음 시험관에서 허기와 굶주림을 추출해 그대로 에디스에게 받은 책에 부여했다.

‘역시, 아닌가? 에디스 님도 확실한 건 아니라고 했으니…….'

가만히 침묵하는 책을 보며 올리버가 생각한 찰나, 에디스의 책이 움찔거리더니, 놀랍게도 책 표지에 눈 비슷한 것이 돋아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은 눈이 돋은 것을 넘어 이빨에 생겨나더니, 앞마구리(책배) 부분이 입처럼 쩌억 벌어지며 옆에 놓인 악마의 서적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캬랴랴랴랴랴랄——!!!

겉보기에는 그저 책이 벌려졌다 닫혀졌다 하는 모습에 불과했지만, 먹히고 있는 책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식사 과정 찢긴 종이쪼가리뿐.

그마저도 에디스에게서 받은 책이 다 주워 먹었다.

어느 정도 흑마법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건만……. 올리버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올리버는 책에 손을 뻗었다.

행여 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올리버를 배려해주듯 손이 닿자마자 원래의 책 모습으로 돌아왔다.

‘……글자가 아주 조금이지만 늘었다?’

올리버가 책을 파르르 넘기며 생각했다.

에디스의 말대로 다른 악마의 서적을 먹음으로 책 내용이 추가된 듯했다.

올리버는 추가된 내용을 읽으려 하였다. 바로, 그때, 삐- 삐- 삐- 신호음이 들렸다.

포레스트의 개인 통신장치.

“포레스트 님? 아, 예……. 볼 일이 생겨 중간에 나왔습니다……. 예, 잘 보냈던 거 같습니다…….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디스 님은 만났습니다. 예, 예……. 아, 이완 님을 찾으셨다고요? 다행이네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속을 잡은 올리버는 통신장치를 끄며 다시 책을 봤다.

“역시 일은 빠르게 쌓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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