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격차 (2) >
“헛소리!”
올리버의 대답을 듣자마자 데릭이 소리치며 한쪽 다리를 들어 지면을 밟았다.
쾅! 소리와 함께 발에 모여있던 마력이 술식을 이루며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쉐도우 스파이크(Shadow Spike)]
퐈바밧——!!
올리버는 자신을 향해 사납게 돌진해 오는 화염이 무색하게 그림자 말뚝을 만들어 다시 한번 데릭의 공격을 침묵시켰다.
처음 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미동도 없이 말이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지만, 데릭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화염탄을 던져 올리버를 밀어붙였다.
올리버는 또다시 그림자 말뚝을 사용해 데릭의 공격을 침묵시키려 했으나, 이번엔 데릭이 먼저 움직였다.
원격에서 마력을 조작해 허공에서 화염탄을 터트린 것.
파바방—!!!
화염탄은 화려하게 터지며 거대한 불길과 열기를 퍼트렸고, 폭발로 일어난 불길과 열기는 관성에 의해 올리버 쪽으로 광범위하게 날아왔다.
훌륭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공격으로 전장을 장악하는 것이 화염 마법의 묘미 중 하나.
케빈의 수업을 열심히 참가하더니 요령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올리버는 방어를 위해 감정을 추출한 다음 검은 안개처럼 감정 입자를 넓게 퍼트려 방어막을 형성, 날아오는 불길과 열기를 비스듬하게 흘려보냈다.
마력으로 통제를 받는 화염이라면 이런 식으로 막기 힘들었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힘이 집중되지 않아 어찌어찌 막을 수 있었다.
‘잔불을 날리는 게 아닌 마력으로 화염을 통제했으면 막기 힘들었을 텐데, 그부분은 약간 아쉽……. 응?’
올리버가 멈칫했다.
생각이 씨가 된 것인지 화염탄의 폭발로 생긴 잔불이 허무하게 사라지려는 찰나, 데릭이 마력을 부여해 화염에 새 생명을 주고, 통제권을 장악했다.
감탄스러웠다.
원래 화염마법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작은 불도 낭비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그걸 실제로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말이다.
데릭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증거로 허공에서 사라지려던 화염은 뱀처럼 일정한 흐름을 그리며 올리버를 에워싸 압박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아주 훌륭해. 이대로 뒤덮어 다 불태울 생각이구나.’
올리버가 불타는 감정 입자를 보며 생각했다.
솔직히 이 상태 그대로 저항해보고 싶었지만, 감정의 질과 양이 부족해 그건 힘들 것 같았다.
‘역시 재료 차이가 심하니 마리와 같은 출력을 내는 건 무리구나……. 뭐, 그래도 상관없나? 이렇게나마 흉내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자, 그럼, 이제 어떻게 빠져나간다…….'
올리버가 사방에서 조여오는 화염의 그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자 촉수를 휘둘러 화염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방법도 있었고, 아니면 몸에 저장된 마력으로 지금 화염 마법을 침식해 통제권을 빼앗아오는 방법도 있었다.
데릭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직 쉽게 통제권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케빈 교수님과 바토리 님에 비하면 말이지……. 음, 하지만 다른 걸 실험해 보고 싶네. 마법사와 이런 식으로 겨룰 기회가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올리버가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냈다.
탐욕과 굶주림이 든 시험관을 말이다.
올리버는 시험관을 뚜껑을 열어 안에든 감정을 전부 추출하는 동시에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보레시티(Voracity)]
올리버의 손에 감돌던 감정은 검은 연기처럼 움직여 사방에서 화염을 막고 있던 감정 입자와 뒤섞여 이윽고 일정한 형태를 갖췄다.
이빨이 없는 수십 개의 입으로 말이다.
고기 해머의 입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 본 것으로,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
“히익一!!”
“우욱.......”
관객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상당수가 혐오감을 일으키며 기겁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흑마법의 효과는 확실했다.
방어막과 같이 펼쳐진 입은 젖을 탐하는 아기처럼 춥춥춥 소리를 내며 불길을 삼켜댔고, 덕분에 화염의 기세는 처음과 비교해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이대로 지구전으로 가면 올리버에게 유리할 게 뻔했다.
데릭도 이를 알고 있었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一!!!
단순한 마법 흑마법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데릭이 빠르게 작전을 수정했다.
그는 축소마법으로 줄인 장검을 품 안에서 꺼내 올리버가 만든 이빨 없는 입들을 베어버렸고, 입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사이 여세를 몰아 아직 흡수되지 않은 화염을 가져와 자신의 장검에 둘렀다.
흡사, 윌레스가 떠오르는 모습. 허나, 그 힘의 크기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 탓인지 올리버는 여전히 처음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말이다.
그 모습에 데릭은 분노와 괘씸함을 느끼며 그대로 올리버에게 돌진해 왔다.
“언제까지 그따위 여유를-”
- [쉐도우 스파이크(Shadow Spike)]
촹촤좌좌자장——!!!
올리버의 2보 거리, 검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 그림자 말뚝 수십 개가 검은빛 섬광처럼 솟구쳐올라 데릭의 온몸을 겨눴다.
다리, 배, 가슴, 목, 얼굴, 팔, 겨드랑이 곳곳을 말이다.
데릭은 찰나긴 하나 공포를 느끼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올리버는 처음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데릭을 바라봤다.
그는 방금 공격에 처음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이걸로 끝이었다. 보통, 이 상태가 되면 대다수 사람은 더는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올리버가 이대로 그림자 말뚝을 거두며 싸움을 끝내려고 하였는데, 놀랍게도 데릭은 꺾인 기세를 다시 이어 붙여 올리버에게 공격을 가했다.
칼날에 두른 화염을 압축시켜 올리버의 그림자 말뚝을 베어버린 것.
그리고는 올리버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대단했다. 진심으로.
한번 꺾인 기세를 다시 세운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최소한 올리버는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
올리버는 데릭의 의지에 감탄하며 트러스트(Thrust)를 사용 충격파로 그를 밀쳐낸 다음, 거리를 벌리자마자 그림자 촉수로 다시 공격했다.
데릭은 윌레스만큼은 아니지만, 뛰어난 검술을 이용해 그림자 촉수를 모조리 베어냈다.
촤자작!!
촥—!!
촤작—!
챙——!!
"......!"
갑자기 결이 다른 소리에 데릭이 놀라며 자신의 검과 베이지 않은 그림자 촉수를 봤다.
감정을 집중시켜 강도를 높인 거였다.
올리버는 강화한 그림자 촉수로 데릭을 둘러쌌으며, 데릭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몸 안에 깃든 마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경기장 내부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다수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블레이즈(Blaze)]
데릭은 칼날에 두른 화염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불길을 일으켜 회오리바람과 합쳤다.
처음 공기의 농도를 조절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과 같은 방식.
차이가 있다면 순간적인 위력을 주는 것이 아닌, 회오리바람과 합쳐져 화염이 더욱 시뻘겋게 불타올라 경기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는 거였다.
순식간에 몇 배로 강력해진 열기와 불꽃은 꽤 위협적이었기에 올리버는 임계점을 넘기 전 곧바로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운 화염을 없애버렸다.
촤一앙!!
충격파와 함께 찢기는 화염.
넋을 놓은 채 경기장 안을 바라보던 관객들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 했다.
회오리바람을 이용해 강력한 화염을 만든 데릭의 솜씨에도 감탄했지만, 그걸 단숨에 무력화한 올리버도 대단했기에.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데릭은 필살의 공격이 막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허공에 흩어진 화염을 재빠르게 끌어모아 칼날뿐 아니라 자신의 전신에 갑옷처럼 둘러, 스스로 화염이 됐다.
원소마법에 공통된 상위 마법으로, 해당 마법에 상당한 이해와 그 못지않은 숙련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기술.
데릭은 이를 성공시키며 마력과 열기를 에너지 삼아 올리버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블랙 슈트(Black Suit)]
콰앙!!!
올리버는 자신의 몸과 쿼터스태프에 블랙 슈트를 둘러 이를 맞상대해줬다.
“이대로 통째로 태워주마!!!”
쿼터스태프와 칼을 맞댄 데릭이 온몸에 둘러싼 화염을 폭발시키며 소리쳤다.
그는 강력한 살의를 뿜으며 스스로 살아 있는 불길이 돼 올리버를 불태우려고 했다.
올리버가 가만히 있었다면 말이다.
[보레시티(Voracity)]
올리버는 쿼터스태프에 두른 블랙 슈트에 감정을 추가해 두 번째 보레시티를 사용했다.
쿼터스태프를 감싼 검은빛 엷은 막은 이빨이 없는 수십 개의 입 군체로 변해 다시 한번 화염을 삼켰다.
처음과 비교할 수도 없는 출력으로 말이다.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춥.
데릭의 외침이 무색하게 화염은 그 기세를 잃어갔으며, 데릭은 다시 한번 절망을 느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을 본 듯.
그럼에도 의지는 참으로 대단해 포기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전열을 다듬으려고 했다.
올리버가 방해했지만 말이다.
"......어?!"
데릭이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발을 보며 소리 냈다.
올리버의 그림자가 잡초처럼 엉겨 붙어 데릭의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하는 데릭이 뿌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올리버와 대치 중이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올리버가 만든 입은 춥춥춥 데릭의 화염을 빨아먹었고, 이윽고 화염을 다 삼켜버렸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데릭은 이를 악물며 올리버를 향해 장검을 휘둘렀고,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로 막았다.
“토하세요.”
퇑一!!
올리버의 부탁에 쿼터스태프를 감싼 입이 아까 전 삼킨 화염을 토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데릭은 칼을 놓쳤으며, 무기까지 잃은 데릭을 향해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찔렀다.
강하지 않고, 탁하고 닿는 수준으로.
올리버가 영창했다.
[딥 슬립(Deep Sleep)]
***
올리버의 영창과 함께, 쿼터스태프 끝에 머금어져 있던 흑마법이 데릭의 몸을 침투했고, 데릭은 절망감에 빠진 채 잠에 빠졌다.
올리버는 그런 그를 부축해 조심스럽게 땅 위에 눕혀주었다.
승패와 별개로 올리버는 데릭에게 감탄했다. 아주 대단했다.
처음 싸웠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으며, 마음 역시 더 강해졌다.
[승자……! 데! 이!! 브!!!]
싸움을 끝나자마자 셰이머스가 요란하게 승자를 발표했다.
경기장 테두리를 둘러싼 마력 장막이 거둬졌고, 올리버는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파티장 손님들은 즐거움과 통쾌함을 빛내며 올리버를 향해 손뻑을 쳤고, 마탑 학생들은 재빨리 올라와 데릭의 상태를 살펴봤다.
“고생하셨어요.”
경기장 아래로 내려온 올리버 곁으로 제인이 다가와 말했다.
그녀는 올리버가 맡긴 겉옷을 주름지지 않게 깔끔히 보관한 것도 모자라 올리버에게 직접 걸쳐줬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늘 제 몫이죠. 대단한 싸움이었어요. 진짜로요.”
“맞아요. 대단했어요!”
“네네! 정말요. 파이터 크루 대장이란 게 절로 납득될 정도로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나도 이런 말 잘 안 하는 편인데, 대단한 승부였어. 마탑 학생을 이렇게까지 망신 주다니.”
셰이머스가 사람들을 한 트럭 데려와 말했다.
그의 말은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었다.
따지고 싶은 말이 많긴 했지만 올리버는 가장 신경 쓰는 것부터 되물었다.
“망신이요?”
“그래, 저 데릭이란 녀석이 울 것처럼 악을 쓰며 덤비는데, 넌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상대해줬잖아? 심지어, 가소롭다는 듯이 제대로 반격도 안 했고.”
올리버 곁으로 모인 사람들이 모두 동감이란 감정을 빛냈다.
“아뇨, 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안 움직인 것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을 뿐이지, 우습게 본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방금 들었어?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구만! 너무 약해 빠진 병신이라서!!”
셰이머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고, 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조했다.
데릭의 실력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행동을 조롱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이건 아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데릭은 충분히 강했고, 실력 역시 향상됐다….. 무엇보다 올리버가 데릭을 조롱할 자격이 전혀 없었다.
올리버는 이를 해명하려 했지만, 이미 셰이머스 때문에 사람들을 듣지 않았고, 마탑 학생들에게 해명하려고 해도 그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일었다. 파티장이 재밌긴 하지만, 앞으로는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셰이머스가 올리버의 어깨에 친근히 팔을 올리며 말했다.
“오랜만에 재밌는 구경했어. 대만족이야. 다시 파티장으로 올라가서 한잔 마시지. 다들 너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셰이머스가 속셈을 빛내며 올리버 곁으로 모인 사람들을 가리켰다.
셰이머스의 말대로 올리버 주변 사람들은 올리버에게 상당한 관심을 빛냈다. 저마다의 속셈과 탐욕을 빛내며 말이다.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자신이 온 원래 목적을 상기하며 셰이머스의 팔을 슬쩍 내렸다.
“응? 뭐야?”
“죄송하지만, 일이 있어서요.”
올리버의 대답에 불쾌함을 빛내는 셰이머스.
그러나 올리버는 신경 쓰지 않고 제인에게 말을 걸었다.
"제인 아가씨. 잠시 실례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제인에게 쏠렸고, 제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냉정함을 되찾으며 대답했다.
"......예."
올리버는 대답을 듣자마자 제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인파를 뚫고 반대쪽 파티장 손님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아까 전 싸움 탓인지, 란다의 지체 높은 손님들은 모두 길을 터주었다.
덕분에 올리버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게 한 사람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에디스 님. 오랜만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