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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58화 (258/633)

< 258. 격차 (1) >

“오, 이런 곳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올리버가 파티장 아래층에 마련된 경기장을 보며 말했다.

X구역의 불법 격투기 경기장과 비슷했는데, 좀 더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사파이어에서는 고객의 다양한 즐거움을 위해 많은 시설을 구비하거든요……. 겉옷은 저 주시겠어요?”

경기장에 올라가기 전 미리 겉옷을 벗는 올리버에게 제인이 팔을 내밀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오히려 미안한데요.”

제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현재 올리버를 구경거리로 만든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글쎄요. 왜 미안해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아까전 말씀 드렸다시피 이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전 데이브 씨 친구잖아요. 친구를 제 이익을 위해 이용한 것 같아 좀 미안하네요.”

제인이 주변을 한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셰이머스 부추김과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형성된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파티장에 참석한 수많은 부호가 관심을 보이며 몰려들었다.

운 좋게 돈을 번 벼락부자뿐 아니라, 란다 외지에서 온 귀족과 란다 내에서 명성을 쌓은 사업가, 자산가까지 모두 말이다.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각기 신분도, 생각도, 관심도 다르기에.

그런데 싸움이란, 다소 천박한 주제로 그들을 한데 모았고, 그것도 모자라 관심까지 받았다.

"저 여자가 뭐라고?”

“제인이라고 합니다. 어르신. 미란다 여사에게 신세를 지고 있죠.”

“투자가?”

“아직 경력은 미천하지만, 인맥이 생각보다 화려한가 봐. 저기 마법사랑 싸울 흑마법사를 데려왔다더군. 요즘 유명한 해결사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남녀 사이는 당연한 거 아니겠나?”

“왜 싸운대?”

“마탑 학생이 저 여자를 모욕했고, 흑마법사가 장갑으로 면상을 후려치며 결투를 신청했다던데요.”

“내가 들은 것과 다른데?”

“뭐 상관있나? 재밌는 구경이나 하면 되는 거지.”

“누가 이길 것 같아.”

“해결사 실력이 대단하다 하던데, 그래도 마탑 학생을 무시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뭔가 오해도 있었지만, 인맥으로 먹고사는 투자가로서는 호재인 상황.

제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바로, 저기 싸움을 부추긴 셰이머스처럼.

“하하!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뭐, 나야 잘 지내지. 자네도 잘 지낸다는 이야기 들었네. 셰이머스.”

그는 파티장을 돌아다니며 특유의 크고 유쾌한 목소리로 데이브와 데릭의 싸움을 알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았고, 자연스럽게 그 관심 중 일부를 자기에게 가져왔다.

왜 그토록 적극적으로 싸움을 부추겼는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이 정도 계산까지 해 움직이다니… …. 참으로 대단했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제인 아가씨.”

“예?”

“솔직히 말쏨드리면 전 이 상황에 딱히 화가 나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랐습니다.”

“그래요?”

“예, 셰이머스 님의 수완에 감탄했거든요. 그 짧은 말다툼을 키워 자기에게 가장 이익으로 되는 상황을 가져왔으니까요.”

제인은 싸움을 부추김으로 투자를 받고 있는 셰이머스를 봤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칭찬받을 행동이 아닐 수도 있지만, 수익을 추구하는 사업가로서는 대단하고 칭찬받을 태도인 거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

“하고 싶으신 말이 뭐죠.”

“제인 아가씨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제인 아가씨의 그런 점을 좋아하거든요.”

"약삭빠르게 구는 거요?”

"아뇨, 자기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거요. 그러다 나중에 성공하시면 저 좀 도와주시고요.”

"...…후우, 알았어요. 괜히 생각하는 척 안하고, 저도 제 일에 집중하도록 할게요. 그러니 데이브도 딴 데 정신 팔지 말고 자기 일에 집중해주세요."

"예, 마법사님을 상대로 다른 데 정신을 팔 수는 없죠.”

"아뇨, 그런 뜻 아니에요.”

"예?”

"혼구녕을 내주라는 뜻이에요. 데이브 씨가 멋있게 이겨야 저랑 셰이머스가 면이 서죠.”

***

사람들이 충분히 모여들었을 때쯤 셰이머스가 양해를 구하곤 자리에서 빠져나와 마이크를 챙겨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밀도가 높은 단단한 석조 경기장 위에 올라서자 경쾌한 구둣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뚜벅. 뚜벅. 뚜벅.

경기장 주변에서 웅성이던 파티 손님들이 하나둘 침묵하며 셰이머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참으로 다재다능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의 깜짝 이벤트를 맡게 된 셰이머스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오늘 우리는 란다의 오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모였습니다!! 바로, 란다의 자랑 마탑의 학생과 길바닥에서 구른 해결사 중 누가 더 강하냐는 거지요!!!]

단순한 멘트가 아닌 어느 정도 사실인 듯했다.

연미복과 실크햇을 쓴 신사와 화려한 깃털 모자를 쓴 귀부인, 여성 드루이드, 양손에 골렘 의수를 착용한 용병 대장 등 파티에 초대된 수많은 사람이 이 대결 자체에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마탑의 학생들조차 하나하나 괴물과 같다고 평가받으니까요. 그게 사실인지 우린 지금 확인해 볼 겁니다……! 자, 더 이상의 미사여구로 귀하신 분들을 시간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청코너! T구역의 대표 해결사! 파이터 크루의 우두머리!! 임무 성공률 100퍼센트!!! 란다 최강의 흑마법사 데이이이브!!!!]

사람들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향했고, 올리버는 그 시선을 보며 말했다.

“전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 아닙니다. 아니, 아닙니다. 전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이고, 전 접니다.”

경기장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셰이머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즐기자는 건데. 아무도 오해하지 않을 거야.”

그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올리버가 이에 관해 따지려고 하자 셰이머스는 곧장 다음 선수를 소개했다.

[홍코너! 란다의 자랑 마탑의 원소학파! 이 중에서도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아그니 소학파 학생이자, 명문가인 레드힐 가문의 데에리익 레드힐!!!]

셰이머스가 몰리버 반대편을 가리켰고, 올리버를 비롯한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붉은 머리의 데릭이 올리버처럼 겉옷을 벗은 채 올라오려고 하였는데, 가만 살펴보니 그의 옆에 야렐리 아이스아이가 있었다.

‘신기하네. 데릭은 직계가 아니니까 그렇다쳐도, 야렐리는 탄탄한 가문의 직계, 할머니도 원마스터인데, 이런 곳에 나오다니……. 무슨 사정이 있나?’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야렐리를 살펴봤다.

그녀는 우려의 감정을 빛내며 데릭에게 뭐라 말했고, 데릭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그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올리버를 보며 불쾌함을 빛냈다.

'하긴, 원래 참가하지 않으려고 하셨으니까.’

올리버는 데릭을 경기에 참가시키기 위해 셰이머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도망치려고? 괜찮겠어? 가는 건 네 마음이지만, 그럼 마탑학생이 도망쳤다고 이 바닥에 소문이 쫙 퍼질 텐데, 그럼, 투자는 둘째치고, 마탑이랑 학파의 명성에 누를 끼치고……. 진짜 걱정돼서 그러는데, 감당할수 있겠냐?’

걱정을 가장한 협박에 데릭은 마음을 고쳐먹고 대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대로가면 마탑에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테니 말이다.

셰이머스가 흥겹게 소리쳤다.

[양 선수 준비됐습니까?!!]

올리버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불만에 찬 데릭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을 은밀하게 퍼트렸다.

대답을 들은 셰이머스는 경기장 밖으로 나갔으며, 그와 동시에 마력 장벽이 경기장 테두리를 둘렀다.

확실히 X구역의 불법 격투기 경기장과 질이 다른 것 같았다.

[시합.…. 시작!]

——콰광!!!!

셰이머스의 시합 선언과 함께 경기장 안이 폭발에 휩쓸렸다.

폭음과 함께 경기장 전체가 작게 흔들렸으며, 파티장의 손님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마법사의 힘에 관해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드문 경우일 테니 말이다.

감탄한 것은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두 가지 마법을 조합해 이런 위력을 발휘하다니.

‘마력으로 산소 농도를 조작한 다음, 작은 화염을 일으켜 폭발이라……. 대단하네. 마력 소모대비 위력과 범위를 극대화했어.’

올리버가 감탄하며 자신을 감싼 그림자를 풀었다.

그 모습은 흡사 꽃봉오리가 만개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오……. 저기 봐! 멀쩡해! 저 폭발 속에서도 멀쩡하다고!!”

경기장 주변을 둘러싼 관객 중 하나가 감탄하며 말했고, 다른 관객들도 놀란 채 올리버를 봤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폭발 속에 살아남은 게 어지간히 충격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공격한 데릭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림자로 전신을 감싼 올리버를 보자 살짝 놀라 했다.

마치, 버틸 줄 예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에 싸웠을 때와 달리, 데릭은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차분하게 전투태세를 다시 갖췄다.

아무래도 케빈의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케빈은 데릭을 훈련시킬 때, 기술이나 기교보다는 마음가짐과 생각하는 법을 중점으로 가르쳤으니.

실제로 그는 올리버를 관찰하고는 먼저 공격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손끝에 모은 마력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켜 선제공격을 가했다.

[스퀄(Squall)]

갑작스러운 돌풍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고, 지면에 널브러져 있던 작은 돌조각과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올리버에게 날아왔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으며, 그에 맞춰 데릭을 화염탄 십여 개를 단숨에 날렸다.

공격 타이밍과 속도, 질과 개수 모두 훌륭했다. 전보다 실력이 확실히 향상되었다.

‘대단하네.’

[쉐도우 스파이크(Shadow Spike)]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영창과 함께 화염탄의 궤적에 맞춰 올리버의 그림자가 오징어 다리처럼 쭉 뻗어 나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화염탄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단순히 힘으로 막은 것이 아닌, 마법을 이루는 술식의 취약한 부분을 공격해 술식을 파훼한 것.

과거 데릭과 대련에서 기본적인 감을 잡은 후, 바토리와 싸움을 토대로 나름대로 개선한 거였다.

‘이런 식으로 내 탐화(貪火)를 무력화하셨지.’

피의 칼날로 탐화를 찢어발긴 바토리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혈마법의 특성상 탐화(貪火)에 저항한 것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바토리의 기교가 뛰어난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처음 당했을 때는 당황했지만, 이렇게 배웠으니 꽤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뭐한 거야?”

데릭이 경악한 감정을 빛내며 물었다.

놀란 것은 데릭만이 아니었다.

데릭의 싸움을 구경하러 온 파티장의 일반 손님들부터, 야렐리를 비롯한 다른 마법사들도 모두 놀란 감정을 빛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묘기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올리버는 평소처럼 평범하게 답했다.

“술식의 약한 부분을 파괴해 마법 자체를 무력화해봤습니다. 쉽진 않지만, 생각보다 할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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