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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57화 (257/633)

< 257. 이어지는 견문 (2) >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에 큰 키를 가진 데릭 레드힐이 파티장 손님들 사이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의 훤칠한 키와 화려한 머리카락, 뚜렷한 이목구비는 값비싼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흑마법사. 마법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멋대로 지껄이는 거지?”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닌 놀랐기 때문이었다.

설마 여기서 아는 얼굴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마탑 학생들이 주로 온다고 했으니, 아는 얼굴이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설마, 케빈 님도?’

올리버는 혹시나 싶어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빠르게 살펴봤다.

눈에 익은 감정들이 보였지만, 아쉽게도, 또 다행히도 케빈은 보이지 않았다.

“이봐 대답 안 하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데릭이 다가오며 다시 물었다.

그는 올리버가 마법에 관해 멋대로 이야기한 게 많이 기분 나쁜 듯했다.

“아, 죄송합니다.”

“난 죄송한 걸 묻지 않았어. 마법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어봤지. 어디서 마법이라도 배웠나?”

올리버는 순간 마탑에서 청강했다고 말할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내뱉지 않았다.

현재, 자신은 마탑의 교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가 아닌,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였으니까.

“음……. 아뇨.”

“근데, 왜 지껄이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화가 난 데릭은 어느새 올리버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명백한 도발.

어째 흑마법사가 마법에 관해 논하는 건 아주 큰 실례인 듯했다.

파티에 참석한 다른 마법사들이 데릭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는 게 그 증거.

‘아……. 여기서 자산가들에게 투자를 설득하는 게 적잖게 불만이었나, 다들 불만이 쌓여있어.’

올리버는 새로운 사실을 머릿속에 적어 넣으면서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했다.

괜히 소란을 일으키면 올리버 본인은 물론, 올리버를 초대한 제인에게도 피해가 갈지 몰랐으니.

실제로 미란다는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만족스러운 감정으로 바라봤다.

다시 한번 사과할까 하는 그 순간, 올리버와 데릭 사이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제인이었다.

"마법사님.”

제인이 특유의 부드러운 예의를 갖춰 말했다.

그녀의 등장에 데릭은 뒤로 및 발자국 물러나 줬다.

“불쾌한 게 뭔지는 알겠지만, 저희가 먼저 물어본 거니,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데이브 씨는 그저 저희 질문에 대답한 것뿐이랍니다."

데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을 빛내며 제인을 봤다.

“……그대는 누구요?”

“제인이라고 합니다. 마탑의 학생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제인의 모습에 데릭은 주변을 살펴봤다.

그가 올리버에 대한 적대 행위를 멈춘 것은 제인의 만류가 아닌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였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데이브입니다.”

“데이브……. 아하, 한번 들어봤어. 요즘 길바닥에서 이름 좀 알리는 해결사지? 하긴, 그 정도쯤은 되니까. 이런 파티에 온 거겠지."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나도 알아. 이름을 알려봤자, 길바닥 수준일 테니. 그게 아니고서는 여자 뒤꽁무니에 숨어 있지 않겠지. 겁쟁이처럼.”

“저기요.”

올리버를 보며 독설을 뱉던 데릭이 고개를 낮췄다. 발끈한 제인이 끼어들었다.

“듣자하니 점점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뭐라 하였소?”

“말씀이 지나치다고 했습니다…. 마법사님들 면전에 대고 마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한 것은 저희 잘못이었지만, 여러분 역시 투자를 받기 위해 온 분들. 우리가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든 관여하시면 안 되죠. 뭣보다 여기 있는 모두 초대를 받아 온 손님입니다. 손님에겐 그에 걸맞은 예의 갖추세요.”

제인은 그녀답지 않게 강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논리정연하고 차분해 감정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데릭은 제인의 당찬 모습에 분노를 느꼈지만.

조금 신기했다.

데릭은 야렐리나 다른 여성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 참으로 매너가 좋았는데……. 아무래도 여성이라고 다 친절한 건 아닌 듯했다.

올리버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끼어들려고 하였는데, 셰이머스가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우리 제인 아가씨가 맞는 말하셨네. 맞는 말하셨어.”

머피 때처럼 상대방의 어깨에 멋대로 팔을 올리는 셰이머스.

분명, 올리버 뒤쪽에 있는 것만, 어느새 데릭의 뒤로 다가갔다. 기척을 숨기는 솜씨와 움직임이 아주 놀라웠다.

“이게 무……?!”

데릭이 놀랐다.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셰이머스의 힘에 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기에.

데릭 역시 체격이 건장해 어디 가서 힘이 밀린 인상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휴……. 운동 좀 해야겠다. 비실비실하네.”

팔에 힘을 주며 셰이머스가 말했고, 데릭은 셰이머스의 팔에 눌려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데릭은 수치심과 굴욕을 느끼는 동시에 강렬한 경계심을 보였다. 셰이머스가 강자인 걸 눈치챈 것이었다.

"당신…….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저 녀석이랑 같은 길바닥 해결사지. 뭐, 차이가 있다면 난 은퇴해 사업가로 성공했다는 거고, 흑마법사가 아닌 드루이드라는 거지."

셰이머스가 증거라도 되는 듯 자기 머리에 난 작은 사슴뿔을 가리켰다. 데릭은 그걸 보고 크게 놀랐다.

"뿔......?!"

“왜 뿔 달린 드루이드는 본 적 없어? 하긴, 다들 숲에서 수양이나 하고 있으니까……. 실컷 보라고, 대신 내 질문에 대답좀 해줄 수 있나?”

“그게 무슨……."

“여기 모인 란다의 진정한 사회 역군들에게 돈을 구걸하러 온 주제 왜 그리 모가지가 꼿꼿한지 물어봐도 될까? 무슨 자신감에서 말이야?”

셰이머스 특유의 직설에 몇몇 파티장 손님들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기 온 마법사들은 돈 한 푼이 아쉬워 온 놈들인 걸 다들 뻔히 아는 데 말이야.”

데릭이 굴욕감에 팔을 다시 뿌리치려 했지만, 셰이머스의 팔은 오래된 나무뿌리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붙잡은 어른처럼 셰이머스는 데릭을 가볍게 움켜쥔 채 말을 이어갔다. 아주 여유로웠다.

"뭣보다 난 저 녀석이 하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화력발전은 성장한계에 도달했다는 거. 내 밑에도 마법사가 좀 있어서 이것저것 공부 좀 하고 있지.”

“마탑에서 떨어져 나간 떨거지들 따위-”

에헤이! 여기 있는 놈들도 마찬가지잖아? 돈 떨어지고, 후원 못 받으면 쫓겨나는……. 이봐, 어린 친구. 사람이란 언제든 비참해질 수 있으니, 겸손함을 가져야해. 그래야지 나중에 망신당해도 비웃음을 덜 사거든."

셰이머스가 데릭의 말을 잘랐고, 파티장의 손님들은 아까 전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올리버도 꽤 인상 깊게 들었다.

누구든 비참해질 수 있으니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니……. 꽤 좋은 말인 거 같았다.

셰이머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면 너도 억울한 게 사실. 그런 의미에서 제안하지. 어디 한 번 증명해보지 않겠어? 누구 말이 더 옳은 건지 말이야.”

“여기서 토론이라고 하라는 거요?”

“크흐흐흐흣……! 마탑에서 온 도련님이라 순진한 구석이 많네? 토론이라니? 란다에서는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바로, 힘으로 증명하는 거지!!”

***

셰이머스가 아랫배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데릭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파티장 손님들은 모두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

마치, 술집에서 싸움이 났을 때와 비슷했다.

“지금 흑마법사와 싸우라고요?”

데릭이 셰이머스의 어깨를 어찌어찌 뿌리치며 소리쳤다. 셰이머스가 풀어준 것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래, 란다는 자신의 실력으로 말하는 도시니까. 더 센 놈 말이 맞겠지.”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놀랍게도 파티장은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싸움 구경하고 싶은 것도 한몫했고.

올리버는 이 상황에서 개인적 흥미를 느꼈다.

란다의 부유층뿐 아니라, 마법사, 귀족 등 높은 사람이 많이 온다고 했는데, 금칠한 것 외에는 근본적으로 보통의 술집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떠들며, 서로 가늠하고, 우열을 가리며, 싸움 구경에 열광하는.

물론, 이것을 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흥미로울 뿐이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셰이머스는 마치 불씨를 키우듯 특유의 유쾌한 목소리로 파티장 손님들의 호응을 끌어냈고, 손님들도 예의를 한 꺼풀 벗어던지며 기꺼이 호응했다.

‘마법사들의 망신을 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그냥 소란을 즐기시는 분들도 있네. 뭔가 확인하려는 분들도 있고. 이유가 가지각색……. 응?’

옷깃을 잡아당기는 감각에 올리버가 고개를 돌렸다. 제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괜찮으신가요?”

“예?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 상황요.”

제인은 눈동자로 싸움을 부추기는 셰이머스와 이에 호응하며 몰리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어느새 파티장의 중심은 이곳이 됐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이름 높은 마탑의 학생과 뒷골목에서 이름을 알리는 해결사가 싸우면 누가 이길 지로 변했다. 심지어 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쾌하고 기분 좋은 상황이냐고 묻는다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기분 나쁜 상황도 아니었다. 그냥저냥이었다.

“정말요?”

“예……. 이런 경우가 있다고 일전에 들은 적 있거든요. 아가씨와 수부렙토르 대형 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경매장 가기 전에요.”

“아……."

분명, 그랬다.

란다는 폭력이 지배하는 도시. 본인의 무력이 없는 도시의 상류층은 개인 무력으로 경호원을 고용해 그 부족한 무력을 해결했다.

드물지만 경호원들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거기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일은 일이니 말이다.

“물론, 아가씨가 싸우지 마시라 하면 안 싸우고요.”

“저요?”

“예, 일단, 전 제인 아가씨에게 고용됐으니까요.”

그 말에 제인의 눈이 잠시 흔들리더니 웃었다.

"하, 하……. 당신은 참 한결같으시군요.”

‘그렇습니까?’라고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천둥 같은 셰이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데이브! 마탑의 마법사님은 빼려는 거 같은데, 넌 뭐 하고 싶은 말 없나?”

“저요?”

“그래, 이곳에서 이만큼 이목 끌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야. 파이터 크루의 대장으로 하고 싶은 말 없나?”

“아, 말씀하시니 하나 있습니다.”

“오, 뭐지? 말해봐.”

“전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올리버의 말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왜냐면 그쪽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흑마법사 데이브가 파이터 크루의 대장을 잔인하게 살해해 그 자리를 빼앗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오해입니다. 제가 파이터 크루에 작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 분들은 제 부하분들이 아니고, 그냥 파이터 크루입니다. 전 그분들의 대장이 아니고, 크라임 펌과 동맹도 아닙니다. 그냥 일개 해결사죠……. 오, 말 하고 나니까 조금 개운하네요. 다른 분들 속인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거든요.”

올리버가 말을 마치자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살짝 낮아졌다.

셰이머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제인은 이제 받아들이는 듯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같은 그룹 멤버로 보이는 몇몇 여성들이 제인에게 물었지만, 제인은 나중에 대답하겠다고 능숙하게 답변할 뿐이었다.

올리버는 자신이 잘못 이야기했나 싶었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 말하는 게 옳았다. 오해는 더 깊어지기 전에 푸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럼, 마탑 학생과는 무서워서 못 싸운다는 거니?”

침묵하며 가만히 관망하던 미란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미란다의 영향력이 상당한지 모두의 수군거림을 멈추며 그녀를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올리버는 대답해야 했다.

"싸우는 건 늘 무서운 거죠.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대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초대해주신 제인 아가씨가 허락해주신다면요.”

올리버가 제인을 가리키며 대답했고, 제인은 모두의 이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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