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이어지는 견문 (1) >
윤기가 흐르는 녹색 장발과 큰 키를 지닌 셰이머스가 머피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등장했다.
올리버와 제인의 시선은 당연히 그에게로 옮겨갔다.
"셰이머스 씨?”
"안녕하시오. 제인. 약속시간이 됐는데도, 안 보여 내 직접 찾으러 왔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거든.”
제인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 정말이네요. 죄송합니다.”
"당연히 죄송하셔야지. 시간은 돈인데. 허나,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거라면 이해해 줘야지.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주류왕(酒類王)이니까.”
셰이머스가 머피의 가슴을 탁탁 두들겼다. 머피는 불쾌한 감정을 숨긴 채 미소 지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셰이머스 씨.”
제인은 겉으로 웃으며 감사를 표했고, 셰이머스 역시 겉으로 웃으며 받아줬다.
곧이어 그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옮겨졌다.
“……오랜만이군.”
"예, 셰이머스 님.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진심이면 좋겠군. 난 진짜로 반갑거든……. 이봐, 주류왕(酒類王). 괜찮다면 이분들 좀 빌려 갈 수 있을까? 우리와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기둥처럼 서 있던 머피는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을 숨긴 채 괜찮다고 대답했다.
셰이머스는 그런 머피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어깨동무를 풀었다.
그러고는 올리버와 제인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머피 씨.”
올리버는 셰이머스를 따라가기 전 머피에게 인사했다. 머피 역시 정중히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저도 만나서 진심으로 반가웠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머피와 헤어진 후, 올리버는 제인과 함께 셰이머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비싼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파티장의 손님들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셰이머스를 보자마자 곧장 길을 터줬다.
제인의 말대로 셰이머스가 크게 성공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셰이머스의 기세에 기가 죽는 걸 보니 말이다.
"넌 날 볼 때마다 놀라게 하는군.”
"제가요?”
“그래, 주류왕(酒類王)과 친분이 있는지 몰랐는데 말이야. 은근히 발이 넓구만.”
"아……. 옛날에 몇 번 의뢰를 맡은 적 있어서요. 그런데, 주류왕(酒類王)이 뭐죠?”
"아, 맞다. 내가 끼어들어 대답을 제대로 못 들었지. 사과할까?”
"아뇨, 그 정도는 아닙니다.”
"착하군. 착한 사람에게는 보상이 필요하지…….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술을 더럽게 많이 팔아 부자가 돼 붙은 별명이야. 주류왕(酒類王) 별명 그대로지.”
"오, 그렇습니까?”
“그래, 아이템이 좋잖아. 마법주……. 거기가 머피의 수완도 한몫했지. 설마 국내에서 해외로 눈을 돌릴 줄이야. 덕분에 불필요한 경쟁 없이 오히려 크라임 펌 내부에서 입지를 다지면서도 돈을 쓸어 담고 있지. 소문으로는 어지간한 이사보다 더 부유하다고 하더군.”
호오……. 셰이머스의 말은 진심이었다.
올리버가 확인차 제인을 봤다. 제인 역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거 대단하군요……. 그런데 셰이머스 님은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라고는 누가 돈 벌었다는 이야기 아니면 누가 바람피웠다는 이야기밖에 없거든. 보석과 비싼 옷으로 치장했지만, 나누는 대화는 뒷골목 술집과 근복적으로 똑같지……. 익숙해지라고,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면 이런 곳에도 맛을 들려야 하니까.”
"어……. 죄송하지만,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오해?"
"예, 전-"
"-아, 왔다!”
올리버가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려는 그 찰나. 웬 여성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황빛 머리카락에 주황빛 드레스를 입은 육감적 몸매의 여성이 이쪽으로 달려와 셰이머스에게 안겼다.
"빨리 왔네!”
"당연히 빨리 와야지. 숙녀를 기다리게 할 수 없잖아?”
여성은 셰이머스를 향해 애정, 의존과 같은 감정을 빛냈고, 셰이머스는 여성에게 귀찮음과 타산적인 감정을 빛냈다.
서로 판이한 두 감정은 퍽 인상적인 것인지라 올리버는 제인에게 질문했다.
"누구시죠?”
"머틀 버뉴. 저희 시스터후드 자산가 그룹 멤버고, 셰이머스의 애인이죠.”
"아, 그렇군요……. 셰이머스 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요?”
"뭐, 그렇죠. 설명하면 좀 긴데, 셰이머스 씨 덕을 많이 보고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이미 상당수 재산을 셰이머스 님이 관리할 정도로요.”
올리버는 놀랐다. 그래도 되는 건가 싶어 말이다.
"이봐 날 빼놓고 뭘 그리 숙덕이지?”
올리버와 제인의 대화가 대화하는 사이 셰이머스가 머틀을 데리고 왔다.
머틀은 셰이머스의 팔짱을 낀 채 다가와 올리버에게 인사를 했고, 올리버도 제인을 통해 그녀에게 인사했다.
셰이머스와 팔짱을 낀 것만으로 머틀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제인의 말대로 셰이머스에 대한 믿음과 의존이 몹시도 큰 거 같았다.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흑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네요? 흑마법사면 지하실에서 음침한 실험이나 하는 기분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꽤 괜찮으시네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원래 음침한 실험실에 있었지만, 오늘은 제인 아가씨 덕분에 이곳에 왔습니다.”
"어머, 말을 재밌게 하는 분이네요? 제인이 누군지 잘 이야기해주지 않아 무슨 문제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만났으면 좋을 뻔했어요.”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제인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머틀. 그런데 혹시 다른 분들은 어디 갔는지 아시나요? 아무도 안 보이는데, 혹시, 제가 너무 늦게 온 건가요?”
"응? 아, 아냐, 아냐……. 다들 기다렸는데, 잠시 저쪽으로 갔어. 마법사들이 왔다고 해서 말이야.”
"마법사요?”
"응. 마탑 마법사. 정확히는 학생들. 투자받기 위해 왔다는데, 한번 둘러보러 가셨어……. 우리도 가볼까?”
***
란다 자산가들의 파티에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거에 관해서라면 포레스트에게 들었기에.
거기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과거 노획한 ‘전격 마법사’의 일기와 ‘에이드리’의 연구 일지를 통해 한번 읽은 적이 있었다.
근래 들어 마법사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마탑 내에서는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전격 마법사나 에이드리처럼 적당한 재능과 부족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시.
마탑의 학생으로 살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이 필요했고, 그들은 후원을 통해 보통 이를 해결했는데, 재능의 한계에 봉착해 후원이 끊기면 이후부터는 스스로 살길을 도모해야 했다.
이때 선택지는 크게 세 개로 나뉘었다.
마탑의 자원과 지식을 몰래 빼돌리는 ‘뒷거래’를 하거나, 혹은 마탑 밖으로 나가 ‘길거리 마법사’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란다의 자산가들을 찾아 ‘투자’를 받아야 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그러니까. 이 교배법이면 안정적으로 순종(純種) 강아지를 얻을 수 있다고요?”
"예, 비약적으로 말이죠. 앙증맞은 코와 심술 맞지만 귀여운 입, 짤막한 꼬리도요.”
"어머, 그거 정말 멋있군요!”
"멋있고 말고요. 완벽하게 순수해지는 거죠……. 이 교배법을 사용하면 사모님의 애견협회 권위도 한층 더 높아질 겁니다. 약속하죠!”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미청년이 품 안에 개를 안고 있는 노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부인은 청년의 말에 흥미를 보였고, 청년은 노부인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에게서 필사적인 감정이 엿보였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마탑 학생만 봐온 올리버로서는 꽤나 생소한 광경.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든 양면성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
감정을 대가로 빚을 대신 갚아주는 흑마법사라던가,
퇴역군인을 고용해주는 밀주업자,
같은 여성을 이용하는 시스터후드,
세속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파테르교와 같은…….
그러니 마탑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올리버는 주변을 살펴봐 마법사와 도시의 부유층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계속해 관찰했다.
순종(純種) 강아지를 얻을 수 있는 교배법을 설파하는 마법사 외에도, 포션을 화장품으로 가공해 피부를 젊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 마법사가 있었고, 새로운 강철을 만드는 가공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마법사도 있었다.
대부분 학생이었지만, 학생이 아닌 정식 마법사도 보였다.
평소의 올리버라면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 텐지만, 아쉽게도 올리버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저 중 몇몇 개는 이미 도서관이나 논문,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고, 썩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곳 파티장에서는 전혀 새로운 기술이라는 듯 설명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것과 괴리감이 있는 광경에 올리버가 제인에게 질문했다.
"혹시, 이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이 마법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나요?”
"음……. 그때그때 다르지만, 아이템만 괜찮으면 꽤 많이 투자하죠. 한 번만 대박을 터트리면 엄청난 이익이 따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원금도 못 챙기지 않나요?”
“그거야 그렇죠?”
"그럼,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투자해도 괜찮은 건가요?”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
제인과의 대화 중 누군가 끼어들었다. 몹시도 서늘한 목소리였다.
올리버는 자신이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나 싶어 고개를 돌려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기분 나쁘셨다면-”
“-아니. 그냥 생각을 묻는 거야, 그러니 편하게 대답해.”
올리버는 앞에 한 노부인이 서 있었다.
회색과 흰색이 뒤섞인 이지적인 짧은 머리에 값비싼 마법 장신구를 걸친.
놀랍게도 마법 장신구는 모두 방어마법과 감정을 숨길 수 있는 보안 마법이 걸려 있었다.
'질이 좋은 건가 보네. 희미하게밖에 감정이 보이지 않아.’
올리버가 감정을 숨기는 마법 아이템의 질을 보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성은 꽤 나이가 있어 보였음에도 피부에 기이할 정도로 주름이 없었으며, 몸에는 흑마법의 기운이 희미하게 세어 나왔다.
과거 에디스에게서 봤던 것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인위적인 피부와 흑마법 기운이 무슨 상관이 있나?’
올리버가 생각에 빠진 그 순간, 그때 제인이 앞으로 나와 노부인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미란다 씨."
"반갑다. 제인. 좀 늦었네.”
***
값비싼 드레스와 정장 차림의 여성을 이끌고 나타난 미란다.
그런 미란다를 향해 제인은 늦은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머피와?”
"예."
설명을 다 들은 미란다는 올리버를 향해 몸을 틀며 손을 내밀었다.
겉으로는 온화했으나, 감정은 호감보다는 필요한 절차를 밟는 느낌이 더 강했다.
"대단하네. 소문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이런, 초면인데 반말했구나. 계속 반말해도 되지? 내가 나이는 더 많으니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소문대로 예의가 바르구나. 내가 누군지 아니?”
"예, 포레스트 님에게 들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란다 님.”
“포레스트?"
“예, 저와 거래하는 중개인이시죠.”
"근래 한번 들어봤지. 해결사 잘 만나 운 좋게 재기에 성공한……. 처음부터 포레스트와 거래를 했다고?”
"예."
"신기하네. 그런데 아직까지 포레스트와 거래하고 있다는 게.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성격이야?”
“……??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란다에서 출세하는데도 처음 거래처를 유지하는 사람은 없거든. 우정을 중시하는 낭만적인 성격이던가, 아니면 약점이 잡힌 사람밖에 없지.”
"아……. 그렇습니까? 전 그냥 포레스트 님이 늘 일을 잘해주셔서 같이 일하는 것뿐입니다. 실력이 뛰어나시거든요. 운은 제가 좋다고 할 수 있죠.”
올리버는 평소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올리버는 비록 고아였지만,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 행운 중 포레스트를 만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란다의 표정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확실히 넌 내가 본 해결사와는 결이 다르구나? 제인에게 말해서 초대하길 잘한 거 같아.”
"전 그냥 평범한 해결사입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미란다가 제인을 봤다.
"재밌는 친구를 뒀구나.”
“제 행운이죠.”
"그런 것 같아. 그리고 행운은 이 도시에서 필수적인 능력이지……. 데이브라고 불러도 되나?”
"예, 편하게 말씀해주시죠.”
"이 파티에 온 걸 환영한다. 데이브. 그런 의미로 아까 전에 했던 질문 내가 대답해줄게.”
"잘 모르는 것에 투자해도 되는지요?”
“맞아, 그거. 우릴 많이 걱정하는 거 같던데.”
“아, 걱정한 건 아닙니다. 그냥 이해가 안 돼서요.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 쪽에 우리가 아는 게 많지 않거든. 고매하신 마법사들이 지식을 꼭꼭 숨겨놔서. 그래도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세상은 늘 균형을 맞추려고 하거든. 지식이 없어도 조언해줄 사람을 구할 수 있지.”
미란다가 손을 살짝 들었다.
그에 맞춰 미란다의 뒤를 따르던 여성 무리 중 정장을 입은 여성이 살짝 고개 숙였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몸에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마법사시군요.”
"흐음……. 운이 좋게도 요즘은 뛰어난 마법사도 고용할 수 있거든. 아예,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도 있고.”
호오……. 올리버는 놀랐다. 확실히 가능할지도.
마탑 경쟁에서 밀린 마법사들이 길거리에 나오곤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활동해도 크게 이상할 거 같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합리적일지도. 전문 지식을 이용할 수 있고, 해결사보다 위험도 낮으며, 높은 임금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거 참 대단하군요……. 그럼, 미란다 님께서는 뭐 관심 가지는 분야가 있는지요?”
"당장 눈에 띄는 건 많지가 않아……. 그나마 아그니 소학파의 새 화력발전기술이 눈에 띄긴 하던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뭐?”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올리버가 흔들림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마법사 중 태반이 온갖 화려한 언변과 절묘한 어감으로 설득력을 높이려는 것과 대비됐는데, 우습게도 올리버 쪽이 더 믿음직하게 들렸다.
마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실만 말하는 느낌이었기에.
미란다가 홍미를 가지며 물었다.
"이유가 뭐지? 그냥 말하는 건 아닐 테고.”
"효율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화력 발전이라고 하면 화염마법을 바탕으로 석탄이나, 마석을 불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일 텐데, 개선한다고 해도 한계가 명백하거든요.”
평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며 말하는 것과 달리 올리버의 말은 꽤 단정적이었다.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소학파 도서관에서 틈틈이 읽은 책과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으니.
아그니 소학파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화력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현재 중론이었다. 그건, 아그니 소학파 출신인 케빈도 동의하는 바였고.
물론, 올리버가 알지 못하는 뛰어난 천재가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몰랐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해당 자료를 읽었을 때 올리버도 명확한 한계를 느꼈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혹시 몰라 여지를 남겨놨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으로 멋대로 판단을 내리는 건 썩 좋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뛰어나신 분이 나오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나오지 않는다면, 뭐가 더 유망할 것 같니? 화력발전보다.”
미란다가 되물었다. 불쾌함이나, 짜증, 의심 같은 감정이 없고, 흥미만을 빛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란다만이 아니었다.
미란다 뒤에 있는 여성들과 제인, 셰이머스 그 외 주변에 있던 파티장 손님들 하나둘이 올리버의 말을 주시하고 있었다.
뭔가 실수한 것 같았다.
"음……. 전 일개 흑마법사라서,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께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걸 왜 걱정하니? 결국, 투자란 본인이 선택한 건데. 잘못된 소리를 듣고 잘못된 투자를 해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자기 잘못이지. 누굴 탓해. 여긴 그런 바보는 없어. 안 그래?”
미란다가 자기 뒤쪽의 여성들에게 말했다. 여성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대답을 피하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순수마력학파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거기는 마석을 불태우지 않고, 마석에 담긴 마력 자체를 조작해서 낭비를 줄일 수 있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석 자체를 압축시킬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쓰는-”
“-말세로군. 흑마법사가 마법에 대해 논하다니 말이야!”
올리버가 말하는 도중 누군가 끼어들었다.
바로, 데릭 레드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