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파티 초대 (3) >
물론,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직원은 뭐가 됐건 일개 직원.
교수를 대신해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려준 기초적인 훈련을 도와주는 것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마력 흐름을 가다듬고, 술식을 연습 체계화하며, 전투에 필요한 기초적인 체력을 기르는 것……. 네가 이걸 나 대신 살펴봐 줬으면 해.’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일종의 분업화였다.
과거 올리버가 상급제자들에게 하급제자들을 가르쳐주라고 했던 것과 같은.
썩 나쁜 의견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케빈은 야렐리나 데릭 같은 우수 학생들에게 집중하면서도, 올리버를 통해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신경 쓸 수 있었으니.
'그게 전부는 아닌 거 같지만.’
올리버는 케빈의 감정을 보며 생각했다.
케빈이 올리버에게 한 제안은 진심이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숨어 있었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호기심과 의구심의 한 맥락이었으며,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궁금했다. 자신에게 뭐가 궁금해 이런 제안을 한 건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악의나 교활함은 없다는 것 정도?
올리버는 한순간 물어볼까 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물어봤자 대답을 들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았기에.
대신 다른 의문을 입 밖에 꺼냈다.
'그럼, 제가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지금은 괜찮을 거야. 비록, 마법사도 아니고, 마력무생성증이긴 하지만, 넌 데릭과 비겼고, 열차 강도도 때려잡으며, 마탑 내부에서도 제법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니까. 날 도와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도와주는 건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거야.’
들어보니 틀린 말 같지는 않았다.
직접 본 적 없지만,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 직원들은 교수의 개인 시중뿐 아니라, 수업, 연구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그럼에도 올리버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간신히 잠잠해졌는데, 또 괜한 시선을 받는 건 좀 그랬다.
‘교수님 속셈도 알 수 없고.’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탑 학생들과 직접 교류할 이 기회를 차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올리버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 했다.
케빈은 흔쾌히 허락하며, 다음 주 중으로만 대답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금요일이 다가왔다.
***
“여기 또 올 줄은 몰랐네요.”
자동차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던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의 시선 끝에는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J구역의 명물인 복합문화시설 <사파이어>였다.
과거 에디스를 만나기 위해 제인과 같이 왔었는데, 우연치고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에요.”
옆에 앉은 제인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녀는 과거를 완전히 잊었는지 불쾌함보다는 차분함, 각오와 같은 감정을 빛냈다.
"그렇습니까?”
"예, 사파이어는 원래 모임을 가지기 좋은 장소로 각광받거든요. 안팎은 화려하고, 시설도 훌륭하며, 주차장도 넓고, 비행선 착륙장도 너르게 있어서요.”
그 말을 증명하듯 지금도 비행선이 간간이 사파이어에 착륙하거나 이륙했다.
"무엇보다 셰이머스가 저기서 파티하길 원했죠.”
“셰이머스 님이요?”
"아, 맞다……. 저번에 한 번 만난 적 있었죠? 경매장에서?”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한 번 더 만나긴 했지만.
“그런데, 그분이 저길 원하셨다고요? 혹시, 아가씨와 같은 자산가 그룹에 소속되어 있나요?”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그분이 시스터후드에 소속되어 있고, 돈도 많고, 입김도 센 편이지만, 저희 그룹은 아니에요. 그룹의 성격과 맞질 않아서……. 다만, 애인분들의 발언권이 강한 편이죠.”
올리버는 셰이머스가 뒷배로 거느리는 애인 셋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럼, 그분들이 오늘 여기서 파티를 하자고 건의한 건가요?”
"예, 근래 셰이머스를 뒷배로 삼아 큰 성과를 내고 있어 그 정도 의견은 낼 수 있거든요. 무리한 요구도 아니라서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요.”
"응? 셰이머스가 뒷배로요? 그 반대 아닙니까?”
"아……. 모르실 수 있겠구나. 최근에 상황이 좀 바뀌었어요. 셰이머스가 원래는 개인 무력밖에 내세울 게 없긴 했지만, 사업이 거듭 성공하며 이제는 애인들 이상으로 재산이 늘어났거든요.”
"아, 그 정도입니까?”
“예, 그분 사업 수완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덕분에 요즘 이 바닥에서도 자주 언급돼요. 금융사업의 귀재라고요.”
“리프 론(Leaf Loan) 말씀입니까? 대부사업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그것도 맞기는 한 데, 요즘은 투자 사업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계세요.”
올리버는 계속해 몰아치는 새로운 정보에 질문을 계속했다.
"투자라니요?”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아는 것이라고는 지인들 위주로 폐쇄적으로 투자 사업을 하는데, 매달 10%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고 있어요."
"대단한 건가요?”
"엄청 대단한 거죠. 단순 계산만 해도, 1년만 맡겨도 원금이 2.2배로 부푼다는 건데요.”
제인이 진심을 빛냈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믿었다. 아주 대단한 거 같았다.
"그럼, 쉬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본 책에서 투자란 어려운 거라 하던데요.”
“당연히 그렇죠. 투자로 돈 번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다들 알아보려고 하는데, 누군가 말하기 놀랍게도……."
차가 갑자기 멈췄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파이어>에 들어온 것인데, 저 앞에 수많은 고급차량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차량에 접근하며 정중히 인사하면서도 철통같이 손님의 얼굴과 티켓을 검사했다.
"꽤 철저하네요?”
“이 파티에서 오가는 이야기나 투자 기회가 그만큼 가치 있다는 방증이죠. 실제로 이곳에서 나온 투자 정보나, 투자 제의를 받고 큰 재미를 본 사람들이 적잖게 있거든요. 그렇기에 자기 잘났다는 분들이 이만큼 모이는 거고요.”
"이런 자리에 정말 제가 와도 되는 건가 싶네요.”
"물론 되고 말고요.”
제인이 올리버의 어깨를 붙잡아 자기 쪽을 보게 하며 확언했다.
"데이브 씨는 제2의 셰이머스라는 불릴 만큼 가장 독보적인 활약을 하신 분이니까, 전혀 주눅이 들 필요 없어요. 당신은 파이터 크루의 대장이자, 크라임 펌의 동맹이니까요,”
"그건 오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이 도시에서는 허세와 거짓말, 오해도 하나의 힘이라서요.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주세요. 제가 지금 데이브 씨께 지금 많이 의지하고 있거든요.”
제인은 말을 마치며 응원하듯 활짝 웃어 보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적잖게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올리버를 응원해주기 위해서 태연한 척했다.
올리버는 그 모습과 감정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데이브 씨 덕 좀 보려는 건데요.”
잠시 후, 사파이어의 직원이 이쪽 차량에 다가왔다.
제인은 미리 준비한 초대장 두 개를 내밀며, 올리버를 잡아당겨 자신과 같이 얼굴을 보여줬다.
얼굴을 확인한 직원이 정중히 차량을 보내줬고, 올리버와 제인은 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티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
"여기서 만나 뵐 줄이야…….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데이브 씨.”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티장으로 올라온 올리버와 제인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해치고 가던 중 한 사내와 마주쳤다.
그는 다름 아닌 머피였다.
T구역 킴벨 패밀리의 보스이자, 마법주 사업가 머피 말이다.
그는 올리버와 우연히 눈을 마주치자 놀라며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머피 씨 하고도 오랜만인 거 같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인사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아쉬웠는데 정말 기쁘군요……. 이야기는 잘 듣고 있습니다.”
"이야기요?”
"예, 파이터 크루라던가, 이사님들과 동맹 관계 같은 거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빨라 놀랐습니다.”
아……. 올리버는 속으로 탄식했다. 설마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당혹스러웠다.
"그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요?”
"예, 정말 크나큰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응?"
올리버가 말을 하다 말고 누군가 당기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제인이 서 있었다.
"끼어들어 죄송하지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잠시 잊고 있던 제인에게 사과하며 머피와 제인을 소개해 줬다.
"머피 씨. 제인 아가씨입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올 수 있게 초대해주신 분이죠. 제인 아가씨……. 머피 씨입니다."
머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올리버는 그냥 이름만 이야기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뭔가 아닌 듯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닌 듯했다.
머피와 제인이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즘 유명하신 투자의 귀재를 만나 뵈니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요즘 유명하신 주류왕(酒類王)을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서로 알게 되니 기쁘면서도 반갑네요.”
합을 맞추듯 머피와 제인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예의를 갖췄으나, 그 이면에는 서로를 냉정히 관찰해 가늠하고, 재고 있었다. 이곳 파티장의 모든 사람이 그랬지만.
"제인 아가씨의 초대로 왔다고요?"
머피가 확인차 물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질문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두 분 관계가……."
놀라는 표정의 제인은 아니라며 손을 저었고, 올리버도 담담히 대답할 뿐이었다.
"아는 사이입니다.”
"......."
"......."
놀란 표정으로 올리버를 바라보는 머피와 제인.
머피는 잠시 귀를 의심했고, 제인 아가씨는 어이없음을 넘어 살짝 화가 난 감정을 빛냈다.
"아는 사이요?”
올리버가 자신을 노려보는 제인을 보며 뭔가 실수했나 싶었다.
"어……. 고용주와 고용인?”
"진심이에요??”
제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정말 화가 나 보였다.
“……제가 무슨 실수했나요?”
올리버가 머피를 바라보며 질문했고, 머피는 자기를 끼워 넣지 말라는 듯 양손을 보이며 뒷걸음질 쳤다.
제인이 그 모습에 기막혀하며 말했다.
"최소한 친구라고 소개해줘야 예의가 아닐까요?!!”
“아, 저랑 친구라도 괜찮으신가요?”
올리버가 질문했고, 제인은 다시 말문이 막히더니 이윽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친구 하고 싶네요!!”
"머피 씨. 제인 아가씨는 제 친구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친구를 사귀셔서 축하드립니다.”
“예, 저도 기쁘네요. 친구가 이제 두 명 생겼습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대답했고, 제인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귀가 빨갛게 물들었으며, 창피함과 민망한 감정이 요동쳤다.
올리버가 머피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또 뭘 실수했나요?”
“제발 거기 절 끼워 넣지 말아 주십시오.”
“예? 도대체 무슨 말……. 아, 입 다물겠습니다.”
올리버가 다시 옷을 잡아 입 다물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제인을 보며 입을 다물기로 했다.
올리버가 닥치자 감정을 추스른 제인이 대화를 재개했다.
"파티에 온 지 10분도 안 됐는데, 벌써 정신이 없네요.”
“뭔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올리버가 제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제인이 고개를 돌리자 올리버는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제인이 발언을 허락해줬다.
"감사합니다. 머피 씨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제 약간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아, 대답하기 어려운 거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아까 전에 제인 아가씨가 주류왕(酒類王)이라고 부르시던데, 그건 무슨 뜻이죠."
“아, 그건 별거 아닙니다. 그저-”
“-술을 더럽게 많이 팔아 부자가 됐다는 거지.”
머피의 어깨에 누군가 길쭉한 팔을 올리며 말을 가로챘다.
바로, 셰이머스였다.